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29
2021년 고난주간은 3월28일 시작되어 4월 3일 토요일에 끝납니다. 오늘은 두 번째 날입니다. 시편118편을 묵상하겠습니다.
시편118편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니, 우리의 눈에는 기이한 일이 아니랴?”(22-23절)
출애굽의 목적은 노예 해방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구속에 있습니다. 본 시편은 이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이 행진하여 성전 문들에 이르고(19), 그 문들을 통과하여 제단으로 가고 있습니다(27). 이 과정에서 순례자들과 지도자 사이에서는 구원의 체험을 노래하는 찬송과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1-18). 그러나 19절을 넘어가면 어조가 바뀝니다. 순례자들은 주님께 가서 경배하고자 의의 문들을 열라고 외치는데, 문지기는 이 문은 주님께 속한 것이니 의인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20). 시편기자는 이미 주님의 능력으로 원수들로부터 구원받은 사실을 고백하며 감사 드립니다(21). 옛 이스라엘에서 집을 지을 때 필요 없다고 버린 돌이 다른 경우에는 오히려 집 모퉁이의 머릿돌과 같이 요긴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그렇습니다. 바로의 노예가 된 민족이 선택되어 구속받음으로 인간 구원 역사에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구속받은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분은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에게 모두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처형되셨으나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대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나라의 모퉁이 돌이 되셨습니다. 이를 듣고 보는 자마다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 이외에 누가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이 하나님은 주님으로 인하여 바로 우리 아버지가 되심을 감사드려야만 합니다.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지만, 나는 주님의 이름을 힘입어서 그들을 물리쳤다.”(시편118:10, 새번역).
2021/3/30
오늘은 고난 주간 중 세 번째 날(화요일)입니다. 화요일 아침 성전을 향하여 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하니 주님은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0-25)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믿음과 기도를 통하여 어떤 불가능한 난제도 다 이루어지고 해결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신구약 성경의 공통된 주제이며, 많은 실례를 담고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대표적인 이적은 엘리야의 기도를 통하여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 제물을 사르고, 죽었던 사렙다 과부의 아들이 살아난 경우이며, 신약에는 소경이 눈을 뜨고, 베드로가 죽어 있는 다비다라는 여제자를 다시 살린 경우입니다. 또한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른바 ‘응답되지 않는 기도’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조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오늘 기도의 교훈을 주신 주님 역시 3흘 뒤 겟세마네에서 드린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중핵에는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3번이나 기도를 드렸으나 응답받지 못한 후 이를 깨닫고 오히려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는 늘 시편 기자의 외침이 있어야만 합니다. “주님께 몸을 피하는 것이, 높은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시편118:9, 새번역).
2021/3/31
화요일: 성전에 계실 때 서기관 중 한 명이 와서는 모든 계명 중 첫째가 무엇인지 질문을 하니 주님은 그 유명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막12:29-34). 이 답변 후에 주님은 역으로 질문을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었습니다.(막12:28-37). 이어 외식하는 서기관 등 종교지도자들을 질타하시고(마23장; 막12:38-40), 헌금함에 두 렙돈을 넣는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막12:41-44).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들이 성전의 웅장함을 보고 감탄을 금하지 못하자, 주님은 성전이 철저히 파괴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와 주님이 다시오실 때의 징조를 물었습니다. 주님은 한 세대 내에 성전이 파괴될 것이고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쌓일 때 신속하게 성에서 빠져나올 것을 분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실 날은 하나님 아버지이외는 어떤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성전은 이후 약 40년 뒤인 AD 70년 로마의 티토장군에게 철저히 파괴되었고 이때 예루살렘에 있던 신자들은 주님의 예언을 기억하고 전부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베다니로 가신 것으로 보이며 수요일에는 아무 행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24:45-46).
2021/4/1
목요일: 예루살렘 성 내에서 제자들과 저녁에 유월절을 지내셨습니다(눅22:7-13). 식사하시는 도중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가룟 유다를 포함한 12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뒤 다시 자리에 앉으사 옷을 입으셨습니다. 이것은 영광의 주님이 우리를 섬기기 위해 인간이 되시고 죽고 부활하여 다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것을 축약적으로 보여주시는 모습입니다. 이어 가룟 유다가 밀고 하기 위해 나갔고,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죽을 수 있다고 공언하였으나, 주님은 오히려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 하셨습니다(요 13장). 그리고 주님은 이른바 다락방 강화를 통하여 당신이 죽고 부활하면 성령님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고 제자들과 후에 믿을 당신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요14장-17장). 식사를 마친 뒤 찬미를 부르며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1시간 동안 피 땀 흘리시며 하나님께 기도하신 뒤 마음을 정하시자마자, 로마 군인과 성전경찰들에게 잡혔습니다. 먼저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에 끌려가 심문을 받았고, 안나스의 사위이자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심문을 또 받은 후 산헤드린 공회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밝히셨기 때문입니다(마26:62-66). 주님은 사형선고를 받은 후 또 다시 얼굴에 침뱉음을 당하고 주먹으로 얼굴을 맞는 모욕을 당하였습니다.(마26:68-69). 이때가 금요일 아침까지 일어난 일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 베드로가 3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게 되었습니다(눅22:54-62). 이 사건과 이사야 53장 6-8절을 함께 묵상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7-8).
2021/4/2
금요일: 아침에 빌라도에게 주님은 당신이 왕이지만 당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밝히셨습니다(요18:36-37).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빌라도는 정치적 목적을 따라 십자가에 못박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아침 9시에 강도 두명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주님은 7마디를 하셨습니다.
(1)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2) 한 명의 강도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4) “내가 목마르다”(요19:28) (5) 오후 3시경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15:34) (6) 오후 3시 운명하실 즈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7)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 (요19:30). 오후 3시경은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유월절 양을 잡는 바로 그 시간이었습니다 (출12:6).
부자요 공회원인 아리마대 요셉이 시체를 자기 묘실에 장례를 지냄으로써 이사야 53장 8절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마27:59-60). 삼일 후 부활하실 때까지 주님은 무덤에 계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는 이사야 53장 6-12에 잘 해설되어 있습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이사야5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