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8:1절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본절은 악인과 의인 간의 심리 상태의 차이점을 선명하게 대조하였습니다. 악인은 사방이 적이며, 체포가 두려워서 경계의 눈초리를 거둘 수도 없습니다. 도둑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놀라 도망가는 것은 그 좋은 예입니다. 스탈린은 암살의 공포로 자신의 주택을 미로처럼 복잡한 형태로 지어서, 아무도 자신의 위치를 모르게 한 결과, 사망 후 3일이 지나서야 식사담당 파출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의인의 자신감은 사자에 비유될 정도인데, 이는 다가오는 어떤 공격도 방어해 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그 누구도 두려워 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두려워 하나, 악인은 마땅히 두려워 해야 할 주님은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역설적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위협과 약속을 신뢰하여 여하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길을 가지만, 하나님을 무시하는 악인은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을 방어하거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운명에 대하여 시편과 잠언이 선언하듯이, 하나님은 의인의 길을 인정하시어 보호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하게 하실 것입니다(시편1:6). 한편, 대한민국 형사소송법211조를 보면 악인의 심리 상태와 관련하여 재미 있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현행범- 범죄를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고 난 직후의 사람 -은 아무나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는데, “누구냐고 묻자 도망하려고 할 때” 역시 현행범인에 준하여 체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심검문 시 당황하지 말고 먼저 상대방이 경찰인지 여부를 확인한 뒤, 사자처럼 담대히 받아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언3:5).
잠언28:2절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1절은 악인(불안과 초조의 삶)과 의인(안전과 평화의 삶)의 상반된 삶의 모습을, 2절은 그들 각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줍니다. ‘죄’로 번역된 원어의 기본적 의미는 ‘반역’으로, 왕이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묘사할 때 흔히 사용됩니다. ‘주관자가 많아져도’란 정변이 자주 발생함을 뜻하는데, 악인들의 범죄의 심각성을 의미합니다. 솔로몬 사후 여로보암에 의해 세워진 북이스라엘 왕국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 하나님을 떠났고, 그 결과 200년 동안 9번 쿠데타가 발생하여 많은 혼란 끝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하였습니다. 이는 단지 이스라엘 뿐 아니라 법과 제도, 윤리 등이 힘을 잃고 사회는 부패해가는 국가들의 공통적 현상입니다. 그에 반하여 혼란을 바로잡고 나라를 일으켜 세울 자는, 후단의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분열된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장량으로 인해 한나라가 세워지고, 이순신 장군과 같은 명장이 조선을 지킨 것은 그 좋은 예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 특히 지도자의 삶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운명까지도 결정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도 같은 원리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으나, 그리스도 한 분에 의하여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된 것입니다. 만약 성도들과 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고 거룩한 권위를 세우면서 이웃을 섬긴다면, 사회는 삶의 지혜를 발견하여 중심을 잡고 그 나라는 장구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 교육의 중요성이 여기 있다 하겠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5:15)
잠언28:3절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
3절은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를 압제하여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가련한 장면을 묘사합니다.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상황이란,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물질적으로 가난할 뿐 사회적 힘을 갖춘 사람을, ‘학대 받는 가난한 자’는 물질과 사회적 힘 모두 결핍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일제와 제1공화국 시대에 풍미한 거지 왕초 김춘삼을 생각해 보면 될 것입니다. 다 같은 거지이지만, 그 거지들이 집단을 이룰 때 이끌고 갈 왕초가 필요합니다. 그 왕초는 전혀 구걸에 나서지 않지만 가장 좋은 음식과 예복 등을 공급받아 호화롭게 살아가면서,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은 주먹과 공포로 다스렸습니다. 사실 권력이나 힘 그리고 철을 따라 내리는 비는 좋지만, 권력이 무자비한 자의 손에 들어가서 남용되거나, 적절히 내리던 비가 변하여 폭우가 된다면 곡식은 물론 집까지 쓸어가는 재앙입니다. 특히, 힘을 가진 가난한 자들은, 자신들이 학대하는 자들과 동일한 입장에 처해 있어서, 그들의 고통을 잘 이해할 수 있음에도 동정이 아니라 오히려 착취로 나가는 모습은 인간 타락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8장 23절 이하에는 일만 탈란트를 빚지자 엎드려 비는 종을 불쌍히 여겨 탕감해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는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고 옥에 가둔다는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를 주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적용한다면, 그 말씀의 등불이 우리의 외식적인 면을 비추어 드러내고, 우리는 다시 빛 가운데 행하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실로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 하겠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잠언30:5)
(2023년 한 해를 마무리 하며)
벌써 2023년이 저물고, 2024년이 다가왔습니다. 올 한해, 매일묵상은 잠언21:2절, “사람의 행위는 자기의 눈에는 모두 옳게 보이나,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꿰뚫어 보신다”(새번역)에서 출발하여, 잠언28:3절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로 맺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다양한 사물들로 가득 차 있고, 그런 사물들에 대한 인간의 관점, 생각, 반응도 다채롭습니다. 이렇게 인생이란 어떤 관점을 갖고, 무엇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형형색색의 철학과 가치관이 등장하지만, “만유의 주님이 통치하시므로, 너는 잔꾀를 부리지 말아라”는 것이 잠언의 핵심적 가르침입니다. 주님은 섭리 가운데 다스리면서, 늘 사람들, 특히 하나님 백성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시기에, 선지자 말라기는 “그 때에 주님께서는, 주님을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말3:16,새번역)고 밝힙니다. 말이란 마음에 가득한 것들이 터져 나온 결과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지킬 줄 알아야 하며, 그것이 경건의 첫걸음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가르침을 주신 이유는 우리 각자의 개인적 경건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우리의 삶이 다시 세상을 비취어서, 세상이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달아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이 목적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