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1-15절
80억 명의 지혜를 다 모아도 쌀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벼는 땅 물과 햇빛 그리고 바람만 있으면 놀랍게도 맛있는 쌀을 만들어냅니다. 인간은 아무리 땅에 서 있고 물을 마시고 햇빛을 쐬도 쌀은 커녕 오히려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을 뿐이니 아무 의식도 없는 벼는 이미 쌀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땅에서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기적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이란 늘 하나님께서 식물이나 물고기들이나 포도나무 등을 통해 공급해주시던 밀, 보리, 물고기, 포도, 무화과 등을 모세와 같은 선지자나 당신의 아들을 통해 직접 만들어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오병이어의 기적이 늘 베플어졌다면, 사람들은 의례 그런 일이 있으리라 생각하여 기적으로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희소성 그것이 기적의 요체입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40년 동안 먹은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의례 내려오는 만나 무엇이 그렇게 신기해! 그래서 만나에 질렸다고 하나님께 불평을 하며 오이도 호박도 부추 마늘도 없이 만나만 있는 우리는 너무나 불쌍하다고 울었습니다. 주님 역시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오직 두 번만 행하시고 십자가를 통해 죽고 부활하신 뒤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존재를 섭리 가운데 드러내고 계십니다.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들 역시 신자들만 알도록 암암리에 베풀고 계십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유의해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주님 오병이어를 통해 갈비나 불고기로 만들어 주지 않으신 것을 우리는 유념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주님은 우리의 노동을 요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힘든 노동이야말로 교만한 우리를 변화시키는 신성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삶의 본질적인 요소인 ‘불안’을 누구나 가지고 있음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여기서 예외가 아닙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제사장들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겪고 함께 노동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몸으로 체득해야 비로서 온전한 제사장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주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그들과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작은 것을 주님께 드려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실천되도록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