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중심의 마음과 그리스도

요한복음 7장 16-18절
AD29년 10월 초 초막절을 맞이하여 비밀리에 예루살렘 성전에 이르신 주님은 명절 중간이 되자, 돌연 성전에 올라가셔서 모여 있는 수 많은 유대지도층과 군중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교훈의 핵심은 당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너희들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왔다. 이제 내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인 것을 믿으면 그는 죄사함 받고 영생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당연히 이 교훈과 선언은 예수님 스스로 영광을 취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그렇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라는 메시지가 참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표적이라는 신임장을 여러 번 거듭하여 보여주셨고, 그 표적의 최종판이 부활입니다. 또한 모세율법을 온전히 해석하여 참다운 가르침을 주셨으며, 이를 기반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교훈에 관한 진리는 순종하여 체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석양의 아름다움을 아무리 맹인에게 알려준들 볼 수 없는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로 보건데 순종은 영적 지식을 얻게 하는 기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피로 중보자 되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겸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도움을 부르짖게 됩니다. 주의 뜻을 행하기 위해 부르짖는 기도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풍성하게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하늘에 그냥 계셔도 하나님으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분인데, 육신을 입고 내려 오심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신약성경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된 주와 그리스도

요한복음 7장 9 – 18절
AD 29년 10월 초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모여든 전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과 관련하여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이미 예수님에 대하여 반대하는 유대 당국자들을 두려워 하여 드러나게 말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은 그후 60년 간 계속되다가 AD90 년 유대인들은 얌니아에서 모여 회당에서 완전히 그리스도인들 축출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상황을 반영되어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에게 증거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한편, 비밀리에 예루살렘으로 가신 예수님은 명절 중간이 되자 갑자기 성전에 올라가셔서 당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가르친다고 선언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물론 그 가르침은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만, 해석의 권위는 하나님의 사도요 아들로서의 자격입니다. 그리고 그 자격을 입증하는 신분증은 주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표적들입니다. 성전에 모여 있던 모든 유대학자들과 지도층들은 그 해석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님은  말라기 3장 1절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냐의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는 열망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합니다. 즉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려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요지입니다.

하나님의 때와 그리스도

요한복음 7장 1-13절

오늘 본문의 사건은 AD29년 10월 중으로 유대인의 3대 명절 중의 하나인 초막절이 다가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형제들의 눈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유대로는 가지 아니하시고 갈릴리에서만 전도하시는 형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유월절(3월), 칠칠절(5월) 행사는 이미 건너뛰셨고, 임박한 초막절 역시 참석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본 형제들은 유대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호기있게 당신을 증거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는 형제들도 형님이신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이미 2장에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하신 그 말씀을 되풀이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때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를 말하며, 그 때는 6개월 후 유월절로 이미 구약에 정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반드시 그 규정한 때와 규정하신 방식으로 죽으셔야만 백성의 죄를 담당하실 수 있는 것은 물론, 우리가 그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였음을 알 수 있는 가장 큰 표적입니다. 구약은 요나의 사건처럼 죽은 지 사흘 후에 부활셔야 하며, 초실절 행사에서 예표된 날, 즉 유월절 후 첫 번째 돌아오는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부활하셔야 하며, 부당한 심문을 받고 채찍질을 당한 뒤, 유월절 양이 잡히는 바로 그 날 죽으셔야만 하셨습니다. 이 4 가지가 전부 충족되는 때는 바로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이때가 이르면 주님은 당신에게 적대적인 예루살렘으로 제자들 앞에 서서 성큼성큼 걸어가실 것입니다(막10:32).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

요한복음 7장 1-13
요한복음 7장부터 10장 21절까지는 초막절에 일어나 예수님의 강화와 표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모세 율법은 1 년에 3 번은 이스라엘 모든 남자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보이도록 규정하고 있으며(출34:23), 그 3번은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살해 의사 때문에 칠칠절이 있었지만, 주님은 올라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6장 사건이 일어난 후, 7개월이 흘러 초막절이 다가왔습니다. 때는 AD 29년 10월 경으로 6개월 지나면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 부활 승천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배경을 전제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이 보기에 자신의 큰 형님이 갈릴리에서만 돌아다니고 유대로 가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에 좋지 않게 생각하여 유대에 가서 큰 이적들을 행하여 떨어진 추종자들을 모으라는 권고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7개월 전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그 다음날 가버나움 회당에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기적의 의미를 강화하자 불쾌하게 여긴 제자들 중 많은 사람이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는 것은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시는 것이지, 추종자를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목적이 틀리기 때문에 육신의 형제들의 권고를 들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그리스도의 태도를 본받아야만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성취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이런 사람이 나타날 때 비로소 세상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참된 양식과 그리스도 (8)- 그리스도께 선택받은 자들

요한복음 6장61-71
오늘 본문에서 잠시만 존재하는 육신을 만족하게 하는 일시적, 썩을 양식을 떠나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양식을 먹으라고 가르치시며 어제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당신의 진정한 뜻을 밝히시자, 군중들은 육신을 충족시키지 못한 예수 필요 없다고 떠나고, 끝까지 듣던 제자들은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등, 하늘로 올라가신다는 등의 가르침에 그만 불쾌하여 떠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은 육신의 배를 만족시키기 위해 빵을 생산하는 빵 공장을 차리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차리려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자녀들을 생산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다만, 그 대상자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도하여 온 자들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영접하여 피로 그 죄를 씻으시고, 그들에게 당신과의 교제가 그 핵심인 영생을 주시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참된 양식과 그리스도 (7-1)- 그리스도께 선택받은 자들

요한복음 6장 60절 – 71절
계시와 약속이 아무리 크더라도, 몇몇 사람은 믿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 메시지를 믿음과 결합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하면 믿는 자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복음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히4: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을 결부시킬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때의 하나님의 말씀은 “올바르게 해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죽으심,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님의 오심에 대한 가르침까지 들은 가버나움 회당의 제자들은 더욱 불쾌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세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 충분하고 메시야는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한 부분들(예, 식량의 공급, 병의 치유, 로마 제국을 정복)만 채워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 주면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한 자들로, 죄사함을 얻게 하기 위해 아들에게로 이끌지 아니하시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에게로 이끌지 아니하시면 그 어떤 누구도 예수님을 알 수도 없고, 그분에게 가서 죄 사함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모두는 영원토록 함께 교제를 나누며 살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기도한 자들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신 증거 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하나님께 반역하지 말고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를 섬기는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부께서 귀히 여기실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를 섬기시겠습니까? – 요한복음 12:24 – 26절

참된 양식과 그리스도 (7)- 그리스도께 선택받은 자들

요한복음 6장 60 – 71절

당신이 참된 양식으로서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을 가진다는 예수님의 강화에 불쾌한 생각을 가지고 웅성거리는 제자들에게 추가 설명을 하신 부분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 제자들은 이미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였기에, 주님은 당신의 승천을 말씀하십니다. 이해하기 어려워도 당신이 이들을 위해 죽고 부활하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승천하는 것을 목격한다면, 속죄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당신이 죽을 몸을 가지시고 행하는 이적들은 죄와 사망에 지배를 받는 이 세상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죄 용서를 받고 영원한 부활의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죄에 대한 대가를 당신이 치루실 것을 믿어야 하는데, 그것을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로 강력한 상징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의 죄의 대가로 죽으신 후에 다시 살아나사 승천하셔야 하는 것은 모든 불순종하는 것들을 다스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마지막은 사망의 철폐입니다. 당신이 승천하셔야 성령께서 오셔서 당신의 말씀들- 믿는 자에 대한 사면의 선언 -을 가지고 각 사람에게 증언하심으로 제자들을 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체를 글자그대로 그들이 씹어먹는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런 효력도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지 않고 그리스도를 먹을 수 없습니다.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들이 인간에게 능력으로 도달하게 되는 통로는 “예수의 말씀들을 사용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알아야 합니다.

참된 양식과 그리스도(6)- 그리스도께 선택받은 자들(2)

요한복음 6장 60 – 71절

오병이어의 표적을 베푸신 다음 날 가버나움에 제자들과 함께 가셨더니, 기적의 떡과 생선을 먹은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습니다. 이들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주님께 먹으면 결코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영생할 수 있는 그 떡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은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영생을 한다는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물론 이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당신이 쏟을 피와 찢길 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은 냉소적일 뿐만 아니라, 그 말씀 자체가 불쾌하여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더욱이 주님은 친히 선포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버지께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아버지로부터 듣고 배우지 못하면 어떤 누구도 자신에게 올 수 없다고 하시자, 제자들은 더욱 불쾌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고, 누구는 받지 못한 자들이겠습니까? 받은 자는 오직 그리스도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고, 받지 못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받은 자들은 자신의 현실을 냉철하게 계산하고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죄사함을 받고, 삶의 지침 역시 주 예수의 가르침, “네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너도 남을 대접하라”는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바로 주님의 말씀에 거함으로 주님 안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참된 양식과 그리스도(6) – 그리스도께 선택받은 자들

요한복음 6장 60-71절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며,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만 영생을 가진다고 선포하시자 이를 들은 제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불쾌하였기 때문입니다.우리도 오늘날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때 복음이 우리 감정을 건드리는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임하셨다”는 메시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복음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입니다. 회개하여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장 마음에 “내가 비록 의인은 아니나 그렇다고 큰 죄인도 아닌데…. 복음이 왜 필요하지?” 이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 산을 넘지 못하면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여도, 그것은 예수님의 힘을 빌려 세상에서 잘 살고, 민족이 독립을 하고, 가정에 평화를 얻으며, 병이 고침을 받으며, 마음에 평화를 얻으려고, 삶에 지침이 되는 좋은 말씀을 들고 죽어서 천국에 가려고, 등등으로 복음이 재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평화를 얻고, 가정에 화평이 있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부자들, 지식인들은 예수가 필요 없습니다. 여기 제자들 역시 다른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제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들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들의 인생의 지침이 되고, 성령께서 그 말씀이 삶 가운데 열매를 맺도록 힘주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살아 있는 생명의 종교로서 불교와 타 종교, 그리고 철학과의 차이입니다.

참된 양식과 그리스도(5)- 신자의 정체성

요한복음 6장 52 – 59절
어제 오병이어의 기적의 빵과 생선을 먹은 제자들은 가버나움 회당에 앉아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인데, 그 떡은 바로 자신의 살과 피를 의미한다고 하시자 서로 다투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당신의 살이 참된 양식이고, 피가 참된 음료이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다고 하신 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들을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물러 산다고 하심으로, 이른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정식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5장에 가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서 이 부분을 좀 더 명쾌하게 설명하시지만, 기본적으로 이 말씀은 부활 승천 후 보내주실 성령님이 신자들 안에 영원토록 거주하심으로 성취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정체성은 바로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들입니다. 이들에게만 성령께서 함께 계실 수가 있습니다. 신자에게 오신 성령님은 우리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시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셔서, 우리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보다 훨씬 더 나은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그래서 나오는 열매가 이른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요, 그리스도의 의의 열매입니다. 이를 위하여 성령님은 아들을 생명의 떡으로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건은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무르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