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두려움과 아울러 우리가 고려해야만 하는 요소는 편안함입니다. 버클리 대학의 연구진은 아메바를 완벽한 환경 속에 집어넣고 반응을 살피는 실험을 했습니다. 이상적인 온도, 최적의 습도, 지속적인 식량 공급, 어떤 것에도 굳이 적응할 필요가 없는 최상의 환경이었고, 질병을 초래할 요소들도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이상하게도, 아메바는 죽었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심지어 아메바까지도 도전을 필요로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편안함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음식과 공기만큼, 변화와 적응과 도전도 필요합니다. 편안하기만 하고 아무런 도전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의 의의도 찾을 수 없고, 무기력하게 살다가 죽을 것입니다. 또한 이런 편안함은 우리가 잠재력을 실현시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유혹입니다. 편안함은 자주 우리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학생을 성장시키려는 선생님은 답이 아닌 문제를 제시해 줍니다.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과정에서만,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강화되고 인내심이 강해지며 자신감이 견고해집니다. 누군가 내게 답을 알려 주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지는 몰라도 성장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몸이 노력하고 도전해야만 강해지듯이, 우리의 마음과 영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편안함은 개봉하지 않은 선물의 비극을 무마할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만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12:23-25).

달란트 비유를 통해 주님이 주인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세 번째 원칙은 “그분은 상 주는 주인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주인은 선물을 주고 회계를 결산하기도 하지만 상도 주십니다. 그분의 보물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님은 놀라운 선물을 준비하십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 칭찬을 하나님께 받는 것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주인은 종들을 자신의 즐거움에 참여하도록 초청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주인은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라고 말하여 오히려 더 큰 일을 맡긴 것을 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즉 주인의 의도는 “이제 네가 진짜 일을 맡을 때다!”라는 것입니다. 주인은 종에게 엄청난 부를 주었으면서도“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작은 일에 불과하다니! 그렇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것에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록펠러나 빌 게이츠의 재산이나 진시황의 권력이나 마이클 조던의 명성 등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주님 보시기에 ‘작은 일’일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실버 타운 같은 곳은 절대 아닙니다. 그곳은 우리가 지음받은 목적인 모험, 창조성, 풍성한 열매를 드디어 온전하게 경험하며 우리의 잠재성이 실현되는 궁극적인 곳입니다. 그곳에 개봉되지 않은 선물이란 없을 것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3-14).  

여러분은 풍성한 달란트를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재정, 인간관계, 능력으로 은사의 주님께 막대한 것을 되돌려 드릴 수도 있는데,혹시 그것들을 그냥 깔고 있지는 않는지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1) 나의 가장 깊은 꿈은 무엇인가? (2) 나의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열정을 느끼는가? (3)나의 묘비에 무엇이라고 기록되기를 원하는가? (4)요즘 나는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가? (5)나 자신의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이 필요한 모험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 (6)어떤 일을 하도록 내가 태어났다면, 그 ‘일’은 무엇이라고 믿는가? (7)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확신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는 은사의 주님께 받아 그분의 왕국에 투자해야 할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여러분의 시간이나 재능 분야에서 아직 여러분의 잠재력이 실현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저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저녁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은퇴하고 죽는 삶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매순간을 소중하게 취하여 “하나님 이것은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영적 은사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온전히 연마하고 개발하고 인내하고 부단히 힘써서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하나님께 즐거움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게임에 뛰어들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왕국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일생일대의 기회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13:45-46).

은사와 관련하여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하여 특별한 재주도 없고, 뛰어난 지혜나 기술, 그리고 재산도 없는 사람이니 내가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는가? 물론 인간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여러분은 훌륭한 은사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각각의 재능대로 달란트를 분여하였다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우리는 은사의 주인이신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은사의 주님은 오병이어를 취하여 많은 무리를 먹이실 수 있습니다. 그 은사의 주님은 말더듬이 도망자인 모세를 사용하셔서 세계 권력을 쥔 독재자 파라오와 그의 군대를 전부 물리치실 수 있습니다. 그 은사의 주님은 피 묻은 십자가에서 빈 무덤을 만들 수 있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사의 주님은 엉성하고 실수가 많은 열한 명의 제자로, 쇠할 줄 모르는 꿈을 가진 공동체를 창조하셔서 전 세계로 퍼뜨리셨습니다. 그분은 놀라울 정도로 지략이 풍부하신 분이시며, 우리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신 주인 되신 바로 그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여러분이 바치는 보잘 것이 없는 것을 취하여 영원한 차이를 만들어 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잠재력이 어떤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 은사와 재능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투자하면 은사의 주님이 돌아오실 때 그 진가가 나타날 것이고, 우리는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2-3).

물 위를 걸으려면 모험을 감수할 용기뿐 아니라 소명을 분별할 지혜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어리석음은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천국 문 앞에 나타났습니다. 문지기 베드로는 “특별한 공을 세운 것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예, 하나가 생각납니다. 폭주족들이 아가씨를 위협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지요. 저는 즉시 아가씨를 놓아주라고 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죠. 그래서 저는 가장 덩치가 크고 문신을 많이 새긴 놈에게 가서 그의 뒤통수를 갈기고 오토바이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그의 코걸이를 낚아채어 땅바닥에 던지고는 ‘지금 당장 이 아가씨를 놔 주지 않으려면 나랑 붙자!”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인상을 받고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언제 그랬습니까?” “바로 몇 분 전이죠. 그래서 여기 온 겁니다.” 이 사람은 즉시 맞자 죽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는 물 위를 걸으려고 배밖으로 즉시 뛰어나가지 않고 먼저 주님의 허락을 구했다는 것에 주목하여야만 합니다. 믿음은 결코 어리석은 충동이 아닙니다. 이런 어리석은 충동을 요구한 장본인은 바로 사탄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올려놓고 “거기서 뛰어내리라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천사들이 나타나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도록 보호할 것이다”라는 되지도 않는 성경 해석을 통해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충동하였습니다. 믿음과 어리석음을 분별하지 못하면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예전에 삼각산 부흥회에 참석하러 가다가 급류를 만난 세 처녀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사실을 생각해 내고 기도한 뒤 믿음으로 급류 위에 발을 내딛다가 모두 물에 휩싸여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별하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시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