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인천에서 한국유리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한 고 최태섭 장로님(1910-1998)의 큰 사위되는 김종덕(전 제일은행 전무) 성도의 말입니다. 1960년대 중반 한국유리가 이러저러한 일로 한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최태섭 회장은 무척 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화를 내도 모자랄 일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지만 그 힘든 때에도 최장로님은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 한 번 부리지 않고 살아가셨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힘든 시절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곤 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이 들고 오는 것 중에는 못 들어줄 일도 있었으며, 예의 바르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태섭 장로님은 아무리 언짢은 부탁에도 얼굴 표정 하나 일그러뜨리지 않고 일단 성의껏 의견을 들어주셨습니다. 특히 목사님들이나 전도사님들이 교회를 짓는다거나 하는 일에 도움을 요청하면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일이라 생각하시고 대부분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이러저러한 장인어른의 모습들을 보면서 큰 사위는 그렇게까지 남을 생각할 수 있는 비결이 무얼까 하는 강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사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그렇게 안으로만 삭여서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아 병에 걸렸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조차 남을 배려할 수 있는 그런 자세는 놀라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큰 사위는 장인어른이 아침 저녁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그 비결의 핵심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최태섭 장로님의 기도는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최태섭 장로님의 전기를 읽은 결론은 그분은 주님을 사랑하셨고, 민족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없이는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런 자세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고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선지자 엘리야는 어느 날 자신이 호렙 산에 있는 한 굴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전에 그는 어느모로 보나 매우 성공한 선지자였습니다. 850 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워 아합 왕 앞에서 모두 이겨 죽였으며, 3년 동안 내리지 않던 비가 오도록 기도하여 하나님께 그 응답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그것도 여인의 협박에 그만 낙담하고 도망을 쳐서 호렙 산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호렙 산에 있는 한 굴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실패하여 피신한 굴이야말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장소 중 하나입니다. 실패의 무게에 눌릴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면 그 돌보심의 손길을 깨달게 됩니다. 사실 실패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큰 선물은, 우리가 실패의 굴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소중히 여기신다는 깨달음입니다. 굴 속에서 다윗은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철저히 실패해도 하나님이 나를 똑같이 가치 있게 보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뼈 속 깊이 깨달을 때, 성공이나 실패보다 강한 사랑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사랑의 객관적인 증거를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 아들을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해 내어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너 나아가 주관적으로도 우리는 이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이 우리에게 부으신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 군대와 마지막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180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한 시글락 성에 아말렉 족속들이 침입하여 불태우고, 다윗과 그 부하들의 모든 재물과 가족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때 다윗과 그 부하 600명은 블레셋 전투집결지인 아벡에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시글락에 도착하여 그 사정을 알게된 다윗은 부하들의 동요로 매우 급하였으나 에봇을 입고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는 매우 분명한 다윗은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행동을 취했고 자신의 공동체를 구조하는 동시에 리더십을 회복하였습니다. 행동은 매우 강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망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실패 요인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지 못했고, 그 다음에는 변화를 일으킬 행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주님이 행동하라고 부르시는데도 외부의 도움이나 사람만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아기 곰 푸우>의 친구인 당나귀 ‘이요르’는 언제나 우울합니다. 아예 희망을 갖지 않음으로써 실망의 고통을 피하고자 하였습니다. 다윗도 이런 유혹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실패는 오히려 엄청난 동기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실패의 고통을 느끼면서, 주님의 뜻을 찾아나선다면 그것은 변화의 원동력이 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시105:17-19).”
파커 팔머가 허리케인이라고 불리우는 섬에서 한 주를 보내는 동안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도전에 직면하였습니다. 교관이 지면에서 33미터 높이의 절벽 끝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허리에 매우 가느다란 밧줄을 묶고는 절벽을 현수하강(이중 자일로 암벽을 내려가는 방법)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주저하면서 그냥 내려갔을 때 1미터도 안 되어 바위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그때 교관은 몸을 절벽과 직각이 되도록 몸을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뒤로 눕히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말을 듣기를 거부하고 내려가다가 1미터 아래에서 또 바위에 부딪쳤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관의 충고대로 몸을 젖혀 절벽과 직각을 이루고 내려가니 정말 놀랍게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공중에서 뒤로 누워 기도하며 눈으로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발을 조금씩 움직여서 바위 표면을 하강하기 시작했고 점차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절반쯤 내려가니 두 번째 교관이 밑에서 “파커 그만 멈추고 발 밑에 무엇이 있느지 봐요” 천천히 돌려보니 자신이 바위 표면에 깊이 함몰된 구멍으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내려가면서 그 구멍을 피해기 위해서는 몸을 그내처럼 흔들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는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꼼짝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교관은 매우 길게 늦겨지는 시간 동안 그가 혼자 떨며 거기 매달려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다가 외치기를 “거기서 나올 수 없다면 그 안으로 들어가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파커 팔머는 일생 동안 잊지를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실패의 모습들입니다. 우리는 깨달아야만 합니다. 어디선가 획 날아와서 우리를 안전하게 데려갈 헬리콥터는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실패했다고 느끼는 영역에서 주님을 신뢰하고 한 걸음을 내딛어야만 합니다. 물 위를 걷다가 실패한 베드로의 경우처럼 주님은 이미 거기에 와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마14:31-32).
영화 《불의 전차》에서 영국의 육상 선수 헤럴드 에이브럼즈는 스코틀랜드의 챔피언 에릭 리들과 경주하여 난생 처음으로 패배하고 맙니다. 해럴드는 실패가 너무 고통스러워 다시는 달리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여자 친구 시빌은 말합니다 “해럴드, 말도 안돼요. 가족이 죽은 것도 아니라고요.” 해럴드는 신음합니다. “나는 졌어” “알아요. 나도 거기 있었어요. 정말 놀라운 경기였어요. 최고의 사람이 이겼어요….그가 앞섰고 당신이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요. 그는 정정당당하게 이겼어요.” “그래 알아. 그러나 나는 지기 위해 달리지 않아. 나는 이기기 위해 달려! 이길 수 없다면 달리지 않아!”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시빌은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달리지 않는다면 이길 수도 없어요.” 최선의 경주를 하고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바쳐 전력투구한 후 얻은 승리는 영광스럽습니다.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는 아예 경주를 하지 않으려는 자세입니다. 여러분 이제껏 실패가 두려워 피해 온 상황에 직면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용기를 달라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십시요. 그리고 미루어 온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한 권의 책을 펼쳐야 합니다. 또한 꿈꾸는 직업을 얻기 위한 시작으로 한 통의 지원서를 쓰시고, 삶에 의미 있는 성장을 일으킬 새로운 기술 습득을 위해 강좌를 수강하십시요. 그러나 우리는 실패를 각오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엎드려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드디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며, 많은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위한 일반적인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 (잠2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