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봉독: 누가복음 6장 22-23절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인자로 말미암아” 핍박받으면 그 사람은 복이 있는 자라고 천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기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적 관점에서는 세상에서 평안하고, 부유하고, 명예와 지위가 있으며, 건강한 사람이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보는 축복은 이 세상이라는 한계가 있으며, 다음 세계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는 세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만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씻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은 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자기와 다른 것을 발견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핍박을 시작합니다. 이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도리어 큰 축복으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우리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죽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만 합니다.
1. 이 세상에서의 행복은 세상적 한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핍박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3. 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
4복과 그리스도 3
제자들과 함께 평지에 내려오신 주님은 세 번째 복으로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를 울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가난 때문에, 병 때문에, 사망 때문에 울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믿음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슬픔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그 사람은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만,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독특한 슬픔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나 의를 위해 받는 슬픔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전자로 인해 슬퍼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이기 때문에 웃을 것이며, 후자로 말미암아 슬퍼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가 받는 핍박이기 때문에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만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쁨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늘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1. 지금 무엇이 우리를 울게 만들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지금 울고 있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복이 있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3. 지금 우리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웃게 만드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
모든 사람은 유한하기 때문에 부족이라는 말은 우리의 존재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 부족함을 채우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인기 가수는 항상 인기에 굶주려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인기를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부자는 부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재물을 쫒게 되는 것입니다. 유명 정치인은 날마다 정치 권력에 주려 있어 권력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인생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채워질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주린 자란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배부르게 채워주시되 그 완전한 것은 마지막 때에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다시는 죽거나, 고통하거나, 병들거나, 애통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죄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가 오기 전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부족함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채워도 채워도 목이 마르고 주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먼저 깨닫고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온갖 힘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히 성령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1. 신자들은 모든 인간은 유한자라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 신자들은 마지막날에는 완전한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3. 신자들은 예수님이 늘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 아버지의의 뜻을 행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첫째 복과 그리스도
성경봉독: 누가복음 6장 20절 열 두 제자와 함께 평지에 내려오신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살아가야 할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첫 번째 길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못난 모습, 죄된 형상을 보고 가난한 심령을 가지는 길입니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더욱 마음이 낮아지는 것이 통례이지만 이것은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부자이건 관계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떳떳하게 설 수 없는 자임을 인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복이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죄가 있지만 그리스도를 믿어 용서받은 죄인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용서받은 죄인들은 마지막 심판을 면하고 영원한 나라를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의 축복을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남은 생애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1.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된 모습을 깨달은 사람이 가난한 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을 용서하시고 천국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죄사함 받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
생명나무와 그리스도
성경봉독: 누가복음 6장 17 – 19절
열 두 제자를 선택하신 주님은 산에서 내려오사 평지에 서셨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던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만지려고 힘을 썼는데 이는 능력이 주님으로부터 나와 모든 사람을 낫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야말로 인간이 범죄함으로 접근을 금지당하였던 생명나무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아무리 생명나무의 역할을 하셔서 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신들 그 고침받고 귀신으로부터 자유를 받은 사람들은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뒤에는 죄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로 가셔야만 하셨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은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은 “용서받은 죄인” 라는 자각을 가지고 공의와 자비를 행하면서 성령님과 겸손하게 동행하여야만 합니다.
1. 그리스도께서 생명나무의 역할을 하신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께서 생명나무가 줄 수 없는 죄사함의 은혜를 주셨다는 진리를 깨달아야만 합니다.
3. 그리스도께서 죄사함을 주신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겸손히 성령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열두 제자와 그리스도
성경봉독: 누가복음 6장 12 – 16절
오늘 주님은 산 위에 오르셔서 많은 사람 가운데 열두 명의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 목적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전도하러 보내기도 하시며, 모든 약한 것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열두 명의 이름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가족인 교회를 세우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주님의 교회가 되려면 그리스도, 기도, 은사와 제자들이 필수적입니다. 이들은 부족하였습니다. 서로 싸우기도 하였습니다만 결국 당신의 백성들의 죄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온전해졌습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모습이 되기위해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더나아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를 제자 중 하나로 선택하셨고 선대하셨습니다. 이런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선대하면서 친절하게 대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1.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열두 제자들의 삶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2.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3.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온유하심을 본받아야만 합니다. |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과 그리스도
성경봉독: 누가복음 6장 6 – 11절
주님은 또 다른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시다가 오른 손이 마른 사람을 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그런 병은 안식일에는 그대로 놓아두어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터무니 없는 성서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인간의 휴식을 위해 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은 안식일에도 천지를 유지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안식일의 주인” 이시기 때문에 안식일 규정에 얽매실 수 없는 분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인간의 경험과 상식의 측면에서도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은 바른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의 손을 기적으로 고쳐 보내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예배에 관한 의식적인 면이 실질적인 하나님의 의와 충돌할 경우 우리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세워야만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 순종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말씀은 확립된 경험과 상식 안에서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3. 그리스도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의를 세워야 합니다.
안식일 논쟁과 그리스도
성경봉독: 누가복음 6장 1 – 5절 오늘 본문에서 밀밭 사이를 걷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고 있을 때 바리새인들은 이들의 행위가 안식일을 범하는 행위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자칫하면 제자들은 벌을 받을 수 있는 사정이고 주님의 사역은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께서는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이 허기가 졌을 때 제사장이외에는 먹을 수 없는 하나님 앞에 진설한 떡을 받아 먹은 사건을 들어제자들의 행위를 변호하셨습니다. 이는 의식법의 엄격한 준수는 필요하지만 예외적으로 깨드리는 것이 허용될 때가 있는데 궁핍한 사람을 구제하는 등 자비가 필요할 때라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하여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의 최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므로 당신이 원하면 안식일에 어떤 것도 허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라 생각하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1. 그리스도의 사람은 지식이 사랑에 의해 온전해 진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되심을 알아야만 합니다. 3.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를 따라 생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
가정과 그리스도
에베소서 5장 33절 – 6장 4절
모든 사람에게서 가정은 “출생, 교육, 결혼, 죽음, 성공, 실패”등이 일어나는 장소로서 인생의 행복을 좌우하며 영원의 삶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성공하여도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불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셔들여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때 비로서 질서가 잡히고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고 부활 승천하사 모든 능력을 가지신 성령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 가정에 그리스도 안에서 부부가 서로 사랑과 존경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며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등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사명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사명의 실현을 위해서는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은 주님의 명령을 실천하면서 기도할 때 비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며 이때 우리 가정에 사랑,희락, 화평, 오래참음과 같은 성령님의 열매가 맺혀지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정의 리더가 되시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가정이 주님의 뜻이 실천되는 사명의 대상임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를 도우러 오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금식의 논쟁과 그리스도
누가복음 5장 33 – 39절
오늘 본문에서 침례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금식에 대하여 질문하였습니다. 주님은 먼저 “신랑의 친구들이 혼인 집에서 금식할 수 있는가?” 라고 반문을 하시면서 제자들이 신랑인 자신과 잔치를 즐기는 것은 옳바른 태도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더나아가 새 옷조각과 낡은 옷과 관련한 비유와 새포도주와 낡은 가죽부대의 비유를 들어 이런 입장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형성한 일반상식은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적 열심만으로 이를 깨뜨릴 때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이에 따라 사람들을 자유하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전파하신 이 복음은 구원받은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율법하에 놓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남을 섬기는 삶을 말하며 이렇게 살아갈 때 비로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우리가 살아가는 일반 상식은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2. 우리는 복음이 주는 자유를 알아야 합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남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