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터예배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1Co 15:58 KOR)

소망 교도소 부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효진 장로의 책 “하나님은 아무도 포기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청송 교도소에서 8년간 일한 뒤 어느날 갑자기 박효진 교감이 서울 구치소로 발령이 났습니다. 다른 공무원 부서도 그렇지만 서울 구치소는 교정 일 번지이기에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박효진 교감은 아무 줄도, 빽도 없었으며 더구나 유력한 인물을 아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습니다. 가슴에 가득 꿈을 품고 상경 했지만 서울 구치소의 분위기는 너무나 싸늘했습니다. 소장은 전입신고도 받지 않았고, 보안과장 역시 인상이 비틀어져 박교감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마땅히 중책을 지고 분주히 일해야 할 박교감에게 책상과 사물함조차 마련되지 않은 채, 간부회의에도 출입금지였습니다. 매일 할 일 없이 휴게실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모두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맞이하여 울화가 치밀어 올랐고 당장 소장실에 뛰어들어가 사표를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겨우 자리가 정해진 것이 나이 어린 동기생의 보좌역이었습니다. 공직 사회에서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것입니다. 아내는 “여보 어떤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서울 구치소로 보내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껀데 지금의 억울한 마음 때문에 주님의 일을 그르쳐선 안 되잖아요? 참고 또 참고 기도합시다” 라고 위로에 힘입어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 서러운 시기 약 6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보내던 박교감에게 사형수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불안에 흔들리는 동공을 번뜩이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들의 친구가 되어주며 위로자가 되어주는 것은 발령을 받은 후 상관들에게 이유모를 무시를 당하며 쓰라린 마음으로 하릴없이 빈둥거리던 박교감에게는 좋은 영적 피난처이자 안식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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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

19:1-10

RA 토레이 목사님은 100년 전에 목회하시던 분입니다. 그 분의 책 일화 및 예화들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내가 미니아폴리스에서 어느 뜨거운 여름 밤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설교 장소는 대부분 남자들로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창문들은 창틀에서 제거되어 좀 더 많은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도록 하였습니다. 내가 설교를 끝내고 믿음의 초청을 하고 있을 때, 문 가까이에 있는 이 창문들 중 한 창문 옆에서 있던 어떤 남자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축도를 하자마자 그는 새신자를 축하하는 모임을 기다리지 않고 그 문을 통해 쏟살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계단을 타고 아랫층으로 내려갔을 때 그에게 다가가서는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 위에 놓고 말하기를
친구여,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오늘밤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새신자 모임에는 참가하지 않습니까?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당신은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모르고 계십니다. 나는 미네아폴리스에서 가장 비열한 도둑입니다
나는 말하기를 그래요, 만약 당신이 미네아폴리스에서 가장 비열한 도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나는 성경을 펴서 로마서 5:8을 찾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당신은 확실히 죄인입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지금 만약 당신이 미네아폴리스에서 가장 비열한 도둑이라면, 당신은 확실히 죄인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그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는 조용히 나와 함께 내 사무실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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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법을 실행하자

마태복음 6 1-4

1905년 한국이 을사보호조약으로 그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 양반고을 공주에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선교사 샤프와 윌리엄스, 토착전도인 윤성렬과 안창호등이 2년간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교인 수는 50명을 넘지못하였습니다. 그러나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계기로 한강 이남에도 강력한 부흥이 시작되었으며, 공주에서 가장 강하게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4월에 열린 공주읍교회 부흥회에서 교인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였다 하며 간음하였다 하며 속이고 도적질하였다 하며 우리 주를 입으로만 믿었다 하며 어떤 이는 그간 안창호씨를 원수같이 보았다하며 슬피 애통으로 서로 위로하며 날마다 이와 같이 일주일 동안 지냈더니…”(신학월보, 1907.4.21). 더 읽기

감사의 힘

골로새서 3:15-17

동 유럽의 어느 유대인의 마을에 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대식구가 한 방에 모여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자는 좁은 방에 여러 식구가 함께 지내는 게 너무 불편하고 싫었습니다. 아이들은 종일 시끄럽게 떠들고 부인은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어느 날 머리끝까지 짜증이 난 남자는 지혜롭다고 소문난 랍비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습니다.랍비는 방에서 닭을 길러보라는 의외의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는 소를 데려다 키우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는 말을 데려다 키우라고 했습니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고 남자는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 랍비가 와서 모든 동물을 집 밖으로 옮기고 일주일 뒤에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랍비가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지금은 좀 어떻습니까? 지낼만한가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이들도 조용해졌고 방도 훨씬 넓어 보입니다. 이렇게 상쾌한 공기를 마시게 돼서 정말 좋습니다. 온가족이 화목하고 아이들도 행복해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사실 남자의 상황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습니다. 랍비는 최악의 상황을 조성함으로써 남자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상황이 악화되어야만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일꺄요?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강의한 샤하르 교수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감사야 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탈 벤 샤하르 강의, 행복이란 무엇인가,p109 – 110).  더 읽기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자

데살로니가 전서 5 16-18

미국의 어떤 부인이 병을 앓다가 그만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좋은 병원에서 훌륭한 의사를 통해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시력을 잃고 만 것입니다. 남편은 졸지에 시각 장애인이 되어 버린 아내를 위하여 정성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집안일도 해주고, 아내의 회사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 또 퇴근 때는 회사 앞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차로 데려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돌보다 보니까 내가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소. 이제 나도 내 일을 좀 해야 하니까 내일부터는 당신 스스로 회사를 다니도록 합시다. 집안 일도 내가 다 할 수는 없으니 당신이 할 일은 당신이 하는 것이 좋겠소. 남편의 이 말은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부인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내가 실명했다고 벌써 귀찮아하는구나.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이제 나에 대한 사랑도 식었구나. 좋다. 내 힘으로 해볼 테다. 부인은 다음 날부터 혼자서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넘어지고 부딪치고, 다치고,깨지고, 길을 헤매고, 외롭고 힘들지만 그렇게 다녔습니다. 2년 이상을 그렇게 다니던 어느날, 늘 타고 다니던 버스 기사가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부인만큼 남편의 사랑을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받는 사람을 지금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남편께서는 매일 부인의 뒤를 조용히 따라 다니며, 버스 안에서는 꼭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부인이 회사의 문 안에 들어설 때까지 지켜보고는 돌아가시더군요.부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부인은 남편의 그 깊은 사랑과 그리고 어느 새인가 홀로 설 수 있게 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이민우, 그냥 사랑하거라, 232-33). 더 읽기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고

히브리서 12:1-2 

1845년 영국에서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뱃길을 탐험하기 위해 프랭클린 원정대가 출항을 하였습니다. 선원들은 두 척의 배에다가 항해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많은 물건을 실었습니다. 1,200권의 책들, 고급도자기, 수정으로 만든 잔, 손잡이에 장교들의 이름을 새긴 순은제 식기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보조 연료로 사용되는 석탄은 겨우 12일치 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안 되어 원정대의 배는 얼음 바다 위에 좌초되었습니다. 몇 달 후 프랭클린경은 사망했습니다. 선원들은 몇 명씩 그룹을 지어 얼음 위를 걸어서 안전지역을 찾아 나섰습니다만 결국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 중에 한 그룹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두 명의 장교가 큰 설매를 끌면서 얼음판 위를 100킬로 넘게 이동하였습니다. 후에 수색대는 그들의 사체와 그 썰매 위에 가득 실려 있는 은식기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끌고 다니다가 자신들의 목숨과 바꿨습니다.(이민우, 그냥 사랑하거라, p74) 우리의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돈은 이 세상에서나 필요한 것입니다. 살 정도만 가지면 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던지시고 주님을 따라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마귀의 시험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 즉시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을 이끄시어 광야로 들어가게 하셨다(4:1). 광야라 하면 언제든지 출애굽 후 40년간 이스라엘이 방황한 시내광야가 생각나게 된다. 비록 이 두 사건들의 위치는 다르지만 울퉁붕퉁한 지형의 형태와 물, 나무와 같은 자연적인 조건이 결여된 상황은 공통적이다. 광야에서는 생존할 조건이 너무나 좋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만나라는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셨다. 이때 여호와께서는 만나를 수거해 가는 때와 양을 정하셔서 그의 말씀을 지키는 여부를 테스트하신 적이 있었다(16:4) 그러나 지금은 이와반대로 마귀가 와서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라고 유혹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하여금 만나와 유사한 기적을 일으키라고 도전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께서 돌로 떡을 만드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으며 지금 40일간 밤낮으로 금식한 뒤 주리신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광야에서 만나 테스트에 관해 언급한 신명기8:2-3의 말씀을 인용하심으로 거부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참되시고 신실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한 그 광야에서 예수님은 이기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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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지난 화요일 북카페에 두 명의 여성이 찾아왔습니다커피를 대접하고 서로 이야기를 해 보니 인천에 사시는 분들로 어느 도서관 독서클럽 회원이라고 소개를 하였습니다여기를 찾은 이유는 새해들어 2달 동안 도서관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으로 독서클럽회원들의 장소를 사용하기에 독서클럽회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찾으러 온 것었습니다독서클럽회원들과 관련하여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왜 믿는가 하는 기독교적인 그리고 존재론적인 질문에 다가갔습니다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에 그리스도를 만나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가 없이는 안된다는 취지의 말을 하였더니 그 말에 크게 공감을 하였습니다이 두 분은 불신자였기에 그리고 나이도 60정도 되었으므로 인생을 아는 연배들이었습니다통상 하나님을 찾을 때는 자신의 힘이 연약하여 난관을 뚫고 나가기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므로 도움을 필요로 할 때입니다.시험에 낙방하거나병이 들었거나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거나가족간에 불화등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사람들은 기도도 하고 싶어지고 신을 만나고 싶어집니다그러나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 인도하는 하나의 길이 될 수는 있지만 이런 것들을 통하여 만난 하나님은 아직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반드시 만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그리고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 역시 가질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불교를 비롯한 타 종교에서도 이런 약함을 도와준다는 교리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그러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종교는 기독교 이외에는 없습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죄의 문제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지 못하면 기독교에는 아직 입문도 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를 해결하실 수 있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그분은 바로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로 가셨다가 다 청산하시고 죽으신 뒤 3흘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니느웨로 가기를 거절한 요나

북왕국이 점점 타락하여 끝내는 본토에서 추방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또 보내셔서 경고하시고 바른 길을 제시하여 주셨다. 아모스와 호세아와 같은 선지자들이 전한 메시지는 지금 성경에 남아있지만 요나와 같은 선지자는 설교보다는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파하였다. 요나의 그런 행동들이 왜 일어났는가를 살펴봄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요나는 가드헤벨이라는 갈릴리 호수 남서쪽 약20킬로에 위치하고 스블론지파의 경내에 있는 지역의 출신이다(왕하14:25). 후에 이사야는 이 지역을 이방의 갈릴리 라고 불렀다(9:1). 그는 앗시리아에 의하여 사마리아가 멸망당하기 약 50년 전인 여로보암 2세의 통치하에서 예언활동을 하였다 (왕하14:25-26). 여로보암 2세의 치하에서는 앗시리아가 일시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며 이를 틈타 북왕국은 팽창하였고 왕국은 부유하였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요나1:1). 이 당시 니느웨는 아직 앗시리아의 수도는 아니었으며 다만 앗시리아의 행정 중심지로서 티그리스강변에 자리잡고 있었다(현재 이라크 북부). 이런 니느웨로 요나를 보내신 것은 이유가 있었다. 거기에는 니느웨 주민 뿐 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니느웨 백성은 너무 악하여 하나님께서는 지진으로 멸망시키려고 준비 중이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 때문에 요나가 먼저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보내심을 받았던 것이다(3:4). 한편, 이렇게 이스라엘로부터 800킬로가 넘는 거리에 있는 니느웨로 보내심을 받은 요나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선교적 사명을 새롭게 형성하도록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오래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사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던 것이다(12:3). 니느웨로 가는 요나의 여행을 통해 온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의 뜻이 변치 않았다는 것을 되새기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요나의 여행은 서로 다른 두 민족에게 서로 다른 두 메시지를 동시에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뜻은 앗시리아에 대한 요나의 두려움과 경멸로 거의 실패할 뻔 하였다. 요나의 두려움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요나가 사는 살던 갈릴리 부근 지역은 앗시리아의 빈번한 침공으로 그 잔인함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만 가지고 요나가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요나는 앗시리아 백성들은 잔인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아무런 경고나 도움이 불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런 요나에게 역시 하나님께서는 하실 말씀이 있었다. 그러므로 항구 욥바를 통해 다시스로 도망가던 요나를 폭풍과 물고기를 이용하여 다시 니느웨로 보내셨던 것이다. 이런 여러목적을 달성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맹렬한 폭풍, 큰 물고기 내에서의 시간, 박넝쿨, 벌레, 뜨거운 햇빛, 그리고 시들은 안식처를 계획하고 준비하셨다.그 결과 니느웨 백성은 회개할 기회를 가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교적 사명을 다시 되새겼으며, 개인적차원에서 요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114-115 참조).

하솔, 므깃도, 그리고 게셀을 건축한 솔로몬과 시험

솔로몬 왕국이 확장되어 가면서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가능성이 배태되었다. 모세는 일찌기 이런 염려를 백성들에게(신8:17-20) 그리고 특히 왕에게(신17:16-17)표명한 바 있었다. 사무엘 역시 이런 문제를 신랄하게 경고하였다(삼상8:10-18). 결국 하솔, 므깃도, 그리고 게셀을 건축함으로서 드디어 솔로몬이 얼마나 여호와께 신실하게 살 것인가를 검증하는 때가 왔던 것이다(왕상9:15; 10:23). 솔로몬의 왕국이 산출하는 부는 두 군데의 지정학적 요소로부터 왔다 : (1) 그가 통치하는 지역의 크기와 (2)그가 통제하는 내륙의 위치였다.  첫째 요소와 관련하여, 솔로몬은 사울과 다윗이 통치하던 당시 보다 훨씬 큰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다. 남으로 홍해에서 북으로 유브라테 하수까지와 동으로 시리아 사막으로부터 서쪽으로 지중해까지 였다(역하9:26). 따라서 그의 통치하에 많은 나라가 들어왔으며 조공을 받치게 되었고 그 대신 그들은 보호를 약속받았던 것이다. 이 조공은 매년 금 약 25톤에 이르렀다(왕상10:14). 둘째 요소와 관련하여, 솔로몬 왕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간의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중해 연안을 다스림으로 국제간선도로를 관할하고, 시리아 사막을 다스림으로 왕의 대로를 다스림으로 막대한 통행세를 거두어 들였고, 더 나아가 본인 자신이 상선을 지어 욥바를 통해 지중해 연안과 무역을 하였고, 에시온 게벨을 통해 홍해 지역으로 진출하였다(왕상10:22; 역하8:17-18). 하솔, 므깃도, 그리고 게셀은 국제간선도로를 따라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요새화 되었는데 하솔은 레바논 근처,  므깃도는 이스르엘 계곡내에서, 그리고 게셀은 팔레스틴 평야에 세워짐으로 통행세를 받고, 이스라엘의 곡물들이 수출되도록 하는 중요한 거점이었다. 사실상 이 도시들은 참되시고 유일하신 이스라엘 하나님을 전파하여 모든 민족으로 하여금 축복을 받도록 이용되어질 수 있었지만, 솔로몬은 자신의 명예,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만 도시를 건설함으로써 그 마음이 드러나고 신명기17장에서 모세가 왕에게 하지말라고 경고한 모든 것을 행한 사람이 되었다(신17:16-17). 결국 여호와께서 비할바 없는 지혜의 축복을 주신 이 사람은 어리석게 되어 자신에게 준 축복을 남용하여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한 사람이 되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98-9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