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1/07/5 – 9)

2021/07/5
잠언14: 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본 절은 1절과 2절이 추상적으로 표현한 지혜를 대조법을 사용하여 언어 사용에 적용합니다. 앞 부분은 거만한 바보가 자신의 말 때문에 매를 맞는 모습을, 뒷 부분은 지혜자가 자신의 말로 인해 생명이나 재물을 보호하게 되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이를 위해 솔로몬은 바보의 경우 ‘입’이라는 단어를, 지혜자의 말은 ‘입술’이라는 낱말을 사용하고 있음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입 – mouth’ 안에는 혀가 있습니다. 그 혀는 말할 때 입 안을 이리저리 치는데 마치 막대기가 자신을 때리는 것과 같습니다. 바보가 교만한 말을 하는 것은 자만심 때문인데, 이로 인하여 쓸데 없는 고통을 자초합니다. 실로 자신의 가장 큰 적은 자신임을 보여줍니다. 한편, 솔로몬은 입술이 다물어진 모습을 보고 슬기로운 자들이 보여준 절제있고 통제된 언어사용의 경험을 떠올린 것 같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주의깊게 할 말을 선택하여 불필요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실수일지라도 분별없는 말을 하면 상대방은 상처를 받고 분노하며, 잘못하면 큰 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어느 그리스도인이 신자들로 구성된 축구대회에서 바람같이 공을 몰고 가자 의도적 태클이 들어왔고, 심하게 넘어져 손가락 하나가 부러졌습니다. 후에 그 신자는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는 말 대신 의도성이 없다는 등 변명하는 말로 일관하였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물며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해할 목적으로 말하는 경우 – 진실로 어리석은 자임 – 해를 당할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비수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약이다.”(잠12:18, 새번역).


2021/07/6
잠언14: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1절에 집을 세우고 허는 것으로 표현된 지혜와 어리석음의 추상적인 의미는 본 절에서는 사려깊게 산업을 선택하고 투자하는 경제적 활동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본 절은  “비록 농부는 황소를 쓰지 않고 스스로 일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할 수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어리석은 결정이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잠언은 매우 짧지만, 히브리 원문은 번뜩이는 문학적 기교를 담고 있습니다(키에스틱 구조). 즉 문장의 처음과 나중은 ‘소’라는 단어, 가운데는 ‘소’가 미치는 효과를 표현하기 위해 ‘바르-깨끗함”과 “로브-많다”(철자의 순서가 반대임)를 연 이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수입의 원천이 되는 산업에 사려깊게 투자할 때 비용을 훨씬 초과하는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농업사회에서 소로 대표되는 가축들은 쟁기나 마차를 끌고 타작도 하여 노동을 크게 절감시키기 때문입니다. 소 한마리도 그런데 하물며 12겨리 즉 24마리의 소를 이끌고, 종들과 함께 열 두 고랑을 동시에 간 선지자 엘리사의 집은 매우 부유하였을 것입니다(왕상19:19). 혼자 노력하여 성공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힘이 들고 어렵더라도 서로 힘을 합쳐야 큰 성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 역시 공동 연구를 하며, 사업을 할 때도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결합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계에 지능을 달아주는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는 거미형 인간 즉 여러 분야를 연결하여 네트웤을 만들 수 있는 융복합형 인재를 요구하며, 융복합형 인재의 필수 자질은 서로 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교회생활을 열심히 할 필요성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잠언14:24).


2021/07/7
잠언 14: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5절은 3절과 같이 ‘말하기’를 다루나, 증인의 인격에 초점을 맞추어 주제를 다룹니다. 히브리 원문은 4절과 같은 문학적 기교(키에스틱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신실한 증인 – no거짓말 – 거짓말 – 거짓 증인. 지금 본 잠언이 전제하는 상황은 법정입니다. 한 측은 피해를 입었다고 고소하며, 또 다른 측은 그런 일이 없다고 방어하고 있습니다. 재판관은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이 문제는 죽고 사는 문제일 가능성도 많습니다. 따라서 증거 없이 재판관은 판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지문, DNA 검사, CCTV 영상 등 많은 증거자료가 있으나, 3천년 전 솔로몬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없기 때문에 증인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이 십계명 안에 들어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증인의 말이 진실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재판관은 증인의 인격내지 성품을 보고 진실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실로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마7:17-18). 증인석에 앉을 때, 신실한 증인은 간청, 뇌물, 혹은 약속의 제시나 심지어 위협을 받더라도 진실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후 만유의 주님으로 임명하셨다는 성서의 기록이 참됨을 증언하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증언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을 항상 만나고 있으며, 그분의 통치를 섭리 가운데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 영이 나를 위하여 증언하실 것이다.”(요15:26, 새번역).


2021/07/8
시편34편
“내가 주님을 간절히 찾았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내셨다.”(4절, 새번역)

이 시는 깨진 아크로스틱(알파벹) 패턴입니다. 그래서 각 구절의 시작은 히브리어의 자음 22개의 순서대로 ‘‎אֵֶ֥ 알레프’, ‘‎גַּ֣ 기멜’ ‘‎דְּ 달레트’…. 등이 등장하지만, 한 문자는 사용되지 않았고, 다른 문자는 두 번씩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예측불허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때때로 찾아 오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다윗은 자신의 젊은 시절 경험을 회상하고 답을 줍니다. 본 시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배경은 사무엘상 21:10-14 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고 군대장관과 사위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형통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질투하여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다윗은 도망쳐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왕을 아비멜렉으로 부름)에게 망명 하였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의 가치를 알아보고 구류합니다. 또 다시 위기에 처한 다윗은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체하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주의할 점은 다윗이 도피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기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서의 기사만 보았더라면 그런 생각도 가능하나, 본 시편에서 옛일을 회고해 보는 다윗의 심정을 읽으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도망칠 수 있었던 비결은 ‘내가 주님을 간절히 찾았더니(4절)…..이 비천한 몸도 부르짖었더니(6절)…”에 있습니다. 즉 다윗의 간구를 들으시고 주님께서 건져내셨고(4절), 구원해 주셨기(6절) 때문입니다. “너희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깨달아라.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큰 복을 받는다.”(시편34:8, 새번역).


2021/07/9
시편34편 – 마음이 가난한 자를 위한 지혜로운 교훈(1)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그를 경외하여라. 그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9절, 새번역)

이 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1-10절은 경험이 주는 교훈으로서, 주로 다윗 자신의 증언이 담겨 있습니다; 11-22절은  삶을 어떻게 다루고 위기를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를 교훈합니다. 오늘은 첫 부분을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주님을 늘 찬양할 것이니…자랑할 것이니…”(1-2절)라는 대목은 심지어 ‘아비멜렉의 손아귀에 떨어져서도’ 찬양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 상황을 겪는 인생의 과정에서 신자의 참된 반응은 명민함이 아니라, 영광스럽고 무한한 능력의 주님을 ‘찬양’하고 ‘자랑’ 하는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아기스에게 망명하였지만, 언제 죽을지 몰라 심히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는 진실로 마음이 가난하게 되었고, 간절히 기도드려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 경험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변함 없는 진리를 체득하였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그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를 둘러 진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그 천사’는 나중에 도성인신하실 우리 주님의 구약적 표현이며, ‘둘러 진치다’는 말은 그분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지상을 순례하시고자 이동식 집에 거주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신자들이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고 그분에게 피할 것(8절)을 교훈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두려움이 있다면  그 두려움을 주님 손에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다윗과 같은 은혜를 체험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