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2020. 1. 28 – 2.1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5:3-4). 여기서 환난은 헬라어로 ‘쓸립시스 θλῖψις ‘입니다. 이 단어는 글자그대로의 뜻은 ‘압력 pressure”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어려움을 일컫는 것입니다. 존 스타트 목사님은 이 단어를 질병이나 괴로움, 슬픔이나 애통이 아니라 불신자들에 의해 받는 박해를 의미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의미를 꼭 그런 것에 국한하는 것보다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신자들에게 부닺치는 일반적 고난 역시 포함한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믿음의 삶에 가해지는 어떤 압력일지라도 환난은 우리를 언제나 영광에 이르게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도 친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구약성경이 예언한 대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그러셨습니다 (눅24:36). 그리스도에게 진실인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진실입니다. 종이 상전보다 결코 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요13:16).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로마서8:17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을 장래에 받을 영광과 관련하여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현재의 고난이 언제나 영광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며, 장래의 영광을 생각해서 지금 당하는 고난을 언제나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에 따르면,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영광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은 그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즐거워합니다. 만일 우리가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면’ 우리는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 또한 ‘즐거워한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즐거워하다’라는 헬라어는 “카우카오마이 καυχάομαι ”로 ‘매우 즐거워한다, 기고만장하여 기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 하에 유독 그리스도인들만은 왜 그럴까요?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시119:71-72)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로마서5:3-5). 그리스도인들은 장래의 영광을 소망 가운데서 뿐 아니라, 현재의 고난 가운데서도 매우 기뻐합니다.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영광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즐거워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것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현재의 고난 중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3-5절이 이러한 역설을 정확히 설명해줍니다. 3-5절은 우리가 고난 자체를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 내는 유익한 결과를 즐거워한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우리는 고통 자체를 즐기는 자학자들도,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는 고행주의자들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에서 하나님의 은혜롭고 거룩한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고난이 만들어 내는 열매나 결과로 인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룬다”라는 말은 헬라어 “카테르카제타이 κατεργάζεται”를 번역한 말로 그 정확한 의미는 “노동과 작업을 통하여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제는 현재형으로 계속해서 생산 중이라는 뉘앙스를 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고난은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는 연단(입증된 성품 proven character)을, 연단은 소망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열매들은 주님이 십자가의 대가를 치루고 얻은 당신의 백성들이 마땅히 갖추어야만 하는 자질들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로마서5:3-5).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즐거워한다는 말은, 그것이 낳은 결과와 맺는 열매를 즐거워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고난이 만들어 내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로마서 5:3-5은 세 가지 단계로 제시합니다. 1단계 : 환난은 인내를 낳습니다. – 예방접종에 의해 항체가 몸 안에 생기듯이 환난 중에 필요한 참된 인내는 환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고난을 경험해보지 않고서 우리는 결코 인내를 배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환난 없이는 인내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2단계 : 인내는 연단 또는 인격을 낳습니다. – 연단이라고 번역된 ‘도키메 δοκιμή ‘라는 헬라어는 시험을 치러 합격한 사람과 같이 성숙한 인격이나 검증을 받은 물건의 질을 뜻합니다.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이 갑옷과 투구가 익숙하지 않아 시험적으로 걸쳐 보다가 입지 않겠노라고 했을 때 의미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 또는 그에 걸맞는 인격을 낳습니다. 3단계 : 연단 또는 인격은 소망을 낳습니다. 이 연단은 궁극적인 영광에 대한 확신을 낳습니다. 환난의 인내를 통해 얻은 성숙한 인격은 장래의 영광에 대한 소망을 가져옵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의미한 것은 분명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인격은 하나님이 우리 편에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이처럼 역사하신다는 사실은, 우리가 온전히 성장하기까지 그분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임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줍니다. 만일 그분이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해 지금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면,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마침내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고난을 통과할 때 우리에게 절대로 필요한 지혜를 주신다는 약속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닥친 당면의 문제 역시 잘 해결할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환난과 영광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며, 더 나아가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할 수 있다면, 환난은 이러한 영광에 대한 소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만일 영광에 대한 소망이 환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영광 가운데서 뿐 아니라,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목적)을 즐거워할 뿐 아니라, 목적에 이르는 환난(방법) 또한 즐거워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둘 모두를 즐거워합니다. 어느 날 카프만 부인은 책상 위에 곧 나방이 될 고치들을 놓고, 거기서 나방이 뚫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고치의 구멍은 작은데 나방이 구멍보다 커서 나방이 나오는 모습이 무척 힘들고 고생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가위로 고치의 구멍을 넓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거기서 나온 나방은 좁은 구멍을 뚫고 나온 나방보다 윤이 나고 훨씬 커서 카프만 부인은 신의 창조의 지혜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겼습니다. 얼마 후 나방이 날기 시작할 무렵 고생스럽게 나온 나방은 훨훨 날아가고, 구멍을 뚫어 준 나방은 날아가지 못하고 날개만 파닥거렸습니다. 그 이유는 나방의 영양분은 모두 어깨에 있는데, 좁은 구멍을 나올 때에 고생스럽게 힘을 쓸 때 어깨에 있는 모든 양분이 점점 날개 밑으로 내려가 날개 끝까지 그 양분이 옮겨지게 되고 나방은 그 힘으로 날게 되기 때문입니다. 카프만 부인은 이러한 사실을 나중에 깨닫고 자신의 한정된 지식과 경솔함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인격형성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인격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하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하면서 신실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10:3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