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1/06/28 – 07/02)

2021/06/28
시편32편
“너희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아라.” (9절,새번역)

시편32편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이 시는 7개의 참회의 시편들(6; 32; 38; 51; 102; 130; 143) 중 하나이며, 이 시편을 통해 사죄의 확신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참회 뿐만 아니라 감사와 지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훈적 요소를 지혜의 문맥에 삽입하여 죄의 고백을 다룹니다. 성서적 의미에서 참회란 죄에 대한 깊은 슬픔의 표현으로 고백, 용서,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교훈)에 문을 열고 순종하는 모습을 수반하여야 합니다. 이 시의 구조는 분명합니다. 축복(1-2절)은 슬픔, 고백, 그리고 용서의 경험을 전제합니다(3-5절). 용서를 경험한 경건한 자들은 주님께 피난처를 구할 용기를 갖습니다(6-7절). 그리고 주님이 가르치시는 그 교훈을 마음에 새깁니다(8-10절). 마지막 절은 결론에 합당한데, 다윗은 의로운 모든 자들이 주님을 기뻐하고 찬양하기를 요청합니다(11절). 성서에서 의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동의어로서, 하나님을 두려워 함으로 체득된 도덕적 지혜가 삶에 배어 있어 하나님의 뜻이 열매맺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들이 얻는 도덕적 지혜는 주님의 징계를 통해 옵니다(잠언3:11-12). 그들은 분별력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기에 분별력 없는 노새나 말로 상징되는 경건하지 못한 자들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워지시기를 부끄러워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되어서 여러분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빌1:9-10a)


2021/06/29
잠언13:25
“의인은 배불리 먹지만, 악인은 배를 주린다”(새번역)

본 잠언은 13장 2-4절에서 이미 언급한 주제, 즉 의로운 자의 욕망은 풍성하게 채워지지만, 악인의 욕망은 계속 부족함을 경험한다는 주제로 돌아갑니다. 의인은 선한 행동이 보답받아 배불리 먹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의인 역시 ‘음식을 먹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생명, 행복, 그리고 기쁨을 얻기 위한 필수요소입니다. 그러나 충족시켜야 할 욕구가 육체적 혹은 정서적 혹은 영적이건 간에 그 배후에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때를 따라 공급하시는 하늘의 왕의 선한 손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언은 가난한 자들을 도와 주는 사람은 모자라지 않지만, 이기적인 사람은 궁핍할 것임을 가르칩니다(잠28:27;10:3). 또 하나 생각할 점은, 궁핍을 의미하는 ‘배를 주린다’는 말은 하찮은 존재처럼 되거나 치료받지 못하면 죽게 될 운명임을 나타냅니다. 모세율법은 음식의 부여자(하나님)와 그분의 백성 사이에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오직 그분의 백성들이 언약에 순종할 때만 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핏 구약을 읽으면 풍성한 음식이 존재할 때는 올바른 관계,가 흉년이나 음식이 핍절한 때는 주님과 잘못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오직 최후의 심판 때만 100% 옳습니다. 그 이전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뒤엉켜진 세상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라’(합2:4) 는 대원칙을 명심하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욥의 경우와 같이 당신에게 신실한 백성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돌보심을 믿고 늘 신실하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귀를 돌리고 율법을 듣지 않으면, 그의 기도마저도 역겹게 된다.”(잠언28:9, 새번역).


2021/06/30
잠언 14: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잠언 31장10-31절은 지혜로운 여인이 어떻게 자기 집을 세우는지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선행으로 남편을 도우며, 밤낮으로 부지런히 일하기를 즐거워 하고, 상인을 통하여 무역을 하며, 매일 식구의 음식을 준비하고, 여종들에게는 할 일들을 정하여 맡깁니다. 또한 밭을 살 때에는 잘 살펴서 지혜롭게 사며, 직접 벌어들인 돈으로 포도원도 사서 가꾸며, 가난한 사람을 열심히 돕고, 가솔들을 위해 의복을 지어 입히며, 장래를 대비하고, 남편이 마을 원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게하며 존경을 받고, 게으르게 얻은 양식을 먹지 않으며, 집안 일을 두루 살펴보며 자신감과 위엄이 몸에 배어 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녀는 입만 열면 지혜가 저절로 나오고, 그 혀로는 덕을 끼치는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자녀들의 칭송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지혜로운 삶의 원천은 주님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31:30). 그러므로 잠언은 이런 여인의 값은 진주보다 더 뛰어나니, 아들에게 이런 좋은 아내를 얻을 것을 권고합니다. 이 반면 어리석은 여인은 자기 손으로 가정을 허무는데, 그 대표적인 모습이, 남편과 다투고, 거만하며 고집불통이고, 입만 열면 어리석은 말을 하고, 쉽게 분노하고, 절제력이 부족합니다. 이 여인은 결국 혼자 살게 되며, 그 가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아내가 된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녀의 행동에 따라 가정이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게될 수도 있기에 늘 주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받을 보상은 재산과 영예와 장수이다.”(잠언22:4, 새번역).


2021/07/01
잠언 14:2
“바른 길을 걷는 사람은 주님을 경외하지만, 그릇된 길을 걷는 사람은 주님을 경멸한다.”(새번역)

본 잠언은 자신의 생활양식이 주님이 미리 규정하신 도덕적 질서에 일치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냐 아니면 욕망 때문에 그 질서를 벗어나는 사람이냐를 기준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자냐 아니면 그분을 경멸하는 자냐를 판단합니다. 사실 경건과 불경건, 건설적인 윤리와 파괴적인 행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자는 바른 길(‘주님의 길’에 대한 환유법)을 걷는 자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그의 인격과 행동이 주님께 적합한 사람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에게는 양도불가능한 보물입니다. 이 반면 주님을 경멸하는 사람은 그릇된 길을 걷는 자로 분류됩니다. 여기서 ‘그릇된’이란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하여 하나님이 굳게 붇잡으시는 도덕적 질서가 정해놓은 경계선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그릇된 길’의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면 ‘그의 길들(ways)에서 왜곡된’이란 의미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경멸하는 사람은 정해놓은 진로가 전혀 없고, 오직 자신의 욕망에 따라 이리 저리로 방황한다는 뉘앙스를 전달합니다. 실상 그런 사람은 주님의 미움의 대상이어서 그분과는 아무런 교제도 가질 수 없습니다(3:32).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애착)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윤리적 행위에 의해 드러납니다. 요셉은 보디발에게 범죄하지 않으려고,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제사나 기도와 같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이런 거절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그의 마음을 보여주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출19:5a, 새번역).


2021/07/02
시편33편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1절)

본 시편은 우주와 인간 역사 속에서 보여주신 주님의 지혜와 섭리를 깨닫고 찬양하는 시로,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찬양의 요청 – 찬양이 마땅함(1-3절) (2) 찬양의 이유 : 주님의 완전하심(4-5절)과 주님의 능력, 목적, 지혜, 그리고 사랑(6-19절) 위대함. (3) 신뢰의 기대 – 인자하신 주님께서 백성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실 것을 기대함(20-22절). 한편, 다윗은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1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는 경건한 자들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주님을 알기 때문에, 그분의 주권에 순종하면서, 온갖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20-22절). 그러나 경건한 자들이 함께 모일 때마다 주님을 찬양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베푸신 그분의 인자하심을 새로운 상황에서 늘 새롭게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섭리의 체험으로서 이를 경험한 자들은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여기에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할 필요가 등장합니다. 성경은 과거에 행하셨던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의 역사를 기술하며 주권자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경에 섭리의 통치자로 기술된 주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도착되어진 은사, 재물, 명예 등에 만족하시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섭리 가운데 최선의 것을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