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누가복음 12:28-32

영국의 정치학자인 액튼 경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명언을 남겼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진경준 검사장의 여러가지 권력형 부조리의 형태를 접한 우리는 왜소하게 느껴집니다. 게임으로 유명한 넥슨이라는 회사의 주식을 무상으로 취득하여2015년 처분 120억원이라는 시세차익을 얻고 계속해서 검사장의 자리를 지키다가 이런 물의가 나타났습니다. 신문에 보면 진검사장은 주식 취득과 관련하여 여러 번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돈으로 주식을 샀다고 했다가, 그 후에는 말을 돌려 처가집 돈으로 구입했다고 하였으나 처가가 그런 돈이 없고 처가에서 흘러나온 정황조차 없자, 나중에는 서울대 86학번 동기인 김정주씨가 대표로 있는 넥슨 회사로부터 빌렸다고 말을 돌렸다.  이 둘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가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아무리 동창생이라 하더라도 넥슨 사장 김정주씨가 대가없이 그런 돈을 주고 특혜를 주었겠냐하는 것은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마 권력의 비호를 받기 위해 계속 “관시”를 맺어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현재 진 검사장이 인정한 주식추득 자금에 대한 뇌물죄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라고 합니다. 어떤 블로그에서는 “배움의 목적이 권력과 부를 움켜쥐는 수단”인 것 같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 사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그런 문제가 요사이 특히 심합니다. 한국의 대형교회의 여러가지 사건은 제쳐두고 이번에는 일본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요한 동경교회, 즉, 요도바시교회로 잘알려진 교회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중심에 놓인 분은 김규동 선교사님입니다. 신앙간증이 담긴 책 “하나님은 불모지에서 일하신다”를 읽어 보면 미원에 입사하여 4년차 되던 해 일본으로 2년간 연구생으로 파견을 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그 기회를 틈타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부공장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본 센다이 교회 목사님의 강력한 요청이 있어 일본선교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김규동 선교사님은 3가지를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그 중 가장 어려운 제목이 일본에 평신도 선교사 비자를 달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이것까지 일본교회의 도움을 받아 나오게 되자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규동 선교사님은 일본 요도바시교회의 한국부를 맡아 16명의 멤버들과 함께 열심히 신학공부하면서 전도하고 가르치니 그 교회는 일신우일신하여 드디어 일본의 최대 교회로 성장 2014년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수천명이 다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교회문화를 가지게 되었고 김규동목사님은 우상화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히 높은 존경과 권위를 배경으로 성추문이 일어났습니다. 그 원인에는 1998년 일어난 극좌파에 의한 테러로 몸이 많이 상하였기에 맛사지를 여성 사역자로부터 받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것도 미혼의 젊은 여성에게 말입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고자 한것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그만 실족을 하고 말았다고 여겨집니다. 그것은 결국 진경준 검사장의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진검사장은 국가를 위해 일하고자 애를 쓴 결과 국가에서 부여한 권력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게 된 것이며. 김목사님은 하나님을 위해 애를 쓴 결과 하나님이 주신 교회 성장과 권위를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태도와 주님이 가지고 계신 믿음을 본받아야만 합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하고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습니다. 여러분 섬기려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면 절대로 속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하니까 사기의 문제나 권력 남용의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믿음을 본받아야합니다. 주님은 창세전과 후를 왔다 갔다 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 육체의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본받아 종말의 신앙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모든 가치가 뒤바뀝니다. 여기서 권력을 잡고 웃는 자들은 거기서는 슬피 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권력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것 때문에 절망에 빠질 것입니다. 여기서 돈을 많이 벌고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은 죽는 날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임을 알고 슬피 울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은 무리인 우리는 두려워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영원한 나라를 예비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마태복음 5장 3절

어떤 사람을 회사의 대표이사로 선출하였습니다. 대표이사는 회사를 대신하여 지출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당연히 회사의 발전을 위하는 목적입니다. 그런데 대표이사가 수표발행의 권한을 남용하여 자신의 부인의 자동차로 폭스바겐을 사주었다면 어떤 일이 발생되겠습니까? 상법이나 민법은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대표권 남용에  관한 규정을 두어 폭스바겐 회사와의 거래를 무효로 할 것이나 아니면 유효한 상태로 두고 주주가 대표이사에게 손해배상과 책임을 묻게 할 것인가의 여부에 초점이 두어져 다루고 있습니다. 정답은 거래 상대방이 악의 즉, 대표권 남용의 사실을 알고도 거래를 하였다면 폭스바겐을 판매한 것을 회사가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선의 즉, 그런 사실을 모르고 거래를 하였다면 판매사실을 취소하지 못하도록 하여 당사자와 거래의 안전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 반면 형법에서 초점을 두는 것은 그 행위가 업무상 배임죄를 형성하느냐의 여부이며 그 요건은 형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업무상 배임죄를 형성하면 감옥에 가서 그 자유를 박탈하는 형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태와 사건을 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오는 사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건을 보내시고는 어디에 초점을 두고 계시는지 파악을 해야 우리가 그런 테스트를 통과해 나갈 수 있은 것입니다.

20년 전에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장로장립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화원을 운영하던  이집사님은 장로에 떨어지고 자신이 어릴 때 교회로 인도하였던 권집사님이 장로로 피택이 되었습니다. 이집사님은 여러 번 교회를 위하여 애를 썼고 예배를 위해 화분도 갔다가 놓는등 노력을 하였지만 교회에서 그렇게 결정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집사님은 교회를 떠나셨습니다. 소문에 들으면 장로로 자신이 피택되지 못하고 자신이 인도하였던 권집사님이 피택된 것을 승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반면 김제 금산교회는 자기 집안의 하인이 먼저 장로가 되었지만 교회가 분열되기는 커녕 더욱 아름다운 선례를 남겼습니다.  김제 금산교회와 조덕삼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조덕삼 장로님은 데이트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 놓고 자신 부부와 가족 및 일꾼 전부 교회로 나가 주님을 믿었습니다.그 중에는 마부 이자익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자 1906년 마부 이자익과 함께 침례를 받고 집사로 임명이됩니다. 더 부흥하자 마침내 교회에서 장로를 뽑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교인들의 투표 결과 부자이고 교회 터를 제공하고 아주 헌신적이며 나이가 15살 많은 조덕삼 집사가 아니라 그 하인인 이자익 집사가 장로로 뽑혔습니다. 교회가 갈라질 지경에 놓였을 때 조덕삼 집사는 발언권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당시 장로는 설교 및 교회 모든 일을 관장하였기에 대단히 중요한 자리였고 이제 조덕삼 집사는 이자익 장로의 밑에서 교회일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조덕삼 장로는 주님의 길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후에 이자익 장로가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하도록 뒷바라지 하고 신학교를 졸업하자 담임 목사로 초빙을 하여 금산교회를 시무하게 하였습니다. 이자익 목사님은 한국 장로교에 최초로 총회장을 3번 역임하는 등 아주 훌륭한 목회자였지만 조덕삼 장로님의 일화는 빼놓을 수 없는 백미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자신을 낮추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거기서 또 한 번 자신을 낮추사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주님을 본받아야만 합니다.심령이 가난하게 살고 자신을 낮추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주실 것입니다.

행복 기준선을 높이기

행복 기준선을 높여 영원의 삶에 맞추어야 합니다 (전5:10-12) 

어떤 부부가 같이 이민가기 직전인데 이재철 목사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소망하여 부부를 함께 만났다고 합니다. 그 중 부인은 외국으로 도망을 가 행복하게 살려고 거액의 공금을 횡령한 상태이며 어떻게 행동하였으면 좋은지를 상담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렇게 살면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니 자수하기를 권유하였고 자매는 수사기관에 자수하여 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해외로 이민을 갔다고 합니다. 이재철 목사님은 그 책에서 자신은 그 자매가 하나님의 뜻대로 지금 살고 있을 것을 확신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자매는 행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돈을 절대시 하였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획득하고는 그것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님을 발견한 것이며 목사님의 상담을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행복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즉, 불법으로 부자가 되기보다는 정직하게 사는 가난한 자가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이란 복된 좋은 운수 또는 우리가 생활에 만족하여 기쁨을 느끼는 상태라고 국어 사전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 뜻에는 행복은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달성되지 못하는 우연이 개재되어 만족하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에서도 같은 의미로 행복이 쓰여 있고 독일어도 같다고 합니다. 영어에서 행복은 hapiness 인데 여기서 hap이라는 어원은 happen에서 왔고 다 알다시피 happen 이라면 우연히 발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양에서 정의하는 행복의 의미와 같이 행복은 우리의 능력 이외의 요소에 의존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만 달성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행복은 무엇인가?의 강의에서 샤하르 교수는 행복의 기준선을 높이면 행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행복기준선을 높이는 학설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구는 타고난 것이며 욕구를 강도와 중요성에 따라 5단계로 분류한 아브라함 매슬로(Abraham H. Maslow)의 이론이다. 하위단계에서 상위단계로 계층적으로 배열되어 하위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그 다음 단계의 욕구가 발생한다. 욕구는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요인이며, 인간의 욕구는 낮은 단계에서부터 그 충족도에 따라 높은 단계로 성장해 간다. 이것이 욕구 5단계설이다. 1단계 욕구는 생리적 욕구로 먹고 자는 등 최하위 단계의 욕구이다. 2단계 욕구는 안전에 대한 욕구로 추위·질병·위험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욕구이다. 3단계 욕구는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로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애정을 주고받는 욕구이다. 4단계 욕구는 자기존중의 욕구로 소속단체의 구성원으로 명예나 권력을 누리려는 욕구이다. 5단계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해 자기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하려는 최고수준의 욕구이다”(사회복지학사전, 2009. 8. 15.,).

그러나 이렇게 행복기준선을 높여가다가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도달하였다고 하여 인생에게 참된 만족이 있을까요? 솔로몬에 따르면 거기서도 허무한 상태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복 기준선을 높여가되 영원의 차원에 맞추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영원의 차원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발견될 수도 접근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행복 기준선을 하나님께 두고 그 말씀에 맞추어 사신 분이 있습니다. 선지자 다니엘은 17살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거기서 귀족자제로 뽑혀서 특별한 대우를 받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왕의 진미를 먹는 것은 좋으나 그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진 뒤 배급된다는 사실에 신앙적인 갈등이 온 것입니다. 다니엘은 먹고 자는 생리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음식을 거절하면 왕명을 거절하게 되어 큰 벌을 받을 수도 있고 쫓겨나서 공부를 하지 못함으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매슬로가 말하는 욕구 5단계를 전부 박탈당하여 일생을 비참하게 살 수도 있는 위험한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길을 갔습니다. 다만 자신들을 담당하는 감독관에게 열흘 동안 채식만 먹은 뒤 다른 소년들과 얼굴을 비교하여 좋은대로 조치를 취하라는 제안을 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채소만 먹은 이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윤택한 것을 보고 채식을 주어 먹게 하였으며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지혜를 주었습니다. 이 지혜를 통하여 다니엘은 사자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이방 나라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베드로전서 3:1-7

이스라엘 하나님은 변덕이 심한 분이 아니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됩니다. 그는 사랑을 고취할 약속들과 두려움을 일으킬 위협들을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율법으로 구분하시기 위하여(거룩하게 하심) 좋은 땅에서 위대한 나라로 세우셨습니다(8:30-35). 만약 당신의 백성들이 그들의 임무를 실패한다면, 그는 그들을 멸망시킬 것입니다(막12:1-12). 그래서 임무를 실패하고 메시야를 죽인 그들을 멸망시켜 전 세계에 흩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은 최후의 심판의 한 예표입니다. 그 심판 후에는 영원한 죽음과 영원한 삶이 나뉘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주되심을 고백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셨다는 사실은 성도들로 하여금 충성하도록 격려하고, 역경에 있을 때 그들을 위로하며 유혹에 있는 그들을 억제합니다 (여호수아 23:14-16). (1) 요셉은 하나님께서 종으로 팔려간 애굽 땅에서도 함께 하고 계심을 체험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행하는 일에서 범사에 형통한 것을 체험하였으며, 그 주인 보디발 조차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고,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게 되었고 보디발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하니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급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쳤다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체험은 청년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종으로 일하고 있는 애굽 땅에 조차 자기와 함께 한 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실이야 말로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요셉은 소망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제사 문제가 터부시되던 시절 어느 믿음을 가진 처녀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믿음을 가지지 못한 청년을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을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이 청년은 예수님을 믿지는 않지만 교회가는 것을 반대하거나 핍밥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 청년의 집은 유교적 전통이 뿌리깊은 집안이었고 그 청년은 장손으로서 조상의 제사를 받을어 모셔야만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시아버지 되실 분은 제사드리는 것을 자손의 도리로 여기며 긍지를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처녀의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제사를 드리는 것은 우상 숭배라고 반대하고 주례도 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축복하는 것도 거절 하였습니다. 시집을 간 이 처녀는 1년간은 교회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예배드리고 찬송할 것을 결심하였고 그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시아버지는 제사만 드리면 찬성이었습니다. 지극 정성으로 시부모를 섬기니 며느리에 대한 자랑이 대단하였습니다. 1년이 지나 교회에 나갈 것을 허락해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아버지는 제사만 드리면 문제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시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자 그 가정 전체가 그리스도를 섬기게 되었고 이윽고 그 마을 전체가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김형석, 어떻게 믿을 것인가?”)  주님은 이렇게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자

베드로전서 1장 21-22절

제일기획 대표이사와 광고업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광고계에 많은 기여를 한 배동만 고문의 첢은 시절을 언급한 책이 있습니다. 이분은 대학에서 축산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1973년 자연농원(후에 에버랜드로 개칭)에 입사하면서 돼지를 돌보는 일을 맡았습니다. 당시 이병철 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는 것이 자연농원이었고 거기에는 일본에서 수입한 돼지를 키우기 위해 돈사 100개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당시 일주일에 3번씩 자연농원을 방문하면서 이러 저러한 지시와 감독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배동만씨는 자주 이병철 회장을 뵙고 모실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자 그에게 인생의 뚜렷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이병철 회장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면 그의 인생은 대성공이라고 하는 인생의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농원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병철 회장과 자주 만나게 되니 여기서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산 경영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병철 회장은 그의 사람됨을 보고 그를 중용하였다고 합니다. 한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이런 열정이 있어야 하고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금생과 내생에 있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주리고 목말라야만 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두고 사랑의 수고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님의 열매와 복음의 전도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라디어서 6장 8-10 )

 알랜 에머리라고 신실한 기독교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는 매우 명민하지만 친절한 사람으로서 사업에서도 성공하고 많은 주님의 일을 한 사람으로 존경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자기 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 합니다. 알랜이 청년시절 오랜 열차 여행을 하곤 하였습니다. 식당칸에서 어느날 아침에 그는 자기 아버지- 이 분도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께서 짐꾼이 고통스럽게 절룩거리면서 걷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불쌍한 짐꾼은 살속으로 파고드는 발톱으로 고통받으면서  발가락이 곪았던 것입니다. 그 아침 늦게 알랜은 그 짐꾼이 자기 부모님의 침대칸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고 합니다. 그 얼굴에는 고민하는 표정이 나타나 있었고 자기 옆을 지나갈 때 보니 눈물이 얼굴에 폭포와 같이 흘리면서 자기 자리에 돌아가서는 두 손을 얼굴에 대고는 울었다고 합니다. 알랜은 그 옆으로 가서 앉아 상세히 물었습니다. “당신은 발가락 때문에 아퍼서 우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 아버지 때문입니다.” 알랜은 큰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즉시 그 짐꾼에게로 가서 발가락에 관하여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자기는 의사가 아니지만 그를 도울 수 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사람의 신발과 양발을 벗기고는 조심스럽게 감염된 그 발가락을 절개하고 소독한 뒤 붕대로 감쌓다고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습니다.” 그 짐꾼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상쾌합니다.” 앨랜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왜 우십니까?” “당신의 아버지가 내 발가락을 붕대로 쌓시면서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나는 내 어머니께서 그랬으나 나는 믿지 않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당신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내 발을 붕대로 감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이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보았고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지금 나는 예수님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과 그가 나를 사랑하신 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고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말하기를 “젊은이 당신도 알지만 친절은 당신을 울게 만들것입니다.” (몰간예화)

예수님이 주인 되심

 

마태복음 10장 34-39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신광야를 지나 애굽에서 탈출한 뒤 약 3개월 즈음 되자 시내광야에 이르렀고 이윽고 시내 산에서 강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고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우레와 번개가 있었고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이백만명에게 하늘로부터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었다 모든 백성들이 떨 수 밖에 없었고 멀리 서서 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도록 모세에게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하늘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을 비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셨으며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시기를 이제 누구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린 내 아들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하여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내가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겠다. 이것은 그를 위하여 내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위하여 유일한 방법이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모셔들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처럼 아들을 공경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시는 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어쩔 수가 없는 신앙 고백 때문에 발생하는 분쟁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우리의 고백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아들에게 들어가면 아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게 되기 때문에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아버지와 다툴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이 딸이나 며느리에게 들어가면 이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게 되기 때문에 터줏자리를 두고 토속신앙을 따르는 시어머니와 다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때문에 평화롭던 가정은 불화에 휩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문제 때문에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김장환 목사님이 25살 때 미국에서의 8년간 유학을 마치고 21살 된 트르디 사모님을 데리고 1959년 12월 한국에 도착하였습니다. 가정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을 믿고 있지 않았으며 터줏대감 3개를 두고 토속신앙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일찍이 돌아가셨기에 큰 형님이 아버지 역할을 할 정도로 나이 차이가 많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산소로 25살난 김목사님을 데리고 갔으며 형수님이 산소 앞에 술과 과일을 차리자 큰 형님은 절하자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기독교와 추도예배를 설명하고 그냥 서서 기도하겠다고 하니 큰 형님의 얼굴은 가면을 쓴 것처럼 굳어졌고 성묘는 서먹서먹하게 끝났습니다. 그 후 어느날 저녁인가 직장을 잃고 방황하던 셋째 형이 찾아와 철없던 네가 큰형님께 너의 신앙에 대해 확신하며 진실하게 말할 때 나는 감동받았다. 나도 너를 따라 예수를 믿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셋째 형이 예수를 믿겠다고 하자 다른 가족들도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김목사님 아버지의 제삿날이 되었습니다. 김목사님은 큰형님께 한 번만 추도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래서 다 같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고인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인상적인 일들을 애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들이 가장 먼저 예수를 믿겠다고 나섰습니다. 음식준비 하는 고생이 없어지고 제사후 남자들이 술자리를 갖는 일이 사라져서 너무 좋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쉽게 마음을 연 것은 무엇보다도 트르디 사모님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트루디 사모님은 불편한 상황에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일찍 일어나 불을 때고 쇠죽을 끓이고 어머니를 잘 모시는 모습을 보고 가족들 모두가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형님은 집안의 터줏자리 3개를 모두 불살랐고 그렇게 온 가족이 예수를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주님이 이 가정을 평정하신 것입니다.

Illustration2016_Page_7삽화: 신예현 – www.lifeisyea.com

말씀과 약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누가복음 8:15 )

옥한흠 목사님이 아직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기 전 서울의 어느 장로교회에서 부사역자로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장년은 800명이 나오는데 대학부는 오직 1명만이 나왔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옥목사님을 거기에 배치한 것은 대학부를 부흥시켜라는 메세지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여 CCC, Navigator와 같은 선교단체는 부흥하는데 자신의 교회 대학부는 부흥하지 않는지 고심을 한 끝에 선교단체의 여러가지 책들을 모두 다 구입하여 읽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신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학부의 한 학생(방선기)을 네비게이토에 가입하여 거기서 배운 것을 내게 알려달라고 하니 그 학생이 네비게이토에 가입하여 6개월 흐르자 목사님에게 와서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라는 고백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살펴보니 교회는 교리는 있는데 복음이 없고 회의는 많은데 훈련이 없었고, 행사는 많은데 비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교단체를 모델삼아 그 교회에 맞는 제자화 훈련을 하니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가장 큰 대학부를 세울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대학부를 세워가는 중에 서울대 의대 2학년에 다니는 학생 하나가 찾아 와서 목사님 저 학교 그만두고 신학교를 갈까 합니다 그러길래 목사님은 그 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너 본과에 올라가서 공부하는 것이 힘들까봐 그렇지? 라고 되물었습니다. 학생은 고개를 숙이고 나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경희대 병원을 심방하니 한 밤중에 피로에 젖어 회진을 도는 레지던트 의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의사가 청진기를 꺼내 흔들면서 하는 말이 제가 왜 이렇게 고생하는 줄 아세요? 다 목사님 때문입니다 그 분은 후에 자신의 분야에 권위있는 의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가끔 너 아직도 내가 원망스럽냐? 무슨 소리세요 저는 목회자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는 걸요 하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자도가 교회에서 성경만 가르치는 일에 국한되면 그 제자도는 도서관에서 남아 책만 읽어 정보를 얻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제자도는 교회에서 시작되어 가정과 사회에 들어와야 그 충만한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배우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서 배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수아 14장에 나오는 갈렙과 같습니다. 갈렙은 일생을 가나안 땅을 얻는 데 소비하였습니다. 그것이 삶의 근거이자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토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여호와 하나님을 전도하러 중국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할 때 갈렙은 두려운 적을 상대로 믿음의 말을 선포하였고,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에게 약속하시기를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는 45년 간을 간직하여 가나안 땅의 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 여호수아에게 가서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스라엘 지파의 기업은 제비를 뽑았지만 갈렙의 경우만은 예외적으로 그가 원하는 지역을 주었던 것입니다. 헤브론에는 거대한 아낙 자손이 버팅기고 있어서 아직 이스라엘 자손이 정복하지 못하였습니다. 갈렙은 전쟁에 능한 자였기에 가서 아낙 자손의 세 아들을 쫓아내고 그 곳을 기업으로 삼았습니다. 

여기에 제자도의 방법과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마음에 간직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나에게 주어진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역시 지혜가 없이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상황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맞는 해석이어도 지금은 맞는 해석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같이 우리가 간직할 수 있는 말씀은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선교와 관련하여서는 마태복음20:28-29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담대하게 우리의 직장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 마가복음 11:22-24에 나타난 누구든지입니다. 여기에 우리를 포섭시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적용하시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인내하면서 애를 쓰시기를 바랍니다.

Illustration2016_Page_4삽화: 신예현 – www.lifeisyea.com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 2

 

신약에 이르면 12제자를 선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의 출신은 모두 미천한 가문들입니다. 그 중에 6명은 모두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뒤  2틀이내에 만난 사람들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 모두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이 간절했던 사람들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열 두 사도로 택하신 이유는 로마를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원할 왕이나 장수 그리고 부자를 만들어 주기 위해 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 목적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영생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흘러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 가운데 예수 믿어 부자가 되고 권력자가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선택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 사함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기에 이들은 복음의 사신이 된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영적인 측면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열심히 노력한 자들이 먼저 거두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는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같습니다. 그것은 해가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는 것과도 같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복을 주시는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나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게 됩니다.

 

그러므로 빌게이츠와 달리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인생관은 180도 전환됩니다. 먼저 세상에서 우리의 낮음에 대하여 우리의 재산 구조 삶의 구조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여 낮을 지라도 두려워 하거나 괴로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누구도 세상의 것을 가지고 영원한 나라로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많이 가진자도 가져가는 것이 없고 적게 가진 자도 가져가는 것이 없기에 삶에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족한 것입니다. 이는 비교의식에서 마음에 평강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에 대하여 무한한 감사가 우리에게 있으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준비하고 계십시요. 하나님의 때가 되면 준비된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어떤 분야든지 1만시간은 들어야 전문가가 된다고 합니다. 1만시간은 매일 3시간씩 전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10년이 걸려 달성되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준비를 갖추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역시 여러분을 선택하셔서 그 나라를 위해 쓰임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SBCwebfeature신예현 – 하나님이 가리키는 곳으로 (2013)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기브아에 살고 있는 벤야민 지파 사울이라는 사람을 왕으로 선정하여 주셨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먼저 벤야민 지파는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작은 지파이었기에 (삼상9:21), 다른 지파의 질투심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고, 비록 베야민 지파가 국가적인 일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여도 그 규모에 비추어 볼때 그렇게 큰 위험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울의 고향 기브아(삼상11:4)는 이미 사사기 19장에 나오는 패륜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지탄을 받고 거의 멸망 직전까지 이르렀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삿19-21). 

두번째로, 지정학적 측면에서 벤야민 지파의 위치는 이스라엘 지파의 중심에 있었으며 다른 지파들이 이 새로선정된 왕에게 접근하기가 용이하였다.더구나 사무엘은 40년동안 사사로서 벧엘, 길갈, 미스바, 그리고 라마를 중심으로 에브라임, 벤야민, 그리고 유다 지파를 순례하였으며, 언약궤와 성막 역시 근처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세번째로, 더나아가 기브아(높은 언덕의 뜻으로 감람산 보다 조금 더 높음)는 모든 유대의 산세와 베냐민의 지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군사전략적 요충지이며 북으로 세겜을 남으로 헤브론과 연결하는 능선도로의 중심에 있었다. 즉, 기브아는 이스라엘의 중심부를 통과하여 북쪽과 남쪽으로 여행할 때나 동쪽이나 서쪽으로 여행하여 요단 강이나 지중해 해변 평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거쳐야할 도로들의 교차점에 있었다. 만약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통괄하고자 한다면 이 기브아야 말로 그렇게 하기에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왕 즉, 사울이 이스라엘 내지로부터 블레셋의 위협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고향인 기브아는 그 좋은 출발지였던 것이다. 이 후 사울이 왕이 된 후 이 지역 근처인 게바, 믹마스, 벧아웬에서 곧장 전투가 벌어지게 된 것도 그 이유였다(삼상13-14). 사울은 전투의 중심지 기브아에서 살았던 것이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82-83 참조).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택하여 사용하시는 사람은 그 상황과 목적에 적합한 자질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같은 것이다. 다만 신자는 그렇게 탣하시고 사용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감사하는 것이고 불신자인 경우는 우연과 자신의 노력의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최근의 좋은 예가 빌게이츠이다. 1980년초 Personal Computer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컴퓨터와 프로그밍에 1만시간을 쏟아 부어 전문가가 된 상태였다. 준비된 이 사람은 불어닥친 PC 시대에 MS-DOS를 공급하여 소프트웨어의 황제 자리에 올라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빌게이츠는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 사용받으려면 먼저 자신의 분야에 1만시간 이상을 쏟아부어 전문가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시대를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대를 타고 하나님과 이웃에게 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