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27 – 평화
14: 27절 평화를 남겨두신다. 평화(eirēnē)는 히브리어 살롬을 반영한다. 살롬은 관례적으로 유대인들이 인사와 작별의 말이다. 여기서는 작별의 의미가 우선적으로 있다(참고 16:33). 그가 제자들에게 남겨두신 평화라는 작별의 단어는 부활 후에 인사의 말이 되어 버렸다((20:19, 21, 26). 여기서 평화라는 단어에 깔려있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메시아적이고 종말론적이다. 평화는 구약에서 예기된 메시야 왕국의 근본적인 성격들 중 하나이다 (Nu. 6:26; Ps. 29:11; Is. 9:6–7; 52:7; 54:13; 57:19; Ezk. 37:26; Hg. 2:9) 그리고 신약 안에서 성취되었다(행10:36; 롬1:7;5:1;14:17). 그 새로운질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평화인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 평화는 환난 중에 침착을 확보하게 해주고 그리고 두려움을 해소해 준다. 그런면은 이 구절의 마지막 명령에서 잘 드러난다(근심하지도, 두려워 하지도 말아라). 이것은 우리 마음과 생각들을 근심으로 침공할 때 파수해주는 바로 그 평화이며(빌4:7),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들 가운데서 다스리고 중재하여 그들 중에 조화를 유지하도록 한다.
예수님은 이 평화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은 평화를 주는데 무력하다. 평화를 향한 모든 노력은 재빨리 미움, 이기심, 쓴뿌리, 악의 걱정과 두려움에 의해 함몰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초월적인 평화를 보여준다.이는 그 자신의 평화인 것이며 그의 고난과 죽음의 전 시간을 통해 존재한 평화인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그는 다른 사람의 악의와 세상의 죄를 그 스스로 안에 흡수하였고 세상이 줄 수 없는 방법으로 약속된 메시아적인 평화를 도입하였다. . 로마의 평화는 잔인한 검으로 달성되었다. 그러므로 적지 않은 유대인들이 메시아적 평화는 더 강력한 검으로 확보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것은 로마, 유대인 그리고 우리 모두의 손에서 고난당하고 죽은 죄없는 사람에 의해 확보되었다. 그의 죽으심으로 그는 당신을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과의 평화를 발진시켰다. 그러므로 모든 지각(이해)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그 평화인 것이다(빌4:7)
예수의 가르침 속에 있는 그 평화는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만큼이나 동터오는 왕국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제자들의 두려움들을 대처해 주기 위해 필수적인 모든 것을 완전히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1,27). 참고) 갈라디아서5장 22절 – 사랑과 희락과 화평
여기 ‘나가사키의 노래’라는 책으로 나온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의사 나가이는 불교에서 카톨릭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했다. 그의 아내는 결혼 전 몇 년 동안 그의 개종을 위하여 기도했다. 미국인 처크 스위니가 목표지점인 코쿠라에 도착했지만 흐린 날씨 때문에 폭탄 투하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향해 나가사키에 폭탄을 떨어뜨렸을 때, 의사 나가이는 방사선 연구소에 있었고, 그의 아내 미도리는 집에 있다가 순식간에 타 버려 하나님의 품으로 갔다. 두 아이와 할머니는 피폭 방지를 위해 언덕으로 옮겨 졌고 살아남았다. 그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하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런 상황 속에서 그의 직업은 하나님께 바치는 선물로, 그리고 우라카미 성당을 중심으로 한 교회 공동체에 바치는 선물로 변화되었다. 나가이는 그 자신도 방사능 피폭 때문에 야위어 가면서, 방사능 낙진과 죽음의 공포로 고통받던 환자들을 치료했다. 다음의 말은 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의사들은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진정한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함께한다. 환자가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다면 의사도 그렇다. … 환자 한 명 한 명이 당신의 형제,당신의 누이, 당신의 어머니가 된다. 당신은 그들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 나는 의료가 소명, 즉 하나님에게서 온 개인적인 부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말은 환자를 검진하고 엑스레이 검사를 하고 주사를 놓는 일이 모두 하나님 왕국의 일부라는 의미이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어느새 그동안 치료했던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의사 나가이는 자신의 생명보다 환자들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건강을 위험에 내던지면서도 봉사와 연민, 고통의 삶으로 뛰어들었다. 의사 나가이가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가르쳐 준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에게 놓인 상황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정성을 쏟아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은 대단히 가치 있는 삶일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런 삶을 살아가던 의사 나가이는 원자 폭탄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놓기 몇 달 전, 자신이 방사선으로 인한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직 3년밖에 수명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날 저녁, 그는 부인 미도리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렸다. 그의 전기 작가는 그 날의 일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러자 그녀는 조용히 식탁에서 일어나 가족 제단 위에 있는 등을 켰다. 그리고 단아하게 정좌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이 250년이라는 핍박의 세월 동안 지켜왔던 십자가상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그도 그녀를 따라가 그녀 뒤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그제야 그녀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녀는 요동치는 감정이 가라않을 때까지 거기서 기도를 했다.”
그리고 나서 미도리가 의사 나가이에게 말했다. “결혼하기 전에 우리가 했던 이야기 기억나요? 우리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다면 삶도 죽음도 아름다울 것라건 이야기요. 당신은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일에 쏟아부었어요.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에요. 나는 당신의 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믿어요.” 의사 나가이는 이 말을 듣고 애써 눈물을 참았는데 그것은 연민의 눈물이 아니라, 감사의 눈물이었고 그는 자신이 거룩함에 휩싸여 있다고 느꼈다.”
이렇게 의사 나가이 부부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하나님께 그들의 삶을 바쳤으며,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바로 나가사키를 위한 한 그리스도인의 노래였다. 나가이 역시 몇 년밖에 더 살지 못했다. (스캇맥나이트, 산상수훈, 299-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