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30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이 유명한 말은 교보문고를 만든 대산 신용호 회장(1917-2003)의 삶의 경험과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대산은 집안이 가난하였고, 폐병에 들려 학교에 갈 시기를 놓쳤습니다. 배움에 한이 많았던 대산은 그것을 많은 독서를 통하여 극복하였습니다. 대산은 책에서 만난 수많은 주인공 중에 특히 헬렌 켈러와 카네기를 존경하였습니다. 그 자신이 건강 때문에 진학이 좌절됐기에 헬렌 켈러를 통해 도전정신을 배우고 되새겼고, 제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세계 최대 철강회사를 일군 앤드류 카네기는 대산에게 사업가의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20세에 만주에 가서 이육사를 만나면서 민족자본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혼란과 6.25의 전쟁을 겪은 대산은 국민교육 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는, 교육과 보험을 연결한 대한교육보험주식회사를 세우게 됩니다. 1958년 8월 7일 개업식 때 “저는 25년 이내에 세계적인 회사로 만들고, 가장 좋은 땅에 좋은 사옥을 짓겠습니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말 그대로 20년 안 되어 교보는 세계적인 회사가 되었고, 광화문에 교보빌딩 22층을 건설함으로 자신의 말을 입증하였습니다. 그런데 종로와 광화문을 잇는 그 지하 1층 1,100평의 요지에 수익성 있는 점포들이 아니라, 서점을 계획하고 100만권의 서적을 비치한 것은 대산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교육철학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가치관은 그 사람의 인생 방향을 결정합니다. 물론 대산은 기독교인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대산의 철학이 따라 올 수 없는 위대한 가르침 뿐만 아니라,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지혜롭게 자신을 평가한 뒤, 옳다고 생각되면 주님을 신뢰하고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2020/10/29
어떤 루마니아의 어린이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의 이름이 다 적혀 있는 책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생전 처음 들었을 때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 이름을 꼭 써주세요. 제 이름은 라다 이오네스큐입니다. 그러나 실수가 있으면 안 되니까 제 이름의 철자를 제가 불러드리는게 좋겠어요.” 그리고 나서 소년은 한 자 한 자를 조심스럽게 발음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덧붙였습니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혼동되지 않도록 제 이름과 주소와 생일도 써주세요.” 어린이의 이런 기도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대가 태평할 때에도 우리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갈등, 노후의 문제, 병의 문제, 재산의 문제, 취업과 일의 문제, 명예와 승진의 문제 등 수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원하는 것들을 얻는 과정에서,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얻었을 때 우리는 늘 주님의 가르침을 존중하는 습관을 들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어제 작고하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삶을 생각하면, 세상이냐 하나님 나라를 두고 다시 한 번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됨을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인은 삼성을 세계적인 회사로 키워낸 인물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그분의 선친인 이병철 회장을 능가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반면, 정경유착과 경영권 확보와 관련되어, 두 번이나 유죄판결을 선고받은 것은 그분의 한계라고 생각됩니다.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의 주권이 충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하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염려를 주님 손에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마6:21-22).
2020/10/28
여덟 살된 미국 소년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빠는 가끔 저를 무릎위에 앉히고 차를 운전하게 해주시지만, 언제나 아빠의 손을 제 손 위에 놓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통치할 때, 우리나라가 안전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제발 당신의 손을 그분의 손 위에 놓아주십시오.” 이 기도에는 통찰력이 보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에는 중보기도와 관련된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딤전2:1-3). 사도는 중보기도의 대상은 모든 사람들이며, 여기에는 특히 임금들, 높은 사람들이 포함되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 간구(요청 request), 기도(일반적인 기도), 도고(높은 사람에게 간청함 petition), 감사(감사기도를 의미)를 드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간구란 우리의 부족함과 관련되어 있고, 기도는 헌신의 의미를, 도고는 어린이 같은 신뢰의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는 늘 감사를 동반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기도할 특권을 가진 제사장들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속전으로 주신 우리 주님을 통하여 기도하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구원받을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특히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의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딤전2:8-10).
2020/10/27
성경과 사랑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교육을 받고 자란 열 살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서는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소년의 부모가 거친 말싸움을 하고 난 뒤 소년은 아버지에게 다가갔습니다.
“아빠, 저를 안과 의사와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데려다 주세요.”
“왜?”
“제 몸에 이상이 있나 봐요. 성경에서 들은 것은 들을 수 없고, 성경에서 본 것을 볼 수 없어서 그래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아마 같은 말을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고, 직접 당신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만드신 세상에 들어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신 자신을 비우셔야만 하였습니다. 또한, 종의 형체를 취하여 인간이 되셨을 때 또 한 번 자신을 낮추사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입니다. 만약 예수님과 같은 겸손한 마음을 우리가 가질 수 있다면, 거의 모든 경우에 우리의 관계가 훈훈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믿음이 사랑으로 나타나야만 합니다. 한편 세상은 살기 쉽지 않습니다. 쉬지말고 기도하십시요.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면서 늘 기뻐하십시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확실히 체험할 것입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2020/10/26
범브란트 목사님의 손자 알렉스가 기침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말하였습니다.
“알렉스야, 차에 타거라. 널 의사에게 데려가야겠다.”
“왜요?” 다섯 살짜리가 물었습니다.
“기침 때문에”
이들은 병원에 갔다가 목사님 댁에 들렸습니다. 알렉스는 명랑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은 감기에 걸리지 않았어요. 그분이 어떤가 보러 갔었는데, 아무 탈도 없었어요. 감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갔는데, 선생님이 감기에 걸려 있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예요!”
이때, 목사님은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할 때의 이야기를 또 한 번 들려주었습니다. 젊은 시절 범브란트는 유태인으로서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어떤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예수님을 소개받았습니다. 전도하신 분은 “당신은 당신이 저지른 죄들 때문에 예수님에게 가야만 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이것이 예수님과의 첫번째 만남이었고,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순수하고 깨끗하십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결코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도 없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큰 기쁨으로 채우게 됩니다. 인류 역사상 죄와 사망을 이기신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요일1:7,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