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ABC

믿음의 ABC (다윗과 골리앗)사무엘 상 17장

굳센 믿음을 가지고 싶다 – 그리스도의 말씀을 자꾸 들으면 됩니다. 믿음을 실제의 삶에 적용하고 싶다 – 믿음의 ABC를 가지고 시작하면 됩니다 오늘은 사무엘상 17장31-54절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소재로 믿음의 ABC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A –Accentuate positive aspects: 난관을 돌파할 지혜가 나올 때까지, 적의 강점&약점, 나의 강점&약점

어려움에 봉착하였을 때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십시요. 믿음은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남겨두신 것이 무엇인가 헤아리는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길을 찾아나서기를 바랍니다.

엘라 골짜기에 골리앗이 등장하였으니 이는 이스라엘 중에 필적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키는 3미터 정도되고 갑옷만 57킬로 그램의 무게에 머리에는 놋투구를 쓰고 전신을 무장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한 숨만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다윗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어떻게?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책의 저자인 Malcolm Cladwell 은 그 이유를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신체적인 힘을 기준으로 힘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힘이라는 것이 다른 형태로 – 규칙을 깨뜨린다든지, 힘을 대체할 스피드나 기습과 같은 – 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 전체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 같은 실수는 오늘날도 많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문제점이 있습니다. 사울과 이스라엘은 골리앗이 누구라는 것을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골리앗의 신장과 여러 체격조건을 보고는 결론을 내리기를 우리는 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골리앗의 약점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성서에 기록된 골리앗의 행동을 보면 여러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그는 방패를 든 소년과 함께 평지로 내려왔습니다. 방패를 든 사람들은 고대에 궁사를 동반하여 전투에 참가하곤 했는데 이는 궁사는 자신을 보호할 방패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대일 칼싸움에서 골리앗은 왜 방패를 든 소년이 필요하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왜 다윗에게 “내게로 오라”고 말하였을까요? 성경은 골리앗이 천천히 움직인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은 다윗에게 신속하게 다가가지를 못하였습니다. 막대기 한 개만을 가지고 간 다윗을 보고 “막대기들 sticks” 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현재 많은 의학 전문가들이 믿고 있는 바는 골리앗이 소위 acromegaly(거인증)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키가 큰 사람은 Robert Wadlow 였는데 이 사람이 거인증으로 고통을 당하였고(2미터 70센티) 죽을 때도 계속 자라고 있었다고 합니다. 거인증에는 공통된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신경을 압박하여 심각하게 시력이 제한되거나, 이중으로 보이는 시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인도할 소년이 필요하였습니다.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윗이 자기에게 올 때까지 다윗을 잘 볼 수 없었고 무슨 전략으로 자기를 칠지 잘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오라” 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들고 있는 막대기는 두 개로 보였습니다. 산등성이에서 멀리 이스라엘이 보았던 것은 엄청나게 무서운 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거인의 거대함 자체가 그 거인에게 약점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모든 종류의 거인들과 싸우는데 있어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강력하고 힘있어 보이는 자는 그들이 보이는 것처럼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이를 간파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강점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이미 물매를 던지는 기술에는 달인이 되어 사자와 곰에게 던져 이들을 물리치는 경험도 여러 번 하였습니다. 고대 근동의 전쟁은 중장보병, 기병, 궁사나 물매와 같은 무기로 무장한 발사체 군사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중장 보병은 기병에 강하나, 움직임이 둔하여 발사체 군사들에게는 치명적으로 약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병은 발사체 군사들이 맞추기 어려운 빠른 움직임을 가지고 있기에 이들에게는 강하였습니다. 다윗은 움직임이 둔한 골리앗에게 가서 물매를 던지면 정확히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물매는 초당 34미터를 날라가기에 35미터에 접근하였을 때 순식간에 골리앗의 유일한 약점인 이마에 던져 기절 시키거나 두개골을 쪼개고도 남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45구경 권총을 들고 칼을 찬 사람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군복과 칼을 버린 것입니다.

Believe in the promise of the Lord: 주님의 약속을 믿어라 약속을 믿어야 용기가 오고 용기가 와야 지혜를 실현하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1Sa 17:45-47 KOR)

약속을 믿고 나갈 때 우리의 길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루어져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예로 다윗의 예를 든다- 사울 왕을 엔게디 동굴에서 살려보낸 것. 심지어 예언이 성취된 사례이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돌에서 떡을 만들어내라고 주문하단든지, 하나님의 기적 아니면 헤어날길이 없도록 자신의 환경을 만든다든지 하는 태도는 죄악된 태도입니다.

Commit yourself to the Lord: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다윗은 용기와 믿음에 의해 능력을 받고 골리앗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이 재빠르게 접근하는 것을 잘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너무 크고 느리고 흐릿한 시력을 가져 다윗이 생각하는 전략을 알아채리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신앙은 능동과 수동이 잘 어우러져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 힘을 벗어난 것은 수동이 어울리는 지점입니다.

 

 Gino D’Achille – David and Goliath from the Bible Stories (1968)

중생이란…

중생이란 하나님의 뜻이 새겨져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그 뜻을 이루고자 성경을 통하여 구체적인 삶 가운데서 분별할 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최영의 (배달)씨를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분은 맨 손으로 소의 뿔을 짜르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손 날을 세워 따닥하고 치면 소의 뿔 두개가 전부 잘라진다고 합니다. 대단한 기술과 힘입니다. 곽선희 목사님의 친구 중에 당수를 배운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학창 시절 어느 날 학교를 갔다 오다가 소에게 일격을 가했는데 그만 소가 죽어 버렸습니다. 그 소임자가 친구 아버님에게 가서 소 값을 물어내라고 야단 법석을 떨었습니다. 친구 아버님은 자기 아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너 왜 가만히 있는 소를 죽였냐?” 하고 물으니 “소가 나를 째려 보아서 기분이 나빠 죽였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소 값을 물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를 안 친구는 아버지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여기까지 저를 사랑하셨으니 이제는 제가 올바르게 살겠습니다” 후에 그 친구는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행동을 고치는데는 은혜를 주는 것이 최고입니다. 감사함이 나오면 저절로 행동은 고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알코올중독과 같은 것은 다른 조치를 쥐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백년간 애굽 땅에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 노예살이가 얼마나 심했으면 쇠풀무라고 이야기 하였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력이 전혀 없이 오직 모세를 보내사 이들을 당신의 기적으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물과 만나를 내려주시면서 생존하게 하신 뒤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고 그 후에 가나안 땅을 그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구속하시고 또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연한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이 새겨져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 뜻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냥 노예살이를 벗어나게 하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 정도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너희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길에 행할 때에든지 자리에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앉았을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들은 하나님께 반역하여 결국 국가가 멸망하여 바벨론의 포수로 끌려갔고 돌아와서 다시 번성하였으나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죄를 저질러 온 세계에 흩어지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기억과 하나님의 말씀의 암기만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그 만큼 악하고 우리 주변에는 마귀가 진을 치고 밤낮 우리를 유혹할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하고, 세상은 살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 당신 사이에 놓여있는 율법의 정죄 즉,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외치는 율법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을 포함한 도덕적 질서는 당신이 천지를 창조하신 바로 그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에서 한 획이 떨어지느니 천지가 없어지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보내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육신 속에 있는 죄를 정죄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의 삯을 다 청산하셔서 율법의 정당한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의롭다하심을 모든 자에게 보여주셨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역시 의롭다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우리의 죄 값을 지고 죽으셨다는 소식을 참으로 깨달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당신의 율법을 두시고, 우리의 생각 속에 당신의 법들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빌트인 (built in) 되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이런 사람들 즉, 중생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중생한 사람들은 성경 구절을 암기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에 이미 하나님의 뜻이 새겨져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그 뜻을 이루고자 성경을 통하여 구체적인 삶 가운데서 분별할 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된 특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들어오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사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깨닫게 하시는 것으로 그 가르침에 굳게 서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삽화: 신예현, putting the good work into practice (2016) lifeisyea.com

소렉 골짜기와 삼손

소렉 골짜기와 삼손 (사사기 13-16)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고 있을 때 블레셋민족이 가나안 땅 서쪽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점이 대략 비시1,200년경이었다. 이들은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가드, 에그론, 이렇게 다섯 성읍을 일으켰고 각자 왕이 있어 다스렸다. 이런 강력한 요새와 우월한 병기를 가지고 동쪽 산지에 자리를 잡은 이스라엘을 압박하였다. 이들은 가나안 중부지역에 위치한 쉐펠라(Shephelah- 히브리어: “낮은(low)”) 지역을 통과하여 이스라엘과 접촉하거나 칩입할 수 있었다. 쉐펠라 지역은 통상 “낮은 땅”으로 번역되며, 해변 평야와 유다 산지 사이에 있는 평야지대로서 동서의 길이 약 20킬로미터정도 되고 여러 낮은 구릉들을 가지고 있었다. 쉐펠라 지역은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아얄론 골짜기, 소렉골짜기, 엘라골짜기, 구브린골짜기, 라기스골짜기까지 중요한 5개의 계곡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풍부한 비와 비옥한 토양으로 인해 곡창이었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 완충작용을 하는 지역이어서,이스라엘 특히 유다와 벤야민 족속의 안전은 이 지역을 침입하는 블레셋 군대를 얼마나 잘 방어하는가에 딸려 있었다.

이 쉐펠라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삼손이 태어나고 자란 소렉골짜기이며, 그의 첫번째 블레셋과의 접촉도 바로 이 소렉골짜기 서쪽 끝에 위치한 마을 딤나였다(사14-15). 딤나에서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려고 잔치를 여는 중 내기에 진 삼손은 여기서 약 38킬로 떨어진 블레셋 성읍 중 하나인 아스글론으로 내려가서 30명의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의복을 가져다 주었다. 또 한편 자신의 아내를 타인에게 준 것을 빌미 삼아 블레셋을 쳐서 1천명을 죽인 곳도 소렉골짜기 북쪽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레히라는 지역이었다. 이 후 20년간을 이스라엘 사사로 있으면서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소렉 골짜기에 사는 여인 들릴라의 배신으로 가사(삼손의 고향 소라에서 약60킬로 떨어진 남서쪽 해안지대에 위치한 성읍) 로 끌려가 두 눈이 뽑히어 맷돌을 돌렸지만, 하나님의 마지막 은혜로 힘이 회복되었고, 자신이 죽으면서 다곤신당을 무너뜨려 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 그 결과 삼손이 죽을 때 죽인 블레셋 사람이 살아있을 때 죽인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사16:30).

삼손은 모든 그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가장 큰 적인 마귀,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앞으로 주어질 영원한 구원의 토대를 놓으신 것처럼(히2:14-15; 벧전1:3-5), 그도 죽음으로써 다곤 신당과 이스라엘의 가장 큰 원수인 블레셋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72-73참조).

 

www.lifeisyea.com
Illustration by Yea Hyun Shin  

수요일터예배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길 아래에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6-7)

미디안에서 정착한 모세는 결혼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평범하나 행복한 삶을 이어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단, 모세는 늘상 괴로와 하였을 것입니다. 영화 십계를 보면 모세로 분장한 찰슨 헤스톤의 괴로워하고 하나님께 불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당신의 구원은 언제 올 것입니까? 이해하고도 남지요. 모세가 애굽사람을 죽이고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하려고 하였을 때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400년이 거의 찼을 때입니다. 그러나 미디안으로 도망을 가서 사는 사이에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400년은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는 마음에 회의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족의 괴로움때문에 가슴아파하였을 것입니다. 아마 안중근 의사나 백범선생 만큼 이나 애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될 때까지 모세가 필요한 마지막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이는 은총적인 준비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부르심과 향후의 소명을 보시려면 이런 은총적인 준비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고 당신을 의지하면서 사는 당신의 백성들을 헛되이 살게 하시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일하게 하시는 일에 연결되어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일에 최선을 다하시고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우십시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종으로 팔려 가서 보디발의 집에 노예 생활을 하게 하셨지만 그의 타고난 성실성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통하여 가정총무에 이르고 여기서 항상 2인자의 길을 닦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2인자의 길을 닦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바로앞에 서게 되며 바로의 아비가 되게 하여 전 애굽사람과 가나안사람들을 흉년에서 구출하시는 소명을 맡기십니다.. 천사들을 보내어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미리 미리 요셉을 준비시켜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만 그 이유를 그 때는 몰랐던 것 뿐입니다. 요셉은 국무총리가 되어서야 자신의 소명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는 혈기를 누루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앞에 겸손한 자세로 서는 태도를 배웠어야 합니다. 이 훈련을 40년간 광야에서 아무런 지위나 명예도 없이 목자로서 살아가면서 체득하였습니다. 그는 무척이나 온유한 사람이 되어서 신명기에서는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으로 불리워졌습니다. 또한 광야에서 양떼를 이끌면서 양떼의 성향과 특성 그리고 어떻게 목양을 하면 좋은지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좋은 꼴을 찾아 다니면서 맹수들로부터 이들을 지켜야만 하는 여러 상황을 맞이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훈련은 그로하여금 양들대신 하나님의 백성을 맡았을 때에 진가를 발휘하였습니다. 그는 목표를 향하여 백성들을 이끄는 강함과 부드러움 의 지도자의 철학을 터득하였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미디안 광야를 40년간 돌아다니면서 광야의 지형과 위험 그리고 생존의 방법을 터득하였습니다. 이는 향후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면서 돌아다닐 지역을 미리40년간 답사한 것입니다. 이로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이끌 지도자의 여러 자질들과 조건을 갖추게 하시고는 이제 때가 차매 부르시고 권능을 부여하시는 일만 남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만 할 아주 중요한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말없이 충성하라. 그러면 향후 우리의 미래를 위한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이때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살아갈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노력하십시요.

 

이스르엘 평야에서 시스라 군대의 패배

하솔의 가나안 왕 야빈에게 20년동안 학대를 받은 후 하나님께서는 드보라와 바락의 손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납달리와 스불론의 백성 일만명을 이끌고 이스르엘 평야 북동쪽 끝에 있는 다볼산(588미터)으로 집결하도록 지시하였다. 바락이 군대를 이끌고 다볼산으로 간 것은 보병만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군대가 철병거 900대를 가진 하솔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대적하기에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볼산의 비탈길과 나무들로 인하여 철병거를 운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스라는 그 철병거들을 하로셋에서부터 기손강으로 모았다(삿4:7,13). 병거들은 압도적인 속도와 이동발사대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 고대세계에서는 전차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스르엘 평야에서 이 철병거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우 염려스러운 대상이었다. 이스르엘 평야는 북으로는 나사렛 산지로부터 남으로는 갈멜산지에 이르는 넓은 평야이다. 그러므로 철병거를 가진 가나안 군대들이 싸우기에 아주 좋은 지형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락에게 다볼산을 내려가서 평야에 있는 적군을 쳐부수라는 명령을 주셨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이는 매우 우수꽝스러운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고지의 유리함을 버리고 평야의 약점을 취하라고 요청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시스라의 마음 속에 넘치는 자신감을 가지도록 하는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신뢰하도록 부르고 계신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을 박차고 내려왔을 때 시스라의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패배하였다. 어찌된 것일까? 가나안 철병거들이 힘차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스르엘 평지를 달릴 때 하나님께서는 예기치 않은 폭우를 내리셔서(사5:4, 21) 기손강을 넘쳐흐르게 하시고 이스르엘 평지를 물로 범람하게 하신 것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시스라와 그 군대들은 신속히 철병거를 버리고 걸어서 도망가기 시작하였다(사4:15). 왜냐하면 그들의 철병거는 갑자기 내린 폭우와 이로 인한 진흙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바락의 군사들은 시스라의 본거지인 하로셋에 이르러 시스라의 군대를 전부 몰살시켰다(사4:17).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사람인 바락과 드보라를 사용하시어 승리를 도저히 예견하기 어려운 때 인간이 예기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승리하게 한 것이다. 이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68-69 참조).

성탄절과 십자가

성탄절과 십자가의 사건이외에는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반항적인 죄된 마음을 씻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감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메시지는 어디에서 설교하건 초월적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깊숙이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죄와 반역을 하고 있다는 뿌리 깊은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 갑자기 천둥이 치면 혹시 내 죄값으로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은 죄의식을 억누르거나 부인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이를 통하여 성령님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때 이를 받아들여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단한 자들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이틀이 남은 오늘 우리가 이 날을 기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한 사실 때문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래로 사망과 사탄의 종이 되도록 이끈 죄의 권세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다고 예언한 구절들이 구약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주님 오시기 700년 전에 주신 이사야 9장 6-7의 말씀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낳고 한 아기를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모사라 기묘자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신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하실 것임이라. 그의 정사와 평강의 더 함이 무궁하며. 또한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킨 뱀에게 선언하시기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그는(여자의 후손은 :그리스도- 단수) 너의(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사탄)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조그만 유대 고을 베들레헴에 오시었습니다. 그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들의 죄를 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죄가 초래한 우주적인 벌과 결과들, 즉 영원한 죽음을 처리하시고 당신의 희생적이고, 대속적이며, 모든 것을 충족하는 죽으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을 주실 작정이셨습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진짜 이야기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요람도 없습니다. 빈 무덤에 남은 포개진 옷들이 없이는 배내옷도 없는 것입니다. 전쟁과 갈등 그리고 테러로 얼룩진 세상을 위해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의심과 낙담으로 꽉 들어찬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전략가이십니다. 사망에 직면하여 두려워 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기에는 힘이 부족한 자들을 위하여는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세상은 점점 곤란해지고 무질서해져 갈 것이지만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아기는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통치하고 계시며 신자들은 기뻐할 것이고 불신자들은 떨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첫 강림은 그리스도의 두 번째 강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그는 이번에는 유다의 사자로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거절하는 모든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오직 그땐 크리스마스의 이야기가 완성될 것입니다. 모든 종족, 언어, 민족 가운데서 나온 백성들이 그의 발 밑에서 경배할 것입니다(2015 BGEA 프랭크 빌리그래엄).

약속의 땅에서 바알 숭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뒤, 광야에서 기적으로 돌보시고,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을 경우 받는 위험들이 무엇이며,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과 국가로 삼으신 목적과 이유를 알려주셨다. 그러나 사사기에서 바로 이들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가나안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 시작하였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였는가?이에 대한 한 가지 중요한 단서가 바로 가나안 땅이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특성과 기후 때문이었다. 고대 가나안 땅에는 곡식 즉, 밀과 보리의 추수만큼 중요한 식량원은 없는 것이었다. 풍성한 추수를 하기 위해 충분한 물의 공급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늘상 비가 내리거나 이집트와 같은 거대한 나일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씨를 뿌릴 때와 곡식이 익을 때 즈음에 알맞은 비가 내려야만 그 해의 곡물을 거둘 수가 있었다. 적당한 비가 없다면 목초지도 시들어가고, 우물이나 저수지도 바짝 마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밀과 보리는 추수하기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아주 잘 알려졌지만 최근에 정복자로서 이민하여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비로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하는 가나안식 농업을 체득하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가나안식 농업을 배우는 동안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우상인 바알을 경배하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가나안 신학에 따르면 사람들의 일상은 신들의 조정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었다. 천둥, 사망, 가뭄 그리고 전쟁조차 신들 행동때문에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신학에 등장하는 신들은 비도덕하고 능력은 있지만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이 욕망을 인간들이 조작할 수 있다면 신들의 능력을 빌어 가뭄이나 전쟁등 인간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조작의 방법으로 각종 음란한 행위등이 포함되어 가나안 백성 전체를 타락시킨 것이었다.

가나안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농업에서 성공하려면 단순히 때를 따라 씨를 뿌리고 가꾸는 행동뿐만 아니라 바알 숭배와 관련된 가증스러운 행동들을 하도록 가르쳤던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매우 증오스러운 문화에 보내셨다는 것을 알고 이런 문화들을 철저히 파괴하고 궤멸시키도록 명령하셨고(신11:10-15), 더 나아가 가나안 땅은 농업의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시고 풍성한 추수를 위하여 가나안의 신들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만을 신뢰할 것을 경고하셨다(신11:10-15).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성한 추수를 담보한다는 명목하에 바알 숭배를 음란하듯이 시행하였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예측할 수 없는 기후에 직면하여 오직 여호와만을 신뢰하였다면 주변의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충분히 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경우 하나님의 백성에게 인내를 요구하기는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비라는 존재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알리는 훌륭한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을 신뢰하는 쪽을 택하였던 것이다. 시편 4편은 이런 가나안 땅의 특색을 전제로 역경에 처한 시인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시인 것이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66-67 참조).

신예현 – 약속의 밭 lifeisyea.com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 (잠언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명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3:5-6)

마이크 홈 그렌은 고교시절 미국 대표 풋볼팀의 쿼터백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UCLA에서 풋볼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학창 시절 그의 꿈은 단 하나 미국프로 풋볼리그인 NFL에 진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 구단에서 그를 영입했을 때 그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팀에서 방출되었고 다른 팀에서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훗날 마이크는 그때를 회상하며 그 일로 저는 완전히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풋볼 선수로 활약하는 것만을 목표로 살아왔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 정말이지 완전히 패배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마이크는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며칠이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그의 눈에 문득 먼지가 수북이 쌓인 낡은 성경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11세 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표를 풋볼에만 두고 사느라 하나님을 완전히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성경을 한번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여기저기 흝어보았는데 잠언 3장5-6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말씀을 읽는 순간 마이크는 자기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다시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마이크는 자기가 졸업한 고등학교로부터 풋볼 코치를 맡아 주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이일을 계기로 게속 코치로 일하게 되어 나중에는 미국에서 가장 눈부신 성공 신화를 이룬 NFL 코치 가운데 한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 정말로 중요한 게 뭔지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느냐 지느냐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제게 정말로 중요한 건 슈퍼볼 반지가 아니라 영생의 면류관이니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승리를 통해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그 영광스러운 면류관 말입니다.(강준민,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293-29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환경과 말씀으로 마이크를 찾아가셨을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 다시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는 대목입니다. 이는 그가 주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받은 것을 안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려고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런 삶을 통해 신앙이 자라갔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셔야만 합니다.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의 편집권을 갖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고 이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장 중요한 선물을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영혼에 닻과 같아서 우리 마음이 쉼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큰 선물을 주신 분이 아까우실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만 하나님에게는 우리 인생의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이 있다고 마이크가 당장 NFL프로 선수로 영입된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의 묘미가 있습니다. 마이크는 모교의 코치로 요청받았고 이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만 이 길이 마이크를 위해 준비한 하나님의 길이었습니다. 겸손해진 마이크는 이 길을 갈 수 밖에 없고 드디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코치로서의 자질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을 움직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생에 두어야 하며 나머지 삶은 하나님의 인도와 돌보심을 믿고 한 걸음씩 지혜를 다해 살아가야만 합니다.

nfl_walsh_02Mike Holmgren –  http://espn.go.com/

성도의 기업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약속의 땅 배분

하나님의 도움과 여호수아의 영도력 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과 아모리 족속의 주력부대를 궤멸시켰다. 그러나 아직 많은 땅이 정복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기에 여호수아는 공식적으로 각 지파와 개인들에게 땅을 배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수13-21). 이 배분시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각 지파의 인구수여서 수가 많은 지파는 기업을 더 많이 배분하고 적은 지파는 적게 배분하는 방식을 취하였다(민26:52-56). 그러나 기업을 배분시 몇가지 고려사항이 있었다. 먼저 가나안 땅의 주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이 땅 배분의 전제인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인도하에 제비를 뽑게 함으로써 배분 받은 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및 섭리를 인정하게 하였다. 셋째, 지형적 특색과 포함될 도시목록을 열거함으로써 각 지파에게 소속될 지역을 분명히 하여 분쟁의 소지를 없앴다. 넷째, 갈렙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경우는 특별히 원하는 지역을 할당하여 정복하게 함으로써 여호와에 대한 믿음이 보상을 받도록 하였다(민14:24; 수14:12-13). 다섯째, 레위지파는 분배에 참여하지 못한 대신 이스라엘 전체에서 48개 성읍을 할당 받았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 기업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기 위함이었다(수13:33; 21:1-42). 이스라엘 각 지파는 이런 원칙하에 공정히 약속의 땅을 배분받았다. 하나님은 그가 하신 모든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셨던 것이다(수21:45). 따라서 이들이 양떼를 치고 땅을 갈아 농사를 지을 때마다 신실하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신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게 되었던 것이다(출3:17). 그러나 이 약속의 땅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의 세상적인 필요와 예배를 위하여만 주신 땅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자손이 전 세계를 구원하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모든 열방에 선포할 사명을 진 곳이었고, 그 구원을 이루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셔서 인간들과 함께 거하실 땅이었던 것이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64-65 참조).

이 가나안 땅의 분배는 신약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다가올 세상을 기업으로 받는 아주 좋은 상징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의 헬라식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의 분배는 바로 예수님의 인도로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의 몫을 분배받는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정복한 땅에 1400년이 지나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가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의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죄사함을 받고 다가올 영원한 하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믿은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았으므로 주님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함을 넘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골2:6-7).

Spies-Background Journeys of the Israelites. Illustration from the 1897 Bible Pictures and What They Teach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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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선 IV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

히위족속 기브온의 투항과 중반전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서쪽으로 약 10킬로 떨어진 곳이며 길갈 본진에서 서쪽으로 약 28킬로 떨어진 가나안 산지 중앙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기록하고 저주와 축복을 선포하여 하나님을 명예롭게 한 뒤(수8:30-35) 이제는 가나안 중앙 산지에 위치한 바로 이 기브온을 정복하러 갈 차례였습니다.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성에 한 일을 듣고 (수9:3) 투항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들은 꾀를 내어 마치 먼 나라에서 온 양 꾸미고 이스라엘 본진이 있는 길갈로 사신들을 보내어 화친조약을 맺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이들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수9:15). 이 후 삼일이 지나서야 이들이 인근의 가나안 족속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여호와의 이름으로 평화조약을 맺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4개의 기브온 도시들(수9:17 – 기브온, 그비라, 브에롯과 기럇여아림) 및 그 주민들을 멸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영원히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긷는 자들로 삼게 되었다. 백성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지도층을 원망하였으나 모든 족장들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였으므로 지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설득하였으며 백성들이 이를 따랐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중에 기브온이 이스라엘에 투항하였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왕 아도니섹에게 들리므로 그가 이를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헤브론등 4왕과 연합하여 기브온을 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협력한다면 예루살렘 도시는 매우 위험한데 이는 기브온 지역이 예루살렘과 지척이었기 때문입니다. 더나아가 여호수아가 동서로 횡단하여 가나안 족속들을 양분하고는 차례 차례 섬멸시키려는 전략을 눈치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모리 족속들이 기브온을 둘러싸자 구원요청을 받은 여호수아는 밤새 올라가서 갑자기 이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치니 아모리 족속들은 패배하여 서쪽으로 달아났고 이때 하나님께서는 2가지 기적으로 이들을 도와 주었습니다. 첫째는 해변으로 도망가는 아모리 족속들을 우박을 내려 죽이셨고, 두번째는 여호수아의 외침에 응답하여 태양과 달의 운행을 멈추셨던 것입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잘 보여 준 일입니다. 한편, 이런  하나님의 권능이외에 기브온 거민을 살려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이 잘 드러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브온 거민들을 두번이나 구원해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한 번은 이스라엘과 화친조약을 통해서이고, 또 한번은 아모리 5왕들의 연합공격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사건은 누구든지 여호와를 찾는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이런 화친조약을 통하여 전쟁없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가나안 중앙 산지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62-63 참조).

 그러나 오늘날은 더 이상 가나안 족속도 기브온 거민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섹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적은 죄와  세상과 마귀라는 것을 하나님의 아들께서 도성인신 하심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죄는 하나님을 배제하고 내가 왕이 되려는 마음이 그 본질이고, 세상은 하나님의 지배를 거부하고 인간 자신의 지배로 살아가려는 반 하나님 집단들이며, 마귀는 이 세상을 자기 손아귀에 넣어 자신이 하나님 처럼 경배를 받으려는 악한 영입니다. 그러면 이런 패역한 세상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겠습니까?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 죄 값을 지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한 분이신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0:9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