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2018. 1. 29 -2.2

골로새서 4장 15 16절 말씀은 지나치기 쉽습니다. 특히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라는 말은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값진 보화가 숨어 있습니다. 이 말씀이 그리스도의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갖추어야 할 근본적인 자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울은 위대한 전도자로서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라오디게아 지방에도 교회가 생겨나게 했으나, 라오디게아 지역의 성도는 불과 몇십 가정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으로 볼 때 신자들이 모이는 장소는 자연히 개인 집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눔바의 집에 있는 교회“라는 말은 당연한 사실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눔바와 같이 “우리 가정에도 교회가 있어요”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감사 하시기 바랍니다. 그 귀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분들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지금을 계기로 자신들의 가정에, 또 신앙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도록 기도하시면서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내에서 교회가 세워졌다고 할 만큼의 영적인 변화는 기도부터 시작된 순종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마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1:17-18)

우리는 모두 가정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가정이 없었다면 우리가 태어날수도 없었을 것이고 직장일을 끝마치면 우리는 가정으로 돌아가며 죽을 때에도 가정에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누구든지 그 존재 자체가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정과 신앙생활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여러가지 용어들을 살펴 보더라도 거의 대부분이 가정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정의 분위기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의 분위기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고 또 가정의 용어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의 용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 호칭은 바로 가정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호칭이 각 사람에게 주는 의미는 사뭇 다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이 가정에서 경험한 아버지의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아버지가 가정을 돌보지를 않아서 대학을 다닐 때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친이 연세가 드시자 자신이 봉양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고백하기를 ‘아버지’라는 호칭이 자신에게는 좋은 의미로 다가오지를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가정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일을 돌아보는 것은 물론 가족 구성원 사이에 서로 위로하고, 힘들어 하는 것이 있으면 서로 짊어지고 나갈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교훈은 성경은 물론 동서고금에 마땅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가정의 도리를 교회에 적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인식해야 합니다. 가정을 모르면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딤전 3:5)

우리가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정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또 가정을 바탕으로 할 때 신앙생활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너희 집에 교회가 있느냐?”라고 묻는 말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지금 가정에 교회가 없다면 그의 신앙생활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그런 사람은 자기의 신앙생활 자체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이 부분이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문제점으로 남아 있는 면입니다. 즉, 빌딩 교회가 가정 교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거룩한 주일을 맞으면 우리 성도들은 교회당에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곳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깊이 체험합니다. 함께 예배 드리고 말씀 들으며 또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서로가 한 몸인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이것이 빌딩 교회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이 지나면 이 빌딩 교회는 흩어집니다. 이 무리가 흩어져서 각자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전부 가정 교회로 분산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주일 예배에 한 번 참석하는 것으로 마치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생각하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한마디로 가정 교회의 부재 현상입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고통하고 있는 큰 원인은 가정 교회가 든든하게 서 있지 못한 데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눔바 그 여인의 집에 있는 교회’ 라는 말처럼 ‘— 성도, 그분의 집에 있는 교회’라고 부를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은 가정에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가정에 교회가 있으면 무엇보다도 두가지 면에서 특별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그 가정의 절대 권위로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그분은 교회의 머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 교회가 있으면 그 가정의 머리는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 가정에 가장 존귀한 분이요 제일먼저 경배를 받으실 분이요 권위 중의 권위가 되시는 것입니다. 실로 가족 모두가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을 때 비로소 그 가족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가정안에 절대 권위가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대단한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권위의식의 부재로 인하여 현대 가정은 붕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빌딩 교회를 공격하는것보다 가정 교회를 더욱 공격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빌딩 교회에 아무리 많은 성도들이 모여도 마귀는 겁내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주일이면 그저 형식적으로 교회에 왔다가 돌아가는 자들을 대수롭지 않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좀 더 확장해 말하자면 예수님을 믿으나 예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을 아무런 힘이 없는 군중으로 평가 절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크게 겁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는 무엇을 겁내고 있을까요? 주님을 제대로 모시고 살아가는 교회 특히 가정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6-7)”

요즈음 서구 사회에는 세 쌍 중에 한 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통계에 의하면 크리스천 부부의 경우에는 40쌍 가운데 한 쌍이 이혼을 한다 합니다. 신자 부부와 불신자 부부를 비교하면 이혼하는 빈도 차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신자 가정 중에서도 가정에 교회가 있는 부부 즉, 집안에서 자주 기도와 찬송 소리가 들리고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생활을 하는 가정에서는 이혼율이 400쌍 가운데서 불과 하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연구 보고서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생활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잘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붕괴하는 현대 가정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열 가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각 가정마다 하나님의 명령 체계를 수립하라고 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바르고 건전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 가정의 머리가 되셔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되고 서로 간에도 화평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만유의 주님이시기에 주님을 경외함으로 서로 간에 복종하고 섬기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