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4
침례교 가정의 여섯 살 된 아이가 특별히 추운 날 침례를 받았습니다. 다음날 그 아이는 가족들과 함께 찬송을 부를 때 ‘성삼위 일체’ 대신 ‘성사위 일체 우리 주로다’라고 노래 하였습니다. 당연히 지적을 받았으며, 이에 대하여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침례받을 때 네 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어요. 목사님이 나를 물 속에서 넣으시고 ‘성부,,,브루루…성자….브루루….성신…브루루의 이름으로’라고 말씀하셨어요.”
공산주의 국가의 지하교회에는 침례당이 없어서 겨울에 침례를 받게 되면 얼음을 뚫고 침례를 받습니다. 그날 역시 추웠기 때문에 목사님이 떠는 소리인 ‘브루루’가 아이에게는 삼 위 중 네 번째 분이라고 짐작했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의식 중 하나인 침례는 구약에는 없으며, 신구약 중간기(비시400 – AD30)에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할례와 함께 사용된 의식입니다. 즉 할례받은 이방인들이 물속에서 올라오면 완전한 유대교인으로 새롭게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AD28 년에 이르러 침례요한은 이 의식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표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또한 그들 가운에 오신 메시야를 준비하는 의식로서, 오신 메시야 예수님의 명령에 의하여 기독교에 확립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례가 뜻하는 바를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침례란 먼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음을 보여주고(롬6:3-5), 이후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벧전3:21).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2020/12/15
다섯 살 적에 아들 미하이가 범브란트 목사님에게 살구나무가 어디서 오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땅에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살구씨를 넣고, 흙으로 덮은 다음 물을 주면 때가 되면 살구나무가 자라 나온단다.” 이를 들은 미하이는 흥분해서 자기 동생을 부른 다음, 둘이서 목사님이 가르쳐준대로 하였습니다. 먼저 땅에 보물을 묻은 다음 그 보물에게 물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나무가 생겨나기 시작했나 알아보려고 즉시 땅을 파고는 굉장히 실망을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 어린 아이들이 한 일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그 핵심은 “절대로 너희들이 생각나는대로 하면 안 되고 꼭 내가 가르쳐 준대로 하여야만 된단다.” 는 말입니다. 그때 “왜 우리 마음대로 하면 안됩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가 할 말은 하나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져 있단다!” 이것이 고도로 지식이 발달하였다고 자랑하는 인류가 지식을 얻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기 전에 인간은 어떻게 세상이 구성되어 있는지를 자세히 연구하여야만 합니다. 사실 “우리가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철학의 3대 질문 중 하나입니다. 피조된 인간은 인간 마음대로 하면 절대로 소기의 결과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아이들과 다름 없습니다. 인간은 대상을 연구하여 그 속에 있는 지식을 발견하고 행하여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삶에서도 같습니다. 과학과 같이 신앙 역시 비약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살아가면,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열매가 우리 삶 속에 맺히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2020/12/16
범브란트 목사님은 어린 아들 미하이에게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가나안 정복에 관한 이야기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전쟁을 명령하셨는지를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미하이는 “이건 아마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크리스천이 되기 전에 있었던 일일거예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분별없이 구약성경을 읽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어린 미하이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2세기 초엽 말시온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흑해 남단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선박 건조를 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AD 140년 경 로마의 공동체로 이주하여 거액의 헌금을 제공하였지만, 이단적인 교리를 전파하여 로마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였습니다. 그가 전파한 교리는 구약의 하나님 야훼는 복수와 공의의 신이지만,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신이라고 구분한 뒤, 구약의 신에게 얽매인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신약의 신이 예수로 나타나셨다 등등의 내용입니다. 서머나 감독 순교자 폴리캅은 그를 만나 대화한 뒤 ‘사탄의 맏아들’이라고 공박하였을 정도로 복음은 물론 사도바울을 심각하게 오해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의적인 해석을 하여 교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킨 이단들은 그 후에도 계속 일어났습니다. 지금 있는 이단들 역시 교회 역사상 나타났던 어떤 이단의 반복일 뿐입니다. 말시온의 파문 사건 이후 교회는 신약 27권의 정경화를 추진하게 되었고,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 대하여 더욱 깊이 묵상하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4:1)
2020/12/17
범브란트 목사님은 어린 알렉스에게 욥기 33장 26절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를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는 ‘은혜”라는 단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말씀 드리죠. 그러면 그분이 내게 기도하고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면, 그분은 자기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기도를 더 잘하십니다.” 라고 자기나름대로 풀어서 말하였습니다. 어린 알렉스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기도한다고 말하는데 도대체 기도란 무엇일까요? 기도(祈禱)는 국어사전에 따르면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비는 것’으로 정의하며, 대체로 헬라어나 히브리어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어린 알렉스의 말은 옳지 않지만, 자유의지를 부여한 인간에게 당신의 뜻을 따라 행하여 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는 의미라면 틀린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살지,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인간으로 오신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상급으로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란 우리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와 권력과 명예를 위해 기도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지혜를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2020/12/18
잠언 12장 9절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일반적인 가르침인 8절(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을 특정한 상황에 적용한 것이 9절입니다. 내용은 비록 사회적인 명성이나 평가는 보잘 것이 없지만, 자신의 사정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겉으로는 부요하고 명성을 가진 것처럼 행세를 하나 실제로는 먹을 것이 없을 정도의 가난을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보다 훨씬 더 낫다는 의미입니다. 이 잠언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18:12)” 와도 일맥상통하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생각할 잠언은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15:17)입니다. 인생에서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놓을 것인가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집니다. 실상 인간은 재물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게 되면 이런 극단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 아래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를 때에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모든 걱정과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시고 계십니다.”(벧전5:6-7, 쉬운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