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하시는 그리스도(3)


요한복음 5장 31-47
사람들은 저마다의 증거를 기반으로 상품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선물은 영생입니다. 그 영생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유의 주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받아들고 있습니까?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십자가로 가셔서 죽고 부활하시기 약 1년 6개월 전인 AD29년,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인들 앞에 서신 주님은 당신이 만민의 재판장으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임명을 받았으며, 당신이 마지막날 모든 사람들을 다시 살려서 선악 간에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섯 가지 증거를 주셨습니다. 먼저  그들이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메시야가 자신임을 선포한 침례 요한의 증거, 38년된 병자를 고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신 이적,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증거하신 증거, 유대인들이 영생을 얻으려고 부지런히 연구하고 있는 구약성경(타나크) 자체의 증거, 모세의 증거(토라의 증거)의 다섯 가지를 들고 계십니다. 오늘 살펴 본 구약성경의 한 책인 스가랴9장9-10절 역시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왕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 왕을 통하여 온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것이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입니다. 역사상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사람들은 많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성할 때 왕으로써 호산나를 부르며 예루살렘 전체가 즐거이 외친 사건은 오직 주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사건이외에는 없습니다. 로마가 안토니아 요새에서 감시의 눈길을 번뜩이고 있기 때문에 감히 어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입성하신 주님은 유대인들을 가르치고 경고하시다가 5일 후 십자가 위에서 죽고 사흘 만에 다시는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심으로 만유의 주님이심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변론하시는 그리스도 – 증거

성경구절 요한복음 5: 31-46

이미 38년된 병자를 즉시 완케하여 걷게 하심으로 그분이 생명의 주님이심을 보여주셨으나, 당신이 동시에 재판장으로 임명받으셨다는 선포를 뒷받침할 증거로 4가지를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는 침례 요한이 예수님 자신에 대하여 한 증거입니다. 이 증거는 요한복음 1장19절이하에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침례요한은 1년 전에, 지금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고소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야말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요,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 적이 있었고, 그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입니다. 그 일들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외에는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38년된 병자를 즉시 고치시고, 문둥병자를 깨끗이 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것은 물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고 부활하시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외에는 하실 수가 없는 일입니다. 동물은 사람이 하는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없고, 사람이 행하는 과학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동물이 아니라 동물의 모양을 한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하신 증거입니다. 이미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모든 사람이 듣도록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주님의 신분을 증거하신 것을 필두로 두 번 더 직접적으로 하늘에서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는데, 이는 그들이 이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변론하시는 그리스도 – 영생과 중생 그리고 심판


변론하시는 그리스도 – 영생과 중생 그리고 심판
성경구절 요한복음 5장 24-30절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자신의 말을 듣고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영생(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최후의 심판을 받아 영벌에 처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미 들어갔다고 부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인간이 되셔서 율법을 지키시고 속죄의 과업을 이룩하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재판장으로서의 권한을 받으셨고, 죽어 있는 모든 자들을 부활시킬 생명의 주님으로 임명되셨기 때문입니다. 죽은 모든 자들은 마지막날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시키실 것이며, 선한 일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아올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주님의 권위의 근거는 이미 38년된 병자를 이적으로 치유하신 것으로 유대인들에게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마지막날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에 대한, 그리고 그런 생명을 주실 권한을 가지신 것에 대한 좋은 상징입니다. 지금 이런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구원’이라 함은 통상 3가지 시제로 성경은 상황마다 다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의 사건으로 죄와 마지막 심판에서 완전히 건짐을 받았다는 의미로, 둘째는 현재 자기중심성으로 대표되는 죄의 세력에서 자유롭게 되어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셋째는 미래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완전히 죄의 존재로부터 구원받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24절에서는 이미 구원받아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하시고, 29절은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신자의 행위는 구원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겠습니까? 4가지 견해가 있으나,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는 영원한 감사가 있어 육체의 남은 때를 선한 행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견해가 옳다고 생각됩니다(개혁신학).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변론하시는 그리스도- 믿음과 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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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요한복음 5: 19-25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신성모독의 죄까지 저질렀다고 덤벼드는 유대인들에 대하여 계속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변증하고 계십니다. 이때 주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이미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이적을 그 신임장으로 제시하셨습니다. 그 일은 어떤 누구도 할 수 없었고, 성전에 항상 눈을 두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도 고쳐주시지 않으신 일입니다. 그 병자는 죄로 병을 얻어 무려 38년 동안 그 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5장에서 처음으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면서 영생, 즉 다가올 세대의 생명 혹은 삶의 특권 얻기를 그렇게 원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당신의 메시지를 듣고 당신을 보내신 분 즉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면, 영생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고, 최후의 심판에서 면죄되기 때문에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영생의 본질은 하나님의 아들을 중심으로 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의 시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고 부활하셨음을 믿을 때부터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어 엄숙히 선언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죄로 인하여 죽어 있는 사람의 영적 부활 즉 성령님에 의한 중생을 다른 말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미 4장에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그 여인의 전도를 받은 많은 수가성 사마리아인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바 있으며, 왕의 신하와 그 온 가족이 자신의 아들의 병이 기적으로 치유됨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영접하여 영생을 가지게 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면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영원한 교제를 나누게 되며, 심판을 받지 않고 이미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건너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변론하시는 그리스도- 순종과 구원(2)

요한복음 5장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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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어느 명절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를 이적으로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께 와서 안식일을 범하는 이유를 따졌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안식일을 범하지 않았다고 논지를 펴시지 않고, 오히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시면서 그 근거로 하나님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제시하셨습니다. 신성모독으로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주님은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신 4가지 연속적인 이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4개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 와 함께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셨는데, 그 근거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들도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누구도 고칠 수 없는  38년된 병자가 오직 말씀으로 온전해진 사건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두 번째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신 이유는 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지금까지 보이신 것보다 더 크신 일을 보이사 유대인들로 하여금 놀라게 하실 것인데 그 중 하나는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실 대권이 아들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모든 심판의 권한을 아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자를 살리고, 심판 권한을 주시는 이유는 모든 자들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의지이십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둘러싸여 이런 변론을 하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간의 불순종이라는 원죄를 치유하시는 일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도 아버지께 그렇게 순종하셨는데 하물며 일개 피조물인 인간이야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하여야만 하겠습니까? 심판을 행하시기 전 주님은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하나님은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이 진리의 말씀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자녀 양육과 그리스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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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에베소서6장 1-4

오늘 본문은 성령님으로 충만한 가정 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져야만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자녀들은 고등학교 이상 결혼 전의 청년들을 말합니다. 청년들은 마땅히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을 공경하여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축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요새 기업에서 중시하는 인성 역시 부모공경을 해 본 사람만이 제대로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이 계명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는 우선적인 목적은 자녀가 세상에서 잘되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을 경외하도록 만드는데 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여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자녀들은 자연히 세상에서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라는 책을 쓴 이소영 마이크로소프트 이사는 지금 이시대는 함께 공존하며 함께 번영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사람을 요구하는 감성의 시대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혼자만 공부하여 똑똑한 사람이 되도록 하면 실패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관심있는 분야를 개발하고, 커뮤니티에 참가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런 커뮤니티에서 리더로서 역할을 하여 인성도 길러라는 대안책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는 이미 그런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가정 생활, 교회 생활을 잘 하면 저절로 그런 능력이 길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세속의 가르침이 알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목적은 주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안되는 경우 역시 많습니다. 그 만큼 자녀 양육은 쉽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지혜와 은혜를 받도록 그리고 자녀들을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자녀들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넘어 주님을 만나서 함께 영원한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자녀 양육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자녀 양육과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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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에베소서 6장 1-4절

오늘 본문은 성령님으로 충만한 가정 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져야만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자녀들은 고등학교 이상 결혼 전의 청년들을 말합니다. 청년들은 마땅히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을 공경하여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축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요새 기업에서 중시하는 인성 역시 부모공경을 해 본 사람만이 제대로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이 계명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는 우선적인 목적은 자녀가 세상에서 잘되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을 경외하도록 만드는데 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여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자녀들은 자연히 세상에서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라는 책을 쓴 이소영 마이크로소프트 이사는 지금 이시대는 함께 공존하며 함께 번영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사람을 요구하는 감성의 시대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혼자만 공부하여 똑똑한 사람이 되도록 하면 실패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관심있는 분야를 개발하고, 커뮤니티에 참가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런 커뮤니티에서 리더로서 역할을 하여 인성도 길러라는 대안책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는 이미 그런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가정 생활, 교회 생활을 잘 하면 저절로 그런 능력이 길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세속의 가르침이 알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목적은 주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안되는 경우 역시 많습니다. 그 만큼 자녀 양육은 쉽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지혜와 은혜를 받도록 그리고 자녀들을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자녀들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넘어 주님을 만나서 함께 영원한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자녀 양육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화목과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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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화목과 그리스도 (베드로전서 3: 1-7)

가정에서는 약한 자가 오히려 관심을 받고, 힘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부자는 가난한 자를, 지식이 많은 자는 지식이 없는 자를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가정은 그야말로 천당은 아니어도 팔백당 정도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사랑은 질서를 전제로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의 두 기둥은 남편과 아내입니다. 현재 이런 이상에 도달한 가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는 가정은 비그리스도인들의 가정과는 무엇인가 달라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3장 1-6절까지 사도 베드로는 아내의 측면에서 어떻게 남편, 그것도 믿지 않는 남편을 섬길 수 있는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말에 있지 않고 순종에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내의 착한 행실을 보게 된 남편은, 도대체 그런 행실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 할 것이고 그런 행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오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되면 구원에 이르는 길로 한 걸음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행실을 올바르게 가지고 남편에게 부드러운 말과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가정에 어려움이나 여러 문제가 닥쳐 남편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경우, 이제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해결할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열심히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 문제는 깨끗이 해결되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을 체험한 남편은 반드시 주님 앞에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적인 행실과 기도 두 가지는 아내된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만 하는 미덕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야만 합니다.

안식일 논쟁과 그리스도 – 심판과 구원

안식일 논쟁과 그리스도 – 심판과 구원 (요한복음 5: 19-24)

유대인의 어느 명절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를 이적으로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이적을 도외시하고 분이 나서 주님께 온 유대인들은 왜 구태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졌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안식일에 일하실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인 당신 역시 안식일에 일하고 있다는 논지로 대답하시자, 유대인들은 더욱 주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신성모독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아버지께서 안식일에 하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이 하는 것이며, 실상 아버지께서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들도 그와 같이 하고 있다는 취지로 변론을 펴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아버지께서 아들인 자신을 사랑하시기에, 자신이 행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이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진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실상 아들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지만, 자신이 아버지와 독립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가장 큰 소원은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오직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그 근거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며, 역시 그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사랑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둘러싸여 이런 변론을 하시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간의 불순종이라는 원죄를 치유하시는 일환이라고 판단됩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도 아버지께 그렇게 순종하셨는데 하물며 일개 피조물인 인간이야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하여야만 하겠습니까? 이런 순종하시는 아들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 큰 권위를 주심으로써 반대자들을 놀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부활의 권능과 영원한 심판을 행하시는 심판자로서의 권능입니다. 심판을 행하시기 전 주님은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구원을 받아 심판에 이르지 않게 됩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하나님은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이 진리의 말씀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