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8 – 2.1
오늘부터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가지고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1980년 영국에서 개최된 그리스도인 의대생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저자가 강의한 것을 담고 있습니다. 목차는 1장 온전한 인격(인격), 2장 직업과 소명(소명), 3장 사회적 책임(참여), 4장 세상과 구별된 삶(윤리) 그리고 5장 세상을 품은 그리스도인(선교)의 다석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제1장 온전한 인격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예수님의 주권적인 사랑의 통치 아래 복종시키는 것으로써,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헌신은 부분적이지 않고 전체적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주일에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평일에는 비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집에서는 그리스도인이고 직장에서는 비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란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삶은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사적인 영역이나 공적인 영역에서 그리고 가정이나 사회에서 온통 번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서12:1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제단에 바쳐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삶의 여러 부분이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말 안에 통합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생각하 때 첫 번째로 다루어야 할 주제는 “인격의 통합성”입니다. 통합성(intergrity)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존 스토트 목사님은 통합성이란 ‘통합된 그리스도인이 지닌 특성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합된 그리스도인이란, 말과 행동이 이원화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통합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뜻이며, 삶의 여러 부분이 단일한 전체로 연합된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한편, 통합 (integration)이라는 말은 개인적 맥락과 사회적 맥락 모두에서 사용됩니다. 이 두 가지를 비교하자면, 사회적 통합은 상이한 인종이나 부족 또는 계급이 어떤 국가나 민족에 대한 충성심을 공유함으로써 하나가 되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통합의 반대는 분리로써 유감스럽게도 대한 민국 역시 과거 수차례 그와 같은 분리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사상 사이의 갈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통합된 공동체란 구성원들이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연합하며 충성심을 공유함으로써 하나가 되어 조화롭게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이에 반해 개인적 통합이란, 인격의 상이한 부분들이 하나의 충섬심으로 연합되어 있으며 또한 상호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기독교적 통합의 원리는 “예수님의 주되심”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 인격의 모든 부분이 그의 주권 아래 종속될 때에만 우리는 온전하고 통합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예수님의 주되심에 대한 성경적 기초로서 성경 주요 본문 세 곳을 상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빌립보서 2:9-11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즉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그분의 고유한 존엄성과 영광)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사실이 예수님의 높이 들림을 이해하는데 근본적인 진리임을 알게 됩니다. 그분은 온 우주에서 최상의 영예, 존엄, 지위를 지니십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가르켜 하신 이사야45:23의 말씀을 그대로 예수님께 적용시킨 것입니다.
두 번째 본문은 고린도 전서 12:3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님은 예수님의 인격을 조명하시어 그가 어떤 분이심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시며 그 일을 기뻐하십니다.
세 번째 본문은 로마서 10:9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의 ‘주主’라는 단어의 신구약에서의 의미에 대해서는 내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이 세 본문을 묵상하시면서 예수님의 주되심을 고백한 사도 바울의 신앙을 본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을 ‘주(主)’라고 부를 경우 특히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을 ‘주(主)’라고 지칭할 경우 이는 심원한 신학적인 뜻이 있습니다. ‘주’라는 단어는 헬라어 ‘호 큐리오스 ho kyrios’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통상 ‘큐리오스’라는 헬라어는 왕이나 신분이 높은 분을 부르는 존칭어이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두루 적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200년 전 히브리어로 쓰여진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번역자들은 하나님의 신성한 이름인 야훼를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주라는 뜻의 헬라어인 ‘호 큐리오스’를 대신 사용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영어 성경에서도 구약에서 야훼라는 말이 등장할 때는 대문자로 ‘주 LORD’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한글 번역에서는 그대로 히브리 원문의 하나님 이름을 ‘야훼’ 혹은 ‘여호와’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정확한 음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고 그의 제자들이야말로 그분이 성육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부여했던 바로 그 호칭을 주저 없이 그에게 적용하였습니다. 더나아가 하나님께 적용되는 구약의 구절까지 그분에게 적용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사야 45:23에서 하나님이 친히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하신 말씀을 빌립보서2:9-11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 직접 적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라고 할 경우 이런 신학적인 중요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1세기 중엽 로마 황제들 가운데는 자신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었고, 일부는 자신을 신적 존재라고 생각했으며, 신적 존재로서 자신을 예배하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때때로 로마의 지방행정 장관들은 성읍이나 도시의 주민들을 광장이나 시장으로 모아들이곤 했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의 흉상이나 동상을 만들어 그 앞에 작은 불을 피워 놓고는 주민들에게 그 불 위에 약간의 향을 뿌리면서 ‘카이샤르(황제)는 주님이시다’(kyrios caesar)라는 두 단어를 외치게 하였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는 카이사르를 주님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님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 존전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따라서 카이사르에게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 합법적인 모든 일에서는 카이사르에게 복종하겠다. 그러나 그를 경배하지는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하기보다는 차라리 사자굴에 던져지는 길을 택했습니다.우리가 온전하고 통합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삶의 모든 영역을 그리스도의 주되심 아래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