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궁극적인 구원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언제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죄인들을 위해 죽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식 그리고 성령님을 통한 체험과 결부시킵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는 것 역시 성령님의 은총입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궁극적인 구원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 성취되고 말 것임을 믿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소망은 확실한 근거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흘러넘침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부터 구원받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지막 심판에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아직 원수와 죄인들이었을 때에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죽으시도록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 이것으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과 논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구원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 곧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삼으로십시오. 우리 마음에 계시는 성령을 통해 그분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계속해서 넘쳐나도록 쉬지 말고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와 같은 의심과 두려움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것들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삼켜버린 바 되도록 하십시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6-18).
앞 단락(1-1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와 궁극적인 구원을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련시켰습니다. 이런 설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어떻게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아담과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유추해 답변합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의 행위로 인해 (좋든 나쁘든)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원리를 입증해줍니다. 로마서 5장 12-19절은 어떻게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칭의(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하심)’가 믿는 모든 사람에게 전가될 수 있는지 이른바 ‘칭의의 중보자’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사도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 이전의 인간의 역사를 짧게 언급합니다. 그 인간의 역사는 아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5: 12-14).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12절은 그리스도 이전의 인간의 역사를 세 단계로 요약하는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첫째, 죄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으며, 둘째, 그 죄로 인해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으며(사망은 죄에 대한 벌이기 때문에), 셋째,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보는 관점에서 인간의 역사는 죄의 침투와 사망의 침투, 그리고 인류의 사망이라는 세 단계의 역사이며, 모든 인류의 사망은 한 사람의 원죄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이어 13-14절에서는 한 사람의 범죄가 어떻게 모든 사람의 사망으로 귀결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 주된 내용은 모든 사람이 아담과 같은 죄를 범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범죄하였기 때문에 사망이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되었다는 이른 바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그렇기에 죄를 전혀 모르는 어린 아이들도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과 최후의 심판의 문제는 별개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모르는 어린 아이는 최후의 심판 대상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왜냐하면) 율법을 주시기 전에도 죄는 세상에 있었습니다. 다만 율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 죄가 법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을 뿐입니다. ”(롬5:13 공동번역). 13절은 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대표성 원리를 뒷받침하는지 논증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담부터 모세까지, 곧 인류의 타락부터 율법이 주어지기까지 일어났던 사건을 보자면, 이 기간 중에 사람들이 죄를 범한 것은 분명하나 그들의 죄는 법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없는 곳에서는 죄를 죄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14절은 “그러나 죽음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지배하였는데 아담이 지은 것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그 지배를 받았습니다.”(공동번역)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그들이 사망한 이유가 아담처럼 고의적으로 범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과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인류가 그들의 머리인 아담 안에 속해 있었기 때문임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한편,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14절)이기에,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15절에서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의 유사성을 유추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은 아담이 지은 죄와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담 한 사람이 지은 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선물은 더 많은 사람에게 넘쳤기 때문입니다.”(롬5:15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로마서에서 매우 어려운 부분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15절의 핵심 사상은 많은 사람이 한 사람(아담 혹은 그리스도)의 행위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두 인물 사이의 유일한 유사점입니다. 반면에 이들간에는 극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가 측면을 다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죄가 죽음이란 수단으로 군림하게 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의로 군림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롬5:21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롬5:15).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에 두 인물 사이에는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유사점은 한 사람의 행위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며, 차이점(세 가지)은 아담의 행위와 그리스도의 행위의 동기와 결과 그리고 특성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죄를 지은 아담의 동기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동기와 다르고, 아담의 죄의 결과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와도 다르며, 아담의 행위의 특성은 그리스도의 행위의 특성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두 행위의 동기 : 15절은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범죄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파라프토마 transgression.”입니다. 이 단어는 정도에서 이탈한 행위, 탈선한 행위를 뜻합니다. 아담은 자신이 가야할 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것에서 벗어나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반면에 ‘은사 恩賜: 임금이 은혜로써 신하에게 물건을 내려 주던 일. 또는 그 물건)’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카리스마’로서 은혜로운 행위를 가리킵니다. 아담의 행위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아담 자신의 고집과 생각대로 행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행위는 자기 희생의 행위, 곧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두 인물의 행위 사이의 대조적인 동기의 차이는 이것입니다. “아담의 행위의 동기는 자기 주장이었지만 그리스도의 행위의 동기는 자기 희생이었다.” “(왜냐하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둘째, 아담의 행위와 그리스도 행위의 결과에 있어서 나타난 차이점을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15절). 15절에서 바울은, 한 사람의 죄가 많은 사람에게 사망의 무서운 형벌을 가져왔지만, 하나님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많은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이란 은사를 충분히 베풀었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15절은 사망을 생명과 대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16-17절에서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행위에 의해 일어난 정반대의 결과를 대조합니다.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따라서 아담의 행위는 우리에게 정죄를 가져다주었지만, 그리스도의 행위는 칭의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결과 아담의 죄로 인해서는 사망이 왕노릇 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서는 생명이 왕노릇 하게 된 것입니다. 정죄와 칭의, 사망과 생명, 이러한 대조보다 더 절대적인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실로 이전에는 사망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소속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의 종과 노예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는 이제 사망의 법 아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모든 대적들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을 함께 누리는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