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오늘부터는 공산치하 루마니아에서 신앙 때문에 무려 15년 간이나 감옥에 갇혀 온갖 고난을 당하신 범브란트 목사님(1909-2001)의 책 “어린이 신학”을 중심으로 현실에서의 영성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자신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머리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만들어낸 다른 어떤 신학보다도 어린아이들의 신학을 틀림없이 더 좋아하셨을 것이며, 실로 그것을 장려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18:3).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뜻인데, 그것은 어떤 다른 면에서보다 신학 문제에 있어서 더더욱 그러합니다. 내 손자 알렉스가(여섯 살에 이미 성경을 꽤 잘 알고 있었다)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아이들을 위해서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의 아이들(Children of Israel)만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해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어른들은 뒤에 그냥 남아 있었단 말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어린이들(Children of God)만이 천국에 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천국은 어른이 하나도 없는 나라가 될 거예요.”’ 어린 알렉스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말이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가를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은 정확히 무엇이겠습니까? 성서에 보면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사11:6)라고 씌여 있습니다. 이혼한 부모를 가진 어떤 어린아이가 이 구절을 읽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왜 우리 어린이들이 자기들을 인도하도록 맡기지 않지? 우리 같으면 절대로 술집이나 도박장이나 핵전쟁 같은 것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텐데. 우리가 인도자라면 때리는 일이나 이혼 같은 것은 없을텐데” 주님이 우리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 말씀은 우리가 어린 시절의 순진함과 신뢰하는 마음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세상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일 이 문제를 조금 더 논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131:1-2).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본질적으로 철학자인데, 어린이들이 던지는 질문을 보면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들의 입술로부터 아주 심오한 철학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그 이상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어른들이 어린이들처럼 장난감을 갖고 놀 것을 권장하였고, 자기 자신도 그렇게 하는 것이 도움을 주는 정신 활동임을 발견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아리엘이라는 네 살된 어린 터키 소녀가 범브란트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팔에 장난감을 가득 안고 돌아오실 거예요. 내겐 피아노까지 갖다 주실 걸요!” 우리가 ‘어린이들과 같이’ 되어 있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장난감을 주시겠습니까?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는다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고 하실 때 우리는 진심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어린아이의 유치한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주문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 경우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오히려 어른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을 신뢰하고 살아갈 줄 아는 동시에 모든 일에 뱀과 같은 지혜를 가지고 우리와 우리의 이웃을 보호할 줄 알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굉장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인 척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이 모습을 절대적으로 배워야만 합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사건 이후 인공지능 바둑은 급격히 실력이 상승하여 이제는 인간 고수가 맞두어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알파고와 다르게 더 이상 딥러닝이라는 기술이 아니라, 오직 바둑의 규칙만 가지고 그런 엄청난 수준에 이른 것은 바둑의 창조주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경우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당연히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가야 현명한 사람입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5-18).”

범브란트 목사님의 아들 미하이가 여섯 살 때 중병에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생명이 위독하게 되어 두개골을 자르는 응급 수술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뇌에 가해지는 압력을 제거하기 위해 뼈의 일부를 잘라 내는 아주 큰 수술이었습니다. 수술 전날 밤 목사님 부부는 성공적인 수술을 위해 그의 침대 주위에 둘러서서 기도를 하려고 많은 형제들을 불렀습니다. 미하이는 타는 듯한 열로 몸이 몹시 뜨거웠습니다. 목사님은 미하이에게 내일 아주 위험한 수술을 받을 예정이고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미하이는 기쁘게 대답하기를 “그럼 난 천국에 가겠네요! 천사들에겐 굉장히 좋은 장난감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나에게 하프 연주법을 가르쳐 줄 천사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란다. 너는 죄인이잖아.” “그렇지만, 아빠, 아빠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준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전 걱정하지 않아요. 전 천국에 갈 꺼니까요.” “미하이, 여기 계신 이 형제자매님들이 너를 위해 기도하러 오셨단다. 성경에 보면 어떤 사람이 아프면 교회의 장로님들을 모셔다가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라는 말씀이 있단다. 그러면 아픈 사람이 낫게 되지. 너, 그 말씀을 믿니?” 형제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미하이 자신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를 지금 건강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곧 아빠와 같이 새 장난감을 사러 장난감 가게에 갈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손이 아직도 아들 미하이의 가슴 위에 얹어 있는데, 그가 기도하는 동안 몸의 열이 놀랍게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하이가 짧은 기도를 끝냈을 때, 목사님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열을 재 봐요. 하나님의 기적을 체온계로 재 봐요!” 미하이의 열은 완전히 떨어져 있었으며, 그 다음날 수술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대신, 그 아이는 마당에 나가 놀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범브란트 목사님은 미하이를 장난감 가게로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마8:10-13)

1944년 경 소련 군대가 루마니아를 막 침공해 독일군의 무장을 해제한 때였습니다. 그들은 술을 굉장히 좋아하여 여기저기 술에 취한 소련 군인들이 루마니아의 거리를 누비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범브란트 목사님은 병에서 회복된 미하이와 함께 백화점에 들어가자, 소련인 대위가 여자 상사(上士)와 같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슨 물건을 사러 온 모양이었는데, 상점 주인은 소련말을 몰라서 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그들을 도와 주겠다고 자청했습니다. 그러자 6살된 미하이는 자꾸 목사님에게 그 소련 군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도 하라고 재촉하였습니다. 물론 목사님도 적절한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돈을 마구 쓰는 일을 도와 주고 있는데, 여자 상사가 목사님에게 말하기를 “선생님이 저희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릴 수 있겠는지요? 제가 여자 옷이 한 벌 필요합니다. 어디로 가면 여자 옷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 목사님은 기회가 온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런 일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위님과 당신을 우리 집에 초대할 테니, 같이 가셔서 점심을 먹고나면, 내 아내가 두 분을 모시고 그런 곳으로 안내해 드릴 겁니다.” 미하이는 그 두 사람이 집에 초대되어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될 것을 알고 굉장히 좋아하였습니다. “아빠, 술도 한 병 사세요” 미하이는 졸라댔습니다. “그러면 아빠 이야기를 더 잘 들을 거예요. 소련 군인들은 다 술을 좋아한다는 걸 아빠도 아시잖아요?” 목사님은 ‘아마 미하이는 성경에서 “내가 유대인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유대인처럼 되었고….. 내가 약한 사람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고전9:20, 22)라는 내용을 들어서 알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린 아들의 이런 기발한 제안에 미소만 지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들어갔을 때 그 두 손님들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참 포도나무의 열매를 나눌 수 있었고, 그 결과 두 소련 군인은 전부 믿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친절은 마음의 문을 여는 도구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5-16).

옛 소련 연방에는 아버지가 신앙 때문에 투옥된 P라는 이름의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경찰 간부가 학교에 와서 그 소년을 심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경찰은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소년의 처지를 매우 동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애야, 나는 너의 아버지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너의 아버지가 풀려나기를 바라고 있단다. 그러나 그럴려면 내가 너의 아버지에 대한 것을 좀더 잘 알아야 한다.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렴” “아 그래요!” 그 소년은 소리쳤습니다. “우리 아빤 아이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어요. 아빠가 이야기를 하실 땐 마치 예수님이 방안에 계신 것 같았어요. 작년 크리스마스 때만 해도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과 동방 박사들이 경배하려 그분을 찾아왔던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우리도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는 이야기도요.” 경찰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는 “어디에서 모였을 때 그 이야기를 했지? 거긴 누가 있었지? 또 누가 말했지?” 그 어린이는 위협을 느꼈습니다. “제가 아저씨한테 우리 아버지가 한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 드릴 수 있어요. 그 외엔 할 말이 하나도 없어요. 아저씬 우리 모임에 속한 분이 아녜요. 난 아저씨를 믿을 수 없어요.” 공산주의 국가에서 교회의 비밀을 불신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것, 즉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는 행위 때문에 감옥에 가거나 죽음을 당하게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그 대신 공산주의 보다도 더 무서운 돈과의 싸움, 치열한 경쟁 때문에 나타나는 생존의 위협, 명예와 쾌락의 유혹, 세속주의의 막강한 위력 앞에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자녀들 역시 형식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기 쉽습니다. 심한 경우 아예 데마처럼 이 세상을 사랑하여 주님을 떠나 세상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P 라는 소년처럼 용기 있고, 사리를 판단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하나님께 간구하여야만 합니다. 자녀들의 삶이 경건한 일생이 되도록 기도를 하루도 쉬지마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