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4).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그분의 육신 안에서 죄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내리시고 죽음이라는 벌을 집행하신 목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한 뜻인 율법(도덕법)이 실천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칭의(의롭다고 선언하심)는 성화의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즉 불의한 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심판을 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막중하신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결단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능력과 인도를 받아야만 비로서 자기를 부정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성화 즉 거룩한 삶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거룩한 삶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으심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성육신), 그 아들의 육신 안에서 죄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속죄).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성화가 우리 안에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 죄의 삯을 치루신 것입니다. (2) 거룩이라는 것은 율법의 의, 곧 율법이 우리에게 주장하는 의로운 요구들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4절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따라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율법(도덕법)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 율법 폐기론자들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율법의 의가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음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3) 거룩은 성령님의 사역이기에 우리는 성령님께 순종해야만 육신(자기 중심성)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5-6).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왜 거룩해져야 하는지, 거룩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거룩하게 되는지에 관해 그리스도인들은 해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도록 하신 것 즉 거룩한 삶 자체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들어 오시고 죽으신 목적이라는 진실을 알게 될 때 거룩으로의 다짐을 굳게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율법(도덕법)으로 표현되고 있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굳게 세우게 됩니다. 그 세우는 결정적인 능력은 우리 안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님으로부터 오게 됩니다. 성화의 원동력은 성령님과의 동행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탐욕, 다툼, 교만, 두려움 등의 육신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우리를 사로잡으려고 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겠습니까? 많은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싸우도록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미 5백년 전에 이 문제를 그의 유명한 갈라디아 주석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육신이 소란을 부리기 시작할 때, 그 유일한 치료법은 성령의 검 즉 구원의 말씀을 잡고 그 육신과 싸우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말씀을 보지 못한다면, 당신은 무력하게 된다. 나는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수 많은 맹렬한 정욕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왔지만, 성경 구절을 잡자마자, 그 유혹들은 나를 떠났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더라면, 나는 육신과 싸워 이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여 각종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식게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도록 만듭니다. 마귀와 싸울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령님의 검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박창순 집사님이 올리신 김동길 교수의 “천국에서의 쇼핑”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사랑이 절실하여, 천국백화점 1층 진열대에 놓여 있는 “사랑”을 캇트에 실었죠…..” 어느 경우에도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이미 영생을 보장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돌보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7-18).”
로마서 8장에 대한 묵상을 계속하기 전 잠깐 신앙 인격의 형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느 부인은 남편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늘 술시중을 해야 하었습니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남편이 어지럽혀 놓은 것들을 다 정리하고 나서 잠든 남편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 신세타령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언제까지 이 모양으로 살아야 합니까?” 슬피 울며 탄식하면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나서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하셨지…”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감사할 일은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지만 좌우지간 감사합니다.” 그러는 순간 스스로 마음이 감동되어 “그래도 과부 신세보다야 낫지 않은가? 지금은 저 꼴이지만, 언젠가는 사람이 될는지도 모르지. 고주망태가 되어서도 제 집 찾아오는 것 하나는 신통하다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니 감사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더랍니다. 토요일은 특히 술을 많이 마셔서 주일날은 꼼짝 못하고 누워서 집을 보면서 아내보고 교회 나가라고 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이렇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웃고 있는데, 남편이 눈을 떴습니다. 밤중에 혼자 앉아 실실 웃고 있는 아내를 보자 남편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왜 웃는 거요?” “당신하고 사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그래요.” 그 부인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였습니다. 남편이 다 듣더니 “나도 예수 믿어줄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그 부인은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내가 10년을 기도하여도 응답이 없으시던 하나님께서 한 번의 감사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샘물교회). 물론 하나님께서 한 번의 감사기도로 응답하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처한 상황에서 당신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믿음의 인격이 형성되어 있는지를 보고 싶어하십니다. 그 부인은 그 날밤 비로서 그 비밀을 깨달았을 뿐입니다. 그것이 사실 위 간증의 정답입니다. 하나님을 늘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오늘은 지금까지 고찰해 온 길고 어려운 이번 단락(로마서7:1-8:4)을 되돌아보면서 요약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단락은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인 동시에 ‘율법의 성취’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즉 본문은 이 두 가지 사실을 모두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 단락은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진술로 ‘이제는 우리가…..율법에서 벗어났으니”로 시작해, 율법을 지켜야 함을 말하는 진술인,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으로 끝납니다. 이렇게 율법으로부터의 해방과 율법의 요구를 성취해야할 의무는 모두 그리스도의 죽으심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율법(도덕법)은 정당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나, 자기 중심성이라는 우리의 부패성 때문에 나타나게 된 현상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하나님 앞에 율법을 지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자,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율법의 저주를 걸머지게 하사 구원의 방법으로서의 율법의 차원에서는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를 의롭다하시는 다른 방법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롬3:21). 이 반면 율법은 성화의 방법이라는 차원에서, 우리는 여전히 율법을 지킬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율법에 대한 순종이 칭의의 근거는 아니게 되었으며,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에게 행위의 표준으로서 여전히 구속력이 있으며, 우리는 성령님을 따라 행함으로써 이를 성취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따라 행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성령을 따라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8장 5절 이하를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롬8:4, 새번역).
오늘부터 논하는 부분은 로마서 8장 5-39절로서, 그 내용은 성령님 안에서의 신자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받는 네 번째 특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나머지 세 가지 특권은 하나님과의 화평(5장), 그리스도와의 연합(6장), 율법으로부터 자유(7장)으로서 이미 논한 바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주제를 전개하면서, 성령님에 대하여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5장에서는 단 한 차례 ‘성령’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으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5절). 6장에서는 그나마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7장에서는 우리는 율법이라는 외적 법규에 매어있는 종의 신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종의 삶, 즉 성령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영적인 삶을 언급하기 위해 단 한 차례 사용되었습니다(7절). 그러나 8장에서 성령님은 이제 전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곧 의롭다 하심을 얻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성령님 안에서의 삶, 곧 성령님에 의해 생명을 얻고 유지되고, 인도되며, 풍성하게 되는 삶으로 묘사됩니다. 8장에서는 이런 성령님의 사역을 네 가지 분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육신, 곧 타락한 본성과 관련해서- 그분은 우리 육신을 정복하신다(5-13), 둘째, 우리의 아들됨, 곧 하나님의 양자됨에 관련해서- 그분은 우리의 아들됨을 증거하신다(14-17절), 셋째, 마지막 날에 있을 우리 몸의 구속을 포함한 우리의 궁극적인 유업에 관련해서- 그분은 우리의 유업을 보증하신다(18-25절), 넷째,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기도와 관련해서-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26-27절).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확보하신 것을 가지시고 행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또 그는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신 것은 다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령이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요16: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