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어느 목사님이 아침에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드리고 나오니  어린 아들이 묻기를 “아빠 무엇하셨어요?” 하였습니다. “아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지” “아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안 이를께. 내가 몰래 보니 하나님은 안 보이고 아빠 혼자 중얼거리고 나왔지?”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그 목사님은 아들에게 설명하기를 “너 생각 보았니?” “아니요” “그러나 생각이 있지” “네” “하나님도 생각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어느 정도 이해를 하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은 “하나님은 어떻게 생기셨어요?”라는 것입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그 아이에게 “너 만화경의 상(像)은 어떻게 생겼느냐?”라고 물으면서 대화를 시작하라고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화경의 상은 계속 바뀌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 피조물의 언어와 생각으로는 도저히 규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서 속에서 하나님은 사랑, 모든 것을 사르는 불, 사자, 바위, 전사(戰士), 태초부터 계신 이 등 많은 것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내포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의 모습 속에서 모든 것을 다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려고 애써야 할 분이 아니라 열렬히 사랑해야 할 분입니다. 그분은 결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냥 하나님일 뿐, 우리가 이러리라고 상상하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습과 형체가 없으며, 보여질 수 없는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으니,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삶 그리고 행동을 보면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이 되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히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7-18)

어떤 아이가 “하나님한테는 별들도 많고 꽃들도 많은데 왜 사람들을 만드셨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지혜를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만, 그런 능력과 지혜를 가지시고 분초마다 인간 개개인들을 생각하시며, 다루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 역시 많은 활동을 하며 걱정거리도 많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와 그보다 저 작은 전자 등에 대하여 생각할 시간을 갖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물리학자들은 수학적으로만 시각화 할 수 있는 쿼크와 같은 초 미립자의 세계에 대하여 가설을 만들고,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커다란 입자 가속기를 세워 실험합니다. 인간이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것들이 인간의 생명과 인간 환경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측면에서 보면 인간들은 물질적으로는 아주 보잘 것 없지만, 당신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을 당신의 형상과 모양 대로 지으시고 우주를 다스리도록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를 랍비의 글에 나온 것처럼 아담과 하와가 지으심을 받았을 때, 이는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천사장 미가엘이 천사들을 이끌고 절을 하였다는 정도까지 발전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행17:28).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의미를 각자가 발견할 책무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관심사와 은사 그리고 삶의 경험을 주셨습니다. 소명을 발견한 자는 가장 큰 지혜를 얻은 사람입니다.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그러하였습니다. “나는 지극히 보잘것 없는 그리스도인 중에 하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내게 능력과 재능을 주셔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누리게 될 부요함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 복음의 부요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만큼 크고도 놀랍습니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만물을 창조하신 한 분, 곧 하나님 안에 숨겨진 진리에 관한 계획을 모든 사람에게 전할 임무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교회를 통해서 하늘의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태초부터 이루려고 계획하신 일이기도 합니다.”(엡3:8-11, 쉬운성경).

범브란트 목사님이 아들과 손자, 손녀와 같이 드라이브를 나갈 때마다 비슷한 요청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애기 하나 해주세요.” 그러면서 손녀 아멜리는 안전띠를 매고, 편안하게 자리를 잡은 다음 기대하는 눈빛으로 목사님을 올려다 보곤하였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아멜리에게 노아의 방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멜리는 이야기를 중단시켰습니다. “할아버지, 방주 안에선 왜 늑대가 양을 잡아먹지 않았어요?” 백미러를 통해 목사님은 아들과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심호흡을 하고 번갈아 가며 대답을 하려고 애썼으나 아멜리는 만족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이의 얼굴이 활짝 피어나며 논리성에 관한한 반격의 여지가 없는 대답을 생각해냈습니다. “아, 알았어요! 동물들이 차례로 방주에 들어올 때 노아가 안전띠를 매줬어요. 노아는 늑대와 양을 갈라 놓았죠. 그래서 늑대는 양을 향해 이는 갈아도 물어뜯을 수는 없었던 것예요.” 아멜리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현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기질이 아주 달라서 가까이 있으면 싸움과 분쟁만 일으키는 사람들은 안전띠를 메우고 따로따로 갈라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위대성이 여기 있습니다. 다투고 싸우고 파당을 짓고 이 세상에서의 소망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때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심령이 가난하여지고 다툼과 싸움을 그치게 됩니다. 그 결과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며 표범과 어린 염소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의 손에 이끌리며”(사11:6)라고 이사야가 꿈꾸었던 메시야 시대의 소망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도 바울입니다. 율법에 열심이었고, 복음에 대하여 적대적이었던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는 온유하고 겸손하나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한 사도로 변신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이렇게 변화될 수 있음을 알고 사람들에 대하여 오래참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1:15-16).

인간들 특히 어린 아이들은 세상에 대하여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의 아들 미하이가 어렸을 때에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선 왜 간단히 악마를 죽여서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시지 않으셨나요?” 놀라운 것은 미하이가 어른이 되어 아빠가 되었을 때, 그의 딸 아멜리가 똑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아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악마도 원래는 악마가 아니었다. 그도 한 때는 좋은 천사였단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쁜 천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거지. 그 악마를 죽였다면, 다른 좋은 천사가 아마 같은 선택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악마를 죽인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도 악마에게 ‘죽어라’라고 말씀하지 않고, ‘내 뒤로 물러서라’라고 말씀하셨단다. 예수님은 마귀들을 죽이시지 않고 도망치게 내쫓으신단다. 우리도 마귀에 대한 그런 정신적 저항을 길러야 한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할 수 있도록 배워서, 마귀에게 ‘아냐, 나는 네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단다.” 그 당시 미하이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목사님의 이와 같은 설명을 듣고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요점을 이해하였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 그 미하이가 나은 딸 아멜라도 여덟 살이 되었을 때 같은 질문과 같은 대답을 듣고 또 그렇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만든 곳이 아니라, 완전 타자이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이며, 우리는 단지 청지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당연히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더 나아가 영의 세계는 알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계시한 것에 머물러야만 합니다. 그리고 타락한 천사인 악마는 우리 생각과 욕망을 통해 지배하려 온갖 노력을 다하니,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자존감을 가지고 악마와 싸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영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늘 주의하십시오. 원수 마귀가 배고파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마귀에게 지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 있기 바랍니다. 온 세상의 모든 성도들도 여러분과 같은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힘든 고난은 잠시 동안입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바르게 세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뒤에서 받쳐 주시고 든든하게 세워 주셔서, 결코 넘어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여러분을 친히 부르셨으니, 그 영광이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기도드립니다.”(벧전5:8-10, 새번역).

우리에게는 두 종류의 하나님의 책이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창조된 세상이라는 책이고, 또 하나는 성경이라는 책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상에는 많은 악이 있습니다. 얼만 전 노컷 뉴스는 전수미 변호사 자신이 20대 초반(2005년경) 탈북단체와 주민을 돕다가 성폭행을 시도한 술취한 탈북 북한 남자로부터 도망친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방역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조차 이런 악은 매우 흔한 예들입니다. 성경을 모르면 지금 세상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지를 인간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이렇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셨으나, 마귀에 꾐에 넘어간 타락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처럼 되려고 서로 싸우는 장소로 변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님을 보내사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하는 곳으로 다시 변화시켰습니다. 미래의 어느 때가 되면 다시 주님을 보내사 선악 간에 세상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런 창조, 타락, 구속, 완성(영화)이라는 기독교 세계관을 우리는 가지고 있어야 당황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아이가 “왜 악이 세상에 있어야만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선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라는 말로 대답할 줄 알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악한 자들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제 선한 일에 열심인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는 변화를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변화시키는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유다는 은 30량 때문에 팔아넘기고, 질투심에 눈이 먼 유대 지도층들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기고, 폭동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 한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형한 것은 엄청난 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인류 구원이라고 하는 이 세상 최대의 선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여러분의 모든 염려를 다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