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요한복음 6장 16 – 21절
갈릴리 바다 위를 걷는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마태,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두 복음서와 달리 요한복음은 이미 어두웠을 때 배를 타고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가는 중 큰 바람을 만나 어려움을 겪던 중, 물 위로 걸어오는 예수님을 모르고 두려워 하였지만 “내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듣고 기뻐 영접하니 곧 목적지에 도달하였다고 간단히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초점은 1500년 전 출애굽 떄의 사건을 배경으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과 같이, 제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세찬 세파에 흔들리는 교회와 성도들을 도우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격려하고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난 가운데 처한 교회의 경우 특히 그러합니다. 기독교가 공인된 AD313년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무려 250년 간 로마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 무서운 핍박과 따돌림 고난 가운데 로마 교회는 땅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200년이 넘는 기간을 땅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실상 초대 교부 이래로 수 많은 설교가들은 오늘 본문을 통해 세상의 권력과 풍파에 시달리는 연약한 교회와 이를 도우시는 주님의 기적의 손길을 볼 수 있다고 설교해 왔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늘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람과 풍랑으로부터 제자들을 구원하여 안전하게 목적지 가버나움에 도착한들, 그들에게는 죄에 대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월절 사건과 홍해의 기적을 통해 구원받은 이스라엘 모든 무리가 불순종으로 광야에서 죽은 것과 같습니다. 주님 친히 이 죄를 당신의 몸에 걸머지고 모두 청산하여야 비로서 심판의 폭풍우에 매몰되지 않고 영원한 부활의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 모든 사람들을 죄와 심판의 갈고리에서 벗어나게 하실 수 있는 자격을 가지셔야 하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왕좌에 올라가시는 전투였고, 방법이었습니다. 만약 십자가 없이 죽으셔서 부활하신들 당신의 백성들을 죄와 심판에서 건지실 수가 없는 무력한 그리스도요, 백성이 없는 왕이실 뿐입니다. 당연히 이런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그분의 백성들의 삶은 사랑의 열매가 가득찰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