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큐티(2021/04/12 – 16)

2021/04/12
시편 15편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1절, 새번역)

본 시편은 시인(다윗)이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열거된 대답은 예배자들이 성소에 들어갈 조건을 물어보면, 제사장은 이에 응답하는 형태를 따서 만든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하나님은 주인이고, 인간은 손님의 위치에서 주고 받는 것입니다. 주인의 조건은 깨끗한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진실된 사람,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주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는 사람, 약속을 지키는 사람, 고리대를 받지 않는 사람,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쉽지 않은 조건입니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다는 말씀처럼 우리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주님의 장막 즉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약속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스파이가 있습니다.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계명들을 행하는 여부입니다. 신자는 모두 성령님의 증거를 받아 그리스도를 알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존중하는 자들입니다. 실로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추악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시고 의롭다 선언하신 하나님!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어찌 결심하고 경건한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조사하여 철저히 살피셨으나 나에게서 아무런 흠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입으로 범죄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였습니다.”(시편17:3, 현대인의성경)


2021/04/13
아프리카 로디지아(짐바브웨) 소년(9살)이 범브란트 목사님이 소속 선교회로 보낸 편지입니다.
“ 범브란트 목사님, 우리 어머니가 목사님이 쓰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는 책을 읽어 주셨어요. 저는 공산국가의 감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통을 전해 듣고 울었습니다…….우리는 로디지아에서 살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여러 나라에서 선교 활동을 하시는데, 왜 우리나라엔 오시지 않습니까? 많은 로디지아인들이 목사님의 일을 도와 드릴 거예요. 전 목사님의 선교사업의 총책임자가 되어 드리겠어요. 한 번에 장군도 되고, 총무도 되고, 교회를 위해 봉사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목사님네 장군들(선교회의 일꾼을 지칭함)도 구세군의 장군들처럼 제복을 입나요? 꼭 알려 주세요. 어린이들을 무시하지 마세요. 그들의 천사들이 매일 예수님의 얼굴을 뵙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총책임자의 책임을 설명한 장문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어머니가 선교회의 총책임자가 되었고, 아홉 살 그 소년은 어머니의 보조원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 성을 점령시, “누구든지 제일 먼저 여부스 사람을 치는 사람이 총 사령관과 장관이 될 것이다”라고 공포하니, 그의 조카 요압이 제일 먼저 올라가서 총사령관이 됨은 물론 천하명장으로 이름을 떨칩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욕이 너무 강해 자리 보전을 위해서라면 이종사촌(아마사)을 암살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수고하면서 살아갑니다. 다만, 애를 쓰는 목적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힘쓰라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여기에는 금생과 내생에 상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침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침략하는 사람이 그 나라를 빼앗는다.”(마11:12, 현대인의성경).


2021/04/14
5살 어린 아들의 말하였습니다: “엄마, 내가 성탄절 선물로 제일 원하는 게 무언지 아세요?” 어머니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담배 냄새가 나지 않는 엄마에요. 나는 엄마를 굉장히 사랑해서, 엄마가 오래오래 살길 원해요.”
그렇게 말한 후 아이는 통통한 팔로 어머니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닦아야만 하였고, 그후로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향한 사랑이 담배 중독의 고통을 이겨낼 힘을 준 것이었습니다. 1945년 나찌로부터 해방된 루마니아는 소련이 통치하였습니다. 당연히 루마니아 그리스도인들은 모조리 감옥에 끌려가 모진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범브란트 목사님 부부는 안전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자신들도 잡혀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동참할 수 있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는 마침내 응답되었습니다. 먼저 1948년 목사님은 체포되어 2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56년 석방되지만, 석방 후에도 담대하게 지하교회를 다니며 간증하고 설교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감옥의 성도들을 돌보기 위해 체포될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이 기도 역시 응답되어 1959년 밀고를 받아 들이닥친 경찰에게 잡혀 6년을 복역합니다. 목사님은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고통을 선택하신 것은 고통에는 엄청난 가치가 있음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지혜와 자랑이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3-5).


2021/04/15
어떤 어머니가 아들에게 사과를 하나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방법으로 네 동생과 나누어 먹어라.”
“무슨 뜻이예요?”
“네 동생에게 큰 쪽을 주란 말이다.”
그러자 그 아들은 사과를 어머니에게 되돌려 주면서 말했습니다.
“동생에게 줘서 그 아이가 예수님의 방법으로 나와 사과를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어요.”
이 아이의 말은 인간의 본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만약 사과가 아니라 큰 재산 혹은 권력을 나누는 문제라면 어른들 사이에서 역시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쟁 방지를 위해 합리적 기준이 법률로 제정되어 있습니다만,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좀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수고한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일꾼에 관한 비유는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포도원을 가꾸기 원하는 주인은 아침부터 시작하여 여러 번 일꾼들을 고용합니다. 마지막으로 고용한 일꾼은 오후 4시에 고용되었으나, 품삯은 한 데나리온으로 동일하였습니다. 저녁이 되자 주인은 청지기를 보내어 맨 나중에 온 일꾼부터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지불시켰습니다. 당연히 아침에 들어와 더 많은 고생을 한 일꾼들이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말은 분명합니다. “친구여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 모두 한 데나리온을 약속한 것이 아니냐? 네 것을 가지고 가라. 나중에 온 자에게도 같은 품삯을 지불하는 것이 내 뜻이다.” 우리가 살아갈 때 열심히 일하였으나 남이 먼저 승진하거나, 더 많은 돈을 벌거나, 명예를 가질 때 당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겸허히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 자신을 낮추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열매를 나눌 때는 예수님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잠언16:33).


2021/04/16
잠언12:25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번민이 일지만, 좋은 말 한 마디로도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새번역)
이 잠언은 마음을 즐겁게 하는 언어 사용을 장려합니다. 왜냐하면 근심 때문에 마음이 무겁더라도, 좋은 말 한 마디나, 좋은 소식 하나가 근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기쁜 마음을 갖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근심이란 삶에 중요한 무엇인가를 상실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는 심한 정서적 고통입니다. 근심이 마음에 들어 오면 그런 사람은 불안정한 바다와 같이 요동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근심을 가지게 되면 매사에 합리적으로 사고 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 만큼 근심을 제거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에 반하여 좋은 말(a good word)이란 그런 근심을 만들어 내는 위협을 효과적으로 상쇄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근심이 사람을 쫓아내는 반면, 인격적이며 친절하고, 즐거우며 부드럽고, 적절하며 사려깊은 말은 사람을 회복시켜 용기와 소망을 갖게 합니다. 요셉이 아직 이집트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전해 들어 알게 된 야곱의 마음과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좋은 말(메시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영원한 생명을 드러내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복음의 소식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왕으로 만유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여러분의 모든 근심을 주님 손에 올려 놓으셔야 합니다. 이는 주님이 우리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빌4:6-7,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