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에 대한 경고와 그리스도

누가복음 12:8-12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 메시지는 어떤 상황하에서든지 예수님에 대한 충성을 다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서 예수님을 부인한 적이 있다하더라도 회개하고 주님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고 살아간다면 주님의 용서를 받고 마지막 심판시에 주님의 시인을 받을 것입니다. 역사상 많은 순교자들이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회개하고 주님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배교의 문제와 달리 성령님께 대한 모독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셔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계시며 특히 박해시에는 우리를 심문하는 사람들이 능히 감당할 수 없는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고 한편으로는 기뻐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1. 그리스도에 대한 시인과 부인은 영원한 운명을 가름함을 알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에 대한 거역은 사함을 받되 성령님을 모독한 자는 결코 사함 받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박해시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믿고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2017. 7. 31 – 8.4

죽음을 통한 생명의 원리가 작동하는 셋째 영역은 선교입니다. 고난은 선교에 없어서는 안 될 측면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1885년 4월 5일 26세의 청년의 나이로 인천항에 내린 발걸음은 개신교 선교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당시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조선의 마음” 이라는 기도문을 묵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 주여,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뿜 입니다. 어둠과 가난한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 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하면 의심하고 화 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 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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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이 가지는 믿음의 길

누가복음 12: 29-31

존 옥토버그 목사님은 어느날 텍사스에서 사모님과 함께 열기구를 탔습니다. 생일선물로 받은 티켓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기구가 풍선이 있는 들로 나아가 기구를 타니 다른 부부도 함께 탔습니다. 조그마한 바스켓에는 운전자를 포함 총 다섯명이 운명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열기구가 이윽고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은 청명한 구름하나 없는 날이었습니다. 하늘에 이르자 전 캐네조 계곡을 볼 수 있었고 바위투성이의 캐년으로부터 저 멀리 태평양까지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장관이었고 영감넘치는 경치였습니다. 그러나 옥토버그 목사님은 예기치 못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공포였습니다. 실상 자신이 타고 있는 바스켓은 단지 무릎만 가렸기에 갑작스러운 요동만 있어도 자신들은 열기구 밖으로 내던져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굳은 결심을 하고 하얀 손잡이들을 굳게 잡았습니다. 사모님을 쳐다보았더니 전혀 높이 따위는 관심없듯이 태평하였습니다. 밑으로 말 목장이 지나가길래 말들을 좋아하는 아내를 보고 말들이 있다고 하였더니 사모님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눈만 뒤로 굴리면서 매우 아름답다고 할 뿐이었습니다. 긴장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열기구를 운전하는 청년에게 말을 걸어 어떻게 해서 이런 열기구를 운전하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청년은 지금이 자신의 첫번째 운전이고 자신이 이를 몰게 된 이유는 술취해 픽업트럭을 몰다가 충돌하였고 자신의 동생은 크게 다쳐 아직도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 직업을 찾다가 열기구로 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모님은 목사님을 쳐다보면서 “당신은 우리에게 과거 전력이 술취해 운전하다가 차 사고를 내고 자기 동생을 부상시켰으며, 단 한 번도 열기구를 운전해 보지도 못해 어떻게 이 열기구를 지상으로 내린 경험도 없는 사람을 조종자로 하여 함께 탄 것이 얼마나 두려움을 주는가?”라고 이야기 할 것이죠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다른 탑승자의 아내는 목사님을 보고 말하기를 “당신은 목사님이죠. 무엇인가 종교적인 것을 행하세요” 그래서 목사님은 헌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때 목사님의 가장 큰 질문은 “과연 내가 이 조종사를 믿을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이 조종사의 인격과 실력이 내 운명을 맡길 만한가?” 혹은 이 시간이 종교적인 무엇인가를 하여야만 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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