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터예배

성경에서 순종하기 가장 어려운 명령 중 하나는 자신을 “정직하게 판단(sober judgment)하라”는 말입니다. 나의 열정, 은사, 한계를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인생의 큰 과제 중 하나입니다. 이 명령을 수행하려면 엄청난 자기 인식과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의 이해를 도와줄 다른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오토버그 목사님은 자신을 위해 ‘명료화 위원회’를 구성한다면 어떤 친구가 좋을까 생각하니 밥 버포드가 떠올랐습니다. 밥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방송계의 재벌이었는데, 어느 순간 하나님이 그의 훌륭한 배에서 나오라고 부르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책 《하프타임》의 표현을 빌리면, “성공에서 의미로” 움직이길 원하게 된 것입니다. 밥과 아내 린다는 한 조언자와 오랫동안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조언자는 밥의 목적 의식을 더욱 분명하게 해 준 후, 약간 미심쩍은 다음 단계를 제시했습니다. “당신의 회사를 팔아 지금까지 우리가 의논한 사역 프로젝트에 투자하십시오.” 밥은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그 결정의 의미에 깜짝 놀라 멍하니 앉아 있었다. 린다도 나만큼 놀란 것 같았다. 전형적인 목사, 선교사, 수도사의 모습을 생각하는 아내의 머리 속이 내게도 보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주머니가 텅 빌 때까지 돈을 나누어 주는 박애주의 부부가 될 수 있을까? 목사와 사모의 옷차림을 해야만 하는 걸까?” 밥은 어떻게 그의 ‘명료화 위원회’(물론 그의 책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를 소집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과 논의 끝에 밥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전략적 사고와 조직 리더라는 것을 발견하였고, 회사를 파는 대신 이 분야에서 섬기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퀘이커 교도의 전통인 ‘명료화 위원회’가 모이는 목적은 조언을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그룹은 그저 질문하고, 사려 깊게 듣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소명을 느낄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밥 버포드는 그의 책 《하프타임》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소집한 ‘명료화 위원회’의 도움으로 자기 자신을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이전에 오랫동안 조언을 받은 사람의 생각대로 회사를 팔았다면 엄청난 유익을 낳을 발판을 잃게된다는 점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밥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리더쉽과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201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까지 주요 교회들의 리더십 개발을 돕는 사역을 매우 즐겁게 하였습니다. 만일 그가 성급하게 행동해서 첫 번째 조언자의 말을 따라 사업을 매각하고 돈을 나누어 주기만 했다면, 그가 수행하였던 성과와 성취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피터 드러커가 밥에게 한 조언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든지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공에서 의미를 찾는 제 2의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45세까지는 두 번째 혹은 이에 상응하는 섬길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55세까지는 그 일에 왕성하게 참여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퇴 후에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이 발휘할 큰 장점은 이미 상실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은퇴 후로 미루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일을 찾고 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좋은 대상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전3:12-13).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아서 밀러라는 분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당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그 일을 받아들이거나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은 죄악이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겠지만 말이다. 하나님의 디자인이나 목적에 맞지 않는 노동으로 세월을 낭비하는 것은 – 아무리 월급이 많더라도 –  당신이 이 세상에 있는 이유가 아니다.” 소명을 분별하려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뚝딱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결단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밥 버포드는 “저비용 조사”를 해 보라고 제안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소명을 테스트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시는 것 같은 분야에서 당신의 성과가 어떠한지 연구해 보십시요. 밥의 경우 저비용 조사의 시작은 CEO위치를 유지하면서 대형 교회 목회자들을 모아 조직에 관한 자신의 전문 지식이 도움이 될지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은 그의 인생 후반부의 우선적 소명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게다가 조사 비용도 매우 낮았기 때문에, 조사 결과 옳지 않다고 판단되면 쉽게 다른 분야로 조사 방향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충동적으로 일을 그만두고 어느 교회나 비영리 기구의 임직원으로 일했다면, 소명도 찾지 못하고 계속 탐구할 기회마저 잃었을 것입니다. 아모스는 예언 사역을 하면서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목자의 위치를 유지하였습니다. 심지어 바울도 교회 개척을 하면서도 장막 만드는 생업을 유지하였음을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3:22).

때로 사람들은 천직의 개념을 매우 로맨틱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은 꿈에 그리던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지상의 최강자인 파라오에게 가거라. 그런 후에 노예된 나의 백성을 아무댓가도 받지 말고 놓아주라고 말하라.소심하고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위험한 광야로 가서 하나님을 섬겨야만 한다고 말하고 이끌고 나와라. 그것이 너의 소명이다.” 모세는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론을 보내소서.” 하나님이 요나를 부르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타락하고 폭력적인 도시 니느웨로 가거라. 네가 누군지 모르고 나를 인정하지 않을 그 거만한 자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말하거라.” 요나는 말했습니다. “반대편으로 가는 다음 고래가 언제 떠나죠?”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불러 귀를 기울이지 않을 백성에게 설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힘들어서 예레미야는 너무 많이 울었기 때문에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누가 그런 별명을 원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부름받은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그 일에 매우 부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군대를 이끌라고 기드온을 부루셨을 때, 왕을 거역하라고 에스더를 부르셨을 때,메시아를 낳으라고 마리아를 부르셨을 때, 그들의 첫 반응은 “예, 하겠습니다. 그 일을 감당하겠습니다”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 하였습니다. 헨리 블랙커비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소명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 인생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임무는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런 임무를 수행하게 하심으로 당신을 드러내는 것은 세상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11:8-10).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의 “원재료”를 상관하지 않고 우리를 부르시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부르실 때 은사도 같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자연적 재능만으로는 하나님의 소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려면, 나 자신의 자원을 능가하는 아이디어, 힘,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내가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응한 성경 속 인물들은 큰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우리 역시 그래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원하지 않아도 많은 시간을 기울이고 수고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겠습니까? 또한 그 소명은 여러분이 항상 바랐던 부와 명예, 안정을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때로는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일에 헌신해도 결과는 좋지 않으며, 사람들이 여러분을 반대하고, 틀렸다고 소리치고, 여러분이 하려는 일을 막을 것입니다. 그래도 인내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소명을 분별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수많은 시행 착오와 잘못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인내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아브라함이나 모세 그리고 사무엘과 같은 특별한 소명이 오지 않았다고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평범한 일상의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영위해 나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 가운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소명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만 할 것입니다. ““네 모든 마음과 모든 목숨과 모든 정성을 다해서,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계명이다. 두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인데 이것도 첫째 계명과 똑같이 중요하다.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 (마22:37-40 쉬운성경)

수요일터예배

잠언 22:4

62년 전 한 살 터울의 남매가 있었습니다. 오빠는 다섯 살이고 여동생은 네 살이었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장에 간 사이에 여동생이 고구마를 먹던 중 고구마가 목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새파랗게 질식되는 아이를 보고 놀란 가정부가 어쩔 줄을 몰라 무작정 시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장을 보다가 가정부로부터 청천벽결 같은 소리를 들은 엄마가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품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의사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말은 이미 아이가 죽었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졸지에 사랑하는 딸을 잃은 부부는 예정에도 없던 아이를 한 명 더 갖기로 하였고, 이듬해 다시 딸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나 25살이 되던 해 이재철 사장의 아내가 되었고, 1년 후 이재철 사장은 아내를 통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결국 신학의 길로 접어 들었다고 합니다(매듭짓기, 194). 이재철 목사님을 통해 주님의 교회와 100주년 기념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역사의 흐름을 만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갈 때 최고의 자산은 주님을 경외하는 자세입니다. 잠언은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냐?” 하는 문제는 그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경영하여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 전형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죄없이 붙잡혀 심문을 받으시고 빌라도에게 넘겨져 십자가 형을 받고 죽으실 때도 주님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옹호하실 것을 믿으시고, 천사들을 불러 그 검으로 로마군인들과 유대 지도자들을 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도 주님의 억울한 희생의 의미를 알지 못하였지만, 주님은 굿굿히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서 처형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만 백성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담당하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의로운 당신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죽음에서 다시 부활시키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당신의 백성들을 정결하게 하시는 일을 마치셨을 때 하나님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주님을 일으키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삶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하루 하루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