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2
시편34편 – 다윗의 교훈(2)
“주님은 주님의 종들의 목숨을 건져 주시니, 그를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다”(22절, 새번역).
이 시의 두 번째 단락(11-22절)은 3가지 비결을 말합니다: (1) 선한 삶의 비결(11-14절)은 주님을 경외하는데 있으며, 그 방법은 우리의 혀를 지키고(13), ‘악을 버리겠다’는 자기 부정의 도덕적 목표와 ‘선을 행하겠다’는 긍정적인 도덕적 목표를 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14). (2) 문제에 직면하는 비결(15-18절)은, 문제의 시작과 함께 기도는 시작되어야 합니다. 의인의 기도가 하나님의 관심을 끌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당신의 뜻을 따르는 자들을 얻기 위하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롭게 사는 가운데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는 아주 효과가 있습니다(15). (3)구원의 비결(19-22절)은 신자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알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인)은 하나님과 친족 구속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롭게 산다고 고통 없는 삶이 보장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뜻을 행하다가 많은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19), 보호하시고(20), 우리 편에 서시고(21), 우리에게 대가가 요구되는 것은 전부 지불하시고(22), 자신을 안전한 피난처로 제공하십니다(22). 이런 관계와 경험은 다윗의 주님되신 그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신약에 와서 더 분명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신자의 친족구속자(고엘)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2021/07/13
시편35편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 분발하여 일어나셔서, 재판을 여시고 시비를 가려 주십시오.”(23절, 새번역)
본 시는 체계적인 시라기 보다, 적의와 고난이 끝이 없는 것 같이 보이고 감정이 끓어 올라 지은 시입니다. 배경을 보면 사울이 다윗을 편집광적으로 증오하던 그 오랜 기간이 적당합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사울에게 알랑거리며, 부당하게 다윗의 고난을 악화시켰습니다. 34편처럼, 이런 상황의 유일한 해법은 기도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즉각적인 응답을 주신 34편에서의 고백과 달리(34:6), 현재 당하는 고난은 끈질긴 기도에도 불구하고, 응답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기도란 우리의 필요를 주님 손에 맡기고, 그분의 시간표에 맞추는 것입니다. 본 시는 3 부분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1) 뜻 밖의 위험에 처하여 드리는 기도(1-10절) (2) 부당하게 당하는 위험 속에서 드리는 기도(11-18절) (3) 악의가 가득한 위험 속에서 드리는 기도(19-28절). 각 단락은 반복하여 시편기자 자신을 위해 행동해 주시기를 요청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부당한 상황을 당할 경우, 본 시편은 좋은 기도의 모범이 됩니다. 우리 주님 역시 “까닭 없이 나를 미워 하는 자들”에 관한 내용을(19절)을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 날 밤 자신에게 적용하심으로(요15:25) 명백한 이유 없이 고난 당하는 자들과 동일시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당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경건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에 힘쓰면 우리 신앙에 큰 유익으로 돌아오며, 우리는 사람들을 얻을 것입니다. 마치 여자가 해산하여 자녀를 얻는 것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딤전4:8, 새번역).
2021/0714
잠언14: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지혜는 거만한 자가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닙니다. 오직 겸손한 자만이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거만한 자도 지혜를 추구하지만, 발견하여 소유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이들이 찾지 못하는 지혜는 경건과 도덕에 관해 계시된 진리를 말합니다. 한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러나 거만한 자는 자신이 그 누구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지혜를 배우지 못하고 죽습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섬기려는 도덕적 미덕이 결여 됨으로써, 정작 자신이 지혜롭다고 소리를 쳐도 그에게서 배울 것은 없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명철(明哲- 총명하고 사리에 밝다) 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쉽습니다. 심지어 한 마디의 말을 들어도 깨닫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명철”로 번역된 원어는 ‘빈(discerning)’ 으로 단지 두뇌가 명석하다는 의미만 아니라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신중하게 모든 것을 결정하고 민첩하게 수행하는 자를 말합니다. 명철한 자의 대명사는 솔로몬입니다. 약관의 나이가 안되어 왕 위에 오른 솔로몬은 왕국을 견고히 세웠으나, 통치자로서 부족함을 인식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브온 산당으로 가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마음에 소원이 있음을 아신 주님은 나타나셔서 소원을 물으셨습니다. 왕이 되었으나 자신이 어린아이임을 고백한 솔로몬은 백성의 송사를 듣고 판결하는 “듣는 마음”을 구하였고, 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것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잠17:6).
2021/07/15
잠언14:7
“미련한 사람의 앞을 떠나라. 네가 그의 말에서 지식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새번역).
본 잠언은 젊은이들에게 바보들의 교훈을 멀리하라고 강력히 충고합니다. 이런 충고는 이미 언급한 13:27절 “지혜로운 사람과 함께 다니면 지혜를 얻지만, 미련한 사람과 사귀면 해를 입는다”는 교훈의 논리적 귀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할 표현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전혀 바보가 아닙니다”라고 할 때, 그 의미는 그는 매우 지혜롭다는 의미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그 말과 행위 속에서 자신의 미련함을 스스로 표현합니다. 만약 우리가 미련한 자임을 보고도 그를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리석음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미련한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를 위해 14장은 바보의 특성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적절한 행동과 말로 가정이나 관계를 파괴하며(1절), 상황파악을 못해 파멸을 자초하고(3절), 스스로 어리석음 속에 고집스럽게 머물러 있고(6, 18, 24절), 스스로 어리석음을 표현하고(7절), 스스로를 속이고(8절), 거만하여 경건함을 조롱하고(9절), 모든 말을 쉽사리 믿고(15절), 경솔하며(16절), 음모를 꾸미거나 툭 하면 화를 내어 일을 그릇치고(17, 29절), 결국에는 자승자박하게 됩니다(33절). 특히 바보 중의 바보는 하나님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거만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거나(시14:1), 혹은 자신은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겸손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만약 이런 바보들을 만나게 된다면 신속히 그들을 떠나야 합니다. 그들에게서 얻을 도덕적 영적지식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잠26:12).
2021/07/16
잠언14:8
“슬기로운 사람의 지혜는 자기가 가는 길을 깨닫게 하지만, 미련한 사람의 어리석음은 자기를 속인다.”(새번역)
이 구절은 자기 행위의 결과를 주목하는 슬기로운 사람의 지혜를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는 미련한 사람의 어리석음과 대조함으로써, ‘속임’에 관한 주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행위와 운명 사이의 도덕적 관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겉모습만 보지 않고 그 이면의 문제들을 샅샅이 조사합니다. 지금 잠언은 잘 배우고(6절) 좋은 교사를 선택하라는(7절) 훈계에 경건하고 의롭게 살고 다른 사람들을 해롭게 하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통제하라는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한편, 본 잠언의 주어는 댓구를 이루는데 반해 – ‘슬기로운 사람의 지혜’와 ‘미련한 사람의 어리석음’, 술어들 – ‘자기의 길을 주의한다’와 ‘속인다’ – 사이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로 숨어 있는 의미를 생각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확한 댓구가 이루어지도록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보들은 자신의 길에 주의하지 않고,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과 남을 해치는 속임수를 피한다.” 즉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도덕적 지혜를 따라 발걸음을 선택함으로 자신과 타인의 확실한 삶을 보장하지만, 바보들은 도덕적으로 무감각하여 타인의 희생을 꾀하다가, 뜻하지 않게 자신도 희생당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외양적인 필요와 결과만 생각하지 않고, 그 이면을 통찰하고는 그 길이 과연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의 문제까지 심사숙고합니다. 경건과 도덕의 비법은 보내신 분의 영광을 진심으로 구하는데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만,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진실하며, 그 사람 속에는 불의가 없다.”(요7:18,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