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우리가 명백히 주장하고 확립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최종성입니다. 그 분의 성육신이 유일하며(그는 한 분이자 유일하신 신(God-man)이심), 그 분의 속죄가 유일하며 (그분만이 세상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음), 그분의 부활이 유일하기(그분만이 죽음을 정복하셨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 외에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고(탄생),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죽음), 죽음을 이기신(부활) 이가 없으므로 오직 그분만이 죄인들을 구원할 자격이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대한 이순신 장군으로 부를 수 있지만 위대한 예수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 그분은 위대한 분이 아니라 유일하신(the Only)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과 같은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여호와이니 니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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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나눔

2017. 4. 17-21
어제 4월 16일 주일은 부활절이었습니다. 부활의 첫 증인은 단연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은 4개의 복음서 전부 부활의 첫 증인으로 나옵니다. 주님의 부활은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나사로는 죽은지 4흘만에 주님의 권능에 의해 다시 살아났지만 그것은 다시 죽을 몸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나사로는 결국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은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주님의 부활의 가장 큰 의미는 이런 불멸의 몸을 가지시고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만유의 주님으로 등극하셨다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불멸의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을 당신 발 아래 복종시킬 때까지 주님은 반드시 왕으로 통치하셔야만 합니다. 맨 마지막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입니다. 사망이 없어질 때는 모든 신자가 불멸의 몸으로 부활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때입니다. 그때까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뒤 주님은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고 자신도 복종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유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실 것입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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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나눔

2017.3.6 – 10
고통은 인내를 인내는 단련된 인격을 낳으며, 그러한 인격은 소망을 낳게 됩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롬5:2)고 말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넘어선 미래에 대한 소망을 말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바로 지금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어 가실 것을 소망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리고 이 소망은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면 살수록 우리가 변화되며, 또 스스로 변화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점점 예수님을 닮아 갑니다. 자신이 점점 더 사려 깊어지고, 인정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도 더 많아지고, 더 강해지고, 더 지혜로워지고, 더 순전해지며, 더 오래 참게 됩니다. 이에 따라 우리가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하나님이 약속대로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더 읽기

SBC매일말씀나눔

17/2/20
오늘 부터는 레이 스테드먼이 지은
고통이 주는 교훈(IVP 소책자)을 가지고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책자는 약40년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그 당시에 그가 들은 이야기가 먼저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부모의 침실에 들어와 총을 쏘아 겨우 피한 뒤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그 소년을 정신병원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부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넘기고 간신히 살아난 호된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필두로 암과 싸우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난에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고 적고 있습니다. 지금이나 그 때나 아니 인류 역사의 어느 순간을 보더라도 사람들은 많은 문제들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와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기란 무척 힘들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시련을 당할 때 먼저 보아야 할 성경은 로마서 51-5입니다. 오늘은 로마서의 이 부분을 읽고 묵상하면서 믿음과 시련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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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나눔

차를 몰고 가다가 수렁에 빠지면,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가라앉는 차를 바라보며 무력하게 서 있어야 한다면,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그리 위안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차는 손상되었으며,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인도를 놓쳐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일까요? 손상된 부분은 회복 불가능한 것입니까? 이제 인생 행로를 포기해야 합니까? 감사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우리의 실수와 어리석은 행동을 우리를 위한 그분의 계획 가운데 녹아들게 하시며, 그것에서 선을 가져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주권에서 나오는 경이로움의 일부입니다. 내가.메뚜기.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25-26).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여 절망에 빠진 후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베드로를 찾아가셨으며(고전15:4-5), 다시 갈릴리 바다에서 만나서 함께 조반을 드신 후 그에게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21). 그 이후에도 베드로를 인도하시고 그의 행로를 바로 잡아주셨습니다(10, 2:11-14).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바로 같은 예수님이 오늘날에도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진노를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바꾸어 놓으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불행 역시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분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제임스 패커 박사는 어느 목회자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교회와 교파를 떠나야 한다고 느낀 그는 아브라함과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분임을 노래한 찰스 웨슬리의 찬송을 인용했는데 이 찬양시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장이시며/ 위의 것을 추구하는 모든 자의 인도자시여,

우리는 당신의 그늘 아래 거하나이다./ 당신의 보호하시는 구름,

당신의 은혜는 우리의 힘,/ 당신의 말씀은 우리의 통치자,

여호와의 영광은 우리의 목적이 되었나이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103:1-2).

 

인도는 은혜의 언약 아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주권적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는 우리가 갈 길을 보여 준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가 어떤 실수를 저지르든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보장한다는 더 근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발을 헛디디기도 하고 딴 길로 빗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하신 팔이 우리를 받치고 있습니다.그분은 우리를 붙드시고 구조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선한 분이십니다. 따라서 인도를 논하는 올바른 맥락은 우리 영혼을 망치도록 놓아 두지 않으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라는 맥락일 것입니다. 이 논의의 관심사는 우리의 안전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새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안전은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6:10).

 

조셉 하트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예수님/ 그분의 영이 우리를 안전하게 집으로 인도하시도다/ 우리는 과거의 모든 것을 인하여 예수님을 찬양하며/ 앞으로 올 모든 것을 인하여 예수님을 신뢰하나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불신하는 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면이 있지만, 그것이 보호자 되시는 주님,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께 의지하는 기쁨을 희미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 위에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죄의 담을 헐어 버리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이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입니다. 이 지극히 선하시며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담대하게 하루 하루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0-11).

매일말씀나눔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여섯 가지 함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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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자신을 점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으며, 생각보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은 잘 알아챌 수 있지만 자신 안에 있는 그런 성향은 간과해 버리곤 합니다. 그러므로 자아의 가치를 고양하거나 도피주의적인 혹은 자기 탐닉이나 자기 과장을 유도하는 느낌을 하나님의 인도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런 느낌들을 간파하여 그것을 믿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이성간 느낌의 경우에 특히 더 그렇습니다. 생물학자이자 신학자인 바클레이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종종 사랑에 빠지는 것에 수반되는 기쁨과 행복감은 쉽사리 양심을 침묵시키고 비판적 사고를 억제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결혼하도록이끌림 받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그들은 주님이 아주 분명하게 인도해 주셨다고 말할 것이다) 말하는가! 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묘사하는 것은 호르몬의 신비로운 균형 상태로서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극도로 쾌활하고 행복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그런 특정 행동을 왜 옳다고 느끼는지 물어야 하며, 스스로 이유를 대보아야 하는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자문을 받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139:23-24).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여섯 가지 함정(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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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특정인의 견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교만과 자기 기만을 깊이 인식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것이 있음을 간파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때로 선의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그럴 듯하게 설명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정신과 양심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기만적인 사람들에게 홀려서 정상적인 기준으로 그들을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재능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 그런 위험을 알고 자중하려 해도,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천사나 선지자로 취급하여 그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탁월한 사람들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반드시 옳은 것 또한 아닙니다! 그들과 그들의 견해를 존중해야 하지만 우상화해서는 안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5:21).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여섯 가지 함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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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라는 말은 시편에서 반복되는 주제이며, 하나님이 종종 우리로 하여금 기다리도록 하시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행동하는 데 필요한 정도 이상으로 미래에 대하여 알려주신다거나, 한 번에 한 걸음 이상을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의심이 가거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행동이 필요할 때가 되면, 그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편1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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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인도를 받았다고 여긴 후에 평탄한 길을 걷게 된다고 해서, 그것이 바른 인도를 받았다는 증거는 아님을 마음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것 같은 길을 따라왔으나 이제 그 길을 따르지 않았으면 생겨나지 않았을 많은 새로운 문제들에 빠질 수도 았습니다. 고립, 비난, 친구들의 배신, 온갖 종류의 좌절과 같은 것들입니다. 문제에 빠지게 되면 그들은 즉시 염려하며 선지자 요나를 상기하곤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하고 동쪽으로 가다가 큰 폭풍을 만나고 바다에 던져서 물고기의 밥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요나의 잘못을 깨우쳐 주기 위해 일어난 일인데 자신을 요나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지혜로운 사람들은 새로이 겪는 어려움을 보면서 자신이 인도받은 길을 주의 깊게 검토해 보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어려움은 언제나 우리의 앞길을 검토해 보라는 부르심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반드시 곁길로 벗어나 있다는 표시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3:11).

SBC매일성경

2017/1/9~1/13

성경은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명백한 약속을 담고 있으며 우리는 그 약속을 통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32:8). 이사야 58:11은 만일 백성들이 회개하고 순종하면,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겠다는 확신을 담고 있습니다. 인도를 주제로 하는 시편25편은,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8-9,12)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잠언3: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 가운데 공통점은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뜻에 순종할 때만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뜻을 가르치사 우리로 깨닫게하신 후에야 우리가 그 뜻을 행할 수 있고 그 다음에 우리를 당신의 뜻 가운데 인도하실 수 있다는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신약에도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동일한 기대가 나타납니다. 골로새 교회 사람들이,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게 해 달라는 바울의 기도와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게 해 달라는 에바브라디도의 기도( 1:9; 4:12)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알릴 준비가 되어 있으시며 기꺼이 알리신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지혜라는 말은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삶을 안정되게 하는 행동에 대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그리하면 주시리라라는 야고보 1:5의 약속은 사실상 인도에 대한 약속입니다. 또한 바울은 너희는 이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 라고 권면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는 것이고 그 지혜는 역시 하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하여 가르치는 성경의 진리로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들이 무지와 무능으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해 줄 책임이 육신의 부모에게 있다면, 하나님의 가족도 그와 같다는 사실을 의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좋은 가르침을 주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주고 계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으로 구하는 모든 자에게 선한 것을 주실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인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이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이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7:11-12)고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자 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대접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인도를 받기 위해 가장 선결되어야할 전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고 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교훈이란 교리와 윤리, 하나님의 역사와 뜻에 대한 포괄적인 가르침을 의미하며,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함이란 이 교훈을 우리의 무질서한 삶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는, 즉 하나님의 길로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삶은 약속된 결과입니다. 이런 삶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삶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궁극적인 목적이요, 열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들 중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8:29).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성경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의 인도는 특히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 구원의 방법, 영생의 약속등에 대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올바른 믿음을 가지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가 하신 일이 어떤 것인지, 그 결과 우리에게 주어진 사죄의 은총과 영생의 확신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결심은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기름부으심이요 가르침입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0, 27)

SBC 매일성경

오늘부터는 제임스 페커 박사의 하나님의 인도라는 IVP소책자를 중심으로 묵상하기로 하겠습니다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인도와 관련하여 어려움을 겪습니다그 이유는 하나님이 정말 자신을 인도하시는지 의심하기 때문이 아니라하나님이 분명히 그들을 인도하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인도하실 수 있으며또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또한 책을 읽거나 친구 혹은 설교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인도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자신의 어떤 잘못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또 다른 경우에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인도하시지만 자신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염려합니다그런데 그 염려는 여러분의 안전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올바른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하나님의 인도를 논의하는 올바른 맥락은 우리 영혼을 망치도록 놓아 두지 않으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우리 안전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우리의 안전은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한편하나님의 인도가 실재한다는 믿음은 두 가지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첫째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재한다는 것이며둘째는 하나님이 우리와 의사소통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성경은 이 두 사실을 잘 뒷받침해 줍니다이 두 가지 사실을 뒷받침할 성경적 사건은 무엇일까요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1:9-11).

 

하나님의 계획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성서적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사건입니다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시기 전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15:13-14) 하셨습니다이런 계획을 따라 야곱의 집안 70명이 애굽으로 들어갔고 그 후 사백 삼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으로 성장하였고 하나님은 이들이 애굽에 종 살이를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그리고 계획한 세월이 차가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 이스라엘 이백만 명을 이끄사 애굽을 나오게 하시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바다와 사막에서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또한예수님의 모든 지상 사역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4:34). 하나님은 바울을 위한 계획도 가지고 계셨습니다(21:14; 22:14; 26:16-19). 이와 같이 하나님은 모든 자녀들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8-29).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가지셨다는 성서의 많은 구절과 사건을 믿은 뒤에도 한 가지 의문은 그분이 당신의 계획을 우리에게 전달하실 수 있을까요물론 그렇습니다인간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역시 의사소통을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과 계획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셨습니다하나님은 예수님과 바울을 인도하셨습니다사도행전은 서너 번에 걸쳐 이러한 상세한 인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광야로 보내사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는 빌립(8:26, 29),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들이도록 지시를 받은 베드로(10:19-20),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보내라는 명령을 받는 안디옥 교회(13:2)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이렇게 꿈과 환상과 직접적인 말을 통한 인도는 사도들과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조차 예외적인 사건이었지만 이 사건들은 적어도 하나님이 자신의 종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시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3:6). 

 

오늘은 하나님의 인도라는 주제를 잠시 벗어나서 우리가 어떻게 튼튼한 믿음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튼튼한 믿음을 가지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무슨 일을 하셨느지에 대하여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가지려면 증거에 기반을 두어야만 합니다우리가 증거를 가지려면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우리의 근거는 바로 성경입니다우리는 성경이 설명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의 집으로 인도받은 베드로는 고넬료의 가족이 구원받을 수 있는 좋은 소식 즉복음을 설명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유의 주님이신 사실을 먼저 언급한 뒤어떻게 유대와 갈릴리에서 전도하시며 귀신을 내쫓으시는 등 착한 일을 하신 사실그리고 유대인들이 로마사람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죽인 사실과 부활하신 사건을 언급하였습니다그리고 자신들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 함께 식사를 하였고이 분이야말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 재판장으로서 이 분을 힘입어야만 죄사함을 받는다는 진리를 선포한 것입니다이런 자세한 사항을 베드로는 마가에게 구술하였고 그래서 기록된 것이 마가복음입니다당연히 성경을 읽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우리 마음과 삶을 형성시키지 않고는 확고한 믿음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SBC 매일 큐티

이미 우리가 최순실 사건으로 세상이 얼마나 도덕적 혼란과 부패의 수렁에 있는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상은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는 자들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믿음 안에서 걸어온 그 이상으로는 사람들을 인도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주님과 함께 항상 그 다음 단계를 밟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면, 우리는 비전을 가진 지도자이며, 모든 상황에서 상처받은 세상에 하나님의 인도에 따른 확신에 찬 변혁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님의 대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0-21).

 

유혹을 이기는 비결 중의 하나는 좋은 습관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습관이란 특정한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인간은 모두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습관은 건강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반복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우리 삶 속에 훈련된 패턴입니다. , 좋은 습관은 행동으로 표현되도록 훈련된 최선의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잘못된 습관은 태만에서 생깁니다. 우리는 단순히 잘못된 일을 일관성 있게 반복하여 나쁜 습관을 만들곤 합니다. 잠언 25:28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습관을 개발하고 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손쉽게 정복당하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한 영역의 방어벽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머지않아 다른 영역도 무너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6:12-13). 

 

우리의 믿음의 방벽이 뚫리면 우리의 신앙적인 양심을 괴롭히던 것들을 더 이상 꺼리지 않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되는 날이 오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진짜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반면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보호해 주는 방어벽에 벽돌을 더 쌓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좋은 습관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경건한 반응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유혹하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기보다는, 애를 쓰며 노력하지 않아도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습관을 훈련하면 됩니다.그렇게 해서 한 영역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면 다른 영역의 통제도 성공적으로 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곧 튼튼한 방어벽의 보호를 받는 강한 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좋은 습관은 나쁜 습관 못지않게 깨뜨리기 어렵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 6: 16).

 

유혹에 잘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이 말은 어쩌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실제로 한 번도 시험받지 않은 영역들에서는 자신이 강하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그리스도께 깊이 헌신한 어떤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인과 결혼하였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혼 생활에 절대적으로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두려는 유혹은 그녀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수련회 첫날 아침 그녀는 같은 소그룹의 한 기혼 남성에게 특별히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가 겪은 결혼 생활의 문제와 유사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이 가지지 못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점심 식사를 하였고 이후에 저녁 식사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그는 그녀를 호텔 숙소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두 사람이 방 앞 복도에 함께 서 있는 순간 그녀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어제만 하더라도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 지금 현실이 되어 그녀를 강하게 유혹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진 뒤 바로 그들은 소그룹을 바꾸고 다시는 서로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그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무서워 하지 않던 길에서 들짐승이 당신을 덮친다라는 중국 격언과 같이, 우리의 삶에서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는 영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우리의 강점에 대해 기억할 또 한 가지는, 강점에는 어두운 부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소 사적이고 불경건한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얻기 위하여 우리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유혹은 보통 우리의 강점이나 재능이 있는 분야에서 발생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강점은 무엇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자신의 강점과 재능을 이용해 이루고 싶은 유혹은 무엇이 있을지 자문해 보십시오.이것은 매우 효과적인 유혹에 대한 방어 전략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배워야만 합니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4:3-4).

SBC 매일 성경

2016. 11. 28 12. 2

톰 아이젠맨은 이렇게 유혹을 이긴 자신의 사례를 적고 있습니다. 저는 강연을 위해 혼자 여행을 가서 호텔에 투숙할 경우 성적인 순결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 서원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절, 저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유료 시설 채널의 성인용 프로그램을 즐기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년 전 이러한 제 자신에 대해 슬퍼하며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 지속적인 순종을 위해 도움이 되는 전략을 개발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호텔 방에 들어서면 저는 제일 먼저 텔레비전의 유료시청채널을 지우는 코드를 리모콘에서 찾아냅니다. 아직 영적으로 깨어 있고 예민한 상태에 있을 때 그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가족 사진을 전부 꺼내어 탁자 위에 세워 놓고 모든 가족이 저를 지켜보도록 합니다. 그리고 집을 나서기전 아내의 손을 잡고 내가 돌아 오면 가족을 떠나있을 때 순결하게 생활하였는지 물어보게 합니다. 그의 아내는 항상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가 집에 돌아오면 즉시 상횡이 어떠했는지 묻는다고 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2).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유혹과 함정들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 범죄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어 그때마다 치안을 유지하지 못한 경찰을 탓하곤 합니다. 이 배후에는 이 세상의 어두움의 지배자들인 마귀와 그 부하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하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는 좋은 방법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세계에 끊임없이 드러내며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 모두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머리이신 주님으로부터 힘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해야 하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간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 갈수록, 그분이 누구시며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이 이루실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사탄에게 속을 가능성이 낮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14:38).

 

성경은 사탄이 존재하며 그의 주된 일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악한 그는 간교하고 영리하며 속이는 자이고 거짓말하는 자입니다(창3:1; 행 13:10; 요8:44). 사탄이 우리를 하나님과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성도들로 하여금 사도행전적인 믿음으로 무장하게 하고자 전 교회적으로 사도행전 읽기를 시작하여 40일 동안 40번을 완독하였습니다. 그러자3가지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한 무리는 별 반응이 없이 무덤덤하였고, 다른 한 무리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삶을 새롭게 변화하는 사람들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이단으로 변질이 되었습니다. 이단으로 변질 된 사람은 함께 교회의 가이드를 따라 읽은 것이 아니라 혼자 집에서 읽고 잘못된 해석에 사로잡혀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11-12).

 

사탄이 우리를 유혹에 빠뜨리기 위해 시도하는 첫 번째 작업은 우리를 죄에 대한 대화에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이나 의미에 대하여 혹은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의 최선의 유익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지에 대하여 의심을 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로.라고 말씀하시더냐? 그의 전략은 우리가 의심하거나 합리화할 기회를 많이 주고 우리의 욕망을 매력적이지만 금지된 대상이나 생각 혹은 경험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이 전략에 빠진 전형적인 사람은 바로 하와입니다(창3:1-5). 사탄과 죄에 대한 대화에 끌려들어간 하와는 종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그러면 우리가 이 단계를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은 무엇일까요?

 

사탄이 하와에게처럼 우리에게 죄에 대한 대화를 걸어온 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은 그러한 대화를 우리 마음에서 몰아내고 대신 하나님과 대화하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논쟁에서 사탄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예 그런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애초에 그런 논리를 거부하십시오. 완전히 끊어 버리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새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어떤 것이 당신의 인생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식의 잘못된 생각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악한 것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혹은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누구에게 빼앗기고 있으며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