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29
어린 알렉스에게 물었습니다. “사랑에 대한 그림을 그리라면 어떻게 그리겠니?” “두 사람이 키스하고 있는 걸 그리지요.” “죽음은 어떻게 그리겠니?” “관 속에 사람이 누워 있고, 관 위엔 빨간 십자가가 놓여 있는 걸 그리지요. 십자가는 우리를 구해줘요.” “삶은 어떻게 그리겠니?” “사람과 해를 그리겠어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이들의 말 뿐만 아니라, 그들의 그림들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돌려보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삶에 대하여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겠습니까? 이것에 대한 우리의 답을 적기 전에, 우리는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장면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때는 목요일 저녁 식사 중으로, 주님께서 체포되시기 불과 5시간 전이었습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떠서 12명의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 주셨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지금 당신을 팔려고 대제사장들에게서 은 30량을 받고 밀고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가룟 유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주님은 마지막까지 가룟 유다의 발까지 씻어주시면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발을 다 씻겨주신 뒤, 주님은 다시 옷을 입으시고 자리에 앉으사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을 체험한 열한 명의 제자들은 다음 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이어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만난 뒤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만유의 주님께서 자신들을 섬기려고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삶을 생각하면 섬기는 삶으로 요약되고, 그 대표적인 표상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그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우리들 각 자의 삶을 관찰하시고는 어떤 그림을 우리에게 그려주시겠습니까? 오늘 마음에 곰곰히 생각하시면서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감사할 것은 감사하면서 주님의 영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막10:45).   


2020/9/28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성경을 많이 읽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최종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아들이 대답하였습니다. 그의 동기가 아주 훌륭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표준전과입니다. 이 땅에는 좋은 것도 많지만,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인간은 하나님이 정하신 계명들(하나님 공경, 부모공경 등)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심판할 날을 정하셨습니다. 이때 죄가 드러나면 죄의 삯을 치루어야만 하는데, 우리는 그럴 능력도 가진 것도 없는 영적으로 파산한 자들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자신이 그 대가를 치룰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수단으로서, 이사야의 표현에 따르면 ‘주님의 팔’로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통해서 온 우주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주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 모두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담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영생불사의 몸으로 부활하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의 방법을 적어 놓은 성경의 주제는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문장으로 요약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짜 네가 나를 주님으로 영접하였는가?”를 판단하시는 날이 오고 있습니다. 그 날은 이른바 최후의 심판의 날입니다. 당연히 그날에는 입술의 고백을 뒷받침할 행위들을 보시고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통교리는 그에 합당한 삶으로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그 반면 정통교리를 고백하지 않는 사람이 주님의 뜻을 준행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참된 믿음의 신자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열망의 실천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마25:3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