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5/2/24-28)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이덕주
디도서 3:5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1906년 10월 담임 목사 프레스턴(남장로교)은 남감리회 선교사 저다인을 목포로 초빙, 한 주간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300여 명이 모인 목포 부흥회에 대한 프레스턴의 증언입니다. “그(저다인)를 통해 성령께서 의로움, 절제, 심판, 죄의 악함, 죄를 씻음과 지옥 형벌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마치 말씀이 수술용 칼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헤쳐 깊은 곳에 감추었던 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영혼 깊은 곳에 들어 있던 암덩어리 같은 죄악이 드러났습니다. 수십 명이 일어나 자기 영혼을 무겁게 내려 눌렸던 죄를 자백하였고 건장한 사내들이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구주의 자비로운 사랑은 그들을 감쌌고 중생과 회개와 믿음과 헌신과 봉사의 능력과 그리스도인 됨의 기쁨이 치료하는 광선처럼 그들 속에 임했습니다. 예배당 안은 거듭남과 새로운 광명을 얻은 기쁨으로 얼굴이 환해진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으로 가득 찼습니다.”(프레스톤, ‘놀라운 집회’, The Korea Mission Field, 1906. 10월, 228쪽).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보다 3개월 앞서 목포 교인들은 ‘회개→중생→성결’에 이르는 기독교 본질 신앙을 체험하였고, 영적 각성을 통해 윤리적 갱신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목포 사회가 갖고 있던 기독교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씻고, 중산층과 지식인들이 교회에 나오게 되는 계기였습니다.그러자 남장로교 선교부는 목포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해 두지만 너희 생활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의롭지 못하면 너희가 절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5:20,현대인의성경)

전도서2:13절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솔로몬은 12절에서 자신의 지혜와 업적을 회상하며, 후대의 왕은 결코 도달할 수 없음을 기술하고, 본절은 그 지혜의 탁월함을 빛과 어둠의 비유로 강조합니다. 이는 인간의 이성을 통한 세속적 지혜이며, 죽음 앞에서는 양자가 동일합니다. 솔로몬 역시 세속 지혜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히 2장을 마무리 합니다. 본문은, “어리석음이 미치지 못하는 지혜의 탁월함이 분명히 있다”는 취지입니다. 해 아래에서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범사에 많습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속담과 같이, 지혜는 머리 속에 있는 ‘눈’입니다(14). 이 세상에 놓여 있는 수 많은 위험을 보고 피하며, 대응하고, 치료법을 내놓습니다. 지혜란 눈이 없다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은 불가능합니다. ‘지혜’는 때와 시기를 분별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바른 처신을 할 줄 아는 능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좋은 예로서, 그의 언행록이 논어입니다. 공자는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가르칩니다. 그의 교훈은 ‘인(仁)’ 즉,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라(克己復禮)’ 사상이 핵심이나, 죄와 사망을 이길 능력은 없습니다. 반면,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하여, ‘십자가와 부활’에서 가르침의 정점을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비할 바 없는 윤리적 지혜(십자가)와 주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능력(부활)을 경험하므로, ‘논어’ 보다 탁월합니다. 생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자 기톨릭에 귀의하고 세상을 떠난 이유입니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시편119:99).

전도서2:14절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13절은 지혜의 탁월을 밝히고, 본절은 탁월에 대한 강조와 한계를 설정합니다. 전단에서, 지혜자는 미련한 사람과 달리 눈이 세 개나 있습니다. 두 개는 얼굴에 달려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나머지 하나는 머리 속에 있어 사물과 사건의 의미를 깨닫게 해줍니다. 미련한 자는 세 번째 눈, 즉 머리 속에 눈이 없는 ‘지혜의 맹인’으로, 어둠 속에서 헤매입니다. 후단은, 현격한 차이를 갖는 지혜자나 미련한 자나 모두 죽을 운명임을 한탄합니다. 지금 솔로몬은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은 지혜를 언급하나, 성경적 지혜는 하나님을 전제하고, 세 가지 유익을 줍니다: (1) 도덕적 차원 :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나게 하나, 미련한 자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는데”(잠2:13), 어둠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상태입니다. (2) 현실의 차원: 지혜는 인생의 길을 볼 수 있게 하는 빛과 같으나, 미련한 자는 어두운 방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살아갑니다. 그는 ‘성공적인 삶의 방법’(=지혜)을 모릅니다. (3) 영적 차원: 지혜는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즐겨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여 축복을 받게 하나, 미련한 자는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성경적 의미의 지혜자 판정 기준입니다: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②이웃과 화목한가? ③자신의 일에 능숙한가?(잠22:29). 신약에 이르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계14:12)가 진정한 지혜자인데, 그는 죄사함과 영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암몬 신 몰렉
예레미야32:35절
“힌놈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세워 몰렉 신에게 그들의 자녀를 제물로 바쳤다. 그들이 이런 끔찍한 일을 행하여 유다를 죄 가운데 빠지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며 내가 생각한 일도 아니다.”(현대인의성경)

암몬의 신은 밀곰(왕상11:5) 혹은 몰록(왕상11:7), 때로는 몰렉이고도 불렸는데(레18:21), 여기서는 몰렉이라고 호칭하겠습니다. 몰렉의 어원은 임금이란 의미의 ‘멜렉’과 같은 어원입니다. 몰렉은 바알과 유사한 신으로 암몬뿐 아니라, 베니게, 베니게의 식민지 북아프리카까지 영향력을 뻗쳤습니다. 성경은 몰렉 숭배를 넘어, 그 종교적 관습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레위기에 따르면 몰렉의 제사에는 아이들이 희생제물로 바쳐졌습니다(레18:21). 성경은 그런 인신공양의 대가는 죽음임을 선언합니다(레20:2-5). 이렇게 극명한 죄악임에도, 솔로몬은 몰렉을 위한 신전을 예루살렘 성전 바로 옆에 서 있는 감람산에 지어 암몬 여인과 함께 경배했고, 그 몰렉 신전은 300년을 존속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동쪽과 남쪽에 골짜기가 있어 마치 언덕의 형태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그중 동남쪽의 골짜기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는 지명이 붙었고, 골짜기 가운데 몰렉에게 제사지내는 곳을 ‘도벳’으로 불렀습니다. ‘도벳’은 ‘북’의 뜻을 가진 ‘토프’의 파생어로서, 아이들이 희생제사로 바칠 때 나오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북을 쳤던 것 같습니다. ‘도벳’은 유다 임금 요시야에 의해 파괴되었고, 어떤 사람도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왕하23:10). 정당한 국가권력은 악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게 하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2).

여호수아14:12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개’란 의미)은 민수기13:6절에 처음 등장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보낸 12명의 정탐꾼 중 유대 지파의 대표로서(40세), 40일 동안 적지를 탐지한 용감한 스파이였습니다. 갈렙의 혈통에 관해서는 쟁론이 있습니다. (1)에돔 족장 그나스(창36:11) 후손이라는 설. (2)가나안의 그니스 족속(창15:19)설, (3) 유대지파에 속한 사람의 이름이 그니스였다는 설 등이 있지만, 유대지파의 대표로 선출된 것으로 보아 정통 유대인으로 판단됩니다. 아마, 그니스 족속의 여자가 조상 중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실상 야곱의 12아들의 아내는 요셉만 제외하고 모두 가나안 여인입니다. 갈렙 앞에는 늘 ‘여분네의 아들’이란 수식어가 붙는데, 동명이인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갈렙의 명성은 혈통(가문)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처럼, 가나안 정복 시 보여준 충성과 용기 때문입니다. 다만, 갈렙의 영웅적 행동의 근거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야훼께서는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려고 이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킨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갈렙은 주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갈렙의 순종은 믿음의 정체성에서 나왔고,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에 따른 경험(이적)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고 옳은 일을 하였으며 약속된 것을 받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습니다.”(히11:33,현대인의성경)

매일묵상(2025/2/17-21)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이덕주
사도행전 4: 31절
“그들이 기도를 마치니,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고,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하게 되었다.”(새번역)

1903년 광주가 새로운 도청 소재지가 되자 남장로회 선교부는 목포에 있던 벨, 오웬, 변창인과 김윤수를 광주로 보냅니다(1904. 12). 노련한 복음전도자들이 떠나고, 내한한 지 두 달밖에 안된 프레스턴이 목포 선교를 맡게 되자 고민이 컸습니다. 프레스턴의 1905년 선교 보고입니다. “…벨과 오웬 가족이 광주로 떠난 후 목포와 남쪽 지방 사업은 제 몫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다음 주일 저는 처음으로 한국말로 설교했습니다….저로서는 최선을 다해 설교하였으나, 교인들은 능숙한 선교사의 설교를 듣다가 제 설교를 들으며 ‘이젠 글렀다’는 눈치였습니다. 그때부터 교인들은 마음의 불안을 씻고자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목사를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기 시작했고 자발적으로 모여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영적으로 각성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놀라운 축복이 임하였고, 지금까지 그런 현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교인이 지난 해 보다 배가 늘어(현재 2, 3백 명) 예배당을 확장해야 할  형편입니다”(1905. 9월, 프레스턴). 위기가 기회가 되었으며, 그런 열기는 계속되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보다 3개월 앞서 영적 각성을 통한 윤리적 갱신을 이루면서 호남지역 최초로 교회 자립을 달성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주에 살펴보겠습니다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한국 선교는 ‘교회-병원-학교’ 라는 삼각 선교와 네비우스 박사(1890년)의 자치, 자전(自傳), 자립을 중심한 토착화 전략의 열매라 하겠습니다.“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언24:6)

전도서2:11절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솔로몬은 전술한 4-10절에서, 사업적 성공과 번창, 많은 쾌락과 즐거움을 누렸다고 진술하나, 본절에서 그런 삶을 돌아보면서 곰씹고 성찰합니다. 성찰의 결과는 가장 흔한 세 가지 문구 – ‘무의미함, 유익이 없음, 해 아래’-로 표현되며, 매우 부정적입니다. 솔로몬은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발견했지만, 그의 탐구 목적인 ‘의미’와 ‘유익’은 얻지 못하였습니다. 즉 그는 열심히 일하여 얻은 성과가 영원한 결과를 낳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실, 솔로몬이 온갖 지혜를 쏟아 만든 성전, 낙성식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하늘의 인정을 받은 그 성전조차 지금 누가 기억합니까? 이와 같은 성찰은 솔로몬을 지혜자로 만들고, 누가복음 12장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와 구별시키는 중요한 차이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주님은 자신에게 형과 유업을 나누게 해 달라는 사람의 요청을 거절하신 뒤, 탐심의 헛됨을 한 부자의 비유로 알려줍니다. 그 부자는 풍년이 들어 곡식 등으로 재산이 더욱 불어나자 부족한 창고를 탄식합니다. 그는 창고를 넓히려는 생각에 골몰하며, 자신의 부요를 즐거워 하나, 하나님은 부자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그의 어리석음을 탄식하십니다. 부자는 마땅히 그 재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등 하나님을 부요하도록 만들었어야 합니다. 다만, 솔로몬의 성찰의 지혜는 행함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역시 헛되다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전도서2:12절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2:12-23절의 단락은 죽음 앞에서, 지혜(12-17)와 수고(18-23)도 무의미함을 말합니다. “내가 돌이켜”란 어구를 사용하여, 솔로몬은 즐거움과 쾌락으로부터 이미 다룬 지혜와 어리석음의 주제로 돌아갑니다(1:12-18절). 전단에서 지혜, 망령됨, 어리석음 세 낱말이 등장합니다. 통상 성경에서 지혜(호크마)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혜’(시111:10)를 의미하나, 본문에서는 인본주의적 지혜, 즉 하나님을 배제한 이성의 통찰을 뜻합니다. ‘망령됨’의 뜻은 ‘도에 지나친 상태’  혹은 ‘미친 짓’입니다. ‘어리석음’은 지혜와 대척 관계에 있는 낱말로서, 성경은 영적·도덕적으로 미련하고 악한 행동을 지칭하나, 여기서는 인간의 이성조차 따르지 않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후단은 ‘그 왕의 후계자가 행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무엇이 있는가?’(NIV)를 묻고,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 뿐이라고 대답합니다. 해 아래 새 것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틀어 보아 솔로몬의 지혜, 권세, 부를 능가하는 왕은 없습니다. 그는 전무후무한 지혜와 권세, 업적을 갖추었으나, 미련한 자의 죽음을 결코 피할 수 없었으니 애통해 할 만합니다(15).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허무 그 자체입니다. 솔로몬 보다 더 큰 분이 오셔서 죄와 사망을 이기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시켜야 하는데, 그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믿음을 굳게 잡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1:10).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앗수르와 암몬

열왕기상 11:7절
“(솔로몬이)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아브라함의 시대에 바벨론 유역의 4개의 왕국은, 사해 부근의 왕국들(소돔, 고모라 등)이 조공을 중단하자, 1,800km를 원정하였다는 기사처럼(창14장).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 간의 항쟁의 역사는 깊습니다. 암몬 왕국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속국이었습니다. 기원전 853년 카르카르 전쟁이 발발합니다. 성경에 언급은 없지만, 아람, 이스라엘, 암몬을 포함한 12개의 가나안 지역 왕국이 연합하여 제국 앗수르(살만에셀 왕 3세)와 싸워 패배한 전쟁으로, 쿠르크 석비(1861년 출토)에 전모가 적혀 있습니다. 그 석비는 북왕국 아합이 2,000대의 병거를, 암몬 임금 루후비의 아들 바아사도 병사를 보냈다고 밝히는데, 그 암몬 임금의 이름은 암몬 연대기 작성의 기초입니다. 120년이 지나서, 앗수르는 아람과 북왕국을 멸망시키고 남왕국 유다와 암몬을 속국으로 삼았습니다(주전722 경). 디글랏 빌레셀 3세의 기록은, 당시 암몬 임금은 사니푸, 그의 아들은 푸두-일루였고, 암몬의 조공액은 유다의 5분의 1임을 보여줍니다. 암몬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게 멸망당합니다(주전259년). 최약체인 암몬 왕국은 가증한 우상 몰렉(밀곰)을 믿었으나, 북왕국 이스라엘(주전722년 멸망)이나 남왕국 유다(주전586년) 보다 오래 생존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북왕국은 벌써 주님을 떠났고, 남왕국은 모세율법, 선지자들(이사야, 예레미야), 성전을 가졌으나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눅12:47,48a).


여호수아14:9절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도박’은 ‘요행수를 바라고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일에 손을 대는 것’이고, ‘투자’는 ‘이익을 얻으려고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으로 정의됩니다.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도박은 오로지 돈만 벌려고 하는 행태로 도파민 쾌감을 갖게 하지만, 투자는 몰입의 ‘여정’을 즐기게 함으로 게임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둘다 현재에 시간, 돈, 노력을 희생하고 장래의 보답을 받으려는 외형을 갖고 있으나, 차이는 ‘자기 철학’의 존재 여부입니다. 만약 투자에 대한 자기 철학이 없다면 끝까지 도박에 불과합니다. ‘자기 철학’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입니다. 사람은 여정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인천에서 부산을 갈 때, 중간 중간의 휴게소, 경치좋은 곳 등을 감상하고, 함께 탄 가족, 친구들과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산까지 가는 여정을 즐기는 중에 사람은 성장하며, 돈은 결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모든 것-공부,직장,결혼,교육,자녀출산 등-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살아가는 신앙 생활은 어떻습니까? 기복신앙은 과정은 신경 안쓰고 오직 복이라는 보상만 바라기 때문에, 도박에 가깝고., ‘성경적 믿음’은 하나님과의 동행에 신경을 쓰지, 보상은 주님께서 주심을 믿기 때문에 투자에 가깝습니다. 신자의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의를 재생산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휼륭한 예가 믿음의 사람 갈렙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물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입니다. 옛날 사람들도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히11:1,2 현대인의성경)

매일묵상(2025/2/10-14)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이덕주
로마서16:3절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교회는 로마의 자생적 가정 교회 중 하나인데, 오순절, 예루살렘에 와서 사도들의 전도를 듣고 믿은 자들이 로마로 돌아가 복음을 전파한 결과로 보여집니다. 목포 지역도 한국인의 자주적 선교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도착 전, 몇몇 목포 사람은 서울로부터 직접 복음을 받아들였고, 한국인 전도자 변창연은 선교기반을 닦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한편, 남장로회 선교부는 1896년 양동에 2,500평 땅의 구입을 시작으로 부지를 계속 넓혀 갔고, 1920년대에 이르면 양동 일대 1만4천여 평을 보유합니다. 양동 땅은 애들이 죽으면 몰래 와서 파묻는 ‘죽은 자의 땅’이라, 선교부는 헐값에 구입하여 언덕 꼭대기에 ‘양관(洋館)’을, 언덕 서쪽에 정명여학교를, 길 건너 서쪽으로 영흥학교(남자)를, 그 아래로 양동교회와 목사 사택을 지었습니다. 동쪽 길 건너 호남동 언덕엔 ‘프렌치병원’과 목포 고등성경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양동 언덕 일대의 ‘선교사촌’은 목포의 ‘치외법권 지역’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을 통해 ‘버려진 땅’이 새로운 ‘생명의 땅’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또한, 복음의 물결을 타고 서구 근대화 문명이 목포 시내로 퍼져 나갔습니다. 복음은 쓸모 없어 버려진 목포 양동 땅을 생명과 근대 문명의 발원지로 변모시킨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인간 존재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1)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되는 신분상의 변화와, (1)신자 안에 성령께서 오심으로 일어나는 인격 상의 변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전도서2:9절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9절은 솔로몬이 사업과 쾌락의 추구 결과를 요약합니다. 앞의 “창성하여”의 원어는 ‘위대하게 되다’를, 뒤의 ‘창성하니’의 원어는 ‘풍성케 되다’는 의미입니다. 이로써, 솔로몬은 사업에서 크게 성공함으로, 부귀와 권세는 풍성하게 되었음을 표현합니다.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라는 표현은 세 번째  나오는데(1:16; 2:7), 솔로몬 자신의 사업적 성공을 강조합니다. 흔히, 성공을 맛보거나 쾌락에 탐익하면 삶의 중심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솔로몬은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는 표현을 통해 자신은 그런 종류의 어리석은 사람이 아님을 우회적으로 말합니다. 솔로몬의 탐구는 창세기에 천지만물을 차근차근 만들어 내시면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여러 즐거움, 웃음, 술 등으로 쾌락을 시험해 보았고, 집과 포도원을 세우고. 동산, 과원, 삼림을 만들고, 각종 과수와 나무를 심고 못을 파고, 가축을 많게 하고, 남녀 노비를 증가시키고, 노래하는 남녀와 수 많은 처첩 등을 두는 등 사업과 쾌락을 하나 하나 탐구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를 썼습니댜. 결론은, 크게 실망하여, 자신을 위해 한 모든 것이 “무의미하여 바람을 잡는 것 같았다” 고백입니다. 그 반면 하나님은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자 ‘심히 좋으셨다’고 말씀하시며 마침표를 찍으셨습니다. 솔로몬과 같이 자아실현을 위한 실험정신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을 떠난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다는 그의 결론은 소중히 간직되야 합니다. “내가 알기에, 살아 생전에 행복하고 선을 행하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전3:12,쉬운성경)

전도서2:10절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쾌락주의’(헤도니즘)는 개인의 즐거움과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는 철학입니다. 쾌락은 인간 본능에 속하여 인간이 무시하기는 어렵지만, 일시적 감정일 뿐입니다. 감정은 사라지면, 더 강렬한 자극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계속적인 쾌락의 삶은, 개인의 발전은 없고 육체적,정신적, 도덕적 타락을 가져올 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격적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동물적 삶이므로, 쾌락 중심의 삶은 비극입니다. 따라서, 지혜자 솔로몬은 결코 쾌락주의에만 몰두하지 않고, 자아성취까지 도모합니다. 쾌락과 즐거움은 오직 그의 삶의 한 부분입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물질적 업적과 쾌락 추구 과정을 요약합니다. 그 과정에서 전도서는 끊임없이 전도자(솔로몬) 자신을 언급합니다. 오늘 본문만 해도 일인칭 대명사 ‘나’가 일곱 번이나 등장합니다. 전도자의 자아 의식인 ‘나’라는 자아 존중 사상이, 전도자의 삶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음을 확연히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솔로몬에게 ‘주님을 경외하라’는 지혜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가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들’을 행하고(엡2:1-3),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2:16)을 쫓게 되자, 하나님의 뜻은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였던 솔로몬은, 하나님 대신 자신을 중시하자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담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자가 되기 전에도 자신의 지혜를 우상화한 자였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롬1:22)

역대하12:13절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르호보암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여인이더라”

다윗과 암몬 왕 나하스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나하스의 아들 하눈은 다윗을 모욕함으로 다윗과 전쟁하다가 패배하여 속국이 됩니다(삼상10:19). 암몬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윗은 전쟁과정에서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질러 주님 앞에 큰 죄를 범합니다. 충성스러운 장군 우리야의 가정을 파괴한 것입니다. 다윗은 용서 받지만, 벌을 면제 받지는 못합니다. 주님의 벌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에서 절정에 이르고, 다윗은 길르앗(암몬과 경계지역)으로 피신합니다. 이때 암몬 왕 나하스의 아들 소비의 도움을 받습니다. 암몬 족속과 다윗 가문의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성경은 다윗의 모친에 대하여는 침묵하지만, 다윗의 조카 요압을 스루야의 아들로 소개하면서 단서를 제공합니다. 스루야와 다윗의 아버지는 나하스와 이새로서 서로 다르지만 어머니는 같은 이부동복의 관계입니다(삼하17:25; 역상2:16). 스루야의 부친 나하스가 죽자, 나하스의 아내가 이새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다윗으로 추정됩니다. ‘나하스’는 ‘뱀’이란 의미이고, 이미 암몬 왕들의 이름으로 사용되었기에 다윗의 모친이 암몬 여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편, 다윗의 증조모가 모압 여인 룻이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어머니는 암몬 여인 나아마입니다(룻4:22; 왕상11:1). 성경은 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그분의 교훈을 버릴 염려 때문에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엄격히 금지하나, 때때로 순종하는 이방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셔서 온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자격을 갖추도록 섭리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1).

디모데전서4:7절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김상복 목사님은 「하나님이 꿈꾸신 가정」이란 책에서 “인간관계는 단 한 가지만 훈련되면 나머지는 저절로 풀리게 됩니다” 라고 합니다. 그 한 가지란 무엇일까요? 선으로 악을 이기는 훈련입니다. 성경은 도처에 모범 사례가 증언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당신을 반역하여 멀리 떠난 인간을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를 주심으로 세상과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체포되어 심문과 구타를 당하는 당신을 저주하면서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부활하신 뒤 제일 먼저 찾아가셨고, 사도의 사명까지 재차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은혜를 가슴에 담고 목숨바쳐 주님을 섬겼습니다. 또,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의 교회를 박해하는 원수 사울을 징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용서하시고 하늘에서 당신을 보여주사 사울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은혜를 각인시켰습니다. 사울은 이름을 바울로 바꾸고 주님의 그 은혜를 갚으려고 목숨바쳐 주님을 섬겼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복음의 가르침의 실행은 오직 은혜를 담은 그리스도인만이 가능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어 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원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하고 당신의 아들을 따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약, 우리가 경건,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훈련이 가장 필요합니다. 그러나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는 명령은, 성령님의 능력과 도우심 그리고 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기도해야만 합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매일묵상(2025/2/3-7)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이덕주
사도행전 16:7절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전라도를 선교지로 할당 받은 남장로회는 목포 양동 언덕의 땅 2,500평(51달러)을 구입하였지만(1896.2), 개항장 선정은 지연으로 선교부는 나주에 먼저 설치되었습니다(1897.5). 나주 사람들은 기독교에 배타적이어서 선교부는 3개월 만에  폐지됩니다. 이와 별개로 선교부는 조사 변창연을 보내어, 양동 땅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습니다(1897.3). 복음에 대한 반응은 나주보다 좋았습니다. 양동교회는 1년 만에 50명의 신자를 얻고, 1년 후에는 7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1897. 10월 마침내 목포가 ‘개항장’으로 공시되자, 선교사 벨과 오웬, 여선교사 스트레퍼가 내려왔고 선교사역은 본격화 되었습니다(1898. 11). 벨이 변창연의 도움을 받아 교회를 시작한 것이 목포 양동교회의 태동입니다. 의사 오웬이 진료소를 세우고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프렌치병원’의 출발입니다. 스트레퍼가 길거리 아이들을 자신의 집에 데려다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목포 영흥학교와 정명여학교의 모태입니다. 교회-병원-학교로 이루어진 삼각 선교 전략의 효과는 컸습니다. 1978년 남장로회 선교부가 땅과 건물을 한국 교회에 이양하고 철수하기까지 목포 양동 선교부는 80년 동안 목포와 남부 섬 지역 선교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선교의 모범적 사례입니다. 복음 속의 진주는그리스도의 희생’입니다. 양동 선교부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를 한국 교회에 제대로 심어 주었다 하겠습니다.“이처럼 내가 모든 일에 모범을 보였으니 여러분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는 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열심히 일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우십시오.”(행20:35,현대인의성경)  

전도서2:7절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솔로몬은 여러 형태로 노비를 소유하였습니다. 통상 노예는 전쟁, 매매, 채무, 혹은 집에서 낳게 하여 획득했습니다. 모세 율법 중 종이 된 동족 이스라엘 사람 대한 규정은 독특합니다. 이들은 6년만 일하고 7년 째는 아내와 함께 해방되지만 자녀들은 여전히 종의 신분입니다(출21:4). 집에 낳은 종들은 다른 종들보다 훨씬 주인에게 대접을 받았고 충성심도 컸습니다. 아브라함은 집에서 낳고 기른 종들(318명)만 인솔하여 조카 롯을 구한 것이 그 예입니다. 후단은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다”고 언급하는데,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에서 소 22,000마리, 양 120,000마리를 제물로 드렸고(왕상8:63), 매일 소 20마리, 양 100마리를 식탁에 올렸다(왕상4:23)는 기록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말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왕은 군마를 많이 두지 말라’는 규정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신17:16). 요세푸스는 솔로몬 왕이 수천 대의 병거와 이만 마리의 말을 소유했으며, 기병대들과 함께 예담에 있는 자신의 ‘낙원’으로 가서 즐기곤 했다고 하는데, 사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모세 율법은 왕은 아내와 군마를 많이 두지 말고, 군마를 사려고 백성을 애굽으로 보내지도 말라고 규정하였으나(신17:16,17), 그는 무시하였습니다.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 같이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에 속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드시고, 통일왕국을 남북으로 분열시켰습니다.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잠언21:30)

전도서2:8절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8절은 ‘은 금..보배’와, 쾌락의 대명사인 명창, 처첩을 논합니다. “나를 위하여 쌓고”의 뜻은 주의해야 합니다. 솔로몬에게 재물과 쾌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다만, 삶의 의미 발견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무역과 조공을 통해 ‘은,금’을 획득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은이 돌같이 흔하였을 정도로(대하1:15), 솔로몬의 금은보화는 막대하였습니다. ‘보배’의 히브리어는 ‘특별히 값나가는 재물’을 의미하는데, ‘보배’ 앞에 ‘왕들이 소유한’과 12지파를 의미하는 ‘여러 지방’이란 문구로 수식되어 있습니다. 이는 솔로몬의 막강한 권세를 표현하지만, 솔로몬의 권력의 핵심에는 그의 탁월한 지혜에 대한 존경심이 놓여 있습니다. ‘솔로몬의 소프트 파워’입니다. 후단의 ‘노래하는 남녀’들은 흥을 위해 궁정 음악을 전담하는 자들의 양성을 말합니다. 예전 인사동에서 명인이 나와 북을 치고 기타 여러 가지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으며 식사한 기억이 납니다. 솔로몬이 많은 신하들과 매일 식사할 때 공연시킨 음악과 무희들의 춤은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후궁이 칠백이요, 첩이 삼백이라’(왕상11:3) 도합 일천 명의 처첩을 두었습니다. ‘(왕은)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신17:17)는 모세율법은, 이방풍습을 따라 왕권안정을 도모한 솔로몬을 세상적 성공만을 이룬 평범한 왕으로 규정합니다. 솔로몬의 지혜에서 주님을 경외하는 요소가 사라지자, 그의 지혜는 세상 지혜의 전형은 전락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같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언9:10).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롯의 자손 암몬
신명기2:19절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암몬(수도 ‘랍바’)은, 제라쉬 같은 고대 유적지나 성경을 통해서 부분적으로만 알려졌습니다.  암몬 족속은 롯의 후손이며 얍복 강에서 사해 동편의 아르논 강 지역까지 퍼져 농사짓고 살았으며, 북서 셈어와 문화를 공유하였습니다. 사해와 요단 강 동쪽을 지나는 ‘왕의 대로’가 통과하는 땅이라, 그 지역 경제와 문화적 교류는 활발하였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토대로 암몬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면, 두 민족의 역사는 갈등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압과 암몬의 영토를 점령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은 암몬 땅 서쪽의 아모리 족속 땅만 정복합니다(신2:19-20). 이것이 내내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암몬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아모리 족속의 땅은 자신들이 빼앗긴 영토입니다(삿11:13). 영토분쟁은 필연적입니다. 두 민족은 사사시대 초기부터 충돌하였고, 모압 임금 에글론이 암몬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이 최초의 기룩입니다(삿3:13). 수백년 후 다시 분쟁이 일어났을 때 ‘길르앗의 큰 용사 입다’가 암몬과 싸워 길르앗 땅을 지킵니다(삿10-11장). 세상의 권리는 항상 분쟁의 여지가 상존합니다. 누가 정당한 권리자일까요? 입다는 말합니다. “주님께서 원수를 쫓아내시고 우리에게 주신 땅은 우리 것이다!”(삿11:24). 암몬과 이스라엘은 모두 데라의 후손입니다. 차이는 육신이 아니라 영적이며, 그 기준은 “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가?”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잠언 3:18절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우영숙 남은영이 한국인 2천명에 대한 설문조사 내용입니다.
「질문 ‘누가 높은 지위와 경제적 부를 가져야 하는가?’  
1. 실적이 많은 사람 2. 많이 노력한 사람 3. 타고난 능력이 많은 사람 4. 자신의 필요에 따라 5. 모든 사람이 똑같이」
조사 결과: 58.5%(2번), 24.6%(1번), 5.9%(3번), 4.9%(4번),3.6%(5번)
위 조사는, 한국인들은 노력과 실적을 성공의 주요 요인으로 꼽고, 실적 보다 노력을 더 중시함을 보여 줍니다. 노력이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실적을 수반하지 않습니다. 재능과 환경 등 여러 다른 요소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노력과 훈련’은 성공에 얼마나 기여할까?” 잭 램브리 교수는 ‘노력과 훈련’이 성공에 미치는 기여도를 밝혀냈습니다: 게임분야- 26%, 음악- 21%, 스포츠- 18%, 학업-4%, 전문직–1%미만(엔지니어, 축구심판, 영업직 등). 이를 보면, 노력과 공부를 잘 하는 사이에는 거의 관계가 없고, 전문직은 더 심해 성공에 미치는 노력의 영향은 1%라는 아주 미미한 값을 보여줍니다. 타고난 재능과 환경의 중요성에 주목할 때입니다. 김영훈 교수는 「노력의 배신」(2023)에서, 나 자신의 책임에 돌릴 수 없는 ‘운’에 속한 영역이 성공에 더 큰 영향을 미침을 밝히고, 노력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한국 사회를 ‘노력 신봉 공과국’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재능을 발견하여 성장시키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도덕성(정직성) 함양이 중요합니다. 꽃 피운 재능은 정직과 이웃 사랑을 통해서만 선을 낳기 때문입니다.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잠언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