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3 – 7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 하고, 환난에 처해서도 그것이 산출해 내는 결과 때문에 기뻐한다고 말하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영광에 대한 소망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혹은 “그것은 단지 우리의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결국 영광에 이를 것이라는 말은 좋은 말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는가?” 이런 반론을 사도 바울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런 영광에 대한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그 소망은 참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새영어성경(NEB)은 이 구절을 “그와 같은 (영광에 대한)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하든지 그건 당신 마음일 뿐이다. 하지만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재차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5절 후반부에서 대답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 그러한 소망이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는 것이 바울의 요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광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 이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는 소망은 참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때로는 고통을 통해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시면서, 이 세상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신다면 그분이 우리를 하늘 나라에서 영화롭게 하실 것임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어려움에 처해서 가질 수 있는 모든 불안 초조 의심 걱정을 주님의 손에 맡기시고 겸허하게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17:3).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서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구절의 요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결코 멸망당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because God’s love has flooded our inmost heart through the Holy Spirit he has given us.’(NEB) 라고 분명히 대답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는데, 그 원인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내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의 독특한 사역 중 하나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홍수와 같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내적으로 깊이 깨닫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부어 주시는 이 사랑을 깨달은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능력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환난 가운데 기뻐하고, 남의 허물에 대해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하나님의 응답이 올 때까지 인내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게 됩니다. 이 같은 사실을 바울은 로마서 8:16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라고 증거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속에 부어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여기서 우리는 5절에 나오는 동사의 시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란 구절에서의 ‘주신’으로 번역된 원어 ‘도센토스δοθέντος‘는 수동 분사형이며 시제는 과거에 한 번 있었던 사건을 나타내도록 부정과거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부은 바 됨’이라는 구절에서의 ‘부은 has been poured’이라는 말은 헬라어 수동형 동사 ‘엑케쿠타이 ἐκκέχυται’의 번역으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현재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나타내는 완료형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믿고 회심한 순간에 성령을 받는다는 사실뿐 아니라,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이미 부은 바 된 하나님의 사랑을 지금까지 계속 흘러 넘치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단번에 주어진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충만하도록 흘러넘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병헌이 주인공으로 나온 드라마 ‘올 인 (All In)’의 실제 주인공 차민수(70) 씨의 말입니다. 70년대 중반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민 갔으나, 거기서 사업과 가정 모두 실패하여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과부였지만 부자였던 어머니는 집 안에도 들이지 않고 유복자인 그 아들을 쫓아버렸습니다. 미국에 다시 돌아간 그는 천신만고 끝에 카지노의 포커판을 통해 일어섰고, 지금의 부인을 만나 고아라고 소개한 뒤 재혼하였습니다. 그렇게 냉정하던 어머니의 부탁으로 큰 누나가 미국을 숫소문하여 드디어 자신의 집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때 차민수 씨는 “아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셨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그 어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며 우리를 정말 사랑하신 것을 보여주신 사건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1-5). 이상의 다섯 구절을 요약해 볼 때 우리는 칭의의 결과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삼중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 둘째 우리는 지금 은혜 안에 서 있게 되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소망은 하나님이 환난을 통과시킴으로써 우리 안에 이루시는 인격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무엇보다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확실해집니다. 바꿔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단회적인 판결인 칭의는, 현재의 은혜와 장래의 영광이란 말로 요약되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관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식 때 정성을 다한 예물을 교환함으로써 서로간의 사랑을 보여주듯이, 하나님은 당신을 반역한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십자가 위에서 죽게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여주셨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1-5절에서 환난을 연결고리로 삼아 화평과 소망, 칭의와 영화를 결부시켰지만, 이제 6-11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연결고리로 삼아 그것들을 다시 결부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어 나오는 6-11절은 칭의의 결과가 보다 상세하게 기술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무력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롬5:6 사역).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8). 6-8절에서의 주제는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들을 위해 죽으셨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이것이 이 구절들의 핵심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이 구절은 우리를 자신들을 구원하지 못한 ‘연약한’ 자들이라 묘사합니다. 둘째, 우리를 하나님의 권위에 반항하는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라고 묘사합니다. 셋째, 우리를 의의 표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죄인’이라고 묘사합니다. 넷째, 하나님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원수’라고 부릅니다. 죄에 빠진 인간에 대한 이 얼마나 두렵고 가공할 만한 묘사입니까! 우리는 실패자요, 반역자요, 원수들이며,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데 아무런 힘이 없는 무능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러한 자들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야 예수님이 살아 계실 당시에 생존하였던 유대인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한반도의 조선민족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질문도 던질만 합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12절 이하에서 다루고 있습니다만, 이른바 대표성 원리입니다. 범죄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음의 형벌을 받은 것과 같이, 불의한 자들을 위해 속죄를 완성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가지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