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터예배

요한복음 3:14-21

에드워드 톰슨은 뉴욕치안판사였지만 법보다 믿음이 사람을 가장 확실하게 변화시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는 법정에서 만난 메리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당시 메리는 55살의 술주정뱅이 여자였다. 톰슨 판사는 머리가 헝클어진 채 몽롱한 눈으로 법정에 선 메리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술에 취해 온갖 범법행위를 하는 통에 무려 53번이나 재판을 받았고 6번 감옥에 들어갔다. 그리고 54번째 선고를 받기 위해 톰슨 판사 앞에 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메리가 전과 달리 선처를 부탁했다. 메리는 한 노신사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들의 귀향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절히 호소하는 메리의 모습에 톰슨 판사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는 보고 관찰을 선고했다. 단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고 하나님께 자신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메리는 변화되었을까요? 아니면 더 풀어진 모습으로 다시 톰슨 판사 앞에 나타날 것인가? 톰슨 판사는 재판에 임할 때마다 혹시 메리가 다시 잡혀오지는 않았는지, 마음을 졸이며 지켜봤다. 그러는 한편 매주 메리의 보호관찰관과 상담했으며, 메리가 다행히 교회 예배에 계속 출석하고 있으며, 교회 식구들과도 잘 교제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톰슨 판사가 외부 업무를 다녀왔을 때, 법원 직원으로부터 그의 부재 중 업무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메리가 왔었다는 말을 듣자 톰슨 판사는 매우 실망했었지만 메리가 잡혀 온 것이 아니라 뉴욕을 떠나가게 되어 톰슨 판사에게 고맙다며 인사하고 싶어 왔다는 것을 알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메리는 그 노신사와 결혼했고, 메리의 보호관찰관은 메리의 바뀐 모습에 캘리포니아로 이사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것이다. 법원 직원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메리는 이제 이전의 메리가 아니에요.” 우리가 실패했을 때 그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 보면 대개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지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메리처럼 통제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든지 혹은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든지 간에 그 문제의 본질에 들어가 보면, 대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거나 또는 삶에서 하나님을 우선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메리는 이전 메리가 아니에요, 결단의 순간 116-118).

그러므로 사람이 복음을 들으면 바뀔 수 밖에 없는 것은 복음은 예수 그리스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야기를 적어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의하여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그 거룩한 도덕법을 지킬 수가 없어 모든 사람은 범죄자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절망에 빠진 인류를 불쌍히 여겨 당신의 아들을 보내사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게 하신 사랑의 이야기가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들으면 어떻게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기 때문이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기 때문이라”(요3:14-17).

예수믿는 신자의 가치관

마가복음 12:28-34

김형석 교수님이 CGNTV에서 간증한 내용입니다. 어느날 중고등학교 교감이 교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선생님의 제자였습니다. 교수님으로부터 기념강의를 듣기로 하여 교장회의에서 결정을 하고 교섭하러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스케줄을 보니 어느 그룹에 그날 오후에 강연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못가겠다고 하니 제자가 아주 실망한 표정이었습니다. 너무 실망한 표적이었기에 마음이 아파서 조금 기다려보아라 내가 연락한 뒤 알려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그룹의 인사부장에게 사정이 이러한데 허락해주면 내가 대구에 갔다가 오겠다고 하니 인사부장이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옛날이어서 아침에 일찍 갔다가 서울에 도착해 보니 저녁이 되어 어두컴컴하였습니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이 정말 인생을 잘못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돈을 목적으로 일을 했는데 한평생을 다 그렇게 살면 돈 때문에 내 인생을 다 바치고 만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가? 돈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무슨 일이 더 소중한가 일의 가치를 찾아서 일을 해야겠다.” 그 다음부터 돈 보다는 일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래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돈이 더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짧게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길게 보니 일이 소중하기 때문에 일하니 수입도 늘어났던 것입니다. 그래 삶이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80세 즈음 되니 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여러가지 경제적인 수입을 주었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냐? 나를 위해서는 적게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많이 베푸는 사림이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부자는 누구냐? 돈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고 많이 주는 사람이다. 많은 재산을 줄줄 아는 사람이 영광스럽게 사는 사람이다. 하늘나라가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오늘 본문에 어느 서기관이 어느 계명이 크냐고 예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주님은 첫째는 전 존재를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서기관은 주님의 이런 가르침에 동의하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야말로 제사보다 더 낫다고 대답하니 주님은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사랑은 결국 주는 것이고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그 재물과 능력을 빼앗아 자신의 가치를 늘리는 쪽으로 살아가는 에로스적인 삶의 방식에서 무엇이든지 주는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방식으로 삶을 전환하여야만 합니다. 그러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치관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통지를 확장시키는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님의 마음에 각인을 시켜야만 하겠습니다.

계속 씨를 뿌려라

누가복음 8장 4-15

빌 하이벨즈 목사님은 집에서 쓰레기 처리 담당이어서 매주 화요일 밤마다 쓰레기 수거용기를 끌고 가서 길가에 내놓는다. 그러면 수요일 아침에 쓰레기차가 지나간다. 몇 년 전에 한 남자의 가족이 바로 옆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남자도 화요일 밤마다 쓰레기 수거용기를 끌고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주 내내 그와 목사님이 나오는 시간이 정확히 일치했다. 정각 9시에 나가면 여지 없이 그가 수거용기를 끌고 나오고 있었다. 어느 화요일 밤, 저 멀리서 그가 오는데 저편으로 건너가라는 성령님의 이끄심을 강하게 느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사님은 단순히 자신의 소개만 하고 끝나더라도 그에게 다가가기로 결단하고는 “자 가보자”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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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요한복음 4:1-8

윌로우 크릭의 빌 하이벨즈 목사님이 20대 초반 트리니티 대학의 길버트 빌레지키안 교수님에게 설교를 들었을 때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당시 교수님은 “여러분 평생 무엇인가에 삶을 바칩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쾌락이나 재물, 인기, 권력, 등 대상은 달라도 누구나 무엇인가에 삶을 쏟아 붓습니다.” 교수님이 계속 열변을 토하는 동안 목사님은 혼자 곁길로 빠져 자신의 질문을 탐구하였습니다. “나는 무엇에 삶을 쏟고 있을까? 내 살아가는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내가 정말로 말처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지, 가면 뒤에 이기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은 사업으로 큰 돈을 만질 꿈에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의 말씀이 자신의 심장을 파고드는 사이에 문득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강하게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원히 모른 채 영원한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 버림과 소외를 당하고 절망에 허덕이는 사람, 결코 만족을 줄 수 없는 성취와 명예를 위해 사는 사람,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돈을 쫒는 사람을 말입니다. 목사님은 그 청년의 때 예수님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사업상의 이익이나 돈이나 명예에 쏠리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영원한 관심은 오직 하나 사람 그것도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설교를 하시던 교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분의 집착을 배우기를 바라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는 그분의 바람을 알기에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줍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믿음 안으로 인도하는 일에 자기 일생을 바칩니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되어 섬기는 인생만큼 고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은 없습니다.” 교수님의 설교를 통하여 목사님의 인생이 나아갈 방향이 정리되는 순간 이었습니다. 사람의 인생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속과 변화의 힘을 진정으로 믿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단연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하늘 저편에서 땅으로 건너오셨듯이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건너가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삶과 말로 증거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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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Psalm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어느날 서해안에서 시카고로 돌아오는 개인 비행기에 부조종사로 탑승하였습니다. 조종사는 전에도 몇 번 함께 비행해 본 적이 있는 신사였습니다. 매번 이들은 순항 고도에 오르면 자동 조종으로 전환한 다음, 이런저런 주제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날 밤, 그들의 대화는 주로 지상 관제탑에서 수시로 보내오는 비행 패턴이며 날씨, 고도 정보 등 눈앞의 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도착 90여분을 남겨놓고 목사님은 조용히 하나님이 개입하실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더 중요한 주제로 접근하게 도와 주세요’ 그리고는 기회를 타서 목사님은 과감하게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 관제탑의 정보 없이 비행이 가능하냐고 조종사에게 물었습니다. “잠시라도 무선 장치를 끄고 홀로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을까요?” 그는 대번에 “당연히 불가능하죠!”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건 미친 짓이에요. 관제탑의 정보와 도움은 절대적이에요. 험악한 날씨에 더더욱 그래요.” 목사님은 자신감을 높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믿길지 모르겠지만, 천국과 연결된 무선 장치를 끈 채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은 하나님께 어떤 정보도 얻질 않죠… 눈도 못뜨고 폭풍우 속에 뛰어들었다가 추락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몰라요…” 조종실 안에 적막이 흘렀고 목사님은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몇 초후였을까. “정말 어리석은 짓이군요. 정말 그래요.” 그의 목소리는 진지했고 그때부터 시키고로 날아가는 내내 구속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음, 그 무선장치는 어떻게 켜죠?” 목사님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단순한 대답을 꺼냈다고 합니다. 몇 년이 흘러 목사님은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은 용기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많아진 이유는 주님의 구속의 메시지를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참으로 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구속이 스며들기만 하면 우리 주위의 완악한 사람들이 변하고 훨씬 좋은 삶을 살게 되리라고 목사님은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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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에베소서 2:5-8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2004년 11월 뉴욕은 가을이었다. 얼어 붙은 비, 지친 운전자들, 그리고 폭주를 만끽하는 불량배들이 탄 한 자동차. 그들의 흥분은 지역의 영화관에서 시작된다. 그 십대들은 액션 영화에 싫증이 나자 어떤 자동차에 침입 해 신용 카드를 가지고 비디오 가게로 간다. 거기서 그들은 400 달러 상당의 DVD 및 비디오 게임을 그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그리고 식료품 가게로 가서 식료품 점을 몇 점을 집어들었다. 감시 테이프가 20 파운드짜리 칠면조를 선택하는 아이들을 찍었다. 칠면조를 기억하여야 한다. 은색 니산 자동차의 금속 페달을 밟아 가면서, 아이들은 불규칙하게 도로 위를 달리다가 빅토리아 루볼로를 태운 현대 자동차와 충돌하고 만다. 그때는 새벽 0시 30분이었다. 44살의 빅토리아 루볼로는 롱 아일랜드에 있는 그녀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14살된 질녀의 노래 테이프를 들으면서 집과 따뜻한 난로를 고대하면서 가고 있었다. 차가 충돌하였을 때 20파운드의 칠면조는 빅토리아의 현대차 앞유리를 뚫고 들어와 운전대를 안으로 우그러 뜨리고 그녀의 얼굴을 강타하여 얼굴뼈를 모조리 부수어뜨렸다. 빅토리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8시간의 수술과 뒤 이은 3주간의 회복시간이 지난 후 친구들과 가족은 빅토리아의 모습을 보고 멍할 수 밖에 없었다. 빅토리아는 스토니부룩 대학 병원에 수동적으로 누워서, 자세한 사정을 들었다. 그러나 얼굴에 마스크가 씌여져 있어 그녀의 감정을 분별하기는 어려웠다. 도자기 같이 산산히 부수어진후 지금 티타늄 플레이트들로 고정시켰고 한 쪽 눈은 인조필름으로 부착시켰고, 턱은 줄로 매여져 있었고, 기관은 절개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과 언론 매체는 연일 뜨거웠다. 추수감사절에 걸쳐 뉴욕시민들은 자신들이 빅토리아와 같은 사고를 당하지 않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에는 자신들의 건강과 행운을 조금 더 소망하였다. 신년에 들어오자 시민들은 정의를 부르짖었다. 그들은 특히 칠면조를 들고 있던 18세난 소년 리안 커싱에 대해 비난하였다. 그의 얼굴은 산산히 부수어 져야만 하고, 그의 인생은 파멸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이들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법원의 손에 있었다. 2005년 8월 15일, 리안과 빅토리아는 법정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사실 얼굴과 티타늄볼트로 얼기설기 짜맞춘 얼굴의 만남이었다. 교통사고후 고통스러운 9개월이 지나갔다. 빅토리아는 도움없이 법정에 걸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 리안 커싱은 떨면서 선처를 호소했다. 법원은 6개월의 금고와 5년의 보호관찰 그리고 약간의 상담조치와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사람들은 분개해서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이게 우리가 줄 수 있는 모든 벌이란 말이야? 리안은 자신의 최후 진술을 하고는 빅토리아를 돌아 보았다. 그는 절망해서 울고 있었다. 변호사는 그를 데리고 희생자인 빅토리아에게로 이끌었다. 빅토리아는 그를 꽉 겨안고 글 위로했다. 그리고는 “나는 너를 용서한다”라고 그녀는 속삭였다. “나는 네가 최고의 인생을 살기 원한다” 그녀의 짜맞춘 얼굴에서 눈물이 흘렸고 변호사들과 법관들 역시 눈물을 흘리도록 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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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에베소서 6:1-3

김상복 목사님의 책 하나님이 꿈꾸신 가정에 나오는 간증입니다.

“한 아들이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가 믿지 않는 아버지에게 신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아버지가 펄펄 뛰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신학교에 가지 못하고 계속 직장생활을 하다가 저에게 상담하러 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무척 성질이 급하고 완고한 분이 었습니다.

‘한달 정도 깊이 기도하고 나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십시오. 그 편지의 절반 이상을 당신이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내용으로 쓰십시오. 아버지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깊이 표현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신학교에 가겠다는 이야기를 쓰십시오. 저는 이렇게 권면하고 함께 기도한 후 청년을 보냈습니다. 그 청년은 한달 동안 간절히 기도하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쓸 때도 그는 기도 하면서 성령님의 지혜를 구해 한마디 한마디 정성스럽게 썼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그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워낙 엄하고 무서운 분이었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와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 늘 아버지가 무서워서 피하기만 했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4장이나 썼는데, 그것도 2장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감동적인 고백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도 그 편지를 받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난 네 편지를 받고 감동 받아서 눈물까지 흘렸다.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목사가 되어도 좋다. 아주 좋은 목사가 되도록 해라.’ 그 후 그 청년은 미국의 한 신학교에 들어갔고 나중에 목사가 되고 신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도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믿는 사람쪽에서 먼저 친절과 사랑을 베풀면 ‘예수님 믿는것도 괜찮구나 나는 잘 믿어지지 않지만 네가 믿는 것은 괜찮다’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도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김상복, 하나님이 꿈꾸신 가정,278-79).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성경말씀: 눅 4:1-4

“그래도 교회가 희망이다’라는 자신의 책에서 “하나님 때문에 굶어 본 적이 있는가?’ 제목하에 샘물교회를 개척하신 박은조 목사님의 개척 당시의 고백입니다. 서울영동교회에서 17년을 사역하면서 이제 분립개척을 하기 위해 준비하던 9월 어느날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고 서재에 올라와서 누가복음 4장1-4을 읽게 되었습니다. 수도 없이 많이 읽은 본문이었으며, 다음 주일에 설교할 본문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신 것과 비교하면서, 개척이라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는 자신과 서울영동교회가 어떻게 인도하심을 받을 것인가에 대하여 계속해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제목은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묵상하고 있는 데 갑자기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시고 배가 고프신 상태에서 사역을 시작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목사님에게 들었습니다. 사단은 그런 예수님에게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했으며,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돌을 떡으로 만드셔서 배고픔을 면하실 수 있는 분이신데 먹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이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 예수도 이렇게 굶으면서 사역을 시작했다. 너는 나 때문에 굶어 본 적이 있느냐?” 이런 질문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목사님은 의자에서 미끄러져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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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요한복음 12:23-26

조세핀 캠벨은 1852년 미국에서 태어나 1920년 한국에서 죽어 양화진에 묻힌 독신 여선교사입니다. 이분은 27살에 남편과 사별하고 두 자녀도 병으로 잃자 다른 사람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기로 결단하고 시카고의 간호학교에서 수련하였습니다. 그리고 33세에 중국 선교사로 나가서 상해와 소주에서 10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선교사로 일하면서 익숙해졌을 무렵 조선의 수도 서울에서 여학교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캠벨 선교사는 45세의 나이였으나 이에 다시 결단하여 1897년서울에 남감리화 최초의 여성 선교사로 파송되어 한국에 왔고 이어 1898년 10월 고간동(현 내자동)에 세운 학교가 배화여고입니다. 배화여고의 처음 이름은 캐롤라이나 지역 주일학교 학생들의 정성을 기려 캐롤라이나 학당이라 하였고 1903년 학부의 인가를 받으면서 윤치호가 ‘배화’ 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기숙학교로서 6명의 학생을 받아들여 가르쳤습니다. 이 학교는 학생들을 기숙사에 수용하고 24시간 신앙 교육이 가능하였습니다. 한국인들도 반응이 좋았습니다. 공짜로 재워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주고, 가르쳐 준다니까 가난한 집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결과 개교 1년 만에 학생이 20명으로 늘어 1900년 봄 2층짜리 벽돌 건물 두 채를 지어 교사와 선교사 주택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1912년 세브란스 병원 에비슨 원장이 결핵균 등의 감염을 우려하여 새 교사로 이전할 것을 강력히 권고함으로 ‘고간동 선교부 시대’를 15년 만에 막을 내리고(현재는 서울시 경찰청사 앞마다임) 옮겨 간 곳이 필운동입니다. 필운동에 있는 필운대 바로 아래는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권율 장군이 살았으며, 맏 사위 백사 이항복에게 집을 물려주고 행촌동으로 옮겨간 곳입니다. 배화 여학교와 남감리회 여선교부가 옮겨 간 곳이 바로 이항복의 생가가 있던 필운대 아래 누하동 149번지였습니다. 1915년 1월 이곳 4000여평의 부지에 160여 평 규모의 2층 벽돌 건물을 짓고 학교를 옮겼습니다. 배화 여고는 민족운동가 남궁억 선생이 여학생들에게 조선역사, 한글 서예, 무궁화 수예를 가르쳤으며, 미국 유학을 다녀온 개화여성 차미리사가 민주 민족주의 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3.1운동 때 나타나 배화 학생 배화 여고 교사 들이 선언서를 시내에 배포하였으며, 3.1운동 1주년을 맞아 1920년 3.1일 새벽 기숙사에 있던 학생 40여명이 필운대 언덕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가 구속되었고 1달만에 집행유예로 석방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세운동 후 배화의 인기는 더 올라가 학생 수가 400명을 넘었습니다. 한편, 배화 여고를 세운 선교사 조세핀 캠벨은 1918년 안식년을 가서 병을 치료하다가 3.1운동 소식을 듣고 조선이 자신이 묻힐 곳이라고 판단하여 한국에 와서 1920년 11월 돌아가셨습니다. 향년 68세였습니다. 이 배화여고의 학생 중 한 명이 육영수 여사입니다. 한 알의 밀알로 가난과 무지로 찌들은 조선 여자들의 교육을 위해 희생한 캠벨 선교사의 일생은 이 나라 여성교육의 큰 이정표를 마련하였고 지금은 5만명에 이르는 배화 동문으로 성장하는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수요일터예배

성경구절 : 마태복음 17:22-27

믿음은 문제가 발생하여야 한 단계 발전합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이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사건을 이끌고 계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는 믿음의 능력입니다. 이 믿음이 자라게 되어 큰 믿음으로 인정되려면 말씀과 상식을 근거로 신앙의 문제를 추론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특별계시이며 상식은 일반계시를 통한 지식이 집적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얻은 권리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권리 행사는 사랑의 목적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가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 혹시 사랑의 법에 위반되는 것이 있지 않는가 생각한 뒤 믿음의 권리를 행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게 될 것이며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의 삶은 하나님의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대전에 계시는 어떤 목사님은 90년 초에 교회를 개척하실 때 건물 보증금으로 지급할 중도금 28,000,000원이 필요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도금을 지불할 날이 내일로 다가왔어도 전혀 수중에 돈이 없어 매우 당황스러워 하던 차에 손 아래 누이동생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인삼을 사고 팔아 남은 돈이라고 하면서 봉투하나를 주고 가더랍니다. 그래 열어보았더니 아! 중도금 28,000,000원이 한푼의 차이도 없이 남거나 모자르지도 않게 거기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은혜는 말로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1세겔을 가진 물고기의 기적이 재현된 것이지요! 이런 주님을 우리는 신뢰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적을 체험하는 방법은 필요요건과 충분요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필요요건으로 3가지가 필요합니다. (1)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핵심은 경외와 순종입니다. 이는 기적의 주관적인 요소입니다. (2)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여야 합니다. 이는 기적의 객관적인 요소입니다. (3) 약속에 근거하던지 아니면 말씀과 상식에서 추론하여 기적이 일어날 타당한 이유와 논리를 개발한 뒤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는 기적의 정당성 요소입니다. 충분요건으로 (4) 받은 줄로 믿고 인내하여야 합니다. 이는 기적의 충분요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