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요청하면서 베드로는 물 위로 걷기를 위해 예수님의 허락을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능력은 예수님의 주권하에 있었기에, 베드로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배밖으로 나오기 전에, 예수님의 뜻임을 분명히 해야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충동적인 행동 그 이상을 찾으십니다. 우리는 때로 인간관계, 재정, 언행에서 무모한 결정을 내리고서는, 그것을 영적인 언어로 포장하여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프랭크 파알리는 30년 간 T타입, 즉 ‘스릴 추구 성격(Thrill-seeking personality)’을 연구하였습니다. 이들은 위험도가 높은 상황과 행동에 매력을 느끼며, 불확실성, 예측 불가능성, 새로움, 다양성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쉽게 지루해 하며 끊임없는 자극을 열망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과학자들은 소위 ‘위험 감수 유전자’를 발견하였는데. 그 유전자는 D4DR이라고 불리웁니다. 흥분을 잘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내성적이고 느긋한 사람들보다 이 유전자가 더 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극한 스포츠인 암벽 등반, 페러글라이딩, 행글라이더 등을 즐깁니다. 이런 타입의 사람들은 큰일을 할 수도 있지만, 물질 남용, 잘못된 성적 행동, 도박 등의 파괴적 행동을 할 잠재성 역시 큽니다. 이 경우 우리의 삶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때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무모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모든 문제를 즉시 해결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타입에 속하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우리가 용감하게 위험을 감수하지만 실제로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문제를 숙고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7).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와 “어리석지 말지니라”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어렵습니다. 언제 배 밖으로 나가서 모험을 해야 하는지 알려면 용기뿐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는 지혜, 주님의 음성을 인식하는 분별력, 명령을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충동에 휘둘리는 T타입을 찾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W 타입 즉 물(Water) 위를 걷는 성격을 찾으십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과의 모험을 갈망하는 ‘하나님 유전자’가 필요한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하나 제기됩니다. 배 밖으로 나오라는 하나님의 진정한 부르심과 나 자신의 무모한 충동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W 타입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소명을 발견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소명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여러분의 삶에서 분별되었고 실현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

하나님은 하루 종일 무엇을 하실까? 성경은 한 문장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은 일하신다.” 리랜드 라이켄은 이런 면에서 기독교가 매우 독특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대 헬라인들은 신은 일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가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번개를 던지는 일 외에, 제우스와 그 일동은 언제나 놀고 쉬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빛을 어두움에게서 나누시고, 하늘과 천체를 만드시고, 물을 모으시고, 흙에서 인간을 만드시는 등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러고도 여섯 날 후, 하나님은 은퇴하지 않았습니다. 시편 기자는 우주가 기계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하나님이 운영하신다는 사실을 매우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시편104편). 특히 하나님은 사람들과 활발히 동역하십니다. 예수님 역시 일하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목수로 일하셨고,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창조하고, 인도하고, 공부하고, 조직하고, 고치고, 개발하고, 가르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아서 밀러는 이것이 주7일 신앙의 핵심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2:15).

“받은 재능을 사용하여 세상을 탁월하게 섬기고, 그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것을 온전히 활용하는 소명은 거룩한 과업이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분명히 소명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듣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으나 어린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가 부른 줄 알고 일어나 두 번이나 엘리에게 간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음성이 누구의 것인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렉 르보이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종종 이름을 두 번씩 부르신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야곱아 야곱아, 모세야 모세야”처럼 말입니다. 한 번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는 어떻게 소명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하여 오토버그 목사님은 이런 예화를 언급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조립이 필요함”이라고 쓰여진 물건을 사 주는 것을 두려워 했다. 나는 조립에 소질이 없다. 수많은 부품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땅바닥에 널려 있기 일쑤다. 그 부품들은 제 역할을 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확실한 목적으로 우리와 우리의 삶을 디자인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소명을 이룰 수 있도록 특정한 은사, 갈망, 재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선물들을 잘 파악하고, 기술적으로 개발하고, 기쁨으로 겸손함으로 사용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섬기는 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가장 근원적이고 높은 소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너희는 이 땅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표현하시고는 제자들에게 분부하셨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간 사람도 있고,우리 후에 올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우리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바로 지금 나타나려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의 자리를 맡아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소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유대 신비주의의 일파인 하싯즘의 옛 이야기를 보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기 위해 두 개의 주머니가 있는 코트를 입어야 하였습니다. 한 호주머니에는 “너는 우주의 수억, 수백만 모래의 하나에 불과하다”라고 쓰여 있고, 다른 호주머니에는 “내가 이 우주를 너를 위해 만들었다”라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소명을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경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염려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나의 구원과 가치는 나의 직책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일은 우리가 최고의 에너지를 쏟아 부을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소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