매일묵상(2022/02/14 – 18)

시편76: 1절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이 시는 두 부분(1-6, 7-12)으로 된 단순한 구조입니다. 전반부(1-6)는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후반부(7-12)는 하나님의 심판을 노래합니다. 배경은 유대 왕국이 경험한 큰 승리입니다.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 제국의 침공에서 유대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은(열왕기하18,19장) 좋은 예입니다. 이 전쟁에서 앗수르 제국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하다가 하룻밤에 185,000명이 죽었습니다. 사자(Lion)를 경시하다  사고를 당한 것과 같습니다. ‘장막’(2절) 의 히브리 원어는 사자굴을 지칭합니다. 하나님이 땅에 두신 근거지와 거주지는 예루살렘입니다. 모든  이방 국가는 이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자와 같이 무적의 능력을 가지셨지만, 유대 백성들 가운데서 말할 수 없이 겸손한 모습으로 거하시는 주님은 원수의 모든 힘을 압도하는 무서운 권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할 때 베푸신 주님의 크신 권능은 이스라엘은 물론 애굽 사람들도 너무나 확실히 체험하였습니다. 또 40년의 광야 생활에서 주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총과 능력은 민수기와 신명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의 역사를 개관해 보면, 약소국 유대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자신들보다 힘센 이방 민족들과 싸워 매번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변 이방 국가들은 사자를 두려워 하는 것과 같이 유대에 계시는 주님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한편, 예루살렘 성전은 신자의 모형입니다. 신자들 안에는 능력의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담대하게 살아가야만 합니다.“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고전3:16,새번역)

시편76: 10절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시편 76장 전반부(1-6)는 하나님의 구원을, 후반부(7-12)는 하나님의 심판을 노래합니다. 후반부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행동은 유대지역에 국한되지도 않고, 과거에만 있었던 사건도 아니며, 방어적 성격만 있는 것도 아님을 밝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재판장으로서, 도처에 있는 악한 자들을 심판하십니다(7-9). 땅의 모든 민족들은 우주의 왕으로서 야곱의 하나님을 경배하여야 합니다(7). 그러나 심판의 목적은 경건한 자들을 구원하시는데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악인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9). 여기에 신자의 믿음이 요구됩니다. 신자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섭리적 심판을 기다리면서 사사로운 분노를 억제하여야 합니다. 주님은 온 세상의 왕이시며, 공정한 판결을 내리십니다. 만약 섭리적 심판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당신의 뜻을 따라 최후심판의 날까지 미루어 두신 것입니다(10). 또한 시인은 ‘주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고 권면하혐서,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도 마땅히 예물을 드려 경외할 것을 선포합니다. 그분은 땅의 모든 왕들을 당신의 주권에 따라 세우거나 폐하시기 때문입니다(1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은 심판의 사건이자,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더 이상의 심판은 없습니다. 이것이 신자가 부르는 구원의 노래요, 감사의 노래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3,24).­

잠언16:17절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 가는 큰길이니, 그 길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지킨다”
(새번역)

지혜라는 단어 자체는 도덕적 색채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반드시 도덕이 그 요소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지혜의 첫 걸음이 주님을 경외하는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17절은 윤리와 도덕의 관점에서 지혜를 정의합니다. ‘길’ 혹은 ‘대로, 큰길’이라는 이미지를 제시하여, 잠언은 제자들이 ‘윤리적 완전함’을 선택하도록 동기부여 합니다. 고고학적 증거를 살펴보면, 철기 시대 이스라엘(비시1100-600)의 경우 ‘대로,큰길’은 통상 도시 옆을 지나가는 주요 간선 도로였지, 도시 가운데를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도시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은 대로에서 돌이켜 도시로 이어지는 길로 나갔습니다. 이 잠언에서 ‘큰길’은 정직한 사람이 살아가는 여정을 묘사합니다. 큰길을 걷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의미합니다.  도시는 암묵적으로 타락과 죄악을 상징합니다. 정직한 자는 정죄받은 도시로 가지 않고 안전하고 장애물 없는 그 큰길로만 걷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생명을 지킨다’는 의미는 정직한 나그네들마다 잠언의 교훈에 깊은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유혹을 뿌리치고 큰길로만 행하여 그의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의 전형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당신 자신의 피로 되사서 하나님께 드려진 주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과, 그들의 마음에는 아들을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가 늘 담겨 있습니다.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사35:8).

잠언16:18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6-17절은 윤리적 행동을 다루고, 18-19절은 내적 태도를 다룹니다. 17절과 18절은 ‘길’이라는 은유로 연결되어 있지만, 18절은 목적지가 아니라 마음의 자세에 초점을 두고 교훈합니다. 지혜의 첫 번째 원칙은 주님을 두려워 하여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잠15:33). 교만한 사람은 이 원칙에 반하여 하나님과 사람 위로 눈을 치켜뜨고 살다가 넘어져 멸망합니다. 잠언은 정직한 사람(17)과 교만한 사람(18)을 함께 기술하여, 정직한 자는 겸손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선생들에게 순종하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교만한 자는 도덕 질서에서 일탈하여 어둠 속에 다니다가 넘어져 파멸합니다. 이는 그들이 다니는 길이 어둡고, 패역하며, 장애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잠언은 같은 교훈을 거듭 가르쳐 제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18절 후단에서는 ‘거만한 마음’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교만한 자들이란 마음과 정신이 거만한 자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교만한 자는 결국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고, 그들의 몸은 산산히 부수어질 것입니다. 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의 사지가 깨뜨려질 운명인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보복 때문입니다. 영원한 형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반역하여 왕이 되려는 마음에 먼저 패역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치려고 나귀를 타고 군사들을 이끌었습니다. 전쟁터는 숲이 많았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이 자랑하는 머리털이 상수리 나무에 걸려 매달렸고, 결국 요압의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겸손한 사람과 어울려 마음을 낮추는 것이, 거만한 사람과 어울려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잠언16:19,새번역).

잠언16:19절
“겸손한 사람과 어울려 마음을 낮추는 것이, 거만한 사람과 어울려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새번역)


이 구절은 ‘—보다 더 낫다 : better than’는 잠언 형태로써, 비교 대상 간에 절대적 측면이 아니라 상대적인 측면에서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제공합니다. 이 구조는 16:8절,‘의롭게 살며 적게 버는 것이, 불의하게 살며 많이 버는 것보다 낫다.’ 에서 언급되었습니다. 19절에서 ‘겸손’과 ‘재물-전리품’이 비교되었습니다. 겸손’도 중요하고, ‘재물’도 중요합니다. 이 둘은 상호배타적이지 않습니다. 다만, 겸손이라는 덕목을 희생해서 재물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겸손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겸손하게 되면 교만으로 가는 길은 저절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물을 얻게 되면 교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18절과 19절은 함께 읽어야 합니다. ‘전리품을 나눈다’는 말은 전쟁용어입니다. 그것은 승리한 자를 지칭하나, 본문은 승리자를 거만한 사람과 동일시 합니다. 무릇 인간이란 승리를 하게되면 자신의 지혜나, 탁월한 군사력에 그 원인을 돌리고 자부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하여, “궁핍한 자”는 “전리품을 나누는 자”와 대조되면서 겸손한 자를 지칭합니다. 만약 재물이 지혜자에게 온다면, 대대손손 물려주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를 따라 배분되기 위해 일시적으로 맡겨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재물은 지혜자에게도 재앙의 서곡이 될 것입니다. 재물이 많으면 1000 명 중 999명은 거만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1명의 예외를 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겸손하게 사는 사람이 드물게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만 하고 잘못을 전혀 저지르지 않는 의인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전7:20,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