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의 표지

2015.08.12 |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계12:17)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라는 영화는 1933년 김구선생을 만나 3명의 암살특공대를 선발한 뒤 이들이 특정인을 암살하러 경성에 도착하자 이 정보를 가지고 돈을 벌려고 한 변절자 염석진(가공의 인물로 이정재가 역을 맡음)으로 시작하여 해방 후인 1949년 특공대중의 한명인 안옥윤(전지연)에 의해 염석진이 암살당하고 마는 것으로 영화를 끝내고 있습니다. 안옥연이 왜 밀정이 됬냐고 물으니 해방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는 미당 서정주의 말을 인용하여 영화에 도입한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가는 이렇게 매국노와 애국자로 분류가 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같습니다. 

 이집트로부터 극적인 탈출 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계속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고 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나 실제로는 호렙산을 먼저 들려 약 일년간 머무른 뒤 가나안을 정복하러 갔었습니다.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목마름과 배고품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을 거친 3개월의 여행끝에 모세는 백성들을 이끌고 호렙산 앞에서 진을 쳤습니다.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호렙산(2,642미터)으로 먼저 이끄셨을까요? 첫째 이유는 모세가 하나님을 호렙산에서 만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려는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출19:17). 그러므로 이들은 호렙산에서 불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보았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같은 율법을 받고 언약의 백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관계없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모세를 하나님께서 보내사 이집트로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시키셨다는 증거는 모세의 지팡이나 기적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증거는 그가 야훼를 만난 바로 그 호렙산으로 백성을 이끌고 되돌아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인 것입니다(출3:12).

 그러나 시내 산에 머물던 중 모세가 십계명이 기록된 돌 판을 받으러 산 위로 올라간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임재없이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목표인 것은 애굽 당시부터였습니다 (출13:11). 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신 목적 자체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출6:6-8). 그러므로 가나안 땅을 얻는 것은 중요하였으나 만약 모세가 그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의 임재 없이 갔더라면 레위기와 민수기는 결코 작성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무 준비없이 즉, 장막도 없이 제사장제도도 없이, 계명들도 없이 갔을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이들은 경건하지 못하게 가서 세속국가로서 가나안으로 들어갔거나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이는 왜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는 준비가 왜 중요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들이 시내산을 떠났을 때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실 수 있도록 위함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을 모든 다른 국가들과 구별하도록 만든 요소인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하나님 없이 시내산을 떠났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측량할 수 없는 저주가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이방인들과 같이 되었을 것이어서 진노의 대상들이었을 것이고 세상에서 소망이나 하나님 없이 되었을 것입니다(엡2:3, 12).( Carson, D. A., R. T. France, et al., eds. New Bible Commentary: 21st Century Edition. 4th ed. Leicester, England;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4. Print )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모인 장소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하실 때를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별세라는 단어를 누가는 엑소더스 즉 출애굽에 썼던 탈출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주님은 이 죄와 마귀와 사망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주님이 다스리는 죽지 않고 썩지 않고 죄와 사망이 없는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탈출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인간이 왜 이렇게 비참한 지경에 떨어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주인됨을 거부하고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되려고 한 마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우리가 미묘한 상황에서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인을 모셔야만 합니다.그것은 바로 복음을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를 통하지 않고는 우리는 죄사함을 받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이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무엇으로 증거하겠습니까? 바로 산상수훈으로 대변되는 주님의 계명들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우리가 그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20150727165323577734 이미지 출처: www.mediatoday.co.kr

체포당하신 그리스도

2015.8.9 | 체포당하신 그리스도 (마가복음 14장 43-52절)

주님의 체포는 유다의 입맞춤을 신호탄으로 하여 일어났지만 여러가지 사건들과 교훈이 교차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마음에 되새겨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는 연약해서 붙잡히신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범죄자처럼 체포당해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주님은 말고의 귀를 치료하시고 폭력에 대해 선대하시는 모습을 유다에게도 적대자들에게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온순하게 가야바의 관정으로 끌려갔던 것입니다. 이런 폭력 가운데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비폭력적인 방법은 전 인류의 역사에서 따라갈 수 없는 가르침으로 오늘날도 우리들은 이 가르침을 붙뜰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정, 사회,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상황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분별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해 나가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야만 합니다.

2. 우리는 때때로 상식을 초월하는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야만 합니다.

3. 우리는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겟세마네의 제자들과 그리스도

2015.8.2 | 겟세마네의 제자들과 그리스도 (마가복음 14장 32-42절)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십자가를 몇 시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피 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하시고자 기도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땅에 엎드리어 기도하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말씀을 3번 반복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순종을 배우고 계십니다. 그는 아들이시라도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피 땀 흘려 기도하시는 가운데 제자들은 너무 졸려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도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겟세마네의 때가 이를 때 주님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시험을 이기고 그 뜻을 행할 수있는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우리는 시험을 당해 기도하지 않는 제자들의 모습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3. 우리는 우리의 겟세마네를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그리스도

2015.07.29  | 물 위를 걸으시는 그리스도 (마14:22-33)

오늘은 2009년에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하던 중 방문한 갈릴리 호수 그 가운데서도 주님과 베드로가 함께 물 위로 걸었다고 알려진 장소에 대하여 사진을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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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갈릴리 호수 위를 배가 떠다니고 있으며 주님께서 물 위를 걸었다고 알려진 곳을 그 배 위에서 제가 직접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남자만 오천명을 먹이시고 저녁이 되어 무리를 흩어 보내시는 사이 제자들을 배에 태워 먼저 그 지역을 떠나 갈릴리 호수 서편으로 가도록 분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떠났고 주님은 무리를 흩어 보내신 뒤 기도하시러 홀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윽고 새벽 3시가 되자 주님은 호수가로 내려오셨습니다. 호수가에는 아무런 배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내 물 위로 한 걸음을 내딛고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 거센 풍랑이 이는 호수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의 배까지 가셨습니다. 바람과 풍랑으로 제자들은 저녁에 떠났지만 밤새 힘겹게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이 때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자 제자들은 유령으로 오인하여 소리를 지르면서 두려워 하자 주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갔습니다. 베드로가 소리를 질러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드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시매 바람이 그치고 배는 저희들이 가려고 한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배에 있던 제자들은 주님 앞에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 인생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풍파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자주 물 속에 빠져들어가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 곁에는 늘 상 주님께서 계셔서 우리의 구원의 부르짖음에 손을 내밀어 구원하실 준비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물 속에 빠진 베드로가 구원을 받은 것처럼 그리고 거센 풍랑에 곤고를 당한 제자들이 주님이 진정 누구신지 깨달은 것처럼 우리는 주님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는 순간 경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가는 삶이 영생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어두움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을 때 여러분 더 많은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더 알아가려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를 더 잘 알수록 우리는 그를 저 잘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경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생각하십시요. (CTS 방송설교).

mt-hermon-sea-of-galilee이미지 출처:  http://urantia-book.org/
삽화: Rambrant – 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e (1633)

 

겟세마네로 향한 밤길을 걷는 제자들과 그리스도

2015.7.26 | 겟세마네로 향한 밤길을 걷는 제자들과 그리스도 (마가복음 14장 27-31절)

오늘 본문은 겟세마네동산으로 가는 약 30분동안의 대화를 기록하였습니다. 유다는 이미 스승을 팔려고 떠났고, 나머지 제자들 역시 주님을 버릴 것을 예고하셨지만 제자들 특히, 베드로는 이런 주님의 경고를 경시하며 자신을 과시하다가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무력한 그리스도로 잘못 오해하여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가운데 진리를 이야기 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겸손히 당신만 의지하고 살아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믿음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려고 할 때 비로서 자라가는 것이고 그 믿음의 기초는 우리의 헌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인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는 사랑 가운데 진리를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를 배워야 합니다.

3. 우리는 믿음에는 지름길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

2015.07.22 | 하나님의 백성의 삶 (창21:22-23)

창세기 21장 22절 이하에 보면 블레셋의 땅에 거주하는 그랄 왕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브엘세바에 거주하는 아브라함을 찾아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목적은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비멜렉은 연 전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 직전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 할 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자신의 아내로 취하여 들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취하여 들인 그 밤에 하나님께서 현몽하셔서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나도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창세기 20:3-7).

 그 후 아비멜렉은 몇 년동안 지켜보니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을 보고 그를 찾아와서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삶이 되는 것을 사람들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분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릴리아스 호튼 여사에 대하여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1800년대말과 1900년대 초엽에 전염병으로서 콜레라가 만연하였다고 합니다. 어느날 한 조선사람이 지나가다가 릴리아스가 전염병으로 죽은 부랑자를 가슴에 안고 슬퍼하고 있기에 호기심이 나서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합니다. 외국여인이 죽어가는 한국사람을 돕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특히 이 쓸모 없는 부랑자를 말입니까? 그는 너무나 혼돈이 되어서 릴리아스를 따라 그녀의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웃사람들에게 도애체 이 여인이 누구인지 물어 보게 되고 릴리아스가 새로운 종교의 선생과 결혼했으며 왕후의 의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를 들은 남자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집에서 나오는 선교사를 기다렸다가 따라가서 조그마한 교회로 가서 선교사가 예배를 집례하는 동안 그 사람은 큰 감동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즉시로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동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너무나 인정머리없는 동네로서 어떤 사람도 가기 싫어한 곳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소식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켜서 이들은 친절한 마을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마을이 변화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언더우드 부부에게 이것에 관해 물었고 그때서야 이 기적의 변화사건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이 행주로 가서 그 마을에 대하여 후속조치를 취했을 때 그는 그 마을의 변화의 진실한 이유는 자신의 아내가 죽은 거지를 그렇게 돌보았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http://underwoodmemorialhall.blogspot.kr).

 여러분 날이 이를 것입니다. 즉, 죽은 자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올 것입니다. 아브라함 처럼 릴리아스 호튼 처럼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iedl/150059861893

최후의 만찬과 그리스도

2015.7.19 | 최후의 만찬과 그리스도 (마가복음 14장 12-26절)

유대인의 유월절이 왔습니다. 양을 잡는 첫 날이 시작할 때인 목요일 저녁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1,500년간 계속한 유월절 의식의 참된 의미를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유월절 양이신 당신께서 만백성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유다는 이를 모르고 은 30량에 주님을 팔아넘겼지만 주님은 왕으로서 모든 사건을 지배하시면서 끝까지 온유하게 유다를 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새언약의 상징으로 주의 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를 행하여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기념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1. 주님의 만찬을 통해 유월절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증거하는 절기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2. 주님의 만찬에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을 본받아야만 합니다.
  3.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새언약의 상징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015. 07. 15 |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히브리서11:11-12)

1999년 7월 17일 자 기독공보를 보면 언더우드 탄생 140년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에 묻혔던 언더우드 선교사의 유해를 83년만에 양화진 외인묘지로 옮겨 부인 릴리아스 호튼 언더우드 과 함께 합장한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은 이미 1916년 미국에서 돌아가신 바 되었고 부인은 그 다음해 아들 원한경박사와 자부와 함께 한국으로 되돌아와서 선교사역 및 의료사역을 하다가 1921년 죽어 양화진 외인묘지에 따로 묻힌 바 되었습니다. 릴리아스 호튼 여사는 1851년 태어나 시카고에서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선교부의 요청에 따라 1888년 37의 나이로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와서 제중원에서 일했습니다.

그녀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매우 가난하고 길은 진흙으로 덮인 한국을 보았지만 선교사로서의 그녀의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고 적고 있습니다(상투쟁이와 15년).한국에 와서 그녀는 두가지 일에 바빴습니다. 하나는 낯선 언어를 익히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민비와 나이가 같았고 민비의 주치의였습니다. 서로 간에 친했다고 합니다. 1년 후 8살 연하인 언더우드 목사님과 결혼을 하여 1890년 외아들 원한경을 낳았습니다. 글도 잘쓰셔서 1904년 상투쟁이와 15년이라는 선교일화를 담은 책을 미국에서 출간하였고 1918년에는 언더우드 선교사 이야기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들은 지금도 아마존에서 구입가능합니다. 한국에서도 킨들로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조선 선교에 발을 디뎠고 조선 사람들을 사랑하여 자신이 가진 의술을 가지고 섬기다가 이 땅에 온지 33년후에 70살인 1921년 조선에서 죽었고 양화진에 묻혀 지금도 우리에게 그녀의 믿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응답되어 그녀의 남편이 세운 연세대학교와 세브란스병원은 지금도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그녀의 후손들은 한국 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 선교란 이런 것임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c7cc5725_underwood이미지 출처: www.boazclub.com

두 종류의 사람과 그리스도

2015.07.12 | 두 종류의 사람과 그리스도 (마 14:1-11절)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문둥이 시몬의 집으로 가서 당신과 나사로를 위한 잔치에 참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의 겸손과 자비를 본받아야만 합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이런 주님을 사랑하여 귀한 나드 한 근이 되는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붓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으므로 그의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주님을 위해 우리 자신의 것을 허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주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는 마리아의 이런 행동에 분개하였고 드디어 주님을 은 30량에 팔아넘기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가룟 유다의 탐욕과 주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촉발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누구시며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깨달아야 하며 이 주님께서 다시 세상에 오실 때는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겸손과 자비를 본받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를 위해 허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