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의 삶

2015.07.22 | 하나님의 백성의 삶 (창21:22-23)

창세기 21장 22절 이하에 보면 블레셋의 땅에 거주하는 그랄 왕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브엘세바에 거주하는 아브라함을 찾아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목적은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비멜렉은 연 전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 직전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 할 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자신의 아내로 취하여 들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취하여 들인 그 밤에 하나님께서 현몽하셔서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나도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창세기 20:3-7).

 그 후 아비멜렉은 몇 년동안 지켜보니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을 보고 그를 찾아와서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삶이 되는 것을 사람들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분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릴리아스 호튼 여사에 대하여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1800년대말과 1900년대 초엽에 전염병으로서 콜레라가 만연하였다고 합니다. 어느날 한 조선사람이 지나가다가 릴리아스가 전염병으로 죽은 부랑자를 가슴에 안고 슬퍼하고 있기에 호기심이 나서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합니다. 외국여인이 죽어가는 한국사람을 돕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특히 이 쓸모 없는 부랑자를 말입니까? 그는 너무나 혼돈이 되어서 릴리아스를 따라 그녀의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웃사람들에게 도애체 이 여인이 누구인지 물어 보게 되고 릴리아스가 새로운 종교의 선생과 결혼했으며 왕후의 의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를 들은 남자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집에서 나오는 선교사를 기다렸다가 따라가서 조그마한 교회로 가서 선교사가 예배를 집례하는 동안 그 사람은 큰 감동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즉시로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동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너무나 인정머리없는 동네로서 어떤 사람도 가기 싫어한 곳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소식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켜서 이들은 친절한 마을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마을이 변화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언더우드 부부에게 이것에 관해 물었고 그때서야 이 기적의 변화사건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이 행주로 가서 그 마을에 대하여 후속조치를 취했을 때 그는 그 마을의 변화의 진실한 이유는 자신의 아내가 죽은 거지를 그렇게 돌보았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http://underwoodmemorialhall.blogspot.kr).

 여러분 날이 이를 것입니다. 즉, 죽은 자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올 것입니다. 아브라함 처럼 릴리아스 호튼 처럼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iedl/150059861893

최후의 만찬과 그리스도

2015.7.19 | 최후의 만찬과 그리스도 (마가복음 14장 12-26절)

유대인의 유월절이 왔습니다. 양을 잡는 첫 날이 시작할 때인 목요일 저녁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1,500년간 계속한 유월절 의식의 참된 의미를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유월절 양이신 당신께서 만백성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유다는 이를 모르고 은 30량에 주님을 팔아넘겼지만 주님은 왕으로서 모든 사건을 지배하시면서 끝까지 온유하게 유다를 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새언약의 상징으로 주의 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를 행하여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기념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1. 주님의 만찬을 통해 유월절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증거하는 절기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2. 주님의 만찬에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을 본받아야만 합니다.
  3.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새언약의 상징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015. 07. 15 |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히브리서11:11-12)

1999년 7월 17일 자 기독공보를 보면 언더우드 탄생 140년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에 묻혔던 언더우드 선교사의 유해를 83년만에 양화진 외인묘지로 옮겨 부인 릴리아스 호튼 언더우드 과 함께 합장한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은 이미 1916년 미국에서 돌아가신 바 되었고 부인은 그 다음해 아들 원한경박사와 자부와 함께 한국으로 되돌아와서 선교사역 및 의료사역을 하다가 1921년 죽어 양화진 외인묘지에 따로 묻힌 바 되었습니다. 릴리아스 호튼 여사는 1851년 태어나 시카고에서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선교부의 요청에 따라 1888년 37의 나이로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와서 제중원에서 일했습니다.

그녀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매우 가난하고 길은 진흙으로 덮인 한국을 보았지만 선교사로서의 그녀의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고 적고 있습니다(상투쟁이와 15년).한국에 와서 그녀는 두가지 일에 바빴습니다. 하나는 낯선 언어를 익히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민비와 나이가 같았고 민비의 주치의였습니다. 서로 간에 친했다고 합니다. 1년 후 8살 연하인 언더우드 목사님과 결혼을 하여 1890년 외아들 원한경을 낳았습니다. 글도 잘쓰셔서 1904년 상투쟁이와 15년이라는 선교일화를 담은 책을 미국에서 출간하였고 1918년에는 언더우드 선교사 이야기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들은 지금도 아마존에서 구입가능합니다. 한국에서도 킨들로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조선 선교에 발을 디뎠고 조선 사람들을 사랑하여 자신이 가진 의술을 가지고 섬기다가 이 땅에 온지 33년후에 70살인 1921년 조선에서 죽었고 양화진에 묻혀 지금도 우리에게 그녀의 믿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응답되어 그녀의 남편이 세운 연세대학교와 세브란스병원은 지금도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그녀의 후손들은 한국 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 선교란 이런 것임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c7cc5725_underwood이미지 출처: www.boazclub.com

두 종류의 사람과 그리스도

2015.07.12 | 두 종류의 사람과 그리스도 (마 14:1-11절)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문둥이 시몬의 집으로 가서 당신과 나사로를 위한 잔치에 참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의 겸손과 자비를 본받아야만 합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이런 주님을 사랑하여 귀한 나드 한 근이 되는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붓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으므로 그의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주님을 위해 우리 자신의 것을 허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주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는 마리아의 이런 행동에 분개하였고 드디어 주님을 은 30량에 팔아넘기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가룟 유다의 탐욕과 주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촉발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누구시며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깨달아야 하며 이 주님께서 다시 세상에 오실 때는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겸손과 자비를 본받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를 위해 허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재림을 대비한 우리의 자세와 그리스도

2015.07.05 | 재림을 대비한 우리의 자세와 그리스도 (마 13:32-37절)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즈음하여 많은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신자들의 영적인 지능테스트를 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신실하게 믿고 있는가를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닥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주님의 말씀에 기초를 놓은 우리의 믿음의 삶은 견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근심이 몰아닥치면 이 주님을 생각하고 기도하십시요.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예비를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가운데 우리는 주님을 영원히 배워가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우리의 믿음 즉, 영적인 지능이 자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의 경고를 기억하고 늘 깨어 준비하여야 합니다.
  •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하는 삶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유산을 흘려보내라

2015.7.1 수요일 | 신앙유산을 흘려보내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출애굽기 3:6)

잘 아는 목사께서 아들이 국내 굴지의 회사 인턴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려운 가운데도 그 청년은 열심히 노력하여 인턴으로 발탁되었습니다. 기뻐해야할 일이지요.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과 배우자를 가지는 것은 믿음 여부와 상관없이 중요한 일이나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신앙 유산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자식농사는 50대 후반이 되면 결정납니다.그러나 신앙 유산을 물려주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잘 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동참이 있어야만 합니다. 개인적 경건은 성경읽기 기도로 되지만 교회적 경건은 서로간의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유산을 흘려보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참고가 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세운 제단의 의미
아브라함은 3 군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세웠다.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여호와께서 나타나 확인한 세겜(창12:6-7)에서  최초로, 곧 이어 남쪽으로 33킬로 떨어진 벧엘 동쪽(창12:8), 롯이 떠난 뒤 헤브론으로 내려와서 제단을 쌓았다(창13:18). 이삭은 브엘세바에서 한 번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자기에게 나타난 여호와를 기리기 위해서이다(창26:24). 한편, 야곱은 70대 중반 헤브론에서 밧단 아람으로 도피할 때 벧엘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돌에 기름을 부었고(창28:18-19), 20여년이 지나 밧단 아람으로부터 돌아와서 아브라함을 본받아 세겜에 제단을(창33:20) 그리고 다시 벧엘에 이르러 제단을 쌓았다(창35:6-7). 세겜, 베델, 헤브론, 브엘세바는 가나안 땅의 주요 능선도로의 거점이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 후손들이 목축을 하러 이동할 때는 이 능선도로를 따라 이동할 것이고 그 경우 정기적으로 이 제단에 와서 여호와께서 자기와 자기 후손에게 하신 가나안 땅을 상속하고 강대한 나라가 되어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늘상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성서에 쓰여진 하나님의 약속들을 묵상하듯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자신의 후손들이 제단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되새기도록 한 것이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24-25 참조).

marc-chagall-sacrifice-of-isaac-figure-1삽화: Marc Chagall – The Sacrifice of Isaac (1960)

시험의 순간

2015. 6. 24  | 시험의 순간: 아브라함과 롯의 결별

네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16:3)

기근시에 어쩔 수 없이 관개시설이 잘 되있어 물의 공급이 풍부한 이집트로 가게 된 아브라함은 당시 최강대국이던 이집트 파라오의 손으로부터 하나님의 도움으로 사라를 구출하고 덤으로 재물까지 얻어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되돌아 왔다. 가나안 땅은 이집트에 비하여 흠이 있었다. 그 흠은 물과 관련된 것이었다. 즉, 위로 부터 비의 공급을 제 때에 받지 못하면 흉년이 들 수 밖에 없는 그런 땅이었다. 그러나 이런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거기에 머무르게 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아브라함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는가 여부가 문제였다. 이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답을 주어야 했다. 롯과의 사건은 바로 이를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정말 풍부하게 이 두사람을 축복하셔서 더 이상 두 사람은 함께 살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의 목자간에 목초지에 대한 분쟁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런 축복이 그 배경이 된 것이다. 여기서 각 사람이 가족과 재물을 이끌고 어디로 가야하며 그렇게 한 선택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롯으로 하여금 먼저 선택하도록 하고 롯은 이 기회를 잡아 가장 물이 넉넉한 평야를 찿고는 소알, 소돔 그리고 고모라 지역을 선택하였다.  성서 기자에 따르면 이 지역은 여호와의 동산과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할 정도였다(창13:10).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집트의 시련 가운데서 배운 것은  신선하고 풍부한 물보다도 하나님의 약속들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경험이었다.  그는 100년 만에 일어나는 기근을 만났었고 물을 찾아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물은 찾았지만 자기 목슴을 위하여 거짓말하다가 사라가 붙잡히는 수치를 당하였다. 이제 다시 물의 문제로 조카와 다투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때 아브라함이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최소한 생존의 문제에서는 충분하시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도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신다는 신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롯은 물을 찿아 점점 요단 강 넘어 남방 소알, 소돔, 고모라 지역으로 갔고, 아브라함은 목축을 위하여 벧엘로부터 약 50킬로 떨어진 남방 헤브론으로 내려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롯은 또 다시 동쪽으로 갔다. 반역 후 아담과 이브는 에덴 동산에서 동쪽으로(창3:24), 가인이 아벨을 죽인 뒤 동쪽으로(창4:16), 바벨탑을 세우려고 계획한 이들 역시 동쪽으로 이동하였다(창11:1-2). 그러므로 이런 롯의 이동이 물을 찿아 가는 논리적인 움직임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물이 풍부한 소돔과 고모라 지역은 너무나 악하여 하나님께서 얼마 안있어 완전히 멸망시키려는 도시들이었다.

결론적으로 아브라함과 롯이 결별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러나 롯은 오직 육신의 필요를 따라서만 결정하였으며 그 결과 소알, 소돔, 그리고 고모라 지역이 물이 풍부하므로 자기에게 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돌이킬 수 없는 여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걸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물이 적고 목축이 힘든 지역인 헤브론 산지와 남방 네게브지역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기다렸다. 이 헤브론 지역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거쳐 약 210년 동안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거주하던 정착지가 되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20-21 참조).

The_Phillip_Medhurst_Picture_Torah_80._Abraham_and_Lot_separating._Genesis_cap_13_v_17._Borcht삽화: Phillip Medhurst Picture – Abraham and Lot Separating 

영적 지능 테스트와 그리스도

2015.6.21 | 영적 지능 테스트와 그리스도 (마 13:21-31절)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즈음하여 많은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신자들의 영적인 지능테스트를 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신실하게 믿고 있는가를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닥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주님의 말씀에 기초를 놓은 우리의 믿음의 삶은 견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근심이 몰아닥치면 이 주님을 생각하고 기도하십시요.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예비를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가운데 우리는 주님을 영원히 배워가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우리의 믿음 즉, 영적인 지능이 자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니 그러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일하시니 그러므로 우리도 일하여야 합니다.
  • 그리스도의 말씀은 참되시니 그러므로 이 말씀 위에 닻을 내려야 합니다.

성전 파괴와 그리스도

2015.6.14 | 성전 파괴와 그리스도 (마 13:14-20절)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는 때가언제인지와 이런 일을 당할 때의 신자들의 행동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이 있을 때는 불과 십자가를 짊어지시기2틀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온유하게 제자들을 대하셨으며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셨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그가 보낸 사도들의 증언 역시 거부하여 끝내 40년 뒤 멸망을 자초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어야만 할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어려운 상황이 오는 것이 보일 때에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여 모든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원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을 배워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성전파괴시의 일반적인 징조와 그리스도

2015.6.7 | 성전파괴시의 일빈적인 징조와 그리스도 (마 13:3-8절)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먼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해석을 듣고 속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의 모든 사건은 AD 70년에 이루어진 예루살렘 성전파괴까지의 예언이고 이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리 저리 꿰고, 이런 성경구절을 현실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맞추어 보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하여 마음을 닫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이미 발생한 사건들을 오늘에 적용하려는 어리석은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건전한 판단을 가지고 닭은 닭이고 봉은 봉이라고 알려주면 되는 것입니다.

  •  신자들은 영적인 놀림감이 되지 말아야만 합니다.
  • 신자들은 환란의 소문 때문에 두려워 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 신자들은 생태적인 혼란이 있어도 당황하지 말아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