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11/08 – 12)

시편60편
“활을 쏘는 자들에게서 피하여 도망치도록, 깃발을 세워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인도해 주십시오. (셀라)”(4,새번역).

사무엘하7장에서 다윗의 집을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사무엘하 8장에서 그 약속을 실현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서쪽의 블레셋과 동쪽의 모압을 정복하고 북쪽으로 유브라데 강까지 진격하여 소바 및 아람 군대와 전쟁 중이었습니다. 그러자 사해 남쪽으로부터 에돔이 침공하였습니다. 다윗은 큰 위기감을 느꼈습니다(삼하8:13). 이것이 본 시편의 배경입니다. 시의 구조입니다: 심판에 대한 탄식(1-3), 구원에 대한 부르짖음(4-5), 하나님의 약속의 회상(5-8), 승리의 외침(9-12).   

에돔의 침공은 하나님의 분노요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다’’라고 표현될 만큼 다윗에게 큰 동요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험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펄럭이는 깃발이 하나 있었는데(4), 그것은 기도의 깃발이었습니다(5). 이미 하나님은 땅과 백성과 현재 원수들에 관해 약속을 하셨습니다(5-8).  그러나 그 약속의 성취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였습니다. 기도는 그 유일한 답입니다(11). 이것이 오늘 시편의 메시지입니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진리 안에서 행하면서(4,12) 기도의 깃발을 펄럭여야 승리합니다. 실로 고대 이스라엘에게 전쟁은 언제나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늘 강한 이웃 국가들에 의하여 둘러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승리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할 경우였으며, 오늘날의 영적전쟁도 같습니다. “사람의 도움이 헛되니, 어서 우리를 도우셔서, 원수들을 물리쳐 주십시오.”(시60:11, 새번역).


시편 61편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5절)

본 시편은 기도로 시작되어 찬양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많은 시가 이 유형을 취하는데, 성경적 순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도가 하나님에 대한 확신(신뢰)을 낳으며, 그 확신은 찬양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이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행동하심으로 응답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가장 큰 은혜의 수단 중 하나입니다. 이 시의 구조입니다 :

       A     보호를 위한 기도(1–2) / B  확신의 표현 (3–5)
       A′    보호를 위한 기도( 6–7)/ B′  확신의 표현( 8)

시는 60편과 같이, 다윗 왕이 겪었던 어떤 위기 상황을 전제합니다. 아마도 압살롬의 반역으로, 요단 강 넘어로 급히 도망친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윗의 왕위는 위태로왔으나, 주님 안에서 피난처를 발견하고 도움의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그런 상황을 넘어, 피신처를 찾는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소식을 말합니다. 다윗은 주님 안에서 피난처, 따듯한 사랑, 환영의 체험을 고백하며, 죄, 많은 고난, 그리고 사망으로 얼룩진 소망 없는 세상에 영원히 통치하시는 왕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비밀 중의 비밀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행하실 수밖에 없는 심판을 친히 담당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위해 영원한 피난처요,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눅1:31-33). 그러므로 이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죽었지만, 후에 주어질 영원한 기업의 확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잠언15:13절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3-19절의 단락은 환경 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마음은 환경을 극복한다(13-17). 둘째, 환경을 극복하는 자들(노하기를 더디하는 자, 정직한 자)과 패배하는 자들(분노하는 자, 게으른 자)이 갖는 마음의 성향(18-19)은 차이가 있다. 이같이 마음(속사람)은 사람의 얼굴과 정신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얼굴을 빛나게 한다”는 의미는 직역하면 “좋게 만들다”이고, ‘상하게 한다”는 ‘채찍에 맞아 깨지다’에서 나온 말로 마음의 우울함을 잘 표현합니다. 사람의 속마음은 외부에 나타난 활기찬 모습, 진정한 미소나 굳은 표정 등으로 알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순조롭거나 아니면 불리한 환경에 매일 직면하게 되기 때문에, 그를 둘러싼 환경 보다도 마음의 반응은 훨씬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즐거움은 건강이나 재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괴로운(궁핍한) 환경에 직면할지라도 그것을 극복하는데서 생깁니다. 이를 위한 결정적인 도움은 ‘현자의 지식’으로부터 얻어집니다. 실로 꿈(사건)보다 올바른 해몽(설명)이 중요합니다. 창세기 41장에서, 애굽 왕 바로가 꿈을 두 번 겹쳐 꾸고 근심할 때, 요셉이 등장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올바르게 해설하여 줌으로 바로와 그 신하들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현자의 말을 거부하고 자신의 어리석은 의견을 고집함으로써, 근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진가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만 그 가치를 깨닫고 순종합니다. “명철한 사람의 마음은 지식을 찾지만, 미련한 사람의 입은 어리석음을 즐긴다” (잠15:14,새번역)

잠언15:14절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13절과 연결하여, 14절은 마음의 기쁨과 괴로움의 근원을 추적하여 그 이유를 알려줍니다. 명철(明哲)한, 즉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 마음은 그와 정반대되는 욕구와 언어를 가진 바보들과 뚜렷이 구분되어집니다. ‘명철한’의 원어는 ‘나본’이며 ‘분별력’ 혹은 ‘ 통찰력’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명철한 자는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지 않고, 무엇이 바른 정보이며 지식인지를 분별합니다. 한편, ‘미련한 자의 입’이란 ‘마음’의 다른 표현이고, ‘즐긴다’의 원어는 ‘라아’로서, ‘’(가축이 풀을) 뜯어 먹다’는 의미입니다. 농업과 목축이 주업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축이 입으로 풀을 뜯어 먹으면서 즐기는 모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풀은 가축만 먹지 사람은 먹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는 마치 가축과 같아서, 미련한 것들을 먹으며 즐거워 하는데, 명철한 자는 그런 행동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가 왜 미련한 것들을 추구할까요? 그 이유는 자신을 높이고 자신이 중요한 존재임을 부각시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나 이웃 보다 자신이 더 굉장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도덕적으로 오만한 자는 주님이 세우신 도덕질서를 무시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들을 즐기고 있으니 솔로몬이 탄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한, ‘입’으로부터 언어가 나옵니다. 바보는 거만하기 때문에 현자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고집스럽게 쏟아냄으로써 스스로를 만족시킨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받을 보상은 재산과 영예와 장수이다.” (잠언22:4,새번역).

잠언15:15
“고난받는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다 불행한 날이지만, 마음이 즐거운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잔칫날이다.”(새번역)

본 구절은 계속해서 마음이란 주제를 다루면서(13-14절), 물질적 번영 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줍니다(16-17절). 13절은 기쁨과 근심이 속사람에 영향을 미쳐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외부에 드러남을 말하지만, 15절은 더 나아가 사람의 전 존재에 대한 영향을 지적합니다. 어떻게 보면 건강하고 부요하지만 마음에 고통이 있는 자라도 즐거운 마음을 가짐으로 그런 환경을 능히 이길 수 있음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즐거운 사람’을 구약에서 살펴 보면, 거의 모든 경우에 먹고 마시며 풍요로 인해 즐거워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추수로 즐거워 하는 보아스(룻3:7)) 그러나 사무엘상 1장은 풍요로웠지만 행복하지 못한 두 여인, 엘리멜렉의 아내 한나와 브닌나를 말합니다. 한나는 남편에게 사랑 받았지만 자식이 없어 괴로워했고,  자식을 가진 브닌나는 남편의 사랑이 없어 불행하였습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늘 격동시켰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한나는 다투지 않고 주님께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후 한나는 서원한 대로 어린 사무엘을 수소 두 마리와 함께 하나님의 일꾼으로 드렸습니다(삼상1장). 주님의 응답 그것은 경제적 풍요가 있으나 마음이 고통스러웠던 한나가 행복해지는 비결이었습니다. 풍요하지만 남 모르는 걱정 근심이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때가 되면 풍성한 응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약5:13,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