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로마서 7장을 끝낸 우리는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로마서 8장에 와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사랑받는 장들 중 하나입니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율법의 위치에 대하여 주목하였다면, 여기서는 성령님이 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울이 역설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대조는 율법의 연약함과 성령님의 능력 사이에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정당한 뜻을 보여주고 명령하나 자기중심성에 물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행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율법은 우리의 부패성을 자극하게 되어 우리로 하여금 죄를 낳게 만들고, 그 결과 사망(영원한 죽음)에 이르도록 촉진하는 원리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사 다시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의 눈을 여시사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시는 것은 물론, 그런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우리의 손을 붙잡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인도하심으로 죄 대신 의를, 사망 대신 생명(영생)을 낳도록 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사과나 딸기가 맛있다고 설명을 해도 그 맛을 깨닫게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같이, 이런 진리는 설명으로는 안되고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 그것은 본질적으로 성령님 안에서의 삶입니다. 만약 성령님의 인도와 능력을 받지 못한다면, 자신을 부정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는 참된 제자도는 생각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진실로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준행하느냐 아니면 탐심을 따르느냐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사랑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사역을 적은 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원 불변하신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구원은 확실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8장은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성령님의 사역(1-27) (2)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28-39).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살피고 맛보십시오. 그분께 피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시34:8, 쉬운성경).

“그러므로 이제 어떤 유죄판결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그 법이 죄와 사망을 낳게 하는 그 법으로부터 여러분을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롬8:1-2, 사역). “탐내지 말라”와 같은 율법(도덕법)의 정당성을 인식하나 그것을 행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깊이 갈등하는 바울은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게 될 구원의 위대한 두 가지 축복을 언급합니다.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유죄판결)함이 없다는 것. (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 언급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은 복음을 의미하고, ‘죄와 사망의 법’은 율법을 의미합니다. 왜 율법이 ‘죄와 사망의 법’으로 불리워지고 있을까요? 통상 인간은 그 마음에 반항심이 있어 아무리 정당한 말이라도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하고, ‘하라’고 말하면 더 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말이 아니라 정당한 하나님의 말씀 혹은 율법이라고 해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 타락한 부패성(육신- 자기사랑, 교만)으로 인하여, 우리 안에 의를 낳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낳게 만들고, 그 결과 사망에 이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3-4절이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1-2절이 구원의 범위를 다루고 있다면, 3-4절은 구원의 방법, 즉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3율법이 죄의 본성 때문에 연약하여 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죄를 없애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심으로써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 속에 거하고 있는 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셨습니다.”(롬8:3).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잊지 말아야만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창세 전에 우리의 구원은 이미 계획된 것이나, 주도권은 성부께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놀라운 구원을 계획하시고 그 구원을 실제 실현시키기 위해 때가 차매 당신의 아들 즉 우리 주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대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리고 대관식을 올리시기 위해 하늘로 승천하시어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셨으며, 드디어 대권을 받으셨습니다. 이를 증거하는 구절이 다니엘서 7장 13-14절입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7:13-14). 그리고 구속의 대업을 이루시고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장면을 그리고 있는 구절은 바로 시편 110장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모든 불복종하는 것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 핵심은 당신과 함께 영원을 보낼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명(도덕법)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문제는 ‘자발적인 순종’이라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애굽에서 구속받은 이백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주신 율법(십계명)이 해낼 힘이 없는 구속의 핵심부분입니다. “탐내지 말라”는 열 번째 계명을 단 마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로마서에서 육신으로 불리우는 우리의 타락한 자기 중심성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3-4).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3절). 우리는 율법이 우리를 구원하는 데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그것은 율법 자체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드러난 정당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우리 자신(육신으로 불리움)에게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하지도 못하고, 거룩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율법은 우리의 구원의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을 통해, 그리고 그분의 영을 통해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육신을 입으신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의 삯을 치루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실 수 있게 되었으며(칭의), 내주하시는 그분의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영의 이러한 놀라운 사역을 면밀히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실 것을 이미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미 예언하셨습니다. 대표적인 구절이 에스겔서 36장 25-27절입니다. “25-26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 구절은 물과 영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나는 중생을 언급하는 부분과(25-26절), 중생한 후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부분(27절)으로 구분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이 부분을 인용하시면서 중생을 알려주셨습니다. 중생한 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밝히 보고 영접하여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중생 역시 성령님에 의한 것이지만,  중생 후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거룩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율법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룩되는 것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갈3:5).

로마서8장 3절 하반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먼저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라는 의미심장한 표현은 예수님의 육신은 죄가 없으셨을 뿐만 아니라, 실제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또한 자신의 아들을 ‘죄를 인하여’ 보내셨습니다. ‘페리 하마르티아스 περὶ ἁμαρτίας ’라는 이 헬라어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오셨음을 알려줍니다. 이 단어는 그분의 죽음과 관련해 ‘죄를 위한 제물로서’라는 특수한 뜻으로 사용됩니다. 칠십인역성경(LXX)에서 이 단어가 바로 그런 의미로 빈번히 사용되었습니다. ‘죄를 위한 제물로서’ 죽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은 그 구절의 하반부에서 좀더 설명됩니다: “(그가) 육신에 죄를 정하사”(3절). 곧 하나님은 참되고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의 육신 안에서 죄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하고 죽음이라는 벌을 집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5:21). 현대인의 성경은 로마서의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타락한 성품 때문에 율법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우리의 죄값을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롬8:3,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을 그렇게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보내신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심판을 면하고 천국에 가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적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로 하여금 율법(도덕법)으로 표현된 당신의 정당한 뜻에 순종하는 자녀들을 얻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겠으며,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 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방법을 4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의 인도입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롬8:4, 현대인의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