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믿음을 갖자

고린도후서 12:5 – 10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종신 고용제와 연공 서열식 승진을 도입한 일본 경영의 귀재로 알려진 분입니다. 그는 1894년에 태어나 5살 때까지는 유복하게 살았으나, 그 후 가세가 기울어 매우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9살에 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하여 17세까지 자전거 점포에서 일한 뒤 오스카 전등 회사에 입사하여 1엔을 월급으로 받았고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으나 대저택의 배선공사, 해수욕장과 극장의 조명등의 대형공사를 맡아서 하였습니다. 그 뒤 검사원이 되었으며, 전기기구 발명에 힘을 쏟아 결국 마쓰시타라는 회사를 일구어냈고, 1979년에는 자신의 재산 70억엔을 들여 정경숙이라는 정치 엘리트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는데 이 기관은 2000년대에 이르러 수십명의 의원, 장관, 지자체장 등을 배출하였습니다. 물론 그의 회사가 일제시대 징용과 관련하여 많은 피해를 우리 민족에게 주고, 전시물자 조달에 큰 역할을 하였던 전범기업이라는 오명도 갖고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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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CTS 월간지에 한 소프트웨어 업체 사장의 간증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분은 5년 정도 은행에서 일하였는데 1999년 IMF라는 경제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은행을 나온 그는 창업을 하여 직원을 40명까지 두면서 성공적인 회사를 이루었으나 그만 확장에 욕심을 내다가 회사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회사를 창업하여 운영하였지만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 망하였습니다. 이 즈음 어머니께서 내 평생에 가장 큰 소원은 “네가 교회에 나가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날따라 그 말씀이 가슴에 깊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 어머니를 따라 그 주에 교회를 나갔고 마음이 안정되는 경험을 하게 되어 계속해서 교회에 나가 믿음을 키웠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 중소기업에 취직을 하여 생계를 유지할 때, 회사를 성공적으로 창업한 분들의 책을 접하고는 자신과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러자 한 가지 차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분들은 경영 이념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은 그것 없이 회사를 운영하였기 때문에 회사가 제 노선을 달리지 못하였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회사를 나온 이 형제는 소프트 웨어 회사를 다시 창업을 하였고 이 번에는 경영 이념을 “주님께 보답하겠다”라고 정하고 열심히 일하여 2018년 말 현재 7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 때도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확고한 믿음입니다. 주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 기도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께서 이를 이루십니다. 어느 권사님은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배운 것도 많지 않지만, 자식들을 교회에 제대로 다니게 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쓰고 계십니다. 마치 좋은 회사에 다니려고 무진 애를 쓰는 취준생과 같습니다. 그런 결단이 자녀들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신앙 유산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전도서 12:11-14

요새 김형석 교수님은 100세가 되셨어도 여러 책을 출판하시는 등 왕성한 노년을 보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는 아니 그 이상의 활동을 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미술가 해리 리버만입니다. “폴란드 태생인 해리 리버만(Harry Lieberman, 1880~1983)은 랍비의 조카로서 랍비의 길을 준비하다가 버리고 1906년 26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처음에는 옷을 재단하는 사람으로, 그 다음에는 캔디 제조자 일하다가 70대 후반에 은퇴하여 뉴욕의 노인 클럽(Golden Age club)에 가입하여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체스 친구가 오지 못하자 무료하게 보내던 중 미술 수업을 받는 것이 어떻냐고 제의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큰 흥미를 갖게된 리버만은 미술 재료를 갖추고 미술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탈무드, 게메라, 갈바라, 구약성경 그리고 히브리 문학과 관련된 주제들을 그렸습니다. 그는 회상하기를 “선생님이었던 래리 리버스씨는 다른 사람들은 전부 가서 돌보아 주고, 말을 하면서 나에게는 결코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약간 의기소침하였습니다: 내가 그렇게 못 그리나? 어느 날 나는 그에게 가서 ‘리버스씨 모든 사람들에게 가서 지도하면서 왜 나에게는 오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내가 천연두나 다른 병을 가지고 있어 두려워 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리버만 씨, 나는 당신이 지금 하고 계시는 것 이상으로 당신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리버스씨 내가 당신을 가르치기를 원하십니까?” 하니. 그는 내게 이르기를 “리버만씨 나는 당신이 할 수 없는 몇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할 수 있는 몇가지를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하는 것이 옳은 방식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는 미술가와 평론가들에게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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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마태복음 7: 7-12

인터넷 사이트 예화세상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신옥진 씨는 부산 공간화랑 대표입니다. 흔히 그는 ‘그림 기증하는 화상(畵商)’으로 불립니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산시립미술관, 부산시립박물관, 경남도립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에 800여점(총 시가 24억 원 이상)을 기증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국립현대미술관에도 기증을 시작해서 현재 모두 53점을 보냈습니다.”

그는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증자 10명 중 최다 기증자로서 12월 5일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자 축제에서 ‘망설임에서 결정까지’를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그 강연에서 신 대표는 “기증의 가장 큰 기쁨은 ‘나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갈등을 이겨 내놓고 나면 ‘내가 나를 극복했다’는 쾌감이 오지요. 그 희열이 말도 못해요. 게다가 ‘내가 미술 덕에 밥 먹고 있는데, 미술에 고마움을 표시했다’는 자부심도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너무나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가 그림을 기증할 때의 원칙은 일반인들의 것과 사뭇 다릅니다. 그 원칙이란 ‘내가 아끼는 작품부터 기증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중 가장 아끼는 것은 이우환의 1977년 작 ‘선으로부터’입니다. 20호짜리 과슈(불투명 수채 물감) 작품으로 5년 전 일본 경매에서 사들여 안방에 걸어놓고 보던 것입니다. “이런 거 기증할 때는 ‘독한 마음’ 먹어야해요. 싫증 난 작품을 기증하면 덜 아깝긴 하겠지만 기증받는 쪽에 실례지요. 나는 직업 화상이니까 안목으로 먹고사는 셈인데, 그저 그런 작품을 기증했다가 ‘저 사람이 저 정도 안목밖에 없었나’ 하면 창피하기도 하고.”

2009년에는 아예 기증할 목적으로 일본 근·현대미술작 100여점을 사들여 부산시립미술관에 내놓았습니다. 내 고향 미술관에 다른 곳과는 다른 컬렉션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증할 작품을 골라내 포장하고 있자면 손이 바들바들 떨려요. ‘이 아까운 걸 공짜로 내놓다니 내게 정신병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요. 기증은 아무리 오래 해도 ‘면역’이 안 생깁디다.” 그는 지난 13년간 총 850점의 미술품을 기증했지만 “보낼 때마다 아까워 손이 떨렸다” 고 말합니다.

1975년부터 화랑을 경영하고 있는 그가 본격적으로 기증을 시작한 것은 1998년 결핵 후유증으로 크게 앓으면서부터입니다. “곧 죽을 줄 알고 주변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 박수근 스케치, 장욱진 수채화 등 50여점을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했어요. 그런데 막상 살아나고 나니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묘하게도 ‘처음 기증이라 부족했으니 앞으로는 제대로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지은 지 40년 돼 불도 잘 안 들어오는 30평 아파트에 사는데, 기증할 때마다 고민합니다. ‘차라리 이 그림을 팔아 새 아파트로 옮겨?’ 그렇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매일 자기 앞만 닦다가 죽는다면 그 삶은 너무나 안이한 것 아닐까요. 신옥진는 떨리는 손으로 기증할 물품을 포장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까워하는 마음을 이겨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어느 노신사의 아내가 돌아가셨을 때 그분은 “주님께서 아직 내가 할 일을 남겨두셨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분이 나를 이 세상에 남겨두셨겠습니까?” 하자, 누군가가 대답하기를 “주님을 여전히 사랑하는 것을 제외하고 그 어떤 것을 하도록 당신을 남겨두지는 않으셨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의 몸을 생축과 같이 희생을 드리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은 삶은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삶을 영위하여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이에 반해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인격을 갖기를 원하고 계십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여러가지 테스트와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귀한 선물을 주시듯이 이런 것들이 주님의 허락하에 온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고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목적이 주님을 사랑하여 그의 모습을 닯아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기도의 끈을 놓치 말아야 합니다.

수요일터예배

예레미야29:13

김형석 교수님에게는 친한 두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두 친구는 H와 P이며 중,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벗이어서 서로의 관심과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H는 장로의 아들이었고 흔히 말하는 기독학생 중의 하나였습니다. 한반도를 떠나 만주 등지에서 자랐기 때문에 유달리 민족의식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말에 학도병을 피하고자 부모가 있는 만주로 갔습니다. 한국에서 가까운 지역에서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어 연안으로 갔다가 김두봉 일파와 알게되면서 좌경사상을 접했고, 마침내 공산당에 들어가 활약하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해방된 뒤 교수님과 H는 평양에서 다시 만나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다가 교수님은 H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평양 공산당 선전부장이 되었고 교수님은 38선을 넘어 남하하는 신세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두 분 사이의 우정은 정치 이념의 차이 때문에 금이 갈 수밖에 없었으며 기독교 신앙에서도 결별의 길을 택하였고, 각기 남과 북에서 자신들의 일을 하게되었습니다. 그 후에H는 지성인이며 연안파에 속했기 때문에 점점 핵심부에서 떨어져 나갔고 나중에는 완전히 밀려 함경도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거의 확실한 소식에 따르면 자살을 했다고 하며 능히 그럴 친구라고 교수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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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누가복음 8: 4-15

네이버에 올려진 케빈 함이라는 한국계 캐나다 교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케빈 함은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 무너져내린 이후 ‘도메인 사업’으로 기회를 잡아 일반인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재산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CNN에 따르면 그는 ‘인터넷의 실소유주’로 선정되었고 3천억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2명의 남동생들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밴쿠버에서 세탁소를 어렵게 운영했고 어머니는 간호사 일을 했습니다. 그는 엄격한 부모 아래 열심히 공부해서 캐나다의 명문대인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UBC)에 입학했고 의대 과정을 마치고 정식 의사가 되었습니다. 높으면서 안정적인 의사 수입만으로도 충분히 넉넉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그였지만, 케빈 함은 다른 기회를 잡았습니다. 1993년 처음 인터넷을 접하게 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는 낮에 환자들을 진료해주고 밤에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방법과 코딩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1998년, 그의 첫 인터넷 사업인 ‘Hostglobal.com’이라는 호스팅업체 비교 및 리뷰 사이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6개월 뒤에 그는 광고비로만 월 1,000만원을 벌어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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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로마서 1:1-7

〈희망의 인문학〉의 서평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미국의 언론인이며 사회비평가인 얼 쇼리스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교도소를 방문해 한 여죄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사람들이 왜 가난할까요?”라는 쇼리스의 질문에 비니스 워커라는 이 여인은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중산층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연주회와 공연, 박물관, 강연과 같은 ‘인문학’을 접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깊이 있게 사고하는 법, 현명하게 판단하는 법을 몰라 가난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때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1995년 노숙자, 빈민, 죄수 등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수업인 클레멘트 코스를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고 수준의 교수진들이 모였고, 딱딱하고 어려운 강의를 피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이용해 참여자들과 토론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참여자 31명 중 17명이 끝까지 강의에 참여했고 이 17명은 모두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직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언어표현 능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을 우리가 접하고 성서를 공부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복음은 단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자아 중심적인 죄된 길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종들이 되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선포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여야만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의 구속의 발판을 마련하시고 당신의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계획하셨으며, 이를 이루시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다시 사신 목적은 우리로 그리스도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불법과 죄로 물든 세상에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보내사 참된 상속자를 삼으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구속의 기초를 이룩하시며, 부활을 통하여 재판장과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성령님을 따라 살아감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이 성취되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만 하겠습니다.

수요일터예배

에베소서 5:15-16

인터넷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열차에서 사과를 파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열차 통로를 지나며 “사과 팝니다. 사과 하나 사실래요?” 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열차의 끝부분까지 갔지만 사과는 여전히 한 개도 팔지 못하였습니다. 곤경에 처해있는 소년을 본 한 신사가 소년을 옆으로 불러내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는 기차 앞쪽으로 가더니 그 사과를 냅킨으로 광이 나게 닦은 후, 통로를 지나가며 사과를 먹는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맛있고 신선한지를 애기했습니다. 그런 후 그는 소년에게 한 번 더 팔아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사과가 모두 팔렸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사과가 잠재 고객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혜라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뒤에는 지혜의 종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바로 지혜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세월이 악하기 때문에, 그리고 복음을 모르는 외인들에 대하여는 지혜롭게 처신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귀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에도 지혜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이 주님의 복음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복음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복음이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삶이 바뀌어지려면 우리가 산상수훈에 기록되어 있는 복음의 진수를 실천하면 자연히 바뀌어집니다. 거기는 하나님이 원수된 우리들을 사랑하사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복음의 진수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지혜와 모든 총명이 없이는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지혜를 구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역시 제한된 시간만을 가지고 있고, 복음 전도 이외에도 가정, 학교, 직장 등 우리에게 맡겨진 많은 일들이 있어, 이를 위해 삶이 잘 계획되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시간을 아끼라 혹은 모든 기회를 선용하라 혹은 시간을 구속하라(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시간을 재평가하라)는 말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좋은 팁을 소개하겠습니다. 그것은 몰간 박사가 학창 시절부터 실행하였던 방법입니다.

“주님 오늘 당신의 의제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을 한다.

1. 여러분의 계획을 조심스럽게 작성한다. – 종이 위에 7개의 수직선을 긋고 이어 수평선을 하나 하나 그으면서 그 날 할 일들을 조심스럽게 적어내려간다.
2. 현명하게 교란요소를 대처해 나간다 – 계획한 일을 실천해 나가다 보면 그 계획을 교란하는 요소가 등장히는데 그것이 그 날 주어진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야 한다.
3. 실망하게 되는 일은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4. 열린 문들을 찾아 본다
5. 계획한 일들을 기쁘게 실천해 나간다- 작은 일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6. 미해결 과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라

수요일터예배

빌립보서 4: 6-10

알 수 없는 불안 – 어떤 분이 월요일 전화를 해 왔습니다. 예전에 어떤 동영상에서 사람의 머리에서 애벌레를 꺼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주 월요일 새벽 자신의 강아지의 겨드랑이에서 애벌레를 꺼내는 꿈을 꾸고는 아침까지 불안이 들어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때 유투뷰에서 누가복음을 대본으로한 성서 영화를 보고는 힘을 얻고 불안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꿈 속에서 꺼낸 애벌레가 바로 두려움이었다고 해석하면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인간의 존재는 약합니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불안이 바로 인간 실존의 본질이라고도 합니다. 우주에는 사람을 위한 아무런 계획이 없고 오직 불안만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불안에서 탈출하는 것이 여러분의 관심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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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누가복음 12:29 – 40

과천에 있는 서울 현대미술관에 가면 작고한 박이소라는 작가가 만든 콘크리트 배라는 조형미술이 정면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제목은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 작품에 달려있는 해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작품은 박이소(당시 박모)가 1995년 미국에서 귀국 후 개최한 첫 개인전에 출품된 배 형상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만들어져 물에 뜰 수 없습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망과 그 꿈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현실이 상충하고 있습니다. 개인전 당시 이 작품 바로 옆에는 박이소가 직접 번역하고 부른 (정직성-Honesty)이 흘러나오는 종이 상자가 쌓여 있었습니다. 작품의 배치를 감안하였을 때 이 배는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이동하는 ‘문화 전달자’를 표상하고 동시에 온전한 문화 전달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런 점에서 ‘무제’는 타문화권에서 작가가 느낀 문화적 교류의 갈증과, 문화가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아 겪은 좌절이 동시에 투영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원래 박이소라는 작가가 미국에서 돌아올 때 이 작품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있을 곳이 없어 누이집에 머물렀는데 미국에서 공부를 한 동생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콘크리트 배만 가지고 돌아오자 화가 나서 망치로 그 작품을 깨어 부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2018년에 박이소의 후학들이 그 작품의 진가를 알고 보존된 설계도를 참조하여 원형을 복귀하여 현대 미술관에 설치해 놓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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