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사람과 그리스도

2015.07.12 | 두 종류의 사람과 그리스도 (마 14:1-11절)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문둥이 시몬의 집으로 가서 당신과 나사로를 위한 잔치에 참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의 겸손과 자비를 본받아야만 합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이런 주님을 사랑하여 귀한 나드 한 근이 되는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붓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으므로 그의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주님을 위해 우리 자신의 것을 허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주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는 마리아의 이런 행동에 분개하였고 드디어 주님을 은 30량에 팔아넘기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가룟 유다의 탐욕과 주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촉발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누구시며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깨달아야 하며 이 주님께서 다시 세상에 오실 때는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겸손과 자비를 본받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를 위해 허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재림을 대비한 우리의 자세와 그리스도

2015.07.05 | 재림을 대비한 우리의 자세와 그리스도 (마 13:32-37절)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즈음하여 많은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신자들의 영적인 지능테스트를 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신실하게 믿고 있는가를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닥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주님의 말씀에 기초를 놓은 우리의 믿음의 삶은 견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근심이 몰아닥치면 이 주님을 생각하고 기도하십시요.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예비를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가운데 우리는 주님을 영원히 배워가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우리의 믿음 즉, 영적인 지능이 자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의 경고를 기억하고 늘 깨어 준비하여야 합니다.
  •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하는 삶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유산을 흘려보내라

2015.7.1 수요일 | 신앙유산을 흘려보내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출애굽기 3:6)

잘 아는 목사께서 아들이 국내 굴지의 회사 인턴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려운 가운데도 그 청년은 열심히 노력하여 인턴으로 발탁되었습니다. 기뻐해야할 일이지요.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과 배우자를 가지는 것은 믿음 여부와 상관없이 중요한 일이나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신앙 유산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자식농사는 50대 후반이 되면 결정납니다.그러나 신앙 유산을 물려주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잘 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동참이 있어야만 합니다. 개인적 경건은 성경읽기 기도로 되지만 교회적 경건은 서로간의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유산을 흘려보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참고가 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세운 제단의 의미
아브라함은 3 군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세웠다.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여호와께서 나타나 확인한 세겜(창12:6-7)에서  최초로, 곧 이어 남쪽으로 33킬로 떨어진 벧엘 동쪽(창12:8), 롯이 떠난 뒤 헤브론으로 내려와서 제단을 쌓았다(창13:18). 이삭은 브엘세바에서 한 번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자기에게 나타난 여호와를 기리기 위해서이다(창26:24). 한편, 야곱은 70대 중반 헤브론에서 밧단 아람으로 도피할 때 벧엘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돌에 기름을 부었고(창28:18-19), 20여년이 지나 밧단 아람으로부터 돌아와서 아브라함을 본받아 세겜에 제단을(창33:20) 그리고 다시 벧엘에 이르러 제단을 쌓았다(창35:6-7). 세겜, 베델, 헤브론, 브엘세바는 가나안 땅의 주요 능선도로의 거점이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 후손들이 목축을 하러 이동할 때는 이 능선도로를 따라 이동할 것이고 그 경우 정기적으로 이 제단에 와서 여호와께서 자기와 자기 후손에게 하신 가나안 땅을 상속하고 강대한 나라가 되어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늘상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성서에 쓰여진 하나님의 약속들을 묵상하듯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자신의 후손들이 제단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되새기도록 한 것이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24-25 참조).

marc-chagall-sacrifice-of-isaac-figure-1삽화: Marc Chagall – The Sacrifice of Isaac (1960)

시험의 순간

2015. 6. 24  | 시험의 순간: 아브라함과 롯의 결별

네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16:3)

기근시에 어쩔 수 없이 관개시설이 잘 되있어 물의 공급이 풍부한 이집트로 가게 된 아브라함은 당시 최강대국이던 이집트 파라오의 손으로부터 하나님의 도움으로 사라를 구출하고 덤으로 재물까지 얻어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되돌아 왔다. 가나안 땅은 이집트에 비하여 흠이 있었다. 그 흠은 물과 관련된 것이었다. 즉, 위로 부터 비의 공급을 제 때에 받지 못하면 흉년이 들 수 밖에 없는 그런 땅이었다. 그러나 이런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거기에 머무르게 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아브라함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는가 여부가 문제였다. 이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답을 주어야 했다. 롯과의 사건은 바로 이를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정말 풍부하게 이 두사람을 축복하셔서 더 이상 두 사람은 함께 살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의 목자간에 목초지에 대한 분쟁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런 축복이 그 배경이 된 것이다. 여기서 각 사람이 가족과 재물을 이끌고 어디로 가야하며 그렇게 한 선택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롯으로 하여금 먼저 선택하도록 하고 롯은 이 기회를 잡아 가장 물이 넉넉한 평야를 찿고는 소알, 소돔 그리고 고모라 지역을 선택하였다.  성서 기자에 따르면 이 지역은 여호와의 동산과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할 정도였다(창13:10).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집트의 시련 가운데서 배운 것은  신선하고 풍부한 물보다도 하나님의 약속들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경험이었다.  그는 100년 만에 일어나는 기근을 만났었고 물을 찾아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물은 찾았지만 자기 목슴을 위하여 거짓말하다가 사라가 붙잡히는 수치를 당하였다. 이제 다시 물의 문제로 조카와 다투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때 아브라함이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최소한 생존의 문제에서는 충분하시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도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신다는 신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롯은 물을 찿아 점점 요단 강 넘어 남방 소알, 소돔, 고모라 지역으로 갔고, 아브라함은 목축을 위하여 벧엘로부터 약 50킬로 떨어진 남방 헤브론으로 내려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롯은 또 다시 동쪽으로 갔다. 반역 후 아담과 이브는 에덴 동산에서 동쪽으로(창3:24), 가인이 아벨을 죽인 뒤 동쪽으로(창4:16), 바벨탑을 세우려고 계획한 이들 역시 동쪽으로 이동하였다(창11:1-2). 그러므로 이런 롯의 이동이 물을 찿아 가는 논리적인 움직임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물이 풍부한 소돔과 고모라 지역은 너무나 악하여 하나님께서 얼마 안있어 완전히 멸망시키려는 도시들이었다.

결론적으로 아브라함과 롯이 결별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러나 롯은 오직 육신의 필요를 따라서만 결정하였으며 그 결과 소알, 소돔, 그리고 고모라 지역이 물이 풍부하므로 자기에게 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돌이킬 수 없는 여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걸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물이 적고 목축이 힘든 지역인 헤브론 산지와 남방 네게브지역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기다렸다. 이 헤브론 지역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거쳐 약 210년 동안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거주하던 정착지가 되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20-21 참조).

The_Phillip_Medhurst_Picture_Torah_80._Abraham_and_Lot_separating._Genesis_cap_13_v_17._Borcht삽화: Phillip Medhurst Picture – Abraham and Lot Separating 

영적 지능 테스트와 그리스도

2015.6.21 | 영적 지능 테스트와 그리스도 (마 13:21-31절)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즈음하여 많은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신자들의 영적인 지능테스트를 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신실하게 믿고 있는가를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닥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주님의 말씀에 기초를 놓은 우리의 믿음의 삶은 견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근심이 몰아닥치면 이 주님을 생각하고 기도하십시요.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예비를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가운데 우리는 주님을 영원히 배워가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우리의 믿음 즉, 영적인 지능이 자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니 그러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일하시니 그러므로 우리도 일하여야 합니다.
  • 그리스도의 말씀은 참되시니 그러므로 이 말씀 위에 닻을 내려야 합니다.

성전 파괴와 그리스도

2015.6.14 | 성전 파괴와 그리스도 (마 13:14-20절)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는 때가언제인지와 이런 일을 당할 때의 신자들의 행동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이 있을 때는 불과 십자가를 짊어지시기2틀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온유하게 제자들을 대하셨으며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셨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그가 보낸 사도들의 증언 역시 거부하여 끝내 40년 뒤 멸망을 자초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어야만 할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어려운 상황이 오는 것이 보일 때에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여 모든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원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을 배워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성전파괴시의 일반적인 징조와 그리스도

2015.6.7 | 성전파괴시의 일빈적인 징조와 그리스도 (마 13:3-8절)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먼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해석을 듣고 속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의 모든 사건은 AD 70년에 이루어진 예루살렘 성전파괴까지의 예언이고 이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리 저리 꿰고, 이런 성경구절을 현실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맞추어 보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하여 마음을 닫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이미 발생한 사건들을 오늘에 적용하려는 어리석은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건전한 판단을 가지고 닭은 닭이고 봉은 봉이라고 알려주면 되는 것입니다.

  •  신자들은 영적인 놀림감이 되지 말아야만 합니다.
  • 신자들은 환란의 소문 때문에 두려워 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 신자들은 생태적인 혼란이 있어도 당황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믿음의 삶

2015.06.03 | 믿음의 삶 (히 11:8)

제가 수요일터예배에 참석한 직장인들에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에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현재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여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신 분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십시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갈 때 그리고 하란을 떠날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히11:8). 여기서 알지 못하고의 원어는μὴ ἐπιστάμενος메 에피스타메노스로서 μὴ 부정을 나타내고ἐπιστάμενος 에피스타메노스정보를 가지고 있다 뜻을 가진 분사로서정보를 소유하는 이유는 그러한 정보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문은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는데 이유는 정보의 중요성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뉘앙스의 뜻으로 이해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장소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정보없이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정확히 어디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정보를 가지지 못한 것이지자신이 갈려고 목적지를 모르고 떠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를 믿었기 때문에 굳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는 목적지를 알려고 애를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그런 정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어디로 가려고 하였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를 떠날 가나안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상세히 조사하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최종 목표로 잡았는지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드러낼 장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지는 아래의 글을 보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선택하여 참되신 유일한 하나님의 전달자가 되도록 하였고,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그 하나님의 계획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지역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선택하신 이유는 이 지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3 대륙이 만나는 장소로서 일종의 허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상인들이 자신의 상품을 가지고 이 지역을 통로로 물건을 사고 팔면서 여행한 것 처럼, 아브라함의 자손들 역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모든 민족에 대한 좋은 소식을 세계만방에 신속하게 전파하도록 선택하신 것이었다. 여기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되어야만 하였고 이 목적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이 주어진 것이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어야만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사명을 망각하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버려 우상숭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가나안 땅에 살 수 있는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16-17 참조).  

 우리가 살아갈 때 정확히 어떤 학교, 어떤 직업과 회사, 어떤 배우자가 하나님의 뜻인가에 관한 정보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무리 기도해도 모릅니다. 다만 아브라함과 같이 어떤 목적 하에 학교, 직업, 배우자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물색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몫을 주시는 것입니다. 당연히 삶에는 철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표를 가지고 선택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겸손: 구세군의 장화 닦는 일

2015.05.20 | 겸손-구세군의 장화 닦는 일 (빌2:5-8/ 요13장)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여야만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크신 뜻 중 하나는 우리의 겸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큰 일 뿐만 아니라 작은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일하실 수 있는지 궁금해 하십니다. 이것은 곧 섬김입니다. 희생적인 섬김의 삶의 인상적인 예는 미국태생으로 처음 구세군 최고 책임자가 된 사무엘 로간 브렝글(Samuel Logan Brengle)입니다. 이 분은 미국에서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를 만난적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는 그는 감리교의 젊은 목사로서 감독이되어 성공하려는 은밀한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부스를 만나고 생각이 변화되어 1887년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가서 구세군에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스는 처음에는 그를 수상쩍게 생각했습니다. 부스는 그에게 말하기를 브렝글 자네는 위험한 계층(성직자라는 의미였다)에 속해 있네. 자네는 너무나 오랫동안 자네 자신의 보스가 되어 왔기 때문에 구세군의 훈련에는 복종할 것 같지가 않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세군 내에서 이런 염려에도 불구하고 브렝글을 시험적으로 써보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구세군은 브렝글에게 필요한 겸손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 리밍턴으로 보내졌고 거기서 사관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처음 주어진 임무는 동료 사관 후보생들의 장화를 닦는 일이었습니다. 어둡고 조그만 지하실에서 진흙으로 엉망이된 열여덟 켤레의 구두와 구두약 한 통을 놓고 그는 심하게 갈등하였습니다. 내가 겨우 구두나 닦으려고 오천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왔단 말인가? 라고 자문 하고 있을 때 그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상상 속에서 그는 하나의 그림을 보았다. 예수님이 주인공이셨고 그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계셨다. 하늘의 영광과 천군 천사의 숭배를 받으셨던 그 주님이.투박하고 배우지 못한 어부들의 발 앞에 몸을 굽혀 발을 씻기시고 자신을 낮추사 종의 형체를 지니고 계셨다! 브렝글의 마음은 낮아졌다. 주여. 그는 속삭였다. 주님은 그들의 발을 씻기셨군요 저는 그들의 구두를 닦으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어떤 구두닦이보다도 열심히 자기 일에 매달렸으며, 입술에는 노래가, 마음에는 평화가 있었다.

 브렝글은 이렇게 자신의 교만이 꺾였던 것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그의 전기 작가는 썼습니다. (존스토트,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정옥배 역, IVP), 20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