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봉독: 누가복음 6장 1 – 5절 오늘 본문에서 밀밭 사이를 걷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고 있을 때 바리새인들은 이들의 행위가 안식일을 범하는 행위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자칫하면 제자들은 벌을 받을 수 있는 사정이고 주님의 사역은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께서는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이 허기가 졌을 때 제사장이외에는 먹을 수 없는 하나님 앞에 진설한 떡을 받아 먹은 사건을 들어제자들의 행위를 변호하셨습니다. 이는 의식법의 엄격한 준수는 필요하지만 예외적으로 깨드리는 것이 허용될 때가 있는데 궁핍한 사람을 구제하는 등 자비가 필요할 때라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하여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의 최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므로 당신이 원하면 안식일에 어떤 것도 허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라 생각하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1. 그리스도의 사람은 지식이 사랑에 의해 온전해 진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되심을 알아야만 합니다. 3.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를 따라 생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
SBC 매일큐티
SBC 매일큐티 (2016/5/2~5/4)
가정에서의 사역
그리스도인들의 섬김의 최우선순위는 사람들의 영원한 영적인 행복입니다. 이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주와 주님으로 알고 받아들일 때 비로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써만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최후의 심판 때 자신들의 죄로 인해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심판자는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항상 그분을 증거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이 반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이웃의 물질적인 행복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복음 전도와 사회적인 책임 사이의 상대적인 장점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전혀 불필요합니다. 우리는 증거와 섬김, 이 모두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결혼은 인간의 제도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제도라고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을 시험하기 위해 이혼에 관하여 질문한 바리새인들에게 주님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아내엑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일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4-6)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시편에는 “하나님이 고독한 자를 가족과 함께 살게”하신다(68:6)라고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정적이고 사랑이 넘치며 풍성하고 서로 협력하는 가정생활을 이루어 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자선은 가정에서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는 경고의 말씀 역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이상은 우리가 가정에서 삶을 시작하여 부모와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마침내 (하나님의 일반적인 목적에 따라) 결혼하여 우리 자신의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우리는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청년이 된 자녀들이 사회에서 자기 관심사를 찾고 개발하는 것은 물론 자유이지만 자기 집을 여관처럼 여겨서는 안됩니다. 또한 부모도 자기 직업이나 교회, 지역 사회의 일원이나 여가 활동에 치우친 나머지, 자녀들이 자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느낌을 받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잠언은 자녀 양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에 관해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고, 자녀된 자들의 책임에 대하여도 많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잠언을 통하여 균형잡힌 가정과 사회 생활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직장에서의 사역
직장이란 우리가 섬김, 즉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발휘해야 할 두 번째 영역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직장을 오직 복음 전도라는 측면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직장을 동료나 직원들에게 오로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기회의 장으로만 여기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 직장에서 유일한 그리스도인이고, 또 그들의 복음 증거가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의 노동의 질에 의해서 보여진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노동은 복음 전도와는 거의 무관하게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한 형태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기독교적인 노동 철학이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출발점이 되는 곳은 창세기 1장입니다. 1장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을 사색적이고, 창조적이며, 부지런하고, 신중한 일꾼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고 일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것을 감독하고 유지하며 새롭게 해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을 때 그들 역시 창조적인 일꾼으로 만드셨습니다. 일하는 면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의 노동에 영광과 위엄이 더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일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일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며, 생활비를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고 궁핍한 자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우리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동에는 좀더 고상한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청지기의 직분을 주시고 이 직분이 노동을 통하여 실현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관리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일하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성경의 오용
아주 핵심적이고 중요한 사항을 성경은 명하시고 다른 모든 사항들은 상식 가운데 위임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가르침들을 실천하기 위해 삶을 해석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성경을 읽되 성경이 말씀하시는 뜻과 취지를 넘어 자의적으로 해석하다가 그리스도의 뜻을 잘못 알게 되면 상식만 가지고 사는 일반사람들보다도 못한 삶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특히, 재물의 획득과 관련된 사고입니다. 성경에는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기술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열심히 갈고 닦아 살다보면 하나님께서 적당한 은혜를 내려주신다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의 약속을 그리스도 중심이나 다른 사람을 섬기는데 사용되는 약속이 아니라 자신의 부를 창출하고 행복하게 사는데 소용되는 약속으로 이용할 경우 성경을 오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것은 특히 성경에서 레에마를 듣겠다는 사람에게 많이 발생합니다.
김미진 씨가 지은 “왕의 재정”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성경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라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오늘 내게도 말씀하시는 것이다. 첫째, 성경 말씀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흐르거나 가슴이 뭉쿨해지거나 뭔가 깨달음이 오는 것은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둘째, 목사님의 설교 또는 강의를 듣다가 감동, 깨달음, 눈물, 도전, 소망이 충만해짐, 기쁨이 넘침, 이런 것들은 성령께서 레마로 내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은 누구나 들을 수 있고..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믿음으로 삶을 살아낼 수가 있다.’(77)라고 하면서 저자는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례를 많이 적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의 큰 문제가 상식적인 인간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저자는 “빚지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빚을 지지않고 사는 삶을 실행하는 중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아들의 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 옆집에서 돈을 빌려서라도 병원에 가야하는 응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다급한 응급상황인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저자는 이 음성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몇 번이고 “너는 더 이상 빚을 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래 믿음으로 결단하고 나무젓가락으로 부러진 손가락 마디를 고정한 뒤 통증 때문에 우는 아이를 겨우 재우고 밤새도록 고통가운데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이틑날 믿음으로 아들의 손에 흰 양말을 씌워 학교로 보내자 학교에 가는 도중에 선흘교회 사모님을 만나 병원에 가게 되었고 아들이 손가락이 다 나을 때까지 치료를 받게 하여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마치 여호와 이레인양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왕의 재정 282-284). 여러분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상식은 이런 경우 빚을 내서라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시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빚지지 말라는 내용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식적인 행동을 이상한 음성을 들으므로 하지 못하고 결국 남의 도움을 받아 아들의 심각한 외상을 치료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의 위험수위에 다다른 믿음의 상태입니다.
정당한 노력과 그에 따른 대가를 받고자 하는 마음없이 기도하여 음성을 듣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거나, 성경을 읽고 무슨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려고 한다든지, 그런 일반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고, 재물을 벌고자 하는 것은 마법적인 신앙과 욕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할수록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욕심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능력의 범위를 넘거나 노력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법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공식을 사용하여 주문을 외우듯이 살면 자신의 노력없이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고 복이 떨어진다는 믿음아니겠습니까? 이런 마음으로 살게 되면 그 사람은 요행으로 돈은 벌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스도께서 그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삶 가운데 무엇이 그리스도의 뜻인지를 분별해 낼 수가 없어 그리스도의 뜻을 실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재물과 관련하여 성경은 상식적인 원리이외에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재물 버는 법을 가르쳐 준 구절이 없습니다. 더구나 21세기의 지식기반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재물을 버는지는 경영학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성경에서 그런 것을 도출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도처에 재물을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하여 잃는 법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재물을 버는 것에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나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희생없는 섬김은 없습니다.
삽화: James O’Brien
가정과 그리스도
에베소서 5장 33절 – 6장 4절
모든 사람에게서 가정은 “출생, 교육, 결혼, 죽음, 성공, 실패”등이 일어나는 장소로서 인생의 행복을 좌우하며 영원의 삶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성공하여도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불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셔들여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때 비로서 질서가 잡히고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고 부활 승천하사 모든 능력을 가지신 성령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 가정에 그리스도 안에서 부부가 서로 사랑과 존경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며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등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사명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사명의 실현을 위해서는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은 주님의 명령을 실천하면서 기도할 때 비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며 이때 우리 가정에 사랑,희락, 화평, 오래참음과 같은 성령님의 열매가 맺혀지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정의 리더가 되시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가정이 주님의 뜻이 실천되는 사명의 대상임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를 도우러 오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