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없는 인생의 문제 – 삶의 의미

시편127장 1-5

여자의 일생, 목걸이, 비계덩이리 등의 걸작들을 남긴 단편 소설가 모파상(1850-1893)은 본래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퇴학 당했습니다. 그는 신앙과 결별하기로 하고 자신이 주인이 된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후 그는 문학에 뜻을 두고 정진하여 10년 만에 유명 작가가 되고 돈을 많이 벌게 되었습니다. 1800년대 말에 그는 지중해에 요트를 가지고 있었고 노르망디에 대저택을, 파리에는 호화 아파트를 갖고 쉴 새 없이 애인을 바꾸면 살았습니다. 비평가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고 대중들은 그를 흠모했으며 그의 은행에는 넉넉히 쓸 수 있는 돈이 항상 있었지만 그는 안질과 불면증으로 시달렸습니다. 1892년1월1일 새해가 밝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잃은 그는 종이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합니다.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만 정신이 이미 온전하지 않은 그는 정신 병동에서 몇 달을 알 수 없는 소리로 허공을 향해 절규하다가 겨우 4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무덤 묘비에는 그가 말년에 자주 외친 삶의 독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 그는 부자의 꿈을 이룬 것 같았으나 실상은 가장 처절하게 가난한 인생을 산 것입니다.(이동원,우리가 사모하는 건강한 교회, 27-28). 왜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 없이 자신의 인생의 집을 세우고자 노력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유한자이며, 자기가 중심이 되어 사는 죄인들입니다. 죄인들의 문제는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 죄인들은 자신이 욕망하는 인생의 집, 재물의 집, 명예의 집, 건강의 집을 지어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런 집을 짓고 나면 허탈과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존재로 남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주님을 인정하지 아니하니 주님이 세우시는 집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집의 결과는 모파상과 같은 파멸로 끝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우리 인생의 참된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인생의 집을 건축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 집에는 주님께서 거하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수요일터예배

시편 6장

시편 6장은 오래 병들어 고통을 당하면서 대적들에게 여러 비방을 받는 시편기자가 하나님께 호소하는 비탄시의 일종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시편기자는 다윗입니다. 그의 병의 위중함은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라는 5절을 읽어 볼 때 매우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고통이 심하였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시편기자의 대적들이 와서 욥을 괴롭힘과 같이 시편기자를 괴롭혔다고 생각됩니다. 즉 시편기자가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든지, 죄악을 물마시듯이 마셨다든지 하여서 하나님께 심판을 당했느니 아니면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다든지 하는 정죄감을 계속 심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자신의 신실함을 굳게 믿었고 하나님의 응답을 외치면서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면서 시를 마치고 있습니다.

김병년 목사님은 IVF 간사를 마치고 1990년대 말에 개척을 하셨습니다. 물론 1995년 결혼하여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지만, 셋째를 낳는 중에 그만 사모님이 뇌경색을 일으켜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2004년).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고, 수술하면 잘 해야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망설이던 끝에 식물인간이라도 함께 있는 것이 더 낫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회복을 위해 장모님도 목사님도 온 가정이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지만 아내는 중환자실에서 손가락을 약간 움직일 수 있고 눈썹을 약간 움직일 수 있는 정도록 회복되어 일반병실로 옮긴 뒤 다시 집으로 이동하여 그때부터 2019년인 지금까지 대소변을 다 받아내면서 돌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설상가상으로 아내의 회복을 재촉시키기 위해 발맛사지 열기구를 사용하다가 그만 화상을 입어 아내의 발은 한 쪽을 절단하게 되는 불행이 잇따랐습니다. 장모님은 누구의 죄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를 한 번 밝혀보자는 말씀까지 하셔서 죄책감에 마음이 몹씨 서글퍼졌습니다. 이런 엎친데 덮치는 고난 가운데 기도원에 가서 위로를 받아 보려고 하였으나, 기도원 강사는 오히려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하였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집은 뇌경색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설교 중에 한 것이었습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않고 목사님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15년간의 정성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식물인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도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천만원 하는 수술비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되었으며, 자녀들 3은 전부 잘자라 주었고, 많은 재정적인 필요들을 하나님은 그때그때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당하는 불행과 고난을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끝내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우시고 지혜로우신 얼굴을 보게할 줄 믿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고통 가운데 주시는 한 줄기 빛을 발견하면, 그것을 붙잡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신뢰 속에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뢰이신 주님

시편 4편

시편 4편에서 다윗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에게 신뢰를 두는 자신이야말로 참된 안전과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기쁨은 사람들이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수확할 때 가지는 기쁨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이미 체험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미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천명하신 바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요 주님으로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이 신뢰는 영영히 요동하지 않는 바위며 요새이고, 하나님은 필요를 따라 우리에게 양식을 내려주시는 분임을 깊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삶에서 많이 체험하신 분 중에 대구 삼덕교회 고 홍대위 목사/선교사 가 계십니다(1973년 작고). 그분이 간증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930-40년대에 홍선교사가 중국 산동성 교주에서 전도할 때의 일입니다. 홍선교사의 모친은 강원도 평창에 계셨습니다. 하루는 모친으로부터 편지가 오기를 손녀딸을 귀국시키라는 권고였습니다. 그 당시 홍선교사의 딸은 15세라 중국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중국교육을 받아 가지고는 한국인에게 출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모친의 슬하가 적적하니 모친이 데리고 공부시키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과연 타당하신 말씀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딸의 친모가 일찍 별세하였고 지금 계모 슬하에 있기 때문에 조모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귀국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청도에서 배를 타고 인천을 거쳐 서울에 도착한 뒤 다시 버스로 평창을 가려면 당시의 돈 50원이 필요하였으나 아무런 여비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 날 저녁에 홍선교사는 이 사정을 주님께 기도드리고 돈 50원을 구했습니다. 그 이튿날 새벽에 스트럭이라는 여선교사가 기도하러 왔습니다. 그는 독신 선교사로 홍선교사와 동역하는 사람이었으며, 가끔 홍선교사의 서재에 와서 함께 기도하곤 했는데 그날은 특별히 일찍 왔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에 편지를 한 통 주면서 “내가 돌아간 후에 뜯어 보십시오”하고 나갔습니다. 홍선교사는 곧 그 편지를 뜯어 보자, 그것은 편지가 아니라 10원 짜리 지폐 다섯 장이었습니다. “아니 이것은 편지가 아니라 돈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돈입니까?” 하니, 그녀는 말하기를 “나도 모르겠어요. 내가 어제 저녁에 침대에 드러누워 생각을 하니 나의 수중에 돈 백 원이나 여유가 있어서 이것으로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하였더니 목사님께 드릴 생각이 났어요. 목사님은 아이들도 많고 생활에 곤란이 많을 듯 했어요. 그러나 이렇게 많은 돈을 다 드릴 필요가 무엇인가 하여 드릴까 말까 하다가 밤이 새도록 잠을 잘 못잤지요. 오늘 새벽에야 결정하기를 절반은 목사님께 드리고 절반은 다른 일에 쓰는 것이 좋을 듯하여 그 절반 50원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나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그 말을 듣자 홍목사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어제 저녁에 돈 50원을 주님께 구한 일이 있습니다.” “무슨 급한 용도가 있었던가요?” “네 어제 모친의 편지에서 손녀를 보내라고 하시기에 그 여비를 계산하니 꼭 50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간구하였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면 그렇지” 란 소리를 연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아무쪼록 안심하고 잘 쓰라고 부탁하고는 가버렸습니다. 여비가 마련되었기 때문에 며칠 후에 청도항에서 배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태워주기 위해 딸을 데리고 기차에 올라앉아 교주에서 청도까지 가야만 하였습니다. 약 백리의 길이라 차 안에서 이러 저러한 생각을 하던 중에 여비를 잘못 계산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50원의 여비는 청도로부터 평창까지 가는 여비요, 교주에서 청도까지의 여비를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 차비는 1인당 1원이니 두 사람에게 2원이요, 또 청도에 도착하는 즉시로 승선하는 것이 아니라 여관에서 1박하고 내일 승선하게 되었으니 여관 숙박료가 또 1인당 1원씩이요, 본인이 돌아갈 차비가 1원이니 도합 5원이 부족하였습니다. 너무도 답답하여 딸에게“애! 너의 여비가 5원이 부족하구나” 하니 딸은 얼른 대답하기를 “청도에 가서 꾸세요” 하였다. 그러자 홍선교사는 딸에게 “애야! 나는 평생에 돈 꾸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하는 애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글썽하며 “그럼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을 하였습니다. “애야, 우리 기도하자. 응? 하나님께 달라 하자!” 하니 픽 웃었습니다. 홍선교사는 웃거나 말거나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고 나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기차는 계속 달려만 가고 있었으며 얼마 후에 성양이란 역에 와서 정차하였습니다. 이 때 마침 청도 편에서 마주 오는 열차가 들어오더니 홍선교사가 탄 기차와 홈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게 되었습니다. 홍선교사는 우연히 차창을 열고 내어다 보는데 저 편에서도 창을 열고 이 쪽으로 내어다보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홍선교사가 시무하던 교회의 집사였습니다. 홍선교사를 보더니 “목사님, 어디 가십니까?” 하길래 “네 이번에 내 여식을 귀국시키려고 청도로 데리고 갑니다.” “아 그렇습니까” 하더니 자기가 탄 차에서 내려서 홍선교사가 있는 차창 앞으로 와서는 그의 주머니 속에서 5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더니 “너무 섭섭하니 과자나 좀 사 주세요”하였습니다. 홍선교사는 그 돈을 받을 때 두 눈에서 또 한 번 눈물이 흘렀고 딸도 울었습니다. 어린 소견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기묘하다는 것이 놀라운 모양이었습니다. 그 이튿날 청도 항구에서 딸을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1전도 부족함이 없고 또 남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두 범죄자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눅23:32-43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골고다에서 십자가 처형이 있던 그 날 예수님 혼자만 집행 당하신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예수님의 비중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명의 범죄자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날 로마의 법정에서는 3명이 재판을 받았습니다. 한 명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이고, 다른 두 명은 강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눅23:32-33).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미움과 조롱의 말이 터지고 그리고 절망의 모습이 드려지는 중에, 범죄자 중 한 명은 예수님의 말과 정체성을 옹호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23:42). 사실 로마의 십자가 처형의 모든 절차를 보면 예수님을 비하하면서, 그의 신뢰성을 추락시키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 병정들은 예수님을 때리고, 조롱하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옷을 벗기고,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붙여놓았습니다. 범죄자 중 한 명은 함께 달린 예수님을 보고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등의 비난 섞인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편에 달려 있던 범죄자가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겉모습은 범죄자와 같이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그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사실은 800년 전 이미 선지자 이사야가 잘 예언해 놓고 있습니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사53:9). 그러나 이와 동시에 골고다에서 예수님과 함께 달려 있는 두 범죄자의 존재는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는 거부와 수용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확인해 주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와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에 관한 수 많은 예와 비유들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대표적인 예들은 오른 편에 구분된 양들과 왼편에 구분된 염소들의 비유(마25:31-46),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13:24-30), 못된 고기와 좋은 고기를 가르는 비유입니다. (마13:47-50). 그러므로 이런 매우 극적인 순간에 일어난 결과를 보고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참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고 고난 주간을 보내야만 할 것입니다 (마틴, a visual guide to Gospel events 178-79).

수요일터예배

요한복음 9:24-25

종교당국자들은 두 번째로 맹인이었던 그 남자를 불러 이르기를,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우리가 이 사람은 죄인인 것을 알고 있다’ 라고하니, 그는 ‘나는 그가 죄인인지는 모르나 하나를 아는데 맹인이었지만 지금 본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파문을 당할지라도 그가 아는 ​​한 가지, 그리고 이 시점에서 그는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한 가지는 ‘그는 맹인이었고, 이제 본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전체적으로 목격자 주제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또한 우리들에게 ‘결정적인 믿음은 개인적 목격자가 가지는  증거가 특징이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전 세대를 거쳐 무수한 그리스도인들은 확실히 자신의 변화, 즉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가는 자신의 경험에 똑같은 말을 적용해 왔습니다. ‘ 한 가지를 내가 아는바, 내가 맹인이었지만 지금 나는 본다.’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라는 소책자에는 박영덕 목사님의 간증이 실려 있습니다. 이분은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을 두 가지로 증거합니다 첫째가 성경이 증거하는 객관적 진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들고, 둘째 주관적인 증거로 기도응답의 체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대학원을 마치고 카투사에 입대하여 일병을 단 때였습니다. 그해 5월에 서울의 중앙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8월에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적인 수련회가 부산에서 개최되는데 자신이 강사로 왔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팜플렛에 강사로 소개해 버렸습니다. 박일병은 영락없이 8월에 강사로 가야만 했고 그 때부터 8월 수련회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6-7월 경에 한 형제를 만났는데,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신앙 생활을 하다가 대학 시절에 신앙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박영덕 일병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박일병은 그에게 두 가지 증거, 즉 객관적 증거인 예수님의 부활과 주관적 증거인 기도의 응답에 대해 설명했습니다.그리고 앞으로 부산에서 개최될 수련회에 비록 일병 신분이지만 참석하려고 기도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그 형제는 고개를 저으며 수련회에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인사과에 근무하고 있던 터라 누구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박일병은 반문했습니다. “만약 내가 수련회에 가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는 “만약 박일병이 정말 8월 수련회에 참석하게 된다면,나도 하나님 계심을 인정하고 교회에 나가겠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시 일병인 지위에서 박영덕 청년은 대책이 있을 리 만무하였습니다. 다만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군 생활을 하던 중 부대에 대구 지역 모범 사병 선발 대회가 있어 상부에서 참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이 명령에 따라 응시하였는데 어쩌다 보니 박영덕 일병이 뽑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들려오는 말이 대구 지역 모범 사병으로 뽑힌 사람은 우리 사령부 선발 대회에 나가게 되고 거기서 3등이 되면 3-4일간 휴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더 알아보니 1등이나 2등은 의무적으로 10월에 있을 전국 카투사 선발 대회에 후보로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박일병은 선발 대회에서 1,2 등이 아니라 반드시 3등을 해야만 했습니다. 참으로 난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가 8월에 있을 의대생 수련회에 가야 하는데 이번 전국 대회에 나가 꼭 3등을 하게 해주십시오” 그 때부터 박일병은 수시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드디어 선발 시험을 치렀고 결국 박일병은 3등을 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며칠간의 휴가 외에도 부대의 배려로 총8박9일의 포상 휴가를 얻어 부산 수련회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수련회 참석이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던 그 형제는 박일병과 함께 부대에 있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p 112-115)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다!

로마서 8:28-29

방선오 장로가 대한항공에 재직시 겪었던 일입니다. 자신이 막 과장으로 승진한 후 CRS(컴퓨터 예약 시스템) 개발 업무 T/F 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뿌듯했는데 알고 보니 모두 다 기피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본사로 전입된 신임 과장에게 그 업무가 떨어진 것이었습니다.막상 맡고 보니 그 업무의 팀장 역할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영국항공의 CRS 시스템을 도입하여 그것을 회사와 한국시장 실정에 맞도록 수정하고 보완하여 DB를 구축해야 하는 일인데, IT에 경험이 일천한 자신으로서는 수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6개월간 T/F를 마치고 시스템을 오픈하자 새로운 과제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여행사에도 CRS 시스템을 배포해야 하는데, 여행사 단말기는 미국 CRS 규칙이 적용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카고 취항이 영향을 받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먼저 영국으로 출장을 가서 영국항공과 회의를 하였지만 어떤 해결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짐을 싸서 일본항공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당시 일본항공은 영국의 시스템을 도입하여 잘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담당자들과 수차례에 걸쳐 해결방안을 강구했지만, 얻은 결론은 불가능이었습니다. 시스템을 만든 곳에서도 시스템을 가장 잘 사용하는 곳에서도 답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절망감이 몰려 왔습니다. 같이 갔던 동료가 저녁 먹으러 가자는 제안도 뿌리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습니다.그때 호텔의 자그마한 책상에 놓인 성경책이 눈에 띠었습니다. 성경을 펴서 읽으니 사무엘하 22장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삼하22:7, 30). 이 말씀이 방선오 형제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고, 상황이 변한 것은 없었지만 마음에 평안이 밀려오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에 방선오 과장은 “주님,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호텔에서 조금 더 쉬었다가 나가려고 했는데 동경지점의 대한항공 직원이 일본항공의 시스템 개발자 한 사람만 더 만나보라고 권유하였습니다. 30분 정도 시간을 할애해 호텔 근처에서 미팅을 하기로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짧은 시간에 어제 읽은 그 말씀대로 방선오 형제로 하여금 성벽을 뛰어넘게 하셨습니다. 실상 일본의 개발자는 자신들의 데이터 구축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하였을 뿐이나 그의 설명 속에서 뜻밖의 해법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방선오 과장은 “할렐루야!”를 외치고 돌아왔습니다. 모두 다 기피했던 CRS T/F 업무를 얼떨결에 맡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고 절망도 했지만, 주님의 은혜로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 업무 경험으로 인해 10여년 후 회사의 주요 보직인 마케팅팀장도 맡게 되고, 더 나아가 20여년 후에 회사에서 퇴직할 때 국내 최대 CRS 회사인 대한항공 계열사 토파스여행정보의 대표이사로 근무하게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상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지 보는 것으로 살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는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하는 자를 위해 좋은 지혜를 준비해 두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이 중의 복이 굴러 들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

잠언 16:1-9

송도 고등학교 오성삼 교장 선생님의 자서전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라는 책의 후기를 읽으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의 생애에 가장 큰 충격은 대학 졸업과 더불어 찾아온 늑막염이란 질병이었다. 대학시절 열악한 경제적 여건의 후유증이었다. 삶의 과정에서 한 번의 뒤틀림은 오랜 파장을 낳았다. ROTC 임관 탈락은 뒤늦은 군 입대로 이어졌고, 2년 3개월의 장교복무 기간도 어긋나 34개월의 사병생활로 이어졌다. 대학원 공부도 늦어졌고 미국 유학도 늦어졌다. 그래서 직장 생활 기간도 남들보다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어렵사리 이뤄 낸 나의 준비과정이 65세에 마감되다니.. 하나님 좀 억울하네요. 목사님들은 70세에 정년을 한다던데….. 종종 중얼거리며 투정하던 나의 직장생활의 아쉬움을 송도고등학교를 통해 해결해 주셨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에 대한 그 감사의 마음을 월드비전을 통해 돌려주기로 하였다.” 이분은 2018년 2월 28일 송도고등학교에서 5년 반의 기간을 교장으로 일하고 72세에 은퇴하는 것을 하였습니다. 대학 동기들 상당수가 50대 나이에 IMF를 맞아 구조 조정되었고, 교수직을 유지하던 친구들 또한 65세 나이로 현직을 떠났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에 보너스를 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2012년 8월 31일 대학교수 정년을 끝내고 다음 날 9월 1일자로 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크고 작은 자신의 기도를 오랫동안 잊지 아니하고 기억해 두셨다가 꼭 필요한 시점에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로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세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오교장 선생님은 자신의 삶에 “만약”이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라는 질문은 지난 세월의 갈림길에서 더러는 본인이 선택했고 더러는 운명에 이끌려 온 날들에 대한 사후 평가적 해석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예를 언급합니다. 60년대 중반 농고를 나와 별 실력이 없던 자신에게 떠오른 생각, “정원이 미달되는 학과를 찾아낸다면 나도 대학엘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따라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선호하는 대학, 경쟁이 치열한 학과에 대한 무모한 도전을 내려놓고 실현가능한 답을 찾았던 그 시절 자신의 초라한 결정은 훗날 오교장 선생님의 삶에 전화위복의 씨앗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운명은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만 하지 주저앉거나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훗날 되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수요일터예배

요한복음 14:1 – 3

CTS에서 발간한 격월지 2019년 1,2월호를 보면 부산방송 김광득 팀장의 간증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김광득 팀장은 육군에서 소령으로 전역한 분입니다. 과거에는 군복무가 천직이라고 생각할 만큼 육군 장교로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지냈지만, 소령으로 전역하고 응시한 군무관 시험에 계속해서 낙방하자 하나님을 극도로 원망하는 상황까지 내몰렸습니다. 모태신앙인 김광득 씨의 입에서 “하나님 정말 있기는 한 건가!” “이렇게 망하게 하려고 제대 시켰나” “난 이제 마음대로 살아 갈 거야! 하나님은 없어”라는 원망의 말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김광득 씨의 마음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김광득 씨의 입과 머리로는 화가 나 원망하는 가운데,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피할 길을 내어 능히 감당케 할 테니 걱정하지마라”는 확신 넘치는 평안함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김광득 씨는 늘 이때를 생각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넘쳐 가슴이 떨려온다고 합니다. 많은 장애물도 있었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자 경력이 없던 김광득 씨는 CTS 공체 PD로 입사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9년 동안 영상 선교사역을 펼쳐오던 중 제작한 ‘바이블 코치’가 2015년도 ‘CTS 전국 최우수프로그램’으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고, 이후 ‘하나님의 경제, 세상의 경제’등이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게 되는 등 CTS에서의 삶에  많은 보람과 은혜가 넘쳤다고 합니다.그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있고, 앞으로도 CTS에 몸담고 사역하는 제작자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모두 충성하고자 결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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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인문학

누가복음 19:1 – 10

“희망의 인문학” 책의 저자인 얼 쇼리스는 클레멘트 코스를 만들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청년들과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1995년 10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처음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였습니다. 이들에게는 거짓말과 고백, 범죄, 임신이 다반사였으며 언제나 외로움이 붙어 다닌 자들이었습니다. 얼 박사는 이들의 가능성을 보고 그 점을 역설하였고 그들에게 희망을 팔았습니다. 실로 가난에 대처하기 위한 연방정부 지침서 같은 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입주형 쉼터, 사회복지 관련 기관, 무료진료소, 임시 집단거처, 최저 임금 일자리, 마약중독 치료프로그램, 푸드 뱅크 시설이 있지만 이 기관들이 가난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가난하다고 시인하고 인정할 때 그리고 그러한 상태에서 그들을 끄집어낼 정치적 대책이 전혀 없을 때 비로소 가난해지는 것임을 얼 박사는 깨달았습니다. 클레멘트 코스의 학생 선발 기준을 세울 때 바로 이 점을 중시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었고, 그런 삶을 누릴 공간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세파에 떠밀려 워낙 심하게 치이며 살다 보니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온 그들이 14세기 때 이탈리아 그림을 알아야 할 이유나, 논리학을 배울 이유,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하는 회의가 들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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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디도서 3: 4 - 8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도덕경의 한 대목이 실려 있습니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자는 현명하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이기기 위해서는 도(道)가 있어야 한다 많은 물질을 가진 자는 부유하지만/ 자신이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도(道)와 하나가 된 사람이다.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는 사람이 오래가고/ 죽어도 잊히지 않는 자가 오래 사는 것이다. 조던 피터슨 작가는 “내가 지금 가진 것이 하찮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내가 가진 것의 목록을 작성해 보아라… 내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가진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을 하찮게 여길 정도로 교만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이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라고 하고는, 이런 내용을 자신에게 상담을 온 젊은 청년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그 청년은 가족의 품을 떠난 적이 없고, 고향을 벗어난 적도 없다. 하지만 토론토까지 달려와 조던 피터슨의 강연을 듣고 조던 피터슨의 집에 와서 만났습니다. 그는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면서 불안감에 시달렸다. 조던 피터슨과 만났을 때도처음에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조던 피터슨과 만난 이후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식당에서 접시닦는 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자신을 받아 주지 않는 세상에 분노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어떤 기회든 겸손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통해 새로운 지혜를 얻을 구 있다고 믿었다. 지금 그는 독립해서 살고 있다. 게다가 많지는 않지만 돈도 조금 모았다. 직접 땀을 흘려 번 돈이었다. 부모의 그늘에 있었으면 누리지 못할 삶이었다. 이제 그는 세상에 뛰어들어 역경에 맞서고 갈등을 극복하며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다(501-502pg). 심리학에서도 이렇게 이야기 하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보다 확실한 기초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인생 역시 죄와 사망으로 버려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으며, 우리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실 수 있으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를 의롭다 칭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며,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소망에 대하여 굳센 믿음을 가지고 누구든지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항상 예비하여야만 합니다. 그런 삶의 결과는 우리로 하여금 항상 선한 일에 열심인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