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9
시편 16편 – 영원한 안전
“아, 주님,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내려주십니다. 나의 미래는 주님이 책임지십니다.”(5절, 새번역)
16편은 다윗이 지켜주실 것을 탄원하는 시로서 무엇 때문에 다윗이 부르짖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스홀( 음부 – 죽은 뒤 가는 장소)로 대표되는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병이나 위험 때문에 다윗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를 신뢰하고 그분만을 의지하는 이유를 나열하고 안심합니다. 다윗이 열거하는 증거들은 위태로운 상황에 우리가 직면할 때도 마음의 여유를 갖게 만드는 근거가 됩니다: (1)주님만이 그의 산업이요 소득이며 그의 몫을 지켜 주시는 분이다. (2)그분의 성도들은 자신의 즐거움일 뿐만 아니라(성도의 교제), (3)주님이 주시는 유산은 찬란하다. (4)주님은 늘 좋은 생각과 교훈을 주신다. 그러나 다른 신을 따르는 자들은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9-11절에 이르면 다윗은 영원한 안전을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음을 넘어 생명의 길로 그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을 모시고 사는 자신의 삶을 늘 기뻐합니다(11). 다윗의 이 시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는 실현되지 않은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이 시편(특히 10-11절)이 성취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행2:24-32). 당연히, 주님을 믿는 우리 역시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양자될 때 즉 우리 몸이 부활할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롬8:23-24).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시편16:7).
2021/04/20
신체 일부가 마비된 한 소녀를 모두가 피하였는데, 드디어 소녀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는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불평을 그치고, 재미있는 우스개소리를 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고, 마침내 전문적인 개그우먼이 되었습니다. 아담 스미스는 그의 국부론에서 분업이야말로 기술진보의 첨병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일을 반복하여 전문적으로 파고들면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길, 좀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고, 그 결과 기계의 발명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에 전념하여 능숙하게 되면, 그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은 “네가 자기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22:29)고 말씀하십니다. 벤자민 플랭클린은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이 가르침을 받고 다각도로 노력하고 공부한 결과 뛰어난 외교가요 정치가로서 미국의 역사에 존경받는 분으로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세계 최고의 인쇄공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였는데, 이는 그가 인쇄업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인쇄업으로 성공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이신론(理神論)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상기 3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은 노력하면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도록 창조되었습니다만, 불행히도 사람들은 세상의 주인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요 지혜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2021/04/21
잠언12:26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개정개역)
“좋은 말(word)”은 한 마디라고 하더라도 좋은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실상 그런 은혜의 수단이 없다면, 사람은 미혹되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잠언은 자신이 신뢰할 친구를 선택할 때 매우 주의를 기울이라고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악한 자들 가운데서 살아간다면 생명의 길을 벗어나 사망의 길로 이끌려가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인도자가 된다”는 구절에서 “인도자가 된다”는 표현은 숨겨진 것을 찾기 위하여 주의깊고, 부지런히 그리고 철저하게 조사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웃(친밀한 친구)을 위함입니다. 의인의 눈은 넓게 열려져 있어 자신의 친구들이 가지는 고집셈, 속임, 어리석은 수다, 그리고 신뢰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게 됩니다. 그냥 놓아두면 그 친구는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허영심과 이기심으로 가득차서 그런 것을 보지 못하며, 그 결과 자신의 친구를 교정해 줄 수 없습니다. 그는 지혜에도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의로운 길로 인도해 주는 좋은 친구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악한 행위를 지혜로운 행위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미혹되어 사망에 이르게됩니다. 한편 이웃의 좋은 인도자로 나오미(룻의 시어머니)를 꼽을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모세 율법에 규정된 고엘(친족구속)제도를 활용하여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 모압 여인 룻을 보아스에게 시집 보내어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 줍니다. 그 인도를 따라 간 룻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결국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멀리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선한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지만, 악을 꾀하는 사람은 정죄를 받는다.”(잠12:2, 새번역).
2021/04/22
잠언10:22
“주님께서 복을 주셔서 부유하게 되는 것인데, 절대로 근심을 곁들여 주시지 않는다.”(새번역)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고 선언한 잠언은 그렇게 되는 원인을 본문에서 밝힙니다. 즉 부지런히 일한다고 저절로 부하게 되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되도록 재물을 주시는 장본인은 바로 주님이심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자명한 진리를 적은 것 뿐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 세상을 만드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공평과 정의라는 법칙을 온 우주의 형성 틀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참된 부(wealth)라는 주님의 축복은 부지런하게 일하여야만 작동합니다. 어리석은 자 보다 게으른 자는 더욱 문제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일해 줄 것을 기대하나 게으르게 일에 임하여 예상하지 못한 손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물을 사용하여 다른 이들을 섬기는 의로움이야말로 부를 영속시키는 직접적 근원이 됩니다. 대표적인 분이 400년 동안 부를 이어 온 경주 최부자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는 궁극적 원인은 바로 만유의 주님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로우며 부지런하게 일하는 모습이 주님의 축복을 받는 지름길이요 하나님의 축복의 수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할 점은 힘을 들여서 그리고, 격렬하게 노동한다고 하여 하나님이 자동적으로 축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종류의 노동은 야망 때문에 행해지는 것이며 자신에게 해를 끼칩니다. 그 사람에게 일은 우상숭배이며, 우상숭배를 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에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심판 하에 서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주님을 경외하여 한 쪽 극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립니다.”(딤전6:9, 새번역)
2021/04/23
잠언12:27
“게으른 사람은 사냥한 것도 불에 구우려 하지 않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귀한 재물을 얻는다”(새번역)
이 잠언은 게으른 사람과 부지런한 사람을 서로 대조하여 지혜의 길을 찾게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의 차이점이 본 절에서 불확실하여,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냥한 것”이란 먹기 위해 사냥한 들짐승(노루, 산양 등)을 의미합니다. 다른 모든 일과 같이, 사냥을 위해서도 치밀한 계획, 인내, 기술 그리고 끈질긴 노력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므로 게으른 사람이 들짐승을 잡을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를 전제로 같은 히브리어 본문을 가지고 두 종류의 번역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스스로 사냥하지 않는다”(개정개역), 다른 하나는 “사냥한 것도 불에 구우려 하지 않는다”(새번역)는 번역입니다. 그러나 식량을 위해 사냥하러 나가지 않던, 사냥은 성공적으로 하였으나 굽지를 않았다면 결국 먹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게으름으로 인하여 자신의 기회를 던져버린다는 의미는 동일합니다. 많은 가르침이 있지만, 징계를 싫어하는 고집스러운 사람이 영적으로 굶주리는 것과 같이, 게으른 자도 풍부한 음식을 굽지 않아 육체적으로 굶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반드시 핑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에도 성경 구절을 핑계로 기도로만 병을 고치겠다거나, 수혈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나고 있습니다. 이 반면, 부지런한 사람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일반은총을 잘 이용하여 야생의 들에 풍성하게 존재하는 귀한 재물인 들짐승들을 잡아 구워먹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일반은총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잠언을 잘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아들딸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지만, 거만한 사람은 꾸지람을 듣지 않는다.”(잠13:1,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