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누군가가 어린 아멜리에게 수수께끼를 물었습니다. “강가에 서 있는 어떤 남자에게 늑대와 양과 양배추가 있는데, 그는 그것들을 배에 실어 강 건너편으로 가져가야만 한다. 단, 그의 배에는 한 번에 한 가지만 싣고 갈 수 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그 셋을 다 강 건너편까지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 사실 뽀족한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늑대를 먼저 싣고 가면 양이 양배추를 먹어버릴 것이고, 양배추를 먼저 싣고 가면 늑대가 양을 먹어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양을 먼저 가져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건너갈 때 그는 양배추나 늑대를 가져가야 할 텐데, 어떤 것을 먼저 가져가든 둘 중 하나는 강 건너편에서 먹히고 말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어른들 중 몇 명이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해 보았습니다. 드디어 아멜라가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전도를 통해서 주님의 재림을 앞당겨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늑대와 양이 친구가 될 것이고, 양배추도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문제가 아니니까요”(롬14:17 참조).
아멜라에게 있어서 주님의 재림은 확실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소녀는 그런 전제하에서 삶의 문제를 풀어나갈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반하여 어른들은 좀처럼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난제 중의 난제인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에 들어오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풀지 못하는 문제들을 주님 손에 맡기고 오늘 하루를 신실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2020/11/26
60대 초반의 어느 분은 부인과의 관계가 매우 안 좋습니다. 결혼 생활 30년을 넘는 기간 동안 사업에 충실하다가 가정과 부인을 소홀히 한 때문입니다. 이러면 비록 직장과 사업에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일생은 행복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 중 하나는 각 인생 단계마다 주어지는 과제를 잘 해결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발달 심리학자 에릭슨은 생애주기를 7단계(또는 8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마다 해결해야 할 발달 과제를 제시하였습니다.
- 영아기의 발달 과업은 돌보아주는 사람에 대힌 신뢰와 애정의 형성입니다.
- 유아기는 식사 수면 배변 등의 기본 생활 습관 형성하기
- 아동기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기본적 기능을 익히고, 도덕성의 기초를 형성하기
- 청소년기는 자아 정체성 형성과 신체적, 지적, 도덕적 발달을 이루어 성인 준비하기
- 초기성년기(21-34)는 인생모습이 결정되는 때로서, 청소년기에 형성된 자아정체성이 사회에까지 뻗어 나가 직업과 배우자를 선택하여 본격적인 사회생활 시작하기
- 성년기(35-60)는 정립된 자아정체성을 기초로 책임 있는 시민이 되는 것
- 노년기(60-)는 건강관리와 은퇴에 적응하기- 신체적 노화를 긍정적으로 수용, 죽음을 준비
부활하신 주님 없는 사람들의 삶은 이 세상 뿐입니다. 그래서 삶에 대하여 집착하거나 아니면 인생을 허무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초월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이렇게 인생을 금생과 내생의 통합적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각 단계마다 주어지는 과제를 훌륭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3:13).
2020/11/25
러시아에서 하나님에 관한 것을 가르친 부모들에게서 아이들을 강제로 데려다 무신론을 가르치는 기숙 학교에 넣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인형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되는 때에 ‘기도회 놀이’를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인형의 무릎이 굽혀지지 않아, 인형은 무릎을 꿇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아이들 중 하나가 선생님에게 가서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제게 다른 인형을 주실 수 없어요? 이 인형은 너무 바보같아요.”
“왜 그런말을 하니?”
“누구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는 사람은 바보임에 틀림없으니까요”
그 아이의 말은 공산주의자인 선생에게 믿음의 간증이 되었습니다.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삶 가운데 문제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위 일화에서도 그 어려운 구 소련의 환경에서 주님을 가르치는 부모들은 고난을 각오하고 신앙유산을 물려주려는 결단을 내리신 분들입니다. 당연히 그분들의 삶은 신실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의 가정에서 아이들을 강제로 차출하는 소련 당국의 처사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입니다만, 하나님은 이 시련을 통하여 오히려 아이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하시고 당신의 존재를 전하신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특히 주님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17살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세 친구는 그렇게 일생을 살아갔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단 1:8-17).
2020/11/24
열여섯 살의 나이에 딸을 가진 어떤 아랍인은 그 딸을 데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아랍 고아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의 어머니는 열네 살의 나이였고, 그만 그 딸을 낳다가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 아이가 아들이었다면 아버지의 가족이 키웠겠지만, 그들에게 딸은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어린 아버지는 딸 무나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였습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아버지의 방문을 고대하며, “바바(아빠의 뜻), 와”라고 중얼거리며 아빠가 오기를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올 때마다 아이는 그에게 매달려서 가지 말든지, 아니면 자기를 데리고 가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얼마후 아버지는 재혼하였고, 더 이상 딸을 찾아가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의 새 아내는 아이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무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바바, 와”를 되풀이하며 문간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나는 어떤 이야기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한 선교사는 아이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전혀 다른 아버지로, 그분의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무나는 다시 행복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다리 위에서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와 사귀게 하시고 친히 죄를 담당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흘만에 부활시키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그분을 통해 우리가 공동 상속인이 되도록 하신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굳게 붙잡아야만 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2020/11/23
어느 공산 선교회에서 신앙때문에 감옥에 간 형제의 어머니에게 소포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옥에 간 그 그리스도인에게서 선교회로 감사의 편지가 왔습니다. 그의 편지입니다.
“나는 우라늄 광산에 끌려 가서 강제 노동을 하다가 큰 바위에 맞았습니다. 그 결과 나는 평생 꼽추가 되었습니다. 나는 굉장히 우울해졌습니다. 나는 어떤 여자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구가 된 나를 그녀가 받아줄 것인가? 누가 나 같은 사람과 결혼해 줄 것인가? 나는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 같은 느낌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내 뒤에서 “꼽추! 꼽추!” 하면서 나를 놀렸습니다. 어느 날 어떤 어린 소년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등에 지고 가는 게 뭐예요?’
‘혹이란다’ 또 놀림받을 것을 각오하고 나는 대답하였으나, 그 아이는 사랑어린 눈으로 보면서,
‘아저씨, 난 그걸 믿을 수 없어요. 하나님은 사랑이세요.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혹 따윈 주지 않으세요. 아저씨 등에 있는 건 천사의 날개가 들어 있는 상자예요. 아저씨가 그걸 죽을 때까지 겸손하게 사랑스런 마음으로 지고 다니면, 그 상자가 열리고 날개가 펴져서 아저씨는 그 날개로 아름다운 하늘나라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울었습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순간에도 울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여러 가지 상황에 부대끼고 걱정 근심에 쌓일 때 주시는 위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를 돌보시고 마지막 날는우리를 영광으로 영접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갈 곳이 있습니다. 신앙이란 이런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 (창 15:1,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